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52화
그나저나, 감각이 일부를 공유할 수 있다는 말이 신경 쓰였다. 감각이라니, 조금 뒤숭숭한 느낌이 드는 단어였다.
그때 머릿속에, 능력을 발동하는 방법이 떠올랐다.
“마야, 잠깐 실례하마.”
“네?”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갸웃하는 마야를 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의 눈이 되어라, 마야.’
스으윽하고 내가 보고 있는 것과 다른 것이, 말 그대로 다른 누군가의 눈으로 보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뭔가 엄청 기묘한 기분이었다. 다른 누군가의 눈으로, 내 얼굴을 보는 기분이 엄청 묘했다. 거기에, 뭔가 엄청 잘생겨 보이는 내 얼굴이 보이니까 당혹감이 두 배가 되었다.
이 능력은, 말 그대로 마야의 눈으로 보이는 것을, 내가 보는 능력이었다. 이것 외에도 청각, 미각을 비롯한 오감도 공유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게 호감도 50으로 보는 나의 모습이구나.
대체 무슨 조화가 일어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히 근육질에, 거뭇하게 탄 건강한 피부를 한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토가 쏠렸다. 옷도 웬 야만인 전사가 입고 있는 것처럼 바뀌어서 보인다고.
“...실례했다.”
더 이상 보고 있기엔 정신이 어떻게 될 것 같아서 능력을 해제하고서 그렇게 말하자, 어리둥절해하는 마야가 보였다.
정작 능력의 대상이 되었던 마야는 무자각인가. 쓰기에 따라서는 엄청 유용하고, 무서운 능력이 될 것 같았다.
아무튼 이걸로 마야와 니아를 시녀로 임명했다. 다음은... 아까부터 부담스런 눈빛을 보내오고 있던 삼인방중 하나였다.
“슈슈, 너는...”
내 말에 고개를 든 슈슈가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까의 시선도 그렇고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둘째치기로 하고, 나는 미리 생각해뒀던 것을 말했다.
“집사로 임명하마. 단, 너도 시녀장인 에루나의 명령을 따라 움직이도록.”
“알겠습니다!”
쑤욱, 하고 얼굴을 내밀며 말하는 슈슈 때문에 나도 모르게 뒤로 쭉하고 얼굴을 빼버렸다. 덕분에 시무룩하는 슈슈의 얼굴이 보였지만 다짜고짜 얼굴을 들이민 게 잘 못이니까 사과는 안할 거다.
물론, 슈슈의 얼굴이 바쿠나 바록처럼 우락부락한건 아니었다. 나이가 어린 아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바쿠나 바록과 같은 종족으로는 보이지 않는 미소년이었다. 그게 더 부담스러운 이유지만... 못 본 척 노력하기는 했지만, 니아나 마야처럼, 여성들에게만 있던 직별, 성노를 유일하게 남자의 몸으로도 갖고 있었으니까.
절대로 그걸로 임명할 생각은, 슈슈를 포함해서 아무에게도 없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내 귓가에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슈슈’가 집사로 임명되었습니다.]
띠링~
[‘슈슈’가 새로운 직업 ‘집사’을 습득하였습니다. 직업 ‘집사’는 주인이 된 자를 위해 곁에서 일의 처리를 돕거나 정리, 보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직업 ‘집사’의 효과로 인해 ‘슈슈’의 능력치 일부를 습득합니다. 또한 ‘슈슈’에게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됩니다.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면 ‘슈슈’의 능력치에 매우 높은 보정이 주어집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지력이 2만큼 상승했습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매력이 7만큼 상승했습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행운이 1만큼 상승했습니다.]
니아나 마야를 시녀로 임명하는 것으로 얻은 능력치들은 근력이나 민첩, 체력같은 신체와 관련된 능력치였던 반면 슈슈를 집사로 임명하는 것으로 얻은 능력치들은 지력과 매력, 그리고 대체 집사랑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행운이 올랐다.
