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1화 〉31화 (31/370)



〈 31화 〉31화

“하아, 하아...”

 밑까지 숨이 차올라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나는 검을  손에 다시 한 번 힘을 주었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쉬익!

공기를 찢으며, 날카롭게 벼려진 검이  차례 번뜩였다. 나는 멈추지 않고 천천히, 검을 거둬들이며 숨을 내뱉었다.


한 번의 베기, 그리고 한 번의 호흡. 이것이 라이어스 제국 검술의 마지막 초식이었다.


“후읍... 핫!”

흐르는 땀으로 이미 옷은 축축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도 그럴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동작은 라이어스 제국 검술의 마지막 초식이었다.

즉, 이 수업이라는 이름의 고행의 끝이라는 의미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동작으로만 치면 수백 가지가 넘는 것을, 각각 400회씩. 더군다나 양 팔과 다리, 그리고 허리에 결코 가볍다고 할 수 만은 없는 무게의 추까지 달고 한 것이었다.

사실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에 에루나에게 받은 간식으로 지구력을 회복해서 망정이지 그것도 없었다면 진작 탈진해서 쓰러졌을  분명했다.

하지만 드디어, 마지막 초식. 거기에 이제 열 번도 채 남지 않았다.


다시 한 번 호흡을 가다듬고, 검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쉬익!


한 호흡, 들이쉬는 것과 내뱉는 것에 맞춰 검을 휘두르고 거둔다.


라이어스 제국의 검술의 마지막 초식은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베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 단순한 초식이었다.

아니, 실제로도 그랬다. 1초식부터 20초식까지, 다양한 방향으로 검로를 틀고, 베고, 찌르는 형태를 갖고 있는 라이어스의 제국 검술 중에서도, 유일하게 검으로 베고, 다시 거둬들이는 동작밖에 없는 유일한 초식이 라이어스 제국 검술의 마지막 초식이었다.

스무 가지나 되는 초식의 마지막에 와서야, 가장 단순한 베기밖에 없는 검술. 기이하다면 기이하고 특이하다면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는 검술이 바로 라이어스 제국 검술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어스 제국 검술의 마지막 초식, 21번째 초식을 가장 마지막으로 배우는 이유는, 그 초식이야말로 라이어스 제국 검술의 기초이자 기본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라이어스 제국 검술은 시작과 그 끝이 언제나 마지막 초식, 21번째 초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라이어스 제국 검술의 모든 초식은 마지막 초식인 21번째 초식을 시작으로 연계하듯이 이어지고 21번째 초식으로 끝을 맺는다.


앞서 말한 수백 가지의 동작이, 단 한 번의 베기부터 시작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었다.


그것이 열 개가 넘는 초식으로 이어져야지 겨우 라이어스 제국 검술의 숙련단계,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열 개가 이어져야지만 완전히 라이어스 검술을 다룰 수 있다고 말할  있었다.


나는 이제 겨우 한 번에 다섯 번의 초식으로 이어지는 게 고작이었다. 라이어스 제국 검술 C랭크,  수련 정도의 실력이라고 해야 할까. 겨우 나흘 만에 이 수준에 왔으니 빠르다면 빠른 편이었다.

하지만...

“좀 더 발을 안쪽으로, 그리고 검을 휘두를 때 자세가 너무 흔들리는구려. 지쳤다는 건 이해하고 있지만 보다 안정적으로 휘두를  있게 노력하게나.”


내 옆에서, 내가 휘두르던 검을 바라보고 있던 에네스타가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 문제는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인 에네스타의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개변자라는 특성 덕분에 어지간한 일로는 지치지도 않는 내가 이렇게 녹초가  이유가 다 거기에 있었다.


아무리 몸이 지치지 않더라도,  번이고 ‘다시 하게나’라는 소리를 들으며 처음부터 반복하다보면 정신적으로는 지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하게나’ 라는 말은 추호도 들을 생각도, 듣고 싶지도 않았기에 나는 얌전히 에네스타의 조언을 따라 자세를 고치고서, 다시   호흡을 고르고는 검을 휘둘렀다.

쉬익!

“흠... 아까보다는 많이 나아졌구려. 그렇게 계속하게나. 이제 여덟  남았네.”


