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5화 〉35화 (35/370)



〈 35화 〉35화

“어떠셨나요?”


“어땠냐니... 역시 일부러 그랬구나?”


처음에는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도 그렇다면 아무리 둔감한 사람이라도 의심이라는 것을 하기 마련이었다.


나타와 에샤, 그리고 모네까지. 루시아가 내게 소개시켜준 그녀들이 하나같이 나에게 호감을 품고 있다는 것을  직후에, 그리고 루시아가 그녀들을 물리고 난 직후에 넌지시 물어오는 루시아의 말에 나는 혹시나 했던 생각을 확신으로 바꿀 수 있었다.

나는 가만히 루시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째서 그런 일을 한거야? 아니, 어떻게 한거야?”


“어째서 그랬는지 보다 그쪽이 중요한가요?”

“루시아, 네가 내가 싫어할 만한 일을 할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띠링~

['루시에나스 파라모아'의 호감도가 1만큼 상승했습니다!]

귓가에 그런 알림이 들려왔지만 나는 여전히 루시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루시아에게 실망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런 나를 보며, 루시아는 천천히 차를 마시고는 말했다.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어요. 그러니까, 이지경님이 생각하시는 일처럼 제가 매혹이나, 세뇌 같은 것을 건 것은 아니에요.”

“그, 그런 생각은 한 적 없거든?”


“정말인가요? 거짓말은 금반 들통 나실 텐데요. 이지경님에게는 거짓말을 하는 재능이 없어 보이니까요.”


“...미안, 아주 조금.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 했어.”

그렇지 않다면  자매 모두가 내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으니까. 객관적으로 봐서 내가 그녀들에게 호감을 살만한 구석이 없으니 말이다.


내가 이 요정향에서 살고 있는 엘프들처럼 빼어나게 아름답거나, 잘생긴 것도 아니고, 애당초 초면이었던 그녀들이 나에게 호의를 갖는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내가 이 세계에 처음 소환되었을 때, 루시아가 내게 하려고 했던 정신조종과 매혹이었던 것은 당연했다.


그런 나를 보고서 루시아는 아주 살짝 웃어보였다.


“방금 전까지는 남자다우셨는데 지금은 비에 젖은 고양이처럼 얌전해지셨네요.”

“...장난치지 말고.”

“장난으로 들리셨나요? 실례했어요. 제 말은, 이지경님이 귀여워 보인다는 말이었어요.”


루시아의 말에 얼굴이 조금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갑작스레 낯간지러운 소리를 하는 루시아를 보고서,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입을 열면 혀라도 깨물 것 같았다.

“어떤가요? 이지경님은 조금 더, 저를 좋아하게 되셨나요?”

“뭐, 뭐?”


그런 나에게 속삭이듯이 말해오는 루시아의 말에 화들짝 놀라자, 그런 나를 보며 루시아는 이제 숨길 생각도 안하는 듯, 입가를 가리면서 웃었다.


“이지경님이 물으잖아요? 이게 제가 사용한 방법이에요. 누구나 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방법이죠?”

“...응?”

루시아의 말에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자 그런 나를 보고는 루시아가 말을 이었다.

“이지경님도 그런 경험이 있으실 테죠. 친한 지인이나, 인척들, 혹은 그런 사람들로부터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요. 단지 그것뿐인데도, 이지경님이 신뢰하는 누군가가 이야기해준  상대를, 얼굴도 모르는 상대를 마음속에서나마 그가 어떤 인물인지, 어떤 성격인지 그리신 적이 있으실 거예요.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호감이 생긴 적이 있었을 테죠.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이 신뢰하는 사람이라는 것뿐인데도, 단지 그것뿐인데도. 제가 사용한 방법은 그것과 별 다를 바가 없어요. 단순한 말, 제가 사용한 방법은 단지 그것뿐이에요.”

루시아의 말에 곰곰이 생각해봤다.

확실히, 비슷한 일이 없다고는  수 없었다. 어릴 적, 처음 보음 보는 아저씨를 보고서 경계를 하다가도, 아버지가 삼촌이다, 라는 한 마디에 삼촌~ 하고 달려가서 애교를 부렸던 기억이 있었으니까. 물론 그 삼촌이라고 소개받은 아버지의 친구분의 손에 게임시디가 들려있기는 했다만.

하지만, 그야 그럴 수도 있다지만, 겨우 그런 걸로...?


“물론, 저의 경우에는 아주 조금 손을 쓰기는 했지만요.”


