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39화
루시아의 마력을 본의가 아니더라도, 흡수해버렸다는 것에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는 나를 보고서, 루시아가 천천히 내 몸을 위아래로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조금 불안한 감이 있었지만, 다행히 제대로 된 모양이네요.”
“됐다니?”
“...그건 나중에 이야기 해드릴게요. 어쨌거나, 이지경님도 느끼셨겠죠? 자신의 몸에서 일어났던 변화를.”
그건, 알림이 알려주었던 그 흡정귀화니 뭐니 하는 걸 말하는 걸까. 나는 루시아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흡정귀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종족 인간에서 뭔지도 모를 요상한 걸로 변할 뻔 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런 나를 본 루시아가 내게서 살짝 떨어졌다. 방금 전까지는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질 줄 몰랐던 손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떨어졌다. 뭔가 아쉬웠지만, 차마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런 내게, 루시아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우선 사과드릴게요, 제 어머님께서 이지경님께 심한 장난을 부리셨던 모양이에요.”
“...어머님이라니?”
“저를 직접 낳으신 것은 아니지만, 저에게 있어선 어머니라고 불러야 되는 존재가 있다는 걸, 이지경님도 아시고 계시죠? 아네모네스 파라모아. 제 이전의, 최후의 금색용이자 천공의 보옥을 지배했던 드래곤. 그녀가 이지경님에게 이상한 장치를 해놨던 모양이에요. 정확히는... 이지경님을 소환한 마법진에 장난을 친 거겠지만요.”
그 말에 떠오른 것은, 차가운 얼굴로 마왕의 가랑이를 잘근잘근 짓밟았던 금발의 미녀였다. 그녀가, 에네모네스라는 이름의 드래곤이, 루시아의 어머니인가.
그러고 보니 조금 루시아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아니, 루시아가 그녀를 닮은 거겠지만. 어쨌거나, 루시아는 그녀의 환생이었으니까.
단지 혼이 동일하다는 것일 뿐, 그 둘이 같은 존재라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보다, 이상한 장치라니?”
하지만 별안간 그녀가, 루시아를 낳고, 아니 정확히는 루시아가 태어날 알을 만들어내고 소멸했던 에네모네스의 이름이 지금 나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루시아가 말한 이상한 장치라는 것이, 내가 흡정귀가 될 뻔했다는 걸 말하는 건 알겠지만... 그러고 보니 알림이 에네모네스의 안배라고 했었던가. 그걸 말하는 걸까.
그런 나를 바라보던 루시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마도 그녀 나름의 대비책이었겠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사태에 대비해서요. 그녀가 어째서 그런 짓을 했는지, 저 역시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대비책...?”
“...예, 이지경님이 변하려고 했던 종족은, 흡정귀라는 종족은 그런 쪽으로 우수한 종족이라고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 쪽이라니?”
루시아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점점 미궁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애당초 흡정귀니 뭐니하는 종족이 대체 무슨 종족인지도 몰랐다. 내 기억, 드래곤들이 부여해준 기억 속에는 없는 종족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쪽으로 우수하다느니 뭐니 해도 그게 대체 뭔지 알 턱이 없었다.
그런 내 반응을 보고서 루시아가 물었다.
“기억에 없으신 모양이군요?”
“응, 미안.”
“아뇨, 이지경님이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어요. 워낙 수가 적고 희귀한 종족이니까요. 이지경님에게 부여된 기억은, 이 세계에 보다 빠르게 적응하기 위한 것. 그 기억에 수가 적고 만날 일도 없을 종족에 대한 것이 없더라도 전혀 상관없을 테니까요. 어쨌거나... 간단히 설명 드리자면 흡정귀라는 종족은 다소 특이한 방식으로 번식한다고 해야 할까요. 다른 종족들을 임신시키거나, 다른 종족의 씨앗을 받아 아이를 늘리는 방식으로 번식하니까요. 우선은, 무리를 지어 다른 종족의 이성들을 붙잡아 생명력과 마력을 흡수한 다음에...”