아무래도 이번  에네스타가 보기에도 그럭저럭 합격점이었나 보다. 합격점이라고 해봤자 내가 방금 한 동작이 완벽했다기보다는 내 수준에서 그런 대로 쓸 만했다, 라는 뜻이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합격점은 합격점, 나는 방금 검을 휘두른 감각을 떠올리며 다시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검을 휘두르고 거둬들이는 마지막 초식의, 마지막. 거기에 에네스타의 ‘다시’라는 말도 없이 끝맺고 나서야 나는 자리에 주저앉으며 외쳤다.

“끝, 났다아아!”


마음 같아서는 만세라도 부르고 싶었지만, 그러려고 손을 올리는 것도 귀찮았다. 그런 나를 보고 있던 에네스타가 말했다.


“수고했네, 드래곤의 반려. 점점 실력이 나아지는 것이 보이니 가르치는 몸으로써 흡족하구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살살해주지...?”


내 애원이 섞인 말에 에네스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하네만, 아까도 말했듯이 그렇게 되면 혼나는 건 나라서 말이지.”

그러니까 루시아에게 혼나는  무서워서 나를 마구 굴린다는 거지? 그 심정만큼은 이해가 되지만 힘든  힘든 거였다.


“그나저나 에루나는?”


수련의 도중에 어딘가로 가는 것은 봤는데 그 뒤로 보이지 않는 에루나를 찾자 에네스타가 말했다.

“잠시 루시아네스님께서 부르셨네.”


“흠, 그러면 이건 나중에  수 있겠네.”


내 양 팔과 다리, 그리고 허리에 있는 추는 에루나가 가져온 것이었다. 모양은 단순한 추가 달려있는 팔찌, 허리띠처럼 보이지만 이래보여도 사실 마법도구 중의 하나로 마력이 없는 나로서는 착용하는 것도, 해제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마법도구래봤자 단순히 보기보다 훨씬 무겁다는 것과, 그 무게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뿐이었지만 말이다. 무게도  해봐야 전부 합쳐 10kg도 되지 않는 무게였다. 하지만 이것의 장점은 그거로도 충분했다. 마법도구라서 무게에 비해 부피도 얼마 되지 않고 수련을 돕기 위한 물건이라 자세와 균형에 영향이 가지 않는 선에서 장비할 수 있었다. 사실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마법도구이니까 그거로도 충분한 셈이었다.

그래도 이걸 낀 것과 끼지 않은 것의 차이는 컸다. 10kg도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 몸에 10kg씩이나 짊어지고 다니는 건 충분히 지치는 일이었다.


“어차피 오늘은 이걸로 끝이니까 올 때까지 기다릴까...”

그렇게 말했을 때 에네스타가 말했다.

“흠... 그거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겠구려. 드래곤의 반려, 잠시 서주게나.”

“응?”


에네스타의 말에 몸을 일으키자, 쉬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툭, 투툭...

“자, 이걸로 됐군.  어떤가?”


뭔가 하는 것도 보지 못했는데, 내 양 팔과 다리, 그리고 허리에 달려있던 추가 힘없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떨어진 추들이 하나같이 예리하게 베여나간 흔적이 있다는 것과, 어느  꺼내들었는지 모를 단검을 에네스타가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이었다.

매번 수업에 앞서서 가볍게 하던 대련 때마다 에네스타가 얼마나 봐주면서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저런 속도로 움직인다면 나는 아마 맞는 것조차 알지도 못한 채 두들겨 맞을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나는 추가 떨어져나간 손목을 빙글빙글 돌리며 물었다.

“근데 이거 고장 낸  아니지?”


“아.”

아?

내 말에 비질땀을 흘리며 고개를 돌리는 에네스타가 보였다. 나는 발밑에서 초라하게 나뒹굴고 있는 추를 집어들었다.


겉보기에는  몸에 고정하기 위한 띠부분만이 잘려나가 있을 뿐, 별로 문제는 없어보였다. 그래도 마법도구에 대한 것은 나도, 그리고 투기를 사용하는 검주인 에네스타도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점점 더 흘리는 비질땀이 늘어나고 있는 에네스타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만약 고장 났으면 내가 그런 거라고 해둘게.”

“...고맙네, 드래곤의 반려.”

역시 이 아줌마는 어딘가에 정신을 놓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걸로 에네스타에게 빚을 지게 했다. 내일 있을 수업은  쉬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땅에 떨어져 있는 추들을 주섬주섬 주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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