소설리스트

〈 55화 〉55화 (55/370)



〈 55화 〉55화

하지만 시녀 역시 드네아 공작가에서부터 아리스를 모셔왔던 시녀 중의 시녀, 프로였다. 그런 그녀는 제아무리 주인의 머리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걸 겉으로 드러내거나 하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럴 때야말로 프로와 그렇지 않은 시녀에 대한 차이점이 드러났다.

“과연, 아리스님! 아리스님의 기도를 신께서도 들어주신 거군요! 그래서, 어떤 계시가 내렸나요?”


프로 시녀가 되는 법, 제 1장. 일단 칭찬하고 호응하라.

저자가 누군지도 모를, 시녀들 사이에서는 베스트 셀러라는 말로도 부족한, 오히려 교범에 가까운 책에 나온 것을 그대로 시행한 시녀는 호들갑을 떨며 아리스에게 그렇게 말했다.  책 덕분에 라이어스 제국은 물론이거니와 대부분의 왕국의 젊은 귀족들이 버릇이 나빠졌다는 학자들의 연구결과따위는 아무리 공작가에서 공녀의 시녀를 하고 있던 그녀도 모르고 있겠지만.

“...계시는...”


하지만 그 방법은, 평소에도 이렇다할 말을 하지 않는 아리스에게는 특효였다. 방금까지 피눈물을 흘리고 있던 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처럼, 양 뺨에 홍조를  채로. 아리스는 시녀에게 말했다.

“소환된 마왕을 베라는 거였어요.”

어째서 홍조를 띈거냐고. 시녀는 나지막히 말하는 주인인 아리스를 보며 프로답지 않게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버렸다.

그런 시녀의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리스는 시녀가 몸에 걸쳐준 비단을 꼭 붙들어잡고서 발걸음을 옮겼다.


“아, 아리스님?!  차림으로 어딜 가시는 거에요?!”

“...대신관한테로.”

“오, 옷은 제대로 입고...!”

덕분에 시녀는 허겁지겁, 아리스의 방에서 그녀의 옷을 가져오게 됐지만.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드래곤의 남편, 베헤노스》

어릴 적의 일이었다.

그때도 지금과 별다를 바 없이, 게임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아이였던 나는 하루 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있고는 했었다.


그 때문일까, 가족끼리 어딘가 나간 본적이 드물었다. 그렇지만, 그런 나라도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추억은 있었다.


태양은 이미 떨어진지 오래인, 한밤중이었다.

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들을, 나는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에 끌려서, 어딘지도 모를 시골로 향했던 나는 난생 처음으로, 별이라는 것이 그렇게나 많은 것이라는 걸 그때 처음  수 있었다.

별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검은 밤하늘이여서 그랬을까. 난생 처음으로 보는 광경이여서 그랬을까.  수도 없이 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어렸던 내가 물었다.

별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어째서 집에서는 하나도  수 없었던 거냐고.


그러자 아버지가 말했었다.

별들은 부끄럼쟁이라서, 사람이 많으면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소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때의 나는 아버지의 말을 굴뚝같이 믿었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었다.

그러면 여기서만 별을 볼  있는 거냐고, 하고. 그런 나를 보며 부모님들은  귀엽게 보였으리라. 그때보다 더 어릴 적,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사왔던 게임 CD를 접한 뒤로는 게임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던 아들내미가 처음으로 다른 것에 관심을 보였던 것이니까 그럴 만도 했다.


아니, 네가 손을 뻗어준다면... 별들도 너랑 친구가 되고 싶어서 나타날거야.


그래서, 어머니가 그렇게 해준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믿었다.


그렇기에 손을 뻗었다.


우연이었을까. 어쩌면 부모님이 이걸 보여주기 위해서 늦은 저녁부터 거기까지 갔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손을 뻗어 올리자...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것이 너무 멋져서.


그것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혼이 빠진 것처럼 하염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수많은 별들이 검은 밤하늘에 빛나며 쏟아지는 광경을.





“...꿈?”


평소에는 꿈을 자주 꾸는 편도 아니고, 여기에 와서는 꿈을 꿀 일도 없이 지쳐서  자버리거나, 아예 잠을 안자거나 둘 중 하나여서  드물었던 꿈도 꾼 적이 없었는데. 정말이지 오랜만에 꾼 꿈이었다.


거기에 어릴 적에 있었던 일에 대한 꿈.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려는 것을 지우듯이 머리를 흔들며 몸을 일으키자 화려하기 그지없는 방이 보였다. 한쪽 눈으로만. 조금 낯선 느낌에, 눈을 끔뻑거렸다가 뒤늦게 여기가 요정향에 있는 내 방이 아니라, 천공성에 있는 내 방이라는 걸 알  있었다.


어째서 여기에?