어디까지나 슈슈의 능력치를 일부 가져오는 거라서, 애당초 나보다 낮은 지력과 행운을 갖고 있던 슈슈에게서 얻을 수 있던 지력과 행운은 엄청 적긴 했지만 말이다. 단지... 매력이 엄청나게 올라가버렸다.
응, 나도 알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슈슈는 미소년이니까. 그것과 비교하면 평범 그 자체인 나는 옆에 세워두면 오징어로 보일 지경이니까. 그래도 상승폭이 조금 이상하지 않아? 비참해지잖아.
“주인님?”
“...우선, 말투부터 고치자. 이제부터 나를 베헤노스님, 아니면 주인이라고 부르도록.”
“아,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주인.”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초롱초롱 눈을 빛내오는 슈슈의 시선을 피하고서, 빤히 이쪽을 보고 있는 로로에게 시선을 옮겼다.
“너는...”
무난하게 시녀로 임명하면 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 로로에게 임명할 수 있는 직별이 하나 더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바로 암살자였다.
물론, 굳이 직별을 겹치지 않게 하려고 했었던거라면 마야도 가지고 있었던 치유사로 임명했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말이 치유사지 전에 마야를 골랐을 때,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특성은 나도 갖고 있는 약초사 정도에 이렇다 할 기능도 없었다. 약초사의 등급도, 따지고 들면 나보다 낮은 C랭크였고.
치유사로 임명해봐야 그리 대단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냥 시녀로 임명했던 거였다. 하지만, 로로는 조금 달랐다. 우선, 내가 직접 고른 것이 아니라, 바쿠나 바록처럼 에루나가 고른 인원이라서 기본적으로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도 몰랐다.
“우선 정보창부터 보마.”
“...?”
내 말에 의아해하는 로로가 보였다. 정보창을 본다니, 모르는 사람에게 말해봤자 아마 전혀 이해 못할 일이니까. 이제 다른 누군가의 정보창을 아무렇지도 않게 열게 된 스스로가 조금 놀랍지만, 이미 백번이 넘도록 한 짓이었다.
이제 와서 정보창을 보고 싶지 않느니 뭐니 하는 것조차 위선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눈앞에, 로로의 정보창이 떠올랐다.
「정보창」
「이름 : 로로」
「칭호 : 부덕의 아이」
「성별 : 여성」
「나이 : 12세」
「직업 : 없음」
「종족 : 낙시안」
「근력 : 83(B)」
「민첩 : 88(B)」
「체력 : 51(C)」
「지력 : 57(C)」
「마력 : 19(E)」
「매력 : 67(B)」
「행운 : 3(F)」
「생명력 : 510/510」
「마나력 : 190/190」
「지구력 : 92%」
「고유 특성 : ※복수자(B)」
「보유 특성 : 기검사(C), 투기(C), 독술사(D)」
「보유 기능 : 신체변이(C), 단검술(D), 은닉(D), 잠행(E), 독 제조(E)」
「상태 : 의문」
「호감도 : 50 (...이 사람이 괴물의 주인님? 그리고 이제부터 내 주인님...?)」
「충성도 : 0」
“...부덕의 아이?”
어쩐지 꺼림칙한 이름의 칭호와 함께 다른 낙시안의 아이들과 비교해서 뒤숭숭해 보이는 이름의 기능들과 특성이 눈에 띄였다. 은닉에 잠행에 독 제조에, 거기에 신체변이라니? 복수자? 대체 이건 또 뭔데.
우선, 호감도는 예상했던 대로 50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과 바뀐 점을 전혀 모르겠지만, 일단은 호감도가 50이나 오른 건 맞았다. 그리고 그 말은 특성이나 기능의 자세한 설명을 보는 것도 가능하다는 거였다.
나는 먼저 제일 신경쓰이던 복수자라는 특성부터 살펴봤다.
