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8화 〉38화 (38/370)



〈 38화 〉38화
무언가가 내 몸에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수 없었지만 그것만큼은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평범한 사람의 눈이 금빛으로 반짝거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거기에, 지금 내 눈은 어둠 속에서도 낮과 마찬가지로 훤히 보였다.

 눈에는 그런 다채로운 기능 같은 건 없었다. 방금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뒤늦게 그 사실에 의아심을 품은 순간이었다.

띠링~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아네모네스의 안배’가 발동됩니다!]


우우웅...!

그런 알림과 함께 무언가가 번쩍하고 빛나는 것이 보였다. 정확히는, 무언가가 아니라 루시아의 가슴을 붙잡고 있던 내 손이 번쩍하고 빛나고 있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아네모네스의 안배’에 의해 기능 ‘흡정’을 습득하셨습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종족 ‘흡정귀’로 변환됩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고유특성 ‘차원을 넘은 자’가 이에 저항합니다! 고유특성 ‘개변자’가 ‘차원을 넘은 자’를 보조합니다! ‘아네모네스의 안배’의 발동이 저지됩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종족이 ‘흡정귀’로 변환되는 것에 저항합니다!]

띠링~

[조건이 충족되지 못했습니다! 기능 ‘흡정’이 상위기능 ‘카마수트라로’ 승급하지 못했습니다!]

띠링~


[‘아네모네스의 안배’가 이에 대응합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몸을 강제합니다. 기능 ‘흡정’을 발동합니다. 접촉한 대상의 생명력과 마력을 일부 흡수합니다.]

띠링~


[강화된 기능 ‘흡정’이 종족변환 ‘흡정귀화’를 가속합니다! 흡수한 생명력과 마력에 비례하여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흡정귀화’가 이루어집니다.]

“흐읏...!”


거듭되며 들려온 알림 소리와 함께, 품에 안겨 있던 루시아가 신음을 토했다.


“자, 잠깐만...”


알림소리가 알려 준 것, 흡정귀가 되려다 실패했다니 다시 진행된다니 뭐니 하는 이야기들은 둘째치더라도, 접촉한 대상의 생명력과 마력을 흡수한다는 말과,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뒤트는 루시아를 보고서 나는 당황했다


내가 접촉한 대상이라고는 당연히 루시아밖에 없었다. 그렇다는 건, 흡정이라는 기능이 생명력과 마력을 흡수하는 대상이 바로 루시아라는 소리였다.


내가 원하던 것도 아닌데도,  멋대로 흡수하려고 드는 것이었다.

그것도 생명력과 마력, 하나같이 흉흉한 느낌 밖에 들지 않는 소리를 하면서 말이다. 나는 서둘러 루시아로부터 손을 떼려고 했다.


“하윽!”


하지만 빛을 뿜으며 루시아의 가슴부근에 닿아있던 손은 도저히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을 떼려고 하자, 통증이라도 느낀 것처럼 루시아가 신음을 토하며, 몸을 퍼뜩였다.


아픈 건가? 아니, 마력은 둘째치더라도 생명력을 흡수한다니까 아픈 게 당연한 건가?

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내가 어떻게 하면...


“하아, 하아...”

“기다려봐,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어떻게 해야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해야 됐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자각은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내가 루시아의 마력을, 생명력을 흡수하려고 한다는 자각은 있었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지, 이걸 해제할  있는지가 알  없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당황하고 있던 나를, 루시아가 팔을 뻗어 붙잡았다.


“읍?!”


“하웁...!”

그리고 그런 나에게, 루시아가 입을 맞췄다.


띠링~

[‘루시아네스 파라모아’의 고유특성이 발동됩니다. ‘루시아네스 파라모아’의 고유특성 ‘순혈의 용’이 기능 ‘흡정’에 저항합니다!]

띠링~


[‘아네모네스의 안배’가 이에 대응합니다! ‘흡정’의 효과를 강화합니다! 추가로 ‘루시아네스 파라모아’의 고유특성 ‘순혈의 용’의 효과를 저하시킵니다!]

