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화 〉25화 [2차 통곡의 벽] (25/370)



〈 25화 〉25화 [2차 통곡의 벽]

잠시 후 카에네스가 나를 쫓아 노예사냥꾼들을 수용하고 있던 감옥에서 나왔다. 그런 그에게서 비릿한 피비린내가 나는 것을 나는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내가 그렇게 하라고 말한 것이었다. 그가 내게 말했는데도. 그들을 해방시키겠노라고, 내가 한 마디, 단지  마디만 말했더라면 그들을 풀어주라고 말했다면 그는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가 그것을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는 내 뜻을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뜻대로 하라고, 너희들의 방식대로 처리하라고 말했다.

 방식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이미 알고,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말이다. 내가 죽인 것이다, 그렇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죽인 것이 아니라고 말할 생각도 없었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에 손이 떨려왔다.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떨림이 멎을 때까지.


그리고 그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귓가에 띠링, 띠링하고.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띠링~

[황금률! 선한 자에게는 보상을 악한 자에게는 응징을!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에릭’의 악행을 단절시켰습니다!]

띠링~

[황금률! 선한 자에게는 보상을 악한 자에게는 응징을!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토마스’의 악행을 단절시켰습니다!]

띠링~

[황금률! 선한 자에게는 보상을 악한 자에게는 응징을!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마르쿠스’의 악행을 단절시켰습니다!]


띠링~

쉼 없이, 띠링띠링하고, 귓가에 울려왔다. 누군가의, 또 다른 누군가의 이름을 내게 알려가며 알림은 끊임없이 내 귀를 두드려댔다.

정확히 21번.  귓가에 들려온 이름의 숫자였다.  의미를, 내가 눈치 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21명. 나로 인해 죽은 노예사냥꾼의 숫자일 것이다. 나의 한마디에 목숨을 달리한 이들의 숫자일 것이다.

후회하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들을 죽게 내버려둔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의 이름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귀에 새겨진 그 이름이 도저히 벗어나지 않았다.

띠링~

그런 나의 귓가에, 소리를 덧씌우듯이 새로운 알림이 들려왔다.


[황금률의 질서는 오직 그가 쌓아온 업보에 의해 결정됩니다! 선과 악의 기준, 황금률의 천칭을 만물에게 평등합니다!]

띠링~

[인간족 107명. 요정족 31명. 수인족 22명. 무의미하게 생명을 잃은 영혼이 기울어지던 천칭을 붙잡습니다!]

“......?”

귓가에 들려오는 그 알림소리에 발걸음이 멈춰 섰다. 그런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에루나가 보였지만, 그것보다 그 알림을 시작으로, 다시 쉬지 않고 울리는 알림이 귓가를, 머리를 어지럽혔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특성 ‘징벌자’를 습득하셨습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기능 ‘징벌’를 습득하셨습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기능 ‘냉정’을 습득하셨습니다. 동위기능 ‘안정’과 비교합니다. 기능 ‘냉정’이 보다 높은 숙련치를 지닌 기능 ‘안정’에 흡수됩니다!]


띠링~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기능 ‘안정’이 상위기능 ‘조화’로 승급했습니다! 기능 ‘안정’이 상위기능 ‘조화’와 연동됩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특성 ‘권선징악’을 습득하셨습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기능 ‘징악’을 습득하셨습니다.]


띠링~


[기능 ‘징벌’과 기능 ‘징악’을 습득하셨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두 기능의 상위기능 ‘단죄’를 습득하셨습니다. 기능 ‘징벌’과 기능 ‘징악’이 상위기능 ‘단죄’와 연동됩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칭호 ‘단죄하는 자’를 얻었습니다.]


마침내 귓가에 들려오던 알림이 끝마쳐지자, 나는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상태창.”


