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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화 〉43화 (43/370)



〈 43화 〉43화

“...그, 그런 당치도 않은 생각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얼굴을 붉히며 손 사레를 치는 나타를 보니 정말로 그런 것 같지만. 어째 뒤에 두 자매, 에샤와 모네가 아깝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보였다. 내 착각이겠지만. 아무튼 처녀인 셋에게 너무한 이야기를 한 듯 했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는 이어 말했다.

“오해 말거라. 그냥 그런 일이 자주 있었고, 내가 그걸 싫어해서 노파심에 말한 것뿐이니까.”


주로 에루나가 내가 씻던 중에 자주 들어오고는 했었지. 아무리 말려도  죽어도 들어와서 엄청 곤란했었다. 하필이면 머리를 감거나, 세수를 하는 등 앞이 보이지 않을 때쯤에 소리도 없이 들어와서, 눈을 뜨고 보니까 옆에 있거나 해서 깜짝 놀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냥 들어오는 거라면 나만 쪽팔림을 감수하면 그만이었지만 알몸으로 들어와서  문제였다. 뭐였더라, 욕탕은 원래 알몸으로 들어오는 거라나 뭐라나. 그건 맞는데 다른 누가, 그것도 이성이 먼저 들어가 있을 때는 알몸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아니, 그냥 알몸이고 뭐고 들어오지 마라 좀.

뭐... 그래도 두 자매는 조금 불안하기는 해도 나타는 제대로 된 상식을 갖추고 있는  같으니 안심이었다.


“그럼 안내하도록.”


 말에 나타와 에샤, 모네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이쪽으로.”



《오직 한사람의 준비된 시종, 에루나 투아레.》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보이는 것이라고는 바짝 말라서 갈라진 땅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갈라진 그 틈새 사이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독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누군가가 보았더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곳은 죽어버린 대지라고.


단지,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자는  누군가만큼이나 감성이 넘치는 존재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감성이라고는 어디다가 갖다 버린 존재였다.


무언가가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 버림받은 땅에서, 독을 품은 바람에 나부끼는 옅은 보랏빛의 머리카락을 정리한 여자, 아니, 준비된 시종이라는 이름을 가진 골렘, 에루나 투아레는 목적을 향해 발을 뻗었다.

살아있는 자라면, 숨을 쉬는 것조차 곤란하고, 몸이 약한 자는 독기에 얼마 버티지 못해 금세 죽어버리는 땅이었지만 그런 환경은 에루나에게는 하등 소용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의 몸이 애당초 그렇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만들어진 몸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자들에게는 사지나 마찬가지인 땅이었지만, 에루나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아니 실제로 만져보더라도 그녀의 몸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녀를 만들어낸 것은 자그마치 여섯 명의 로드급의 드래곤들이었다. 한때는 최후에 남아있었던 드래곤들이었다. 거기에 보옥의 지배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만들어낸, 역작이라고도  수 있는 존재인 그녀가 누군가가 봐서,  이거 골렘이구나 생각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지만 말이다. 맨 처음, 에루나가 만들어졌을 때는 어느 정도 골렘다운 면모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마저도 세월을 거듭하면서 스스로 보완하고, 단점을 고친 에루나에게 있어서는 이미 머나먼 일이었다.


결국, 에루나는 누가 보더라도 완벽 무결한 소녀. 그것도 빼어나도록 아름다운 미소녀로밖에 보이지 않는 결과만이 남았다.

성격에 결함이 있었지만,  정도는 뭐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상식을 가진 사람이 보기엔 괴짜들밖에 없었던 여섯의 드래곤들이 만들어낸 에루나치고는 엄청나게 얌전한 거라고 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에루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에루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자시고, 어쨌거나.


아무리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더라도, 이곳은 단지 그것만으로 지날 수 있을만큼 호락호락한 땅이 아니었다.

당장 에루나의 몸을 덮고 있는 이곳의 공기는, 사실 골렘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에게는 매우 위험한 것들이었다.

산자에게도 위험한 독이었지만, 철을 비롯한 금속으로 이루어진 골렘의 몸 자체를 녹슬게 하고, 썩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이곳의 공기였다. 사실 이걸 공기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산자가 들이쉬면 죽음에 이르고, 생명이 없는 자가 들이쉬면 녹슬고 썩어가니까.


하지만, 그것 역시 에루나에게는 하등 소용없었다.

그녀가, 일반적인 골렘이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몸은, 살아있는 자들이 마땅히 갖춰야하는 것들을 대신해서, 온갖 소재로 이루어져있었다.