“아, 알겠어. 어떤 건지 잘 알겠으니까.”
대체 그런 종족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지는 둘째치더라도,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종족이 될뻔했다는 건 확실히 알았다.
“소문에 의하면, 마계의 몽마들이 넘어와 적응한 결과라는 말도 있고, 흡혈귀의 돌연변이라는 소문이 있는 종족이기도 하네요. 어쨌거나, 지금은 거의 멸종한 종족이에요.”
“몽마나, 흡혈귀라면 알겠는데.”
몽마는 기억 속에 있었다. 서큐버스나 인큐버스, 대충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종족이었다. 꿈을 통해, 정을 갈취하는 종족들이니까. 흡혈귀도 흔히 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피를 빠는 종족이고. 이 세계의 흡혈귀들은 피를 빠는 것으로 수를 늘리는 게 아니라, 평범하게 종족으로써 아이를 낳아 기르는 모양이었지만...
어쨌거나, 이런 종족들에 대한 지식도 머릿속에 있었는데, 내가 변할 뻔한 흡정귀라는 녀석은 그 기억에도 없는걸 보니 엄청 희귀한 종족이라는 거였다. 멸종위기의 종족이라니. 드래곤과 비슷하구나... 아니, 조금 다른 것 같지만.
하지만 그런 설명을 들었어도, 어째서 나를 그런 것으로 만들려고 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아마, 제 예상이 맞는다면, 흡정귀의 능력이 갖고 있는 부가적인 효과를 노린 거겠죠.”
그런 나에게, 루시아가 그렇게 말해다.
“부가적인 효과라니?”
“흡정귀가 붙잡은 대상의 마력과 생명력을 흡수한다는 건, 말하자면 그들의 번식을 위한 수단이에요. 동시에 그들의 식사활동이기도 하죠. 결론만 말하자면, 그들이 보다 쉽게 그 행위를 마치기 위해서라도, 붙잡은 대상의 반항이 없어야 한다는 이야기죠.”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서, 그들의 능력에는 또 다른 효과가 있어요. 이른바, 발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현상을, 상대방에게 강제로 일으키는 효과죠.”
“......”
루시아의 말에 나도 모르게 주춤했다.
나를 바라보는 루시아의 눈이 왠지 엄청 무서웠다. 그런 나를 보고서, 루시아가 덧붙이듯 말했다.
“...물론, 저에게는 큰 효과는 없지만요.”
“그, 그래?”
그런 거라면, 그것부터 먼저 말해줬으면 좋겠다. 괜히 긴장했네.
“문제는, 그 발정의 효과가 미치는 대상이, 상대방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어... 그 말은?”
“네, 이지경님의 예상대로, 그 능력은 쌍방으로 효과를 발휘하죠. 그래서 아까 물어봤잖아요?”
그래서 물어본 거였구나. 난 그런건 줄 몰랐다.
“...어쨌거나, 정말로 죄송해요. 미처 눈치 채지 못한 제 잘못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루시아를 보니 확실히 큰일 날 뻔 했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루시아가 계속 사과하게 두기도 그랬다. 나는 큼, 하고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루시아, 네가 사과할 필요는 없잖아? 네가 한 것도 아니고.”
“제가 한 것은 아니지만... 에네모네스가 죽은 뒤에도 마법이 발동된 것이니 무언가 조건이 있었을 테니까요. 여태껏 잠잠했다가, 갑자기 그런걸 보면...”
무언가 떠올린 듯, 스윽하고 내게서 시선을 돌린 루시아가 보였다. 왜 저럴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루시아?”
“아마도... 제 예상일뿐이지만... 제가 이지경님을 덮치려고 했기 때문이겠죠.”
저기요?
“그리고 또 떠올릴 수 있는 거라면... 이지경님이 그런 저를 거부하려고 하셨던 것이, 조건이 됐을까요.”