「상태창」
「이름 : 이지경」
「칭호 : 차원을 넘은 자, 단죄하는 자, 벌레만도 못한 자」
「성별 : 남성」
「나이 : 27세」
「직업 :  - 」
「종족 : 인간」
「근력 : 41(D)」
「민첩 : 52(C)」
「체력 : 46(C)」
「지력 : 80(B)」
「마력 : 0(F)」
「매력 : 30(D)」
「행운 : 93(A)」

「생명력 : 460/460」
「마나력 : 0/0」
「지구력 : 32%」

「고유 특성 : 차원을 넘은 자(SS), 개변자(S), 만인지상(S)」
「보유 특성 : 황금률(A), 예속 각인 : 에루나 투아레(A), 독서가(B), 소환사(B), 검사(B), 요리사(B), 약초사(B), 징벌자(B), 권선징악(B)」
「보유 기능 : 조화(C), 단죄(C), 독서(D), 소환 : 에루나 투아레(E), 라이어스 제국 검술(E), 요리(F), 약초 감정(F), 물약 제조(F), 골렘 작성(F), 고대 문자 해석(F), 회계(F), 감지(F), 함정 설치(F), 조련술(F), 사격술(F), 천문학(F), 마법 이론(F), 야금술(F), 연금술(F), 마비내성(F)」


「상태 :혼란 (징벌? 권선징악? 내가 한 짓이 단죄라고...)」



나는 눈앞에 떠오른 상태창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징벌자. 죄를 지은 자에게 벌을 내리는 자.


권선징악. 선을 권하고 악을 벌하는 것.


단죄. 죄를 지은 자에게 내려지는 벌.

하나같이,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의 특성과 기능들이었다. 여태껏, 내가 얻게 된  능력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고 있었지만 지금만큼  의심이 강해진 적은 없었다.

나는 이런 것을 받을 자격도, 받을 만한 행동도 한 적이 없으니까.

상태창에 떠올라있는 징벌자라는 이름의 특성을 바라봤다. 이전에도 그랬듯이. 그러자 눈앞에 징벌자라는 특성의 설명이 떠올랐다.


「이름 : 징벌자」
「등급 : 천재(B)」
「효과 : 죄를 지은 자에게 합당한 벌을 내리는 것을 도와준다. 대상의 거짓말을 알아차리거나 표정을 꾸미는 등의 속임수를 낮은 확률로 간파할 수 있다. 죄를 지은 자에게 위압감을 준다.」
「설명 : 죄를 지은 자에게 벌을 내리는 자에게 주어지는 특성이다. 죄인에게 벌을 내리거나 거짓으로 죄를 속이려는 자를 간파한 적이 있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며 단지 죄를 벌하는 것만으로는 습득이 불가능하다. 공명정대한 법관  수많은 죄인의 죄를 밝힌 자들 중 일부가 습득하고는 한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눈앞에 떠올라있는 설명을 읽어 내렸지만 역시나 이해할 수 없었다. 특성의 설명대로라면 공명정대한 법관이나, 그에 준하는 자만이 이 특성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자격같은 것은 없었다.


다시, 이번에는 권선징악이였다.

「이름 : 권선징악」
「등급 : 천재(B)」
「효과 : 선을 권하고 악을 징벌할 수 있게 도와준다. 낮은 확률로 악해지기 전의 대상을 발견할  있다. 이때 대상을 설득하거나 깨우치게 할 확률이 증가한다. 낮은 확률로 악을 교화시킬 수 있다. 극히 낮은 확률로 악의 행동을 강제할 수 있다.」
「설명 : 선을 권하고 악을 징벌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특성이다. 자신의 죄를 스스로 뉘우치게 만들게 한 적이 있거나 악을 행하려는 자의 행동을 사전에 막아 이를 교정한 적이 있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극히 일부의 사람들이 습득하고는 한다.」


이쪽은 징벌자보다 더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얻었다고 하기엔 말이 되지 않는 것 투성이였다.


나는 징벌자라느니, 권선징악이라느니, 그런 거창한 이야기를 들을만한 짓은 단언컨대 없었다. 내가  짓은 그저 눈을 감았을 뿐이었다. 귀를 막고서, 보지 않은 것으로, 듣지 않은 것으로 했을 뿐이었다.

“...이지경님?”


단죄, 그런 이름을 하고 있는 기능을, 마지막으로 펼쳐보려고 하던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서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보자, 루시아가 거기에 있었다.


“에루나. 이지경님께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 저에게 말해주겠어요?”

그리고 나를  루시아가 여태껏  적이 없는 얼굴로, 화가 난 얼굴로 에루나에게 그렇게 묻는 것이 보였다.





“일단 사정은 알겠어요.”


