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44화
다소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무사히 낙시안의 한 명. 이름은 바록이라고 밝힌 남자의 안내를 받아, 낙시안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으로 향하던 에루나는 흘낏하고 자신의 안내를 맡고 있는 바록을 바라봤다.
그런 에루나의 시선을 느낀 바록이 완전히 부러진 앞니를 드러내며 헤헤 웃었다.
“이, 이제, 곧, 이다. 진짜로, 정말, 이다. 진짜.”
“그 말은 벌써 30초전에 들었습니다. 당신에게는 30초란 시간이나 지난 지금이 그 곧이라는 장소에 도착할만한 시간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에루나의 말에 바록은 비질땀을 흘렸다. 당연히, 그에게 있어서 ‘곧’이란, 그가 전속력으로 달렸을 때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에루나라는 괴물은 태평하게 걷고 있는 주제에 ‘대체 언제 도착합니까?’ ‘아직 멀었습니까?’ ‘이제 도착했겠군요?’하고 계속해서 압박하듯이 물어오고 있었다.
조금 전부터는 묻기는커녕, 슬며시 자신을 노려볼 뿐이었다. 바록으로써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낙스라는 땅에는 생명이 전혀 살 수 없는 땅이라고 생각되어지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약한 생물은 살아남을 수 없는 땅이었다.
그 약하다의 기준이, 인간들이 살아가는 아투스에서는 강한 축에 들어가는 오우거조차도 들어갈까 말까,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낙스라는 땅에서도 생명은 살아갈 수 있었다.
더군다나 바록은, 이 낙스에서 살아가는 이천하고 육백, 그리고 서른둘이라는 어마어마한 수를 자랑하는 부족의 전사였다.
상당히 잘나신 몸이라는 소리였다. 그들의 부족에 있어서 전사란, 거의 삼천이 다되어가는 부족에서도 서른이 조금 넘는 존재니까.
물론 그 위에 둘뿐인 대전사와, 하나뿐인 족장에는 미치지 않았지만. 바록 역시 누가 무시할 수준은 아니란 얘기였다.
물론.
그 바록의 눈앞에 있는 에루나라는 괴물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 괴물은 진짜 괴물이었다. 기습이라고 여겼던 공격을 손쉽게 막아내고서, 오히려 자신의 팔을 꺾어버린 것에 모자라서, 머리를 붙잡고 장난치듯이 이리저리 휘두르며 지형을 바꿀 기세로 박살냈다.
정신을 잃을라치면 기묘한 주술로 상처를 치료하더니 다시 반복했다.
그 ‘교육’을 자그마치 30분이나 반복하면서, 바록의 사낭터였던 구역의 절반이 완전히 박살이 나서야 풀려난 바록은 그제야 울며불며 애원한 끝에, 이렇게 안내인이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괴물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듯했다.
전사로써, 자신의 사냥터가 완전히 박살날 때까지 두들겨 맞았다는 사실을, 그 명예를 완전히 뭉개버렸다는 사실을, 이 괴물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괴물이, 에루나가 물었다.
“흐응... 이곳으로 세분이나 더 오고 계시는군요. 혹시 동료입니까?”
에루나의 말에 바록이 눈에 힘을 주었다. 에루나라는 괴물에게 붙잡혔을 때는, 전혀 투기를 사용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풀려난 상황이었다. 눈에 힘을 주어, 투기를 실자 저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이들이 보였다.
바쿠, 무락, 우투.
모두 바록과 마찬가지로 부족의 전사들이었다. 거기에 바쿠는 자신보다 강한, 그의 형이었다. 조금만 더 강하다면, 대전사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바쿠였다.
바쿠를 포함해서 셋이나 있다면, 거기에 자신 역시 조금 지치긴 했지만 괴물이 주술을 사용해서 상처를 회복시켜주었다. 그렇다면 넷. 넷이 덤벼든다면, 이 괴물도 쓰러트릴 수 있지 않을까? 전사 넷이면, 이곳에서도 사냥하기 가장 까다로운 괴물, 마라라는 괴물 뱀도 잡을 수 있는 전력이었다.