저기요, 루시아씨?
방금 한 말은 대체 뭔가요?
“...어쨌거나, 이건 제 실수네요.
“어, 음...”
충격적인 고백을 해버린 루시아에게 뭔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그건 삼켜두기로 했다.
여러 가지로 이 이상은 캐물으면 안 된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기분 탓이겠지만 루시아의 얼굴도 빨간 것 같고. 그게 수치스러워서 그런 건지 부끄러워서 그런 건지, 그것도 아니면 화가 나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긁어 부스럼이었다.
“아, 아무튼... 이제 문제없다는 거지?”
“...우선 당장은 그러네요. 단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에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니... 또 그럴 수도 있다는 거야?”
“제가 한 것은, 미처 발동되지 않았던 다른 무언가를, 발동되기 전에 부숴버린 것이니까요. 이미 발현을 마친 흡정귀화는 어떻게 할 수 없었어요. 덕분에 이지경님의 피를 제 몸 안에 들여서, 항체를 만들어 피와 함께 다시 이지경님에게 주입했을 뿐이니까, 완전히 해결됐다고는 할 수 없죠.”
“피? 항체?”
내 물음에,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드래곤들은 선천적으로 마법에 대한 뛰어난 저항력을 갖고 있으니까요. 이지경님이 걸렸던 것은, 대상을 강제로 다른 종족으로 바꾸는 일종의 저주나 마찬가지인 마법이었어요. 그러니까, 저주에도 강한 저항능력을 갖고 있는 드래곤의 피, 제 피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치료수단이 되는 셈이죠. 물론... 급하게 대처한 만큼 마무리가 어설펐지만요.”
그렇게 이야기하던 루시아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마, 약간의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부작용이라니?”
엄청 불안한 단어였다. 애당초 부작용이라는 말을 나는 싫어했다. 오늘부터 싫어하기로 했다. 그런 나를 보며 루시아가 말을 이었다.
“실례, 부작용이라고 했지만, 대단한 것은 아니에요. 적어도, 흡정귀화가 완전히 치료될 때까지는 주기적으로 드래곤의 피나, 체액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니까요. 짧으면 일주일, 길어도 한 달... 그때마다 드래곤의 피나, 체액을 마신다면 해결되는 간단한 부작용이요. 굳이 제 피가 아니라도 되니까, 대처하는 것도 쉬울 테고요. 단지...”
“피만 마시면 되니까, 조금 꺼림칙해도 별 문제가... 아.”
“...단지, 곧 있으면 이곳을 떠나, 크리샤의 영지로 향하시는 이지경님께는 다소 까다로운 부작용이겠네요.”
크리샤가 나한테 주기적으로 피를 주는 광경을 떠올려봤다.
응, 그런 광경 같은 건 떠오르지 않았다.
“어떡하지...”
만약 그, 주기적으로 드래곤의 피나 체액을 마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지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대충 예상은 갔다. 지금은 루시아의 피로 억제하고 있었던 흡정귀화가 다시 진행되는 거겠지.
적어도, 내가 흡정귀라는 정체불명의 종족으로 변하는 것이 루시아가 보기에는 별로 좋지 않다고 여기는 건 틀림없어 보이고.
“별 수 없죠.”
그렇게 말한 루시아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꾸욱하고 나를 끌어안았다.
“어, 루시아?”
“혹시 모르니까, 미리 마셔두는 것은 어떤가요?”
대체 뭘... 이라고 묻기도 전에, 루시아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대로, 루시아의 입술이 다시 한 번 내 입술을 덮쳐눌렀으니까.
효과 없다며!? 소리 없는 발버둥을 치는 나를, 루시아가 바라봤다. 그 눈빛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큰 효과가 없다고 했지, 없다고는 안했다고. 내 착각이겠지만 루시아가 그렇게 말하는 듯 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