피부는 엘프들이 오랜 시간을 들여 뽑아낸 진은으로 된 실로 한땀한땀 엮어 만들어져 있었다. 진은이란, 이세계의 근간이자 마법의 근원이기도 한 마력과 드래곤의 뼈와 심장을 비롯한 몇 가지의 소재를 제외하면 가장 친숙한 소재였다.

그렇기에 에루나의 피부는, 그 자체로 거의 대부분의 마법에 있어서 강력한 저항능력을 갖고 있었다. 애당초, 간단한 마법이라면 맞는 즉시 흡수되어버리고 마니까.

그 피부 밑의 근육은, 드래곤의 힘줄과 근육을 이루던 살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것도 자그마치 넷의 소재였다. 넷이라고 하니까 엄청나보였지만, 사실 그 중에서 가장 효율이 좋은 부분만 뽑아 썼으니까, 무게로만 따지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넷이나 되는 드래곤이, 그대로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대마법을 위해 사용된 심장이나 몇 가지의 장기를 제외하면 전부나 마찬가지인 것들이 들어갔으니까.


지금으로부터 천여 년전, 날뛰던 끝에 부모에게도, 같은 동족인 드래곤들에게도 버림받고서 배회하던 드래곤이 있었다. 비록 헤츨링에 불과했지만 드래곤은 드래곤. 당시  왕국에서 수천의 군사와 수백의 기사, 그리고 수십의 마도사들을 동원해서 겨우겨우 드래곤의 헤츨링을 잡아들였다. 그리고 그것의 소재로 만든 검 한 자루와 지팡이 한 자루를 애지중지 국보로 삼아 남기던 끝에, 현재는 라이어스 제국의 국보로 있는 것을 생각하면, 에루나의 몸에 들어간 것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  있었다.

에루나로써는 이미 만들어진지 수백 년이나 지난 탓에 가끔 찌뿌둥한 몹쓸 근육이었지만.

그리고 에루나의 근육을 움직이는 힘줄은, 힘으로써는 가장 강력했다는 고대의 거인. 한때 드래곤들과 세계를 양분했다던 존재들이 남긴 힘줄이었다.

이미 드래곤들과의 세력싸움에서 패배하고, 밀려나버린 고대의 거인들의 마지막 남은 힘줄이니, 사실 드래곤들의 근육이니 뼈보다 훨씬 가치가 있는 소재일지도 몰랐다.


톡 까놓고 말해서 에루나의 몸을 이루고 있는 소재 중에서 가장 비싼 것을 말하자면, 이 힘줄이었다.


그 크기만해도, 성과도 같았다던 고대의 거인의 힘줄은 설령 드래곤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힘줄을, 온전히 에루나의 재료로 사용되었다. 고대의 거인 한명의 힘줄이, 죄다 에루나를 만들기 위한 재료가  셈이었다.


덕분에 에루나는  하나로, 능히 오우거와 비슷한 힘을  수 있었다. 팔 하나로, 오우거 하나의 힘 전부를 말이다.

혼자서 성인 수십이 덤벼들어 겨우 드는 바위를 거뜬히 들어 올리는 것이 오우거의 완력이었다. 그런 오우거가 작정하고 덤벼들어도 에루나는  하나로도 꿈쩍하지 않고 버틸  있었다. 버티기는커녕 되려 오우거를 자빠뜨릴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힘의 근원이 되는 뼈. 토대이자 중심이자 본대. 에루나의 그것은 드래곤의 뼈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실 강도만 따지자면, 드래곤의 뼈보다도 더한 것이 있기는 했다. 신의 금속이라고 불리우는 진철이라던가,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에 아주 조금 포함되어있다는 운철이라던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굳이 드래곤의 뼈를 소재로 사용한 것은 다름 아니라, 마력과도 친화력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에루나의 뼈, 드래곤의 뼈에는 뼈 한 조각, 한 조각마다 작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의 룬이 새겨져 있었다.

강도를 강화하기 위한 마법과, 복구, 재생을 위한 마법,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쿠오오오!!

어마어마한 기세로 자신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는 것을, 수십키로나 떨어진 곳에서 바라본 에루나는 나지막히 한숨을 내뱉었다.

“드디어 발견했습니까. 기다리느라 지칠  했잖습니까.”

이 세계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아니, 명실상부 수호자인 드래곤에게도 버림받은 땅. 볼모지. 죄인이 아닌, 죄인인 자들이 살아가는 땅.

낙스.