“손이라니?”

“비밀이랍니다.”


뭔가 미심쩍었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했던 최악의 상황이 아니란 사실에 우선 안도했다. 그런 나를 보며, 루시아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떻던가요? 그 셋은, 이지경님이 보시기에 마음에 드시던가요?”

“아? 응, 뭐...”

“......”

무심코 루시아의 말에 대답하려다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루시아의 모습이 보였다. 꿀꺽하고,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예쁘던데'하는 소리가 다시 발밑까지 처박혔다.


실수할 뻔 했다. 내가 아무리 둔하다지만 다른 여자를 보고서 예쁘다고하는 말을 듣는 것이 좋을 리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데구르르, 루시아의 눈치를 보며 눈을 굴리다가,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이상한 게 있던데...  명 모두, 그, 정보창에 무희라는 칭호가 있었거든?”


급하게, 그녀들의 정보창을 보았을 때 들었던 또 다른 의문을 물어보며 화제를 돌리자 그런 나를 보며 루시아는 아주 살짝 웃어보였다.


뭔가 내 속마음을 전부 들킨 것 같아서 뜨끔거렸다. 하지만 그런 나를 보며, 루시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거라면 아마 그녀들이 이곳, 요정향의 무희이기 때문 일거에요. 5년을 주기로, 선조들의 영혼과 정령, 그리고 그들이 모시는 세계수의 자손인 에이그라를 위하여 춤을 추는 무희들. 그 무희들이 바로 에오시스 자매들이거든요. 대대로, 그녀들의 혈족에서 나온 여자들은 무희가 되었었죠."

“그래서 무희인가... 그나저나 춤이라고?”


“아아... 그러고 보니 이지경님이 살고계셨던 세계에는, 마법이나 정령의 존재가 없었다고 하셨었죠."

"응, 뭔가 춤을 추는 이유라도 있는 거야?"


"사실 춤 자체는 별게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중요한 것은 5년의 주기로 있는 의식 그 자체니까요. 하지만 그 의식을 주관하는 것이 무희들이고, 그 무희 중에서도 뽑힌 신목의 무녀가 이들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인 만큼 그녀들은 이곳에서도 특수한 입장에 있는 엘프들이라고 할  있겠죠."


루시아의 말에 떠올린 것은 내가 살고 있던 세계에도 흔히 있었던 의식과 그 주관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과거 옛날에도 종종 그런 의식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던 것이었다.


마법이나 정령, 그리고 신이라는 존재가 실존하는 이곳에서는 그 의미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궁금하신 것은 해결되셨나요?"


"응, 덕분에 궁금했던  풀렸어. 고마워."

"간단한 일인걸요. 그렇다면… 제가 한 질문의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요?"

역시 루시아를 상대로 화제를 돌린다는 것은 무리였나 보다. 어떻게든 화제를 돌렸다고 생각했는데 고대로 다시 돌아오는 말에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엘프들이 미인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확실히 그렇더라.”


그런 내 대답을 들은 루시아가 장난스레 말했다.


“이지경님이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그런 미인들로 시중을 들게 해줄  있지만요?”

“농담은 그쯤 해둬.”


나도 그런 루시아에게 손 사레를 치며 그렇게 대답했다. 지금도 또 다시 에루나가 아닌 사람들에게 시중을 받아야한다는 사실에 위가 욱신거리는 느낌이니까.


“역시 이지경님은 다른 인간과 달리 특이한 분이네요. 다들 바라마지 않는 것일 텐데요."

이곳에 와서 질리게도 들었던 말이었다. 확실히 이세계의 기준으로 내 가치관은 특이하긴 했으니 뭐라고 반박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변명하자면, 이곳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일부다처, 혹은 그 반대인 일처다부라던가. 혼인을 맺은 배우자나 연인이 아닌 사이에서도 아이를 갖는 것이 일부 종족들 사이에서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라던가, 그런 문화가 내게는 이상하게 느껴지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살아온 나라, 문화가 다른 것만으로도 같은 지구에서도 여러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이세계와는 차원마저 다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루시아는 이해해주는 존재 중의 하나였다.


그런 루시아를 새삼스레 고마운 감정을 담아 바라보자니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루시아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 자극이 강할지도 모르겠지만 모처럼이니까...”


중얼거리듯, 무언가를 말하는 루시아의 모습이 말이다. 작은 목소리에 미처 뒤에는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귀를 기울이기도 늦었다. 나의 시선을 느낀 듯 루시아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기 때문이었다.