제 아무리 괴물 같은 년이었지만, 넷이나 된다면...
“헤, 헤헤헤! 마, 맞아! 도, 동료. 내 친구들.”
더듬거리며, 에루나에게 대답한 바록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동료들이 온다면, 괴물이 미처 반응하기 전에 재빨리 상황을 말하고서 동시에 이 괴물을 잡으면 된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저 분들도, 예의가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어? 뭔가 불안한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에루나가 손을 뻗었다.
우우우우웅, 무언가 엄청 불길한 소리가 바록의 귀에 들려왔다.
“나, 여기에 마력을 바쳐 바라노니. 오라 섬멸의 광휘여. 나의 적을 배제하는 극광이여. 이곳에 뜨라. 나의 적을 비쳐 말소하라. 그리고 파멸하라. 대극멸의 구.”
바록으로서는, 일생동안 전혀 본적이 없는 광경이었을 것이다.
눈이 부실 듯한, 거대한 태양이 괴물, 에루나의 손아귀에서 만들어지는 광경이 말이다. 이곳 낙스는, 버림받은 땅. 모든 생명의 근간인 마력이 희박하다 못해 거의 없다시피 한 땅이었다.
당연히 마법도 구사할 수 있는 자는, 극히 소수의 주술사들 뿐. 그것도 제대로 된 마법조차 아니었다.
그러니까, 마법.
그것도 고위의 불 속성 마법. 일격으로 군대를 불태워 지워버리는 마법을 본적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러니까 미리 교육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에루나가, 눈이 부시다 못해, 주변을 태워버릴 기세로 이글거리는 거대한 불길을 움직이는 것을 보고 바록은 생각했다.
네 명은커녕, 부족의 전사 모두가 덤벼도 이 괴물은 어쩔 수 없을 거라고.
쿠콰과과과광!!
동료가 달려오던 곳으로 떨어진 태양이. 섬멸의 빛을 내뿜으며, 굉음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바쿠는 확신했다.
아, 이거 꿈이구나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토록 말도 안 되는 괴물이랑 마주칠 리가 없으니까.
물론 그건 꿈이 아니였다. 그렇게 간단하고, 친절하게 이야기가 끝맺는 일은 없었다. 바록은 새까맣게 탄 채 반쯤 죽어있는 동료들을 보고서 어쩔 줄 모른 채 에루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바록의 시선을 느낀 에루나 역시, 바싹 익혀버린 세 명의 이름도 모를 낙시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대로 죽여도 상관없지만, 안내인은 많을수록 좋을지도 모르겠죠. 자, 어서 당신의 동료들을 구하십시오.”
“으, 으응! 알겠다!”
에루나의 말에 바록은 허겁지겁 숨이 꺼질랑말랑해보이는 동료들을, 아직도 타닥타닥하며 타들어가는 불꽃이 남아있는 곳에서 꺼내들었다.
하지만 그걸 다행이라고, 바록은 생각할 수 없었다.
겨우 구출해낸 동료의 옆에, 그 괴물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간신히 구해낸 동료들을, 에루나가 다시 한 번 불태우지 않을까하는 공포가 바록을 덮쳐왔다. 그가 보기에는, 에루나는 그렇게 하고도 남을만한 존재였다.
“마력이 아깝기는 하지만... 나, 이곳에서 마력을 바쳐 바라건대, 내 손에 닿은 자에게 자비의 손길이 닿기를. 치유”
우웅, 하고 작은 빛과 함께 새까맣게 타버렸던 상처가 낫는 광경을 본 바록은 놀란 눈으로 멀뚱멀뚱 에루나를 바라봤다.
“저보다는 당신이 설명하는 게 더 편하겠죠. 이들에게 간단히 설명해놓으시길.”
“서, 설명...?”
“네, 제가 여기에 온 이유. 그러니까, 당신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말입니다.”
바록은 에루나의 말에, 신음을 내뱉으며 눈을 끔벅이는 동료들에게 입을 열려다가, 차마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끝내 입을 닫아버렸다.
설명하라니, 대체 어떻게?
이 괴물이 얼마나 괴물인지 설명하란건가?