낙스는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는 땅, 아투스와 비교하면 거의 두 배나 되는 거대한 땅덩어리였다. 그곳에 덩그러니 떨어져있는 에루나를 발견하고, 엄청나다고  수 있는 속도로 달려오는 것을 보면 이미 초인의 범주.


세계에서 100명도 채 되지 않는 검주와 같은 초인의 영역이었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에루나가 지금 자신의 주인인 이지경과 상당히 많이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그마치 400년을 기다려온 주인이었다.  세상에서, 아니, 모든 것을 통틀어서  하나뿐인 자신의 주인이었다.

항상, 언제라도, 어디에서라도, 주인의 옆을 지켜야할 자신이 이런 곳에 왔다는 사실 그 자체가 에루나로서는 스트레스였다.


조금이라도 빨리 주인인 이지경에게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인 에루나로써는 고작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제 와서 자신을 발견하고 달려오고 있는 누군가가 참 못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쿠오오오!!

어마어마한 기세로 쏘아져 나온 주먹을, 에루나는 손을 뻗어 막아냈다. 원래대로라면 거기서 멈춰서 이야기를 꺼냈을 에루나였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에루나의 예상보다도, 상대는 자그마치 2시간하고도 23분, 57초나 늦게 이곳에 도달했다. 에루나가 루시아에 의해 낙스라는 땅에 떨어진지 이제 겨우 2시간하고 24분 57초가 걸렸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한 이야기였지만, 에루나의 입장에서는 이미 터무니없이 지각한 상대였다. 곱게 보일리가 없었다.


콰직, 하고 에루나가 붙잡은 손을 당겨, 그대로 발로 걷어차 상대의 팔을 꺾었다. 뿌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팔이 꺾여나간 누군가는, 울부짖으면서 몸부림쳤지만.

에루나의 완력은, 인간들에게는 힘의 상징으로도 일컬어지는 오우거, 그를 훨씬 웃돌고 있었다. 그리고 에루나에게 붙잡힌 누군가의 장기, ‘투기’는 에루나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에루나에게 붙잡힌 이상, 상대는 고작 해봐야 힘이 좀 세고, 좀 재빠를 뿐인 상대였다.


물론 그 힘이 좀 세고 재빠르다는 기준이 에네스타와 같은 초인의 범주지만.

그딴거 알까보냐,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상대의 주먹을 붙잡은 손아귀에 힘을 주면서 에루나는 날뛰는 누군가에게 물었다.


“이름을.”

“크, 크아아아아아아!”

“이름조차 말할 수 없는 버러지였습니까? 어쩔 수 없군요. 조금 교육을 시작하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소중한 시간이, 주인인 이지경에게 돌아가야 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에 에루나는 초조감을 느끼면서,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누군가의 주먹을 놓아주었다.

풀려난 그는 기회라는 듯이 에루나에게 달려들었다.  하나가 이미 에루나에 의해 꺾여 덜렁거렸지만,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눈앞에 있는 에루나를 죽이기 위해서 이를 드러내고 달려들었다.

“우선, 첫 번째.”

기세 좋게 달려들은 이의 머리를 가볍게 붙잡은 에루나가 상냥하지만 엄격한 어조로, 마치 장난을 친 아이에게 훈계하듯이 말했다.

“레이디에게 주먹을 뻗는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제대로 이름을 밝히고, 인사를 한 뒤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좋겠군요.”

쾅! 콰지지직!

그대로 땅에 붙잡은 머리를 처박은 에루나가 이어서 말했다.

“두 번째.”

주변의 땅이 갈라질 정도로 땅에 처박혔던 이였지만 곧장 머리를 처들었다. 검붉은 코피를 줄줄 흘리면서, 부러진 이빨을 드러내는 모습이 흉흉해보였다. 에루나가 말했던 대로 ‘레이디’라면 졸도라도 했을 몰골이었지만, 에루나는 레이디랑 거리가 멀었다.

애당초 골렘이었다.


“이름을 밝혔다면 교양 있게 레이디에게 어째서 이곳에 왔는지 물으십시오.”

퍼엉!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뿌드득하고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코피를 줄줄 흘리던 누군가의 모가지가 오른쪽으로 꺾였다. 그 옆에 팔랑거리는 에루나의 손바닥이 있었다.

“세 번째.”


퍼엉!


이번에는 왼쪽으로 거하게 꺾이는 모가지와 함께 에루나는 새빨갛게 물들고 있는 손바닥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용건을 들었다면 친절하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콰앙!

다시 한 번, 붙잡고 있던 머리를 땅에 처박은 에루나가 말했다.


“제가 에스코트할테니까, 이리로 오시죠. 레이디,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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