우웅, 우우우웅...

거세게 빛을 뿜어내는 내 손으로부터, 꿀럭꿀럭하고 무언가가 내 안으로 넘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이 무엇인지 알  있었다.

아마도 이것이 마력일 것이다. 마력이  몸에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감각이, 그 경험이 내게 있어서는 처음이었지만, 이것이 마력이라는 것을, 나는 그 즉시 이해했다. 내게 부여된 기억에도 당연히 마력에 대한 것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 마력이 본래는 루시아의 마력이었던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지금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마력은, 애당초 루시아로부터 흡수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단지, 내가 생각했던 루시아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게, 그녀의 마력은 차갑고, 공허했다.


마력은 이 세상의 어디에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깃들어 존재한다. 하지만 그 마력들이, 모두에게 깃들어있는 모든 마력들이 동일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모두에게 마력이 깃들어 있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마력은, 제각각의 개성을 갖고 있었다.


정열적인 사람에게는, 마치 타오를 것 같은 뜨거운 기운의 마력이, 냉정한 사람에게는 차갑고, 서리가 내려앉을 것만 같은 마력이 깃들게 된다.


그렇다면  마력이, 섬뜩할 정도로 차갑고, 공허한 이 마력이...

이것이, 루시아의 마력이라는 걸까.


우우웅, 우우우웅...

여전히 계속해서,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차갑고 공허한 마력을 느끼면서, 나는 눈앞의 루시아를 바라봤다.

마력은,  소유자의 개성을, 심상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 마력이, 루시아의 것이라는 말은, 루시아가 사실은 이 세상을 차갑고, 공허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조금 슬픈 기분이 들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루시아가 보여주는 미소들이, 내게 보여주는 미소를 포함해서도, 거기에, 그녀의 진심이 깃든 적이 드물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야, 루시아의 정보창만 봐도 알  있는 일이었다. 최근에는  적이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때와 비교해서, 그때보다 조금이라도  올랐다고 하더라도 오늘 소개받은 에오시스 자매보다도 호감도가 낮았다.

정보창이 보여주는 호감도가 절대적이니, 뭐니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내게 보여준 미소에도, 그때 해주었던 말에도 분명, 그녀의 진심이 깃들어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다면 더 슬픈 일이 아닐까.


그렇게 밝고, 아름답게 웃을 수 있는 루시아가, 이토록 차가운 마력을 속에 품고 있었다.

내게 그토록 상냥하게, 말해주었던 루시아가, 사실은 이렇게나 공허한 마력을,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이 오히려 더, 슬퍼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런 루시아를 끌어안았다.

원래의 루시아라면, 내가 상상도 못할 만큼 커다란, 드래곤인 루시아라면 이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의 루시아는, 내 품에 안길 수 있을 만큼 작고 가녀린 존재일 뿐이었다.


이렇게 하더라도, 그녀의 마력이 어떻게 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으음...”


접촉하고 있는 면적이 늘어나서일까, 루시아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마력의 양도 점차 늘어갔다. 그래서 일까, 품에 안긴 루시아가 약간의 신음성을 내뱉었다. 이건 별로 원하던 일은 아니었다. 마력과 생명력을 흡수하는 양이 늘어났다는 말은, 루시아에게 부담을 늘려줬다는 이야기도 되는 셈이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루시아로부터 최대한 떨어질까 생각했지만, 그런 내 귓가에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루시아네스 파라모아’의 생명력을 일부 흡수하셨습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루시아네스 파라모아’의 마력을 일부 흡수하셨습니다.]

결국 루시아의 마력을, 생명력을 흡수해버렸다는 소리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미처 손을  새도 없이, 속수무책이었다지만 루시아의 마력을, 생명력을 흡수해버린 것이었다.

다행이라면 전부가 아니고, 일부라는 거였지만... 그걸 다행이라고 하기에도 그랬다.

그 순간, 따끔하고 입술에 통증이 일었다.