"아, 죄송해요. 잠깐 다른 생각을 했네요."

"아니, 뭐… 아무래도 괜찮지만."

뭔가 쿡쿡하고, 뒤통수를 찌르는 듯한 불안감이 있었지만 이게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불안감을 느꼈을 때마다 썩 좋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다는 건 확실했다. 물론, 그 말이 맞다면 아까 낮에 에루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느꼈던 불안감도 썩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는 조짐이었다는게 되지만 말이다.

아니겠지? 응, 아니겠지.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기능 ‘위기감지’를 습득하셨습니다.]


“으응...?”

애써 아무것도 아닐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고 있던 내 귓가에 울리는 알림이 더더욱  불안감을 부추겼다. 일부러 그랬냐고 묻고 싶을 정도였다. 누구한테 물어봐야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나저나 알림이 말하는 위기감지라는 기능을 습득해버린 경위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위기감지라니, 여기에는 나와 루시아뿐이었고, 루시아가 나에게 무언가를 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일단은 이곳과 이어진 유일한 통로인, 에오시스 자매들이 나갔던 문을 바라보자 그런 나를 보고서 루시아가 물었다.

“왜 그러신가요?”

“아, 아니... 그냥 조금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서.”


내가 봐도 뭔가 알 리가 없었다. 거기에는 여느때와 같은 문이 있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그런 나에게 루시아가 되물었다.

“좋지 않은, 느낌인가요?”

“응,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돌연 위기감지라는 기능을 얻었다는 말을 하면 루시아가 걱정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변명하고서는 나는 자연스레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역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것을 알아냈다.

“...별거 아니겠지.”


애당초 기능을 습득하는 경위가 너무 애매했다. 책을 읽었더니 검술을 얻는 일도 있었고, 약초를 먹었다가 약초 감정을 얻기도 했다. 심지어 내가 갖고 있는 기능 중 하나인 감지는 책을 읽던 중에 발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봤다는 걸로 얻기도 했었다.

이번 것도 아마 그것과 비슷하리라. 그나저나 위기감지라니 같은 감지계인 감지가 있는데도 서로 통합되거나 하지는 않는구나. 역시 잘 알 수 없는 아리송한 내 능력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뭐 어련히 알아서 되겠거니 하기로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새롭게 얻은 기능인 위기 감지를 사용해봤다. 요령은 감지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대로였던 모양이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기능 ‘위기감지’를 사용합니다! 반경 1m 이내의 범위의 위기를 감지합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에게 위해를 끼칠만한 존재를 일정한 확률로 감지할  있습니다.]

그런 알림과 함께,  주변의 공간이, 분위기가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 이제 겨우 F랭크에 불과한 기능이라서 그런지 범위는 엄청나게 좁았지만 말이다. 1m라니, 그런 거라면 조금 주의를 기울이는 거랑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싶었다. 게다가 그렇게 좁은 범위이면서도 감지할 확률이라는 게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그 확률이 얼마나 될지는 상태창을 열어서 직접 확인해봐야겠지만...


그리고 역시나, 위기감지를 사용해도 무언가 느껴지는 것도 없었다. 무언가로 인해 위기감지라는 능력을 얻은 것은 분명했지만... 혹시 오늘 있었던 에네스타와의 훈련이 이제와서 효과를 본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나에게 루시아가 말했다.


“그럼, 오늘은 밤도 늦었으니 슬슬 돌아가서 쉬시는 건 어떨까요?”


“아, 그렇겠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었지만, 식사는 이미 진작에 마친 뒤였고, 루시아가 소개시켜줄 사람들이었던 에오시스 자매들도 모두 만나봤다. 이세계의 기준으로 이미 진작에 잠에 들어도 이상할 게 없는 시간이었다. 나야 지구력이 달지 않는 이상 잠을 자지 않아도 됐지만, 오늘부터는 에루나도 없었다. 밤새도록 있어도 멀쩡했던 이유가 에루나가 가져다주었던 간식 덕분이었으니, 당분간은 얌전히 침대에 누워 잠을 자야 된다는 말이 됐다.

“그럼 이만 일어날까.”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루시아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런 루시아를 보고서 나도 몸을 일으켰다.

“내일 보자, 루시아.”


“네, 나중에 뵈어요. 이지경님”


그렇게 말한 나에게 살며시 웃어 보이며 대답해주는 루시아를 보고서, 나는 방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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