우선 장소를 옮기죠. 그렇게 말한 루시아가 나를 잡아끌고서, 처음 내가 요정향에 소환됐던 공동으로 향했다. 나는 그런 루시아에게 붙들린채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끌려왔고. 그리고 거기에서 이뤄진 것은 루시아의 일방적인 질문과 에루나와 카에네스의 대답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이어진 질답의 끝에 루시아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내게 물었다.


“이지경님은 살인을 저지른 것이 처음인가요?”

살인.

 말에 저릿하고 손끝이 떨렸다. 그런 나를 관찰하듯이 바라보는 루시아의 모습이 보였다. 이윽고, 루시아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질문을 바꾸도록 할게요. 이지경님은 무언가의 생명을 빼앗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신 거군요?”

질문이라고 말하는 루시아의 눈은 마치 확신한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루시아의  대로였다. 무언가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것은 이 세계에서도, 이전의 세계에서도 처음이었다.


“하아...”

낮게 한숨을 내뱉은 루시아가 나에게 말했다.

“혹시 죄책감을 느끼시는 건가요?”


“...아니.”

루시아의 말에 아주 짧은 고민과 함께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죄책감, 솔직히 그렇게 부를만한 감정은 느끼지 않고 있었다. 누군가는 너무한 이야기라고 여길지도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들을 동정하지도, 그들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단지...

“그렇다면 책임감을 느끼시는 거군요.”


루시아는 그렇게 단언했다.

책임감. 루시아가 꺼낸 그 말이 어깨를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꾸욱, 하고 목덜미를 더듬듯이 짓눌러오는 것만 같았다.


‘제발! 제발!!’

남자는 나에게 목숨을 구걸했었다. 그리고 그것을 나는 무시했다.


용서할 수 없어서, 용서하지 못해서 나는 그가 카르네스에게 벌을 받고, 그리고 결국 죽게 될 것을 무시했다.

 책임감.


죄책감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달랐다.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아마, 또 한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나는 그렇게 했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 책임은, 내가 느끼고 감정은 대체 뭘까.

나도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조용히 바라보던 루시아가, 돌연  옆에 서서 창백해진 안색을 하고 있던 카에네스에게 물었다.

“카에네스. 당신이 말했죠? 이지경님의 허락으로, 노예사냥꾼들을 죽였다고?”

“네, 네... 분명 그랬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아뇨.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당신은 ‘명령’에 따른 거잖아요?”

움찔, 하고 루시아의 말에 몸이 떨렸다. 그런 나를 못 본 채하며, 루시아가 말을 잇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에루나, 당신이 직접 그들을 처리하려고 했을 때, 이지경님이 카에네스에게 ‘직접’ 허락을 내리는 모습을 본거고요?”


다시  번 움찔, 마치 부모님에게 야단을 맞는 아이처럼 몸이 떨렸다. 그런 나를 흘끔 쳐다보는 에루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곧 에루나는 루시아의 질문에 대답했다.

“네, 루시아 아가씨.”

“하아...”


또 한 번 루시아의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이걸로  번째였다. 하루 만에 루시아의 첫 한숨소리와 두 번째 한숨소리를 들은 것이었다. 기록으로 남겨도 좋을 것 같았다. 이딴걸 기록할 생각은 없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루시아가 나에게 말했다.

“저는 이지경님이 어째서 이런 것에 책임감을 느끼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아마 이것이 저와 이지경님의 차이... 어쩌면 종족적인 차이일지도 모르겠죠.”


단정 짓듯이 루시아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덜컥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실망했을 것이다. 분명히 나에게 실망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루시아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전에도 말했었죠. 이지경님을 이해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노력할게요.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당신을 이해할 때까지 노력할게요.”

손을 뻗어서, 아까 전부터, 떨리던 손을 루시아가 붙잡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이 느끼는  책임. 저도 짊어져도 될까요?”


“...내가, 바보 같지 않아?”


그런 루시아에게, 더듬거리며 말하자 루시아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바보라... 이지경님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걱정 마세요. 적어도 저는 자신이 한 짓에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는 족속들보다 이지경님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말한 루시아는 나의 손을 꼭, 감싸듯이 쥐었다.


“그리고 이지경님이 이세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착해빠졌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것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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