루시아가 송곳니로 내 입술을 깨문 것이었다. 잠깐 루시아가 마력이 흡수됐다는 사실에 화라도 내는 건가 싶었지만, 그런건 아닌 것 같았다. 아주 작게,  입술에  상처에 입술을 가져다대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피를 빠는 루시아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뭔가 엄청 부끄러웠다.

‘응?’

부끄러움은 잠시, 내 입술에 난 상처로부터, 흘러나오는 피로부터 마력이 도로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루시아로부터 흡수한 마력과 비교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했지만, 도로 루시아에게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물론, 그렇게 도로 돌아간 마력은 다시 내게 흘러들어오기는 했지만... 조금이라도 내게서 마력을 되돌려 받기 위해 그런 건가 싶었던 내 생각은  광경을 보고서 접어두었다.


내가 얻게 된 흡정이라는 기능이 대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작 입술에서 조금 나올 뿐인 피를 통해 마력을 흡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효율이었다.


루시아가 내게서 도로 가져가는 마력이, 모래  알이라면, 흡정이 흡수하는 마력은 그 모래를  바가지로 퍼 담은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마력을 돌려받는다면, 나는 말라죽을게 분명했다.

그때, 루시아가 자신의 입술에도 송곳니로 상처를 내는 것이 보였다.


주륵, 하고 핏방울이 보이는 것과 동시에, 다시 루시아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어 눌렀다.


어쩐지, 전혀 피라고 느껴지지 않는, 달콤한 향기가 나는 루시아의 피가, 내 혀를 타고 흘러들어갔다. 피뿐만이 아니라, 피에 담겨있는 루시아의 마력까지도.

‘응? 조금... 다른데?’

그러다, 내게서 흘러나갔던 루시아의 마력이, 도로 흡정에 의해 흡수되었을 때. 흡정이 처음 흡수했었던 루시아의 마력과 비교해서 무언가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나, 입술을 통해 내게 전해지는, 피와 함께 전해지고 있는 마력은 무언가 달랐다. 그리고 그것을 눈치 챘을 때였다.


띠링~

[‘루시아네스 파라모아’가 ‘아네모네스의 안배’를 파훼합니다. 기능 ‘흡정’의 강제사용을 억누릅니다. 기능 ‘흡정’이 일시적으로 사용불가 상태로 전환됩니다.]


그런 알림과 함께, 천천히 맞닿아있던 입술을 뗀 루시아가 나를 바라봤다.  역시, 그런 루시아를 바라봤다. 반짝반짝하고, 침으로 반짝이는 루시아의 입술이 보였다. 저 침의 주인이 누군지는 물을 필요도 없었다.

긴장하면 침이 많아지는 체질이라 그랬다. 어쩔 수 없었다고...


그보다, 내가 침이 많은 체질인 것보다 중요한  있었다. 나는 내 품에 안겨있는 루시아에게 물었다.


“루시아, 그, 몸은 좀 괜찮아?”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보다 이지경님은 괜찮으신가요? 아프신 곳은 없나요? 예를 들어... 머리가 지끈거린다거나? 그, 거기가 욱신거린다거나?”


나야 괜찮았다. 조금 충격적인 일의 연속이어서 그런지 졸렸던 것이 확 달아난 것 말고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도 없고, 오히려 뭔가 커피라도 잔뜩 마신 것처럼 맑아졌다고 해야 할까.


마지막은... 그게 뭔데. 거기가 뭔데.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른다. 별로 욱신거리지는 않는다고. 그야, 생리현상이니까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아니,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튼 몸 상태는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전보다 좋아진 느낌이었다. 이걸 문제라고 한다면 문제가 있는 거긴 한데...


아니, 아무 문제도 없는 건 아니구나.


나는 내 심장 부근에 웅크리듯 자리를 잡은 루시아의 마력을 느꼈다. 어째서 심장 부근인건지는 모르겠지만... 마력이 제 멋대로 거기에 모인  어째. 어쨌거나, 내 몸에 아무런 이상도 없다는  확인한 뒤에, 대답했다.


“일단은 아픈 곳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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