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7화 〉27화 (27/370)



〈 27화 〉27화

“저기... 에루나?”

“네, 주인님. 무슨 일이십니까?”


카에네스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방은 천공성에 마련되어있는 내 방과 비교하면 확실히 작았다. 아니, 애당초 천공성에 있는 방과 비교하면 대부분의 방이 작을 수밖에 없겠지만. 지금  방도 충분히 넓고 훌륭한 편이었다. 이름도 모를 식물이나, 장식품 같은 것들이 꽤 여럿 보이기는 했지만 그건 뭐 문화적 차이나 종족적 차이로 넘어가면 그만이었다.

뭘, 이런 건 예전에 여행하고 다녔을  즐비하게 보고 다녔던 것이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이거지.

나는 여전히 나를 안은 채 서있는 에루나를 바라봤다.


정녕 무슨 일인지 몰라서 묻느냐고 바라봤다. 무슨 일이냐면 에루나가 방에 온 뒤에도 여전히 나를 공주님 안듯이 안고 있다는 것이 무슨 일이었다.


“...괜찮으면 좀 내려주지 않을래?”

“실례, 죄송합니다. 지금은 무리입니다. 주인님.”

민망함을 무릅쓰고서 그렇게 말해봤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 너무했다. 주인님이라고 말해놓고서 하는 짓은 완전 상전이었다. 일단 보는 눈이라고는 에루나뿐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역시 이건 좀 아닌  같았다. 에루나 눈은 눈이 아니냐고. 그것보다 내 남자로서의 무언가가 무너지는 기분이고.


“아니,  상태면 에루나도 힘들 테고.”

“걱정 말아주시길. 주인님께서 지금보다 세배는 무거워지시더라도 가볍게 들어 올릴 수 있으니 말입니다.”


너 내가 요즘 몸무게 늘어나는 거 걱정하는  알고 하는 말이지? 맞지? 심증은 있지만 증거가 없는 에루나의 말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기를 잠시, 나는 말했다.

“...게다가  허리도 조금 아파오는  같고.”


“나 이곳에서 마력을 받쳐 바라건대,  손에 닿은 자에게 자비의 손길이 닿기를. 치유!”

“...아니, 회복 마법 같은 거 필요 없으니까.”


번쩍하고 허리 부근에 닿아있던 에루나의 손에서 빛이 뿜어지더니 자세가 자세인지라 살짝 불편했던 허리가 말끔하게 괜찮아졌지만 그건 다른 문제였다. 지금 중요한건 내가  자세로 있다는  중요한 거지 그깟 허리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물론 허리도 중요하기는 하다만.

“그럼 자장가라도 불러드립니까?”

이제 알겠다. 아니, 사실 이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의심이 확신으로 변했다. 에루나를 빤히 바라보자, 그녀의 감정이 스며들어왔다.


걱정과 경계, 그리고 슬픔이었다.


걱정은 나를 걱정하는 것일 것이다. 의미는  수 없었지만 에루나가 나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경계는 모르겠다. 감이 잡히지 않았다. 더군다나 슬픔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단지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알겠다.


“...자장가는 됐고, 이야기나 해주라.”

적어도 에루나가 나에게 쪽팔림을 주기 위해 이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러는 것이 나를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것도 이해했다. 무엇을 경계하고, 무엇을 슬퍼하는지는 몰라도 그것만큼은 확신했다.

그러니까 나는 얌전히 에루나의 품에 안겨있기로 했다.


“이야기라... 어떤 이야기를 해드리면 좋습니까?”


“글쎄다... 아, 최근에 루시아가 바빴던 이유. 혹시 알고 있어?”


일주일동안이나 루시아를 보지 못했던 이유, 사실 궁금하기는 했다. 무슨 일 때문에 그토록 바빴는지 말이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응, 이러고만 있으니까 심심하기도 하고.”


“주인님의 궁금한 바를 해결해주는 것도 시종으로써의 의무겠지요. 알겠습니다. 사실 루시아 아가씨께서는 비밀로 해달라고 하셨습니다만...”

“...으응? 그렇게까지 궁금한  아닌데.”

에루나의 말에 뭔가 불안해졌다. 씨익, 하고 에루나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보자 그 불안감이 두배로 증가했다.


“하지만 주인님께서 그토록 원하신다면 시종이 된 도리로써 무시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알겠습니다. 저 에루나 투아레, 당신의 충성스러운 시종으로써 모든 것을 말해드리겠습니다.”

“저기, 에루나? 그렇게 말하기 힘든 거면 말해주지 않아도 되는데.”


“사실은...”


에루나? 사실  말 들을 생각 없는 거 맞지?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아.”


나는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그렇게 중얼거렸다. 에루나에게서 루시아가 최근 일주일동안 했던 일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루시아가 나에게 말했던 나를 이해하기 위해 했다는 ‘노력’이 어떤 의미였는지 잘 알게 됐다. 자세한건 떠올리기 싫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여러모로 루시아가 ‘노력’했다는 건 알겠다.

그런 나를 보던 에루나가 중얼거렸다.

“...이제 끝났군요.”

