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30화
그리고 그 단검을 던진 장본인이 보였다. 에네스타, 요정향의 검주이자 엘프. 하얗게 색이 바랜 머리카락의 아름다운 미녀였다. 그런 에네스타는 방금 전 나에게 칼을 던진 사람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점점 반응이 빨라지시는구려. 가르치는 보람이 있어 다행이외다.”
분명 칭찬이었지만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 건 왜일까.
“선생님이 워낙 거칠어서 말이지. 오늘도 잘 부탁할게. 그러니까 살살 좀 해줘.”
“드래곤의 반려께는 미안한 마음뿐이나, 상황이 여의치가 않아서 말이네. 그러니 내가 하는 것이 살살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드래곤의 반려께서 실력을 길러주게나.”
오늘의 제 2수업. 검술 수업의 시작이었다. 나는 나무에 꽂혀 들어갔던 단검을 뽑아냈다.
쑤욱!
워낙 날이 날카롭게 벼려져서인지 단검은 내 가냘픈 팔뚝의 힘으로도 손쉽게 뽑혀 나왔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런걸 나한테 던진거였다. 맞아도 멀쩡하다는 건 알지만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오늘은 기필코, 적어도 한방은 먹여 줄 테다. 단검을 움켜쥐고 굳게 다짐했다.
그런 나를 보고서, 마치 손자가 재롱부리는 것을 보는 할머니처럼, 에네스타가 미소 지었다. 누가보기에는 엄청 상냥한 줄 알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저 미소에 속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
“그럼 수업, 시작하겠네.”
“잘 부탁할게, 검주 에네스타.”
내 말에 에네스타, 하얗게 색이 바랜 머리카락을 한 엘프가 입 꼬리를 들어 올리며 미소 지었다.
“아아, 이번에는 엉덩이를 맞아도 울지 말길 바라겠네.”
“운적 없거든?!”
그렇게 반박했다가, 곧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에네스타가 내게 단검을 던진 의미는, 즉 지금부터 수업시작이라는 것이었다.
방금 말로만 수업을 시작했다는 건 단지 시간을 끄는 거에 불과했다.
내가 곧장 취해야할 행동은 괜한 도발에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거였다.
슈우욱!
그런 내 눈에 저 멀리서부터 날아오는 검이 보였다.
미친 아줌마 같으니라고.
대체 이 짓을 하려고 얼마나 멀리서 저걸 집어던진 거야.
이미 진작 저 여자의 머리가 살짝 이상하다는 건 알았지만 오늘은 한층 더 심각하게 이상했다.
어째서 항상 들고 다니던 검이 안보이나 했더니 저러려고 그런 거였다.
에네스타가 이곳에 오고, 나에게 말을 걸고, 내가 거기에 깜빡 넘어가서 시간을 끄는 동안, 멀리서 저격하듯이 쏘아 던져 보냈을 검이 마침내 여기까지 날아온 것이다.
나는 내 몸에 무슨 자석이라도 있는 것처럼 곧장 내게로 날아드는 에네스타의 검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쉬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내 머리 바로 위로 검이 지나쳐가는 것이 느껴졌다.
“반응이 조금 늦었구려. 좀 더 빠르게, 그리고 상황을 판단하는 눈을 기르게나.”
그리고 고개를 숙인 내게 보인 것은 내 발치에서 쭈그려 앉은 채로 그렇게 말하는 에네스타의 얼굴이었다.
퉁!
그대로 얼굴을 손바닥으로 얻어맞고 뒤로 날아갔다.
아프지는 않았다. 에네스타가 여태껏 내게 했던 것들과 비교해보면 이번건 힘을 실기는커녕, 가볍게 날린 잽에 불과했다. 그런 공격이라면 내 능력으로도 충분히 상쇄됐다.
하지만 그걸로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지금 내가 상대해야할 에네스타는 그만큼 괴물 같은 존재였다.
그녀는 검주. 검의 주인.
전사로서, 기사로서, 검사로서.
검을 다루는 자로서는 최고반열에 이른 자. 그가 바로 에네스타였다. 내가 보기에는 하나같이 일당백의 괴물로만 보이는 이 요정향에서도 유일한, 세계에서 100명이 채 되지 않는 초인.
그리고 엘프로서도 나이가 많은 편인 300살이 넘은 할, 아니 아줌마였다.
“자, 공중에서 뜬 상태에서도 몸을 멈추면 쓰나. 팔을 움직이고, 다리를 움직이게. 근육을 움직여. 공중에서라도 움직여보게나.”
“말 같잖은 소리를 하고 있...!”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대답했다가, 내게 말을 건 에네스타가 내 바로 옆에, 날아가고 있던 내 옆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게 불가능하면 더 맞을 뿐이네만.”
퍼억!
그렇게 말한 에네스타가 이번에는 공중에서 날아가고 있던 나를 발뒤꿈치로 내리찍었다. 대체 날린 사람이 도리어 날아간 사람을 쫓아와서 어떻게 발로 내리찍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게 가능한 게 저 미친 아줌마였다.
땅에 처박히기 전에, 나는 에네스타의 말 같잖은 조언을 따라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게 말 같잖은 소리만은 아니었다는 걸 몸소 깨달았다. 나는 공중에서 데구르르 굴러서 땅 위에 착지했다.
오늘만 대체 몇 번째 구르는 건지 모르겠다. 이번건 공중 돌기였지만.
“제법이구려, 하지만 좀 더 날렵하게 움직이게나, 드래곤의 반려.”
그리고 그런 나에게서 곧장, 날아들던 검을 공중에서 잡은 에네스타가 검을 휘둘러왔다.