정신을 잃듯이 잠에 들었던  까지는 기억하는데...

“우선 에루나부터...”

상황에 대해서 묻기 위해 에루나부터 찾기 위해 움직이려다가, 꾸욱하고  팔에 무거운 것이 달린 것처럼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그것도 그거지만... 묘하게 따듯하다.


잠결에는 몰랐는데 정신이 또렷해질수록, 양팔에 매달려있는 따끈한 무언가가 신경 쓰였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불 밑으로 무언가가 있다는 거였다.

“...훗, 그간의 단련의 성과를 보여줄 때인가.”

단련보다는 마야나 니아를 시녀로 임명하면서 올랐던 근력이 더 높기는 했지만 그건 넘어가기로 했다. 아무튼, 양팔에 매달려 있는 것이 무겁기는 했지만 팔을 들어올리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끙끙거리면서 양 팔을 들어올렸다.


“으음...?”

“후에...?”

“...미안, 실례했다.”


그리고 다시 내리고, 잠에서 깬 둘 덕분에 자유가  손으로 도로 이불을 덮어버리고는 머리를 싸맸다.


어째서 마야랑 니아가 여기에 있는 거지. 그것도 알몸으로?


설마하니 내가 저지른 건가 싶었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내가 몽유병이라도 있는 게 아닌 이상은, 정신을 잃고 있던 와중에 움직일 리가 없으니까. 그런가, 꿈인가. 방금 그것도 꿈인 것이다. 오랜만에  꿈이라서 현실구분이 되질 않았던 모양이다. 응, 그렇다. 마야랑 니아가 알몸으로 나타난 거는, 응, 내가 욕구불만이라서 그런걸거다.


솔직히 그렇잖아. 루시아나 에루나나,  둘이 아니더라도 내 주위에는 미인들 밖에 없으니까 건전한 남성으로써 그런 꿈쯤 꿀 수 있는 법이니까.

근데 하필이면 마야랑 니아? 어째서 루시아가 아닌거지? 어쩐지 손해 본 기분인데.


하지만, 현실이 절찬 현실도피를 하고 있던 내게 들이밀어졌다.

“주인님? 일어나셨나요?”


“주인님...?”


빼꼼, 하고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민 둘이 그대로 내게 달라붙어서 뺨을 부벼댔기 때문이었다. 따끈따끈, 언제부터 이불속에 파고들어있었는지는 몰라도 둘이 뺨을 문대는 가슴팍이 따끈했다. 거기에 말랑말랑했다. 어린 애들의 뺨다운 감촉이었다.


꿈이라면 이럴 리가 없지. 응. 현실이구나.


“...에루나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이런 짓을 할 사람이라면  명 뿐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에루나를 찾았다. 내가 잠든 사이에 대체 무슨 짓을  거야? 아니, 루시아가 보면 어쩌려고...!?


“푸흡!”

그리고  외침에, 누군가가 천장에서 뚝하고 떨어져서, 내 가슴팍에 올라탔다. 덕분에  가슴팍에 뺨을 문대고 있던 마야와 니아가 꺅하고 비명을 내질렀지만, 내 가슴팍에 올라탄 누군가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서, 나를 바라봤다.

 역시, 그런 누군가를 확인했다.

“...로로니?”


“응, 주인님. 나야.”


“...왜 거기에서 나타나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

로로가 등장한 방법을 생각해 보면, 천장에 매달려있었다는 게 되는 데. 어째서 그러고 있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아 그렇게 묻자, 로로가 어딘가의 누구가 생각되는 얼굴로, 태연하게 대답했다.

“주인님을 지키고 있었어.”


“아, 그렇구나.”


그거 정말 멋지군.


로로, 네가 알몸만 아니었더라면  좋았을 거야.


“...에루나아아아아아아악!!”

비명에 가까워진 내 외침에 에루나가 나타나기까지는, 일부로 그런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기침하셨습니까, 주인님?”

“그래, 기침했다. 기겁해서 기침이  나오더라.”


빼액빼액하고 에루나를 부르다가 도중에 알몸으로 부딪혀오는 세  덕분에 사례가 들려서 쿨럭대느라 혼났다.


아무튼, 그 세 명의 증언으로 이 일을 꾸민 범인으로 추정되는 에루나는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과연, 건강해보이셔서 다행입니다.”


“건강하다니, 어딜 보면서 말...”

에루나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봤다가, 나도 모르게 주춤하고 허리를 뒤로 빼며 말했다.

“...이건, 지금  일어나서 그런 거다. 생리현상이라고.”


“그렇습니까?”

그런 거다. 정말로.


진짜다.


“...아무튼, 우선 얘네들 옷 좀 어떻게 해봐.”


에루나가 방에 들어왔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몸을 더듬어대고 있는 셋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하자 고개를 끄덕인 에루나가, 손가락을 튕겼다.