“...바록? 바록이냐.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그리고 겨우 정신이 든, 바록의 형인 바쿠가 그렇게 묻는 말에 바록은 더듬거리며, 자신의 뒤에 있는 에루나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선, 바쿠를 비롯한 모두를 태양으로 불태운 존재가 에루나라는 것, 그리고 자신도 그에 못지않게 얻어터지고서, 이렇게 있다는 것. 솔직히 이것을 어떻게 보면 에루나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알리고, 그건 따지고 들자면 에루나가 원했던 설명과는 거리가 멀어보였지만, 정작 에루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 그게... 저 여자가 한 짓이란 말이지!?”
그리고 결국, 어느 정도 몸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 바쿠가 에루나에게 덤벼들었다. 움찔, 하고 그 뒤로 무락과 우투가 움직이려고 했지만, 그 둘은 으아아아, 하고 비명을 지르며 바쿠를 말리려고 뛰쳐나가는 바록을 보고서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그 이유를, 바록이 어째서 그토록 바쿠를 말리려고 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너무 살살했던 모양입니다. 하는 수 없죠.”
그렇게 말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덤벼들은 바쿠를 걷어차서 쓰러트리고는, 자연스럽게 손을, 이글거리는 작은 태양을 손에 쥐고서, 그대로 바쿠의 얼굴에 지져대는 에루나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치료, 다시 태우는 것을 반복한 끝에, 이미 싸울 의사고 전의고 뭐고 전부 잃어버린 바쿠 역시, 이전의 바록이 했듯이 다시 한 번 작은 태양을 만들어 자신을 태워버리려고하는 에루나의 다리를 붙잡고 애원했다.
“이제 좀 쓸 만해졌군요”
그런 바쿠를 보고서 에루나는 그렇게 말하며 손에 쥐고 있던 태양을 없앴다. 그런 에루나를 보고서, 바쿠를 비롯한 나머지 셋도 뒤늦게야 눈앞에 있는 존재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뒤에는 간단했다.
“자, 바록, 바쿠, 무락, 우투. 신사분이라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까?”
“레, 레이디를!”
“무, 무사히!”
“안내해서...”
“모, 목적을 이루는 것을 돕는다!”
“정확합니다. 칭찬해드리겠습니다.”
옷은 완전히 불살라 사라지고, 피부는 검게 그을린 바쿠와 무락, 우투. 그리고 바록이 에루나의 말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사실 그냥 무서워서, 눈이라도 마주칠까봐 알아서 내리깐 것이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미소녀의 칭찬에 쑥스러워서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겉보기에는.
전부, 바쿠를 손수 지지고 볶으면서 겸사겸사 주입한 교육의 성과였다.
네 전사, 특히 형제지간인 바쿠와 바록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대체 이 괴물의 정체는 무엇이냐고.
자신들이 이 괴물을 부족들이 사는 곳으로 안내하는 것이 잘한 짓인지, 혹시나 부족을 멸망시키는 위협을 불러들이는 것이 아닌지 하고, 시선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별 수 없었다. 혹시 몰라, 부족으로 향하는 길이 아닌 곳으로 안내하려고 하면 괴물은 괴물같이 알아차리고, 속이려고 했던 자에게 재교육을 했다.
눈앞에서 동료의 얼굴이 작은 태양에 자글자글 익히고, 다시 회복되고, 다시 익혀지는 광경을 보는 것은, 아무리 전사들인 그들이라도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
“...흐음, 저곳입니까. 드디어 도착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네 전사는 직감했다. 직감은 개뿔. 이미 괴물의 눈에는 저만치에 있을 부족의 땅이 보인 듯 했다.
여기서 넷이 사생결단으로 괴물에게 달려들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이 괴물이 부족의 땅에 가서 날뛰던, 다행히 모든 전사들을 동원해서라도 이 괴물을 쓰러트리던, 아니면 결국 쓰러트리지 못하던.
어떻게 되던 간에 자신들은 망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넷은 복날에 잡힌 개처럼 성큼성큼 부족의 땅으로 향하는 에루나의 뒤를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