학대다. 이건 검술 수업을 빙자한 학대였다.
“주인님, 단검을.”
그런 내게, 멀리서 말하는 에루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곧장 용케도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휘둘렀다.
팔이, 손이, 그동안 두들겨 맞던 근육이 이순간이라는 듯이 움직여줬다.
나흘 만에 E랭크였던 라이어스 제국 검술이 C랭크로 진화한 빛이, 여기서 발했다.
카가가각!
불꽃을 튀기며 에네스타의 검과 내가 들고 있던 단검이 부딪혔다.
“훌륭하네. 그럼 다음은?”
“다음은 이거지!”
나는 있는 힘껏 에네스타의 다리를 후렸다.
“잘했네. 그리고 다음은?”
또?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내 회심의 다리후리기를 살짝, 줄넘기하듯 뛰어서 피한 에네스타가 그대로 축구공을 차듯이 내 얼굴을 걷어차려는 것이 보였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기능 ‘즉각반응’을 습득하셨습니다.]
후욱!
귓가에 들려오는 알림과 동시에 나는 눈앞에 날아드는 에네스타의 발을, 팔로 막으며 외쳤다.
“팔찌여, 나의 몸을 보호하라!”
투쾅!
그리고 그것이 실수였다는 걸 깨달았다.
에네스타의 공격은 나에게 맞는 순간 사라진다. 그 어마어마할 운동능력이고 자시고 상관없이 아예 없었던 것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방패는, 호신의 팔찌로 만들어낸 방패는 달랐다. 방패는 어디까지나 이 세계의 법칙 아래에 존재하는 물건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능력과는 무관한 존재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랬다.
뻐엉, 하고 방패 째로 걷어차인 나는 땅에 물수제비마냥 몇 번이나 튕기며 날아갔다.
“이크!”
그런 나를 보고서 놀란 얼굴로 달려오는 에네스타가 보였다.
그래, 보였다.
나는 다시 한 번, 땅에 처박히고 튕겨 올라가려는 순간 몸을 비틀었다.
뿌드득, 하고 내 몸을 한손으로 지탱했던 팔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지만 머리가 어떻게 된 건지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기능 ‘통증완화’를 습득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랬구나?
귓가에 들려오는 알림에 그 이유를 알아냈다. 그렇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그대로 몸을 일으키고, 내게 달려오던 에네스타에게 주먹을 날렸다.
내게 달려오던 에네스타는 주먹을 날리는 나를 보고서 한순간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손자가 처음으로 걸음마를 본 할머니처럼 웃었다.
“그건 속임수였던 건가? 훌륭한 계책이구려!”
“아니, 진짜로 날아간 건데?!”
나도 생각도 못했던 우연의 결과이거든? 그러니까 우연이라도 좋으니까 제발 좀 맞아라!
“진심으로, 조금 아까웠네. 아, 그래도 좋았으니 칭찬은 해주겠네만.”
그리고 그런 내 주먹을 가볍게 피한 에네스타가, 그대로 품에 파고들어서 팔꿈치로 내 턱을 쳐올리고, 그대로 주먹으로 내 목을 찌르고, 다음은 들고 있던 검의 손잡이로 내 옆구리롤 찍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삼연타에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내가 날아가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내 발등을 발로 꾹 눌러 밟고 있던 에네스타 때문이었다.
“자, 이번에는 어떤 재치로 여길 벗어나겠나? 드래곤의 반려.”
그리고 질문. 새삼스럽지만, 이건 역시 수업을 빙자한 학대였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있다가는 반항도 못한 채 그 지옥 같은 수행을 겪어야했다. 나는 저만치 멀리 떨어진 곳을 가리키며 외쳤다.
“앗! 루시아, 여긴 왜 왔어?”
“그런 걸로 속을 리가 있나...”
갑작스런 내 외침에 에네스타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렇지? 그럼 이건?!”
그리고 나는 에네스타에게 얻어맞는 와중에 손에 쥐었던 모래를 뿌렸다.
“읏?!”
“이건 몰랐겠지! 에네스타!”
의기양양하게 외치며 밟혀있던 발을 뒤로 빼려고 움직였다. 우선 거리를 벌리고, 시간을 벌면 어떻게든 될 거다. 그 어떻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당장은 여기서 벗어나는 게 중요했다.
움찔, 하고 용을 쓰며 다리를 뒤로 빼려했던 내 다리는 쇠못에 박힌 것처럼 요지부동이었다.
“...으응?”
“...과연, 그토록 태나게 속임수를 쓴 이유는 도리어 내게서 시선을 고정시키기 위함이었구려. 훌륭한 계책이네.”
그렇게 말하며, 모래투성이가 된 얼굴로, 에네스타는 웃었다.
계획은 완벽했다. 그랬다고 생각하고 싶다. 실패한 이유는 단지 내가 에네스타에게 밟힌 발을 아무리 용을 써도 못 빼낼 만큼 허약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실패는 실패. 자, 그럼 오늘도...”
에네스타의 입이 채 말을 끝마치기 전에 내가 애원했다.
“그, 그만둬! 정말로 그 이상은 이제 무리라고. 못 버틴다고!”
“안타깝게도, 드래곤의 반려를 봐주면 혼쭐이 나는 것은 나라서 말이네.”
정말로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에네스타는 말했다.
“그러니, 오늘은 어제보다 추의 무게를 두 배로 늘리겠네. 그리고 수행의 강도도. 어제가 라이어스 제국 검술을 1초식부터 21초식까지, 1초식에 200회씩 반복이었나? 그럼 오늘부터는 그 두 배. 400회씩이네.”
“으아아아아아아아!”
나는 그대로 땅을 짚고 좌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