“응, 끝났지. 나중에 루시아 얼굴은 대체 어떻게 봐야하는 거야?”

“그 문제는 주인님께서 해결하실 문제겠지요. 조언을 하자면 어서 빨리 침대에 데려가시는  어떠신지? 주인님도 루시아 아가씨의 노력의 성과를 아실 수 있을 테니 완벽하지 않습니까?”

“그거 참 고마운 조언이구나.”


“과분한 칭찬입니다.”

칭찬 아니거든, 그렇게 중얼거리던 나를 에루나가 조심스레 내려주었다.

“응? 이제 끝난 거야?”


“방금 끝났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 끝났다는  날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게 끝났다는 이야기였구나.

“에루나, 내가 루시아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건 비밀로 해줘.”


“알겠습니다.”


“절대로 비밀이니까.”


“제가 주인님의 말을 거스를 리가 없지 않습니까? 안심하시길.”


전혀 안심이  되니까 이러는 거라고는 말 못하겠다. 나는 거듭해서 에루나에게 다짐을 받고는 방 한 가운데에 마련돼있는 침대에 걸쳐 앉았다. 안 그래도 피곤했는데 더더욱 피곤해졌다.

그런 나를 살펴본 에루나가 말했다.

“여느 때처럼 간식을 준비할까요?”

에루나가 말하는 간식이 언제나 가져와주던 만드라고라 쿠키라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방금 이야기도 그렇고 오랜만에 잠이나 자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까먹지 않을까, 그런 심정으로.

그러다 문득, 갑작스레 루시아를 만나는 바람에 하다 말았던 것이 떠올랐다.


사실 별로 펼쳐보고 싶지도 않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차피 봐야되긴 하니까... 상태창.”

그렇게 중얼거리자 눈앞에 내 상태창이 떠올랐다.


「상태창」
「이름 : 이지경」
「칭호 : 차원을 넘은 자, 단죄하는 자, 벌레만도 못한 자」
「성별 : 남성」
「나이 : 27세」
「직업 : - 」
「종족 : 인간」
「근력 : 41(D)」
「민첩 : 52(C)」
「체력 : 46(C)」
「지력 : 80(B)」
「마력 : 0(F)」
「매력 : 30(D)」
「행운 : 93(A)」


「생명력 : 460/460」
「마나력 : 0/0」
「지구력 : 24%」

「고유 특성 : 차원을 넘은 자(SS), 개변자(S), 만인지상(S)」
「보유 특성 : 황금률(A), 예속 각인 : 에루나 투아레(A), 독서가(B), 소환사(B), 검사(B), 요리사(B), 약초사(B), 징벌자(B), 권선징악(B)」
「보유 기능 : 조화(C), 단죄(C), 독서(D), 소환 : 에루나 투아레(E), 라이어스 제국 검술(E), 요리(F), 약초 감정(F), 물약 제조(F), 골렘 작성(F), 고대 문자 해석(F), 회계(F), 감지(F), 함정 설치(F), 조련술(F), 사격술(F), 천문학(F), 마법 이론(F), 야금술(F), 연금술(F), 마비내성(F)」


「상태 :피로 (이제 루시아 얼굴은 어떻게 봐야하는 거지...)」


상태창에 떠오른 내 심정은 무시하고서, 나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살펴봤다.

“...우선 조화부터 볼까.”


본래 내가 갖고 있던 기능인 안정이 새롭게 얻었던 기능 냉정과 합쳐져서 만들어진 기능이었다. 이걸로 기능이라는 것이 여러 개가 같이 발동되는 독서의 경우 말고도 합쳐져서 아예 별개의 기능으로 바뀌기도 한다는 걸  수 있게  기념비적인 기능이었다.


「이름 : 조화」
「등급 : 수련(C)」
「효과 : 정신계열의 상태이상에 강한 저항능력을 갖습니다. 또한 정신계열의 상태이상으로부터 벗어날 확률이 대폭 증가합니다. 연속해서 같은 종류의 상태이상에 걸릴 경우 일정 시간동안 해당 상태이상의 면역효과를 갖습니다.」
「설명 : 정신계열의 상태이상으로부터 60%만큼 저항합니다. 적용된 정신계열의 상태이상의 효과가 절반만큼 감소하며 즉시 상태이상에서 벗어날 확률이 10%만큼 증가합니다. 상태이상의 지속시간이 60%만큼 감소합니다. 연속해서 같은 상태이상에 걸리지 않습니다.」

조화의 설명을 읽어보니 내가 갖고 있던 안정의 상위호환이라고 말해도 좋을  같았다. 아니, 실제로도 그랬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해도 두 배 가까이 강해졌다. 그거 말고도 상태이상에서 즉시 벗어나거나 같은 종류의 상태이상이라면 면역효과까지 생기는 효과까지 추가되어 있었다.


“엄청 좋은데...”


사실 물리공격도 무섭지만 정신공격이나 각종 상태이상으로 때리는 공격들도 무서운 법이었다. 그런데 나는 60%의 확률이기는 했지만 그럴 걱정을 덜을 수 있으니 좋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말이 60%지, 내성과 관련된 능력들이 60%나 된다는 건 게임 속 능력이라고 쳐도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근데 이건 게임이 아니라 실존하는 세계였다. 실존하는 세계에 게임과 같은 능력을 갖게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어마어마함의 수치가 상승하는 것이 느껴졌다.