「이름 : 복수자」
「등급 : 천재(B)」
「효과 : 복수를 맹세한 대상에게 반드시 한 번의 공격은 필중한다. 이때의 피해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회복되지 않는다.」
「설명 : 자신의 생명을 등한시해도 좋다는 각오로 복수를 맹세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특성이다.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습득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강한 상대라고 하더라도 단 한 번의 치유할 수 없는 공격을 가할 수 있게 해준다. 단,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한 경우에만 효과가 발휘된다. ※현재 복수의 대상자가 없어 효과를 발휘할 수 없습니다.」
이름부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흉흉한 특성이었다. 이제 겨우 12살인 로로라는 소녀가 갖고 있기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특성이었다. 고작 저런 나이로, 자신의 생명을 버려도 좋다는 각오로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생각했다는 증거니까.
한 가지 다행이라면, 내가 갖고 있는 기능인 흡정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효과를 발휘할 수 없는 상태로 전환되있다는 점일까. 복수의 대상자가 없어졌다니. 아리송한 이야기지만.
“...좋아.”
잠깐 고민한 끝에, 로로의 칭호. 부덕의 아이를 열어보았다.
「이름 : 부덕의 아이」
「등급 : 칭호」
「설명 : 금기를 저버리고 태어난 존재. 법칙에 따라 저주를 받는다.」
금기? 저주? 짤막하기 그지없는 설명을 읽던 중에 지끈하고, 머리가 아파왔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특성 ‘징벌자’가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눈앞의 대상 ‘로로’에게 대응하여 효과를 발휘합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특성 ‘권선징악’이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눈앞의 대상 ‘로로’에게 대응하여 효과를 발휘합니다..]
그리고 그런 소리와 함께, 제 멋대로 몸이 움직였다.
“읏...!”
그런 내 눈앞에, 안색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한 로로의 얼굴이 보였다.
동시에, 제 멋대로 발동된 두 특성의 공통점을 알아차렸다. 두 특성은, 악성향을 가진 존재에게 반응하는 특성이었다.
그렇다면, 로로가 악성향을 가진 존재라는 걸까?
아니, 그건 말이 안됐다. 그랬더라면 처음부터 반응했어야지. 이제 와서, 칭호를 본 지금에서야 반응할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것만이 아니라...
“에루나! 에네스타! 내 몸을 붙잡아라!”
다급히 내지른 소리에, 옆에 있던 에루나가 내 오른팔을, 에네스타가 어깨를 붙들었다. 한 명만해도 내 근력이나 체력을 훨씬 웃도는 에루나와 에네스타가 붙들어 잡자, 제 멋대로 움직이던 몸이 꼼짝도 못했다.
그런데도, 에루나에게 붙잡힌 오른팔은 여전히 로로에게 뻗은 채로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쥐려는 모습으로.
그리고 그 바로 앞에, 두려운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로로의 가느다란 목이 보였다.
목을, 조르려고 한 건가?
내가?
아니, 내가 그럴 리가 없었다. 애초에, 제 멋대로 몸이 움직인 거였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드래곤의 반려, 일단 말대로 붙잡기는 했다만...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에루나와 에네스타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괜찮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는 나도 몰랐다.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지금의 상황이 무척 불쾌하다는 것이었다. 전에도 이런 것과 비슷한 일이 있었었다. 그러니까, 흡정귀화가 일어났을 때.
단지 그때는 무언가에게 홀린 기분이었을지언정 결국 내가 결정했다면, 이번건 그런 내 의사도 없이 멋대로 움직인 거였다. 내 몸이 제 멋대로 부르스를 추려하는데 그 이유도 원인도 뭣도 모른다는 것만큼 불쾌한게 있을 리가 없었다.
띠링~
[황금률! 선한 자는 선으로, 악한 자는 악으로! 쌓여온 업보로 인해 플레이어 '이지경'님에게 황금률의 천칭이 기적적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그런 알림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