“자, 여러분. 시녀로서의 의무도 의무지만, 몸가짐도 철저히 하시길.”


“네, 시녀장님!”

“알겠습니다!”


그런 에루나의 말에 대답하며 투툭, 하고 마야와 니아의 앞에 떨어진, 에루나의 것과 비슷해 보이는 하녀복을 둘이서 익숙하지 않은 듯 끙끙거리며 어렵사리 입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서 한숨 돌릴 뻔 했다가, 여전히 알몸인 로로가 보였다.

“로로꺼는?”


“죄송합니다, 주인님. 로로양에 대한 권한이 저에게 없기에, 따로 옷을 준비해두지는 못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그러고 보니 마야와 니아, 그리고 슈슈는 에루나의 휘하에 넣었던 것 같지만 로로는 그런 언급이 없었다는  기억났다.


“...아무거나 좋으니까, 일단 옷부터 입혀주라.”

“주인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툭, 하고 에루나가 손가락을 튕기자 나타난, 마야나 니아의 것과 같은 디자인의, 하지만 검은 색의 하녀복이 나타났다.

아무리 봐도 로로가 입을만한 사이즈였다. 준비해놓은  없다고 해놓고서, 이미 준비해놓은  분명했다.

“...뭐야, 준비해놨잖아?”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그렇게 말하자 에루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뭔데 또.

“아뇨, 준비가 안됐다는 건 사실입니다.”

“대체 뭐가 준비가 안됐다는 건데?”


“글쎄요.”


의뭉스런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에루나를 보자 불안해졌지만, 아무튼 여전히 옷을 거들떠도 안보는 로로에게 어서 입도록 했다. 그런  말에 로로가 조금 불만인 표정을 지었지만, 주섬주섬 주워든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진짜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에루나를 보며 말했다.

“에루나,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예, 말씀하십시오. 주인님.”

“그, 루시아는 어디에 있어?”


내 물음에 씨익, 하고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웃는 에루나. 분명 미인이고, 아름다운 미소였는데 어째서 꺼림칙한 걸까.

“아가씨들은 지금 여기로 오고 계십니다.”

“아... 그렇구나.”

그렇게 대답했다가, 에루나를 봤다. 잠깐만, 아가씨들?


“주인님, 옷, 전부 입었어요.”

“저도, 다 입었어요.”

칭찬해주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달려든 마야와 니아 때문에 휘청하고, 몸이 기울어졌다.  반절도 안오는 어린애들  때문에 휘청거리다니, 모양이 빠졌지만 둘 다 나보다 근력이고 체력이고 훨씬 세다는 걸 상기해줬으면 좋겠다.


“그래그래, 잘했어. 아유, 예쁘다.”

아무튼 무시하고 있을 수도 없어서  손으로 둘의 머리카락을 마구 쓰다듬어주면서 칭찬해줬다. 헤헤, 하고 웃는 둘을 보니 마음 한편이 따스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인님.”

그때 꾹꾹, 하고 옷깃을 잡아당기는 느낌에 고개를 돌리자, 마야나 니아와 같은 디자인에, 하지만 색깔만 검게 염색된 하녀복을 입은 로로가 나를 바라봤다.


“나도, 다 입었어.”

“...그래그래, 너도  잘했어. 착하다 착해.”

 손이 두 개뿐이라서, 쓰다듬는 건 조금 있다가 해줄테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라.


“그나저나, 다들 제대로 되있기만 하구만, 대체 뭐가 준비가 덜 됐다는 건데?”


“아, 그거 말입니까?”

로로의 옷은 준비가  됐다는 에루나의 말에, 조금 세심하게 쳐다봤었지만 색깔만 다르지 별로 이상할 건 없었다. 혹시, 준비가  됐다는게 염색 문제였다면 할말이 없지만.

그런  물음에, 에루나는 조금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주인님의 명령이니 하는  없겠죠. 로로양? 스커트를 들어 올려보시겠습니까.”


“응?”

스커트가  어땠는데.

에루나의 생뚱맞은 소리에 의아해하고 있던 찰나, 내 앞에 있던 로로가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스윽하고 하녀복의 끝자락을 붙잡고 들어올렸다.

“아.”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건, 로로양의 속옷을 말하는 거였습니다. 이제 확인이 되셨습니까? 주인님.”

눈에 비친 것에, 나도 뇌가 정지되는 느낌이었다. 다시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맨들맨들  자체가ㅡ

그때였다.

“에루나? 이지경님이 일어나셨다고 들었어요. 들어갈게요.”

끼익, 하고 문이 열리고서.


루시아를 비롯해서, 어째서 다 모인건지는 모르겠지만. 크리샤를 포함한 모두가 열린 문 뒤로 보였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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