“다음은... 단죄.”

여전히 꺼림칙했지만, 나는 굳게 마음먹고서 새롭게 얻은 단죄라는 기능을 살펴봤다.


「이름 : 단죄」
「등급 : 수련(C)」
「효과 : 악성향의 대상에게 추가 피해를 가합니다. 이때 추가된 피해는 쉽게 치유되지 않습니다. 악성향의 대상에게 받는 피해를 일부 감소시킵니다. 이후 받은 피해의 일부를 되돌려줍니다. 극히 적은 확률로 악성향의 대상에게 가하는 피해가 극대해집니다. 극히 적은 확률로 악성향의 대상에게 받은 모든 피해를 무시합니다.」
「설명 : 악성향의 대상에게 가한 피해의 40%만큼 추가적인 피해를 입힙니다. 이때 추가된 피해는 자연적인 치유로 회복되지 않습니다. 악성향에게 받는 피해를 40%만큼 감소시킵니다. 이후 받은 피해의 20%만큼을 대상에게 되돌려줍니다. 1%확률로 악성향의 대상에게 가하는 피해가 최대 20배까지 증가합니다. 이때 입은 피해는 자연적인 치유로 회복되지 않습니다. 1%확률로 악성향 대상이 가한 모든 피해를 무시합니다.」

“사긴데?”

단순하게 알아볼 수 있는 효과만 해도 사기였다. 악성향이라는 조건을 달고 있지만, 말하자면 내가 때리면 더 아프게 때리고 내가 맞으면  아프게 맞는다는 효과부터가 사기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극히 적은 확률, 100번 중에 1번꼴이기는 했지만 평소보다 20배나 가까운 피해를 줄  있다거나 아예 피해를 입지 않는 효과까지 있으니 사기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이런 능력을 얻게 된 과정은 꺼림칙했지만, 얻게 된 능력만큼은 욕할  없을 만큼 좋았다. 애당초 배율이 이상했다. 40%라니, 두 대를 치면 세대를 때린 거나 마찬가지고 두 대를 맞으면 한 대는  맞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내가 하던 게임 중에 이런 스킬을 갖고 있는 녀석이 적으로 나온다면 밸런스 좆망겜, 하고 집어던졌을 거다. 아군이였어도 게임이 너무 쉽다고 집어던졌겠지. 금방 다시 했겠지만. 아무튼 그 정도로 강한 능력이었다.

문제는 사용자가 나라는 거였다.


만약 저 능력을 내가 아니라 루시아나, 에루나가 갖고 있었더라면 엄청 강했을 게 분명했다. 근데 그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게 나라서 문제였다.

내가 게임적인 이야기로 공격력이 10이 있다고 치자, 거기서 4할을 더한다면 14였다. 대단한 능력인건 맞았지만 공격력이 1000, 10000이 넘을 에루나나 루시아가 갖고 있었더라면 추가치로만 400, 4000이었다. 이렇게 보니까 참담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주인님,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상태창을 살펴보고 있던 내게 에루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탁?”

왠일, 이라기보다는 에루나로부터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녀가 내게 부탁할만한 일은, 적어도 내 머리로는 떠오르지 않았다. 에루나에게 불가능한 일을 내가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그래도 내가 도와줄  있는 일이라면 도와줄 생각이 있었다.

이렇게 보여도 자취생활만 수년이었다. 달걀을 까든 채소를 다듬든 간단한 일이라면 얼추 할  있을 거다. 여태껏 나를 도와줬던 에루나에게 이런 일로 갚을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지만.

하지만 에루나가 꺼낸 말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저도, 그 정보창이라는 걸 봐주시지 않겠습니까?”


“...응?”


“죄송합니다. 실언이었습니다. 잊어주시길.”

“아니, 그보다... 어디서 들었어?”

나는 아직 정보창에 대해서 에루나에게 알려준 기억이 없었다. 반대로 누군가에게 정보창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은 루시아의 앞에서뿐이었다.

 말에 고개를 숙이며 에루나가 대답했다.

“어젯밤, 혹시 모를 일이 있을까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듣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아니, 신경쓰지 마. 나도 언젠가 말해줄 생각이었으니까.”

애당초 이미 루시아에게 밝힌 비밀이었다. 밝혀진 비밀이라는건 이미 비밀이 아니란 이야기였다. 게다가 에루나는 루시아를 비롯한 다른 이들과는 경우가 달랐다.

굳이 정보창을 보지 않더라도 나는 에루나의 마음을 읽는 것이 가능했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 나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의 정보창을 보지 못했던 이유, 실은 나를 싫어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것을 두려워해서 정보창을 살펴보지 못했던 이유가 에루나에게는 없었다.


“그렇다면...”

어째선지 기대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에루나에게서 시선을 피하고서 말했다.

“응, 나도 궁금하기도 했으니까... 정보창.”

그렇게 말하자 눈앞에 에루나의 정보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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