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18화
"과연... 그렇게 된 거였군요."
내 이야기, 이 세계에 넘어온 것으로 생긴 능력들에 대해서 자초지종 설명하자 루시아는 턱을 괸 채 한참을 생각하던가 싶더니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봤다.
나 자신에 대한 스테이터스, 그러니까 능력치가 보인다는 것과 기능이나 특성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얻은 기술이나 능력을 볼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얻은 능력 중에 잠을 자지 않아도 되게 해주는 것이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아직 사용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능력치와, 생각을 읽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까지.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능력들에 대해서, 전부 말이다.
"확실히 이지경님의 능력은, 저희들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종류의 힘이 아니군요. 아마 차원을 넘어오면서 생겨난 능력이겠죠. 저희들도 대마법으로 다른 차원에서 인간을 소환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으니까요."
그렇게 말한 루시아는 가만히 나를 비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지경님. 그 능력, 정보창을 사용해서 저를 봐주시겠나요?"
"...어? 지금 내 얘기 들은 거 맞지?"
"예, 이지경님이 무엇 때문에 저희들의 정보창을 보지 않으시려고 했는지도, 어느 정도 예상이 갈 정도로 충분히 알아들었어요. 아마 당신이란 남자는 그걸 좋지 않다고 생각하셨겠죠."
어쩌면 이지경님은 인간보다는 드래곤에 어울릴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말하고서는 루시아는 말했다.
"이지경님은... 저희들이 조금 비위를 맞춰 행동한다고, 금세 헬렐레할만큼 쉽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루시아의 그런 말에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다면 무슨 문제가 있나요? 게다가... 만약 저희들의 생각을 읽는다고 하신들. 예를 들어 제가 정말로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있다 치고서. 만약 그것을 이지경님이 제 생각을 읽고서, 알아내신다고 한들 그것을 이지경님은 구해오실 수 있나요? 저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아직 모르는 것 투성이인 이 세계를 뒤져가며?"
"...힘들겠지?"
루시아의 말에 잠깐 생각하고서, 그렇게 말했다. 그런 내 대답은 영 시원치 않았다. 나도 알았기 때문이었다. 힘들겠다, 라고 말하는 것조차 후하게 쳐준 것이라는 걸 말이다.
그리고 그런 내 대답을 들은 루시아는 생긋 웃어 보이면서, 딱 잘라 말했다.
"아뇨. 불가능한 일이랍니다. 이지경님, 드래곤이 이 세상에서 구하지 못할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설령 존재하더라도, 그건 곧 손에 넣을 것들에 불과하죠. 저희들에게는 이 세상의 모든 보화는 겨우 그 정도의 수준에 불과할 뿐이에요. 겨우 그 정도의 수준의, 발에 치일 정도로 넘쳐나는 것으로 저희들의 환심을 사기란 쉽지 않죠. 그게 아니었다면, 저희들은 이미 수십 년 동안 보석을 갖다 바친 종족들의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겠죠?"
확실히 그럴지도 몰랐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먹고 있는 만드라고라 쿠키의 주재료인 만드라고라만 해도 없어서 구하지 못할 영약이었으니까.
그런 것을 내가 먹을 간식의 재료로 사용할 정도의 부자, 아니 부자라는 말로도 부족한 것이 드래곤들이었다. 그런 그녀들에게 선물 같은 것으로 환심을 사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아니,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 나를 보면서 루시아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물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저희들이 좋아하는 행동이나 말로 어떻게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그렇게 말한 루시아가 입가를 가리고는, 나를 바라봤다. 여전히 웃는 얼굴로. 하지만 웃지 않고 있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쩌억, 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세로로 갈라져서, 내가 그 눈동자 안에서 찢긴 채로 비쳐보였다.
"오만하네요. 이지경님. 당신은 상냥한 인간이지만, 드래곤만큼이나 오만한 인간이네요. 이지경님이 저희들의 생각을 읽어내실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나요? 그것이 걱정되셨나요? 염려되셨나요? 우연이네요. 저도, 이지경님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뱀처럼 핥듯이, 루시아의 눈길이 내 얼굴부터, 목, 천천히 내려가서... 심장을 움켜쥐듯이 쓸어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루시아네스 파라모아'의 「용의 분노」의 영향을 받습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상태이상 '공포'에 저항에 성공했습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상태이상 '혼란'에 저항에 성공했습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상태이상 '마비'에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연이어서 들려오는 알림음과 동시에, 손끝부터 시작해서 발끝까지, 온몸이 굳어버린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두려우신가요? 무서우신가요? 몸이 움직이지 않으신가요? 그게 아니라면... 저를 싫어하게 되셨나요?"
짐승, 아니 그보다는 괴물에 가까운 무언가로밖에 보이지 않는 눈으로, 루시아는 나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물었다.
두렵냐고? 그야 두렵다. 어머니가 숨겨놓은 성적표를 들고 와서 눈앞에 보여줬을 때만큼 두려웠다.
무섭냐고? 그래 무섭다. 아버지가 내 컴퓨터를 박살냈을 때처럼 무서웠다.
그리고 저 둘 모두의 공통점은 내가 무언가 실수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어머니는 울었고 아버지는 내 컴퓨터와 내 엉덩일 박살냈다.
나는 루시아가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루시아가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루시아가 저렇게 나를 보게 만든 이유, 내가 저질러버린 실수, 그것을 내가 찾아내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무서웠다.
작은 실수, 그렇게만 생각했던 것이 나중에 어떻게 돌아오는지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실수는 아직 고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실수는 아직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을 말할 때, 실수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움직여.
내 혀야, 움직여라. 내 몸아, 좀 움직여라.
"싫어, 하게, 될 리가... 없잖아."
혀마저 마비가 왔는지 굳어서 움직이지 않는 것을 억지로 씹어내듯이, 이를 악물어가며 한 발음, 한 발음씩 말을 토해냈다.
"이런 걸로, 싫어하게 될 리가, 없잖아."
그랬더라면 진작 싫어하고도 남았다. 동의도 없이 이 세계에 납치하듯이 소환 당했을 때부터, 마법을 사용해서 강제로 내 정신을 조종하려고 했을 때부터, 실험동물처럼 나에게 마법을 사용했을 때부터.
사람이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 사람이 사람을 증오한다는 것. 사람이 사람을 미워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쉽게 일어나는지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도.
그것들이 쿵짝을 맞춰서 새끼를 친 것들이 서로에게 썩 좋지 않은 것들만 낳는다는 것도.
그 날 이후로,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그 날, 내가 미워한 결과 한 소녀가 죽었던 날. 그 날, 나를 미워한 결과 죽고만 소녀가 있었던 날.
내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을 미워하게 되어버린 날.
다시는 그런 일을,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입술을 씹었다. 아팠다. 입술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함께 몸이 굳어있는 것이 조금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참았다. 이 정도 아픈 걸로 움직일 수 있다면 그걸로 좋았다. 그런 나의 귓가에 알림음이 들려왔다.
띠링~
[황금률! 선한 자는 선으로, 악한 자는 악으로! 쌓여온 업보로 인해 플레이어 '이지경'님에게 황금률의 천칭이 미세하게 기울어집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기능 '마비내성'을 습득하셨습니다.]
띠링~
[현재 걸려있는 상태이상 '마비'에 기능 '마비내성'으로 대응합니다. 황금률! 상태이상 '마비'에 저항할 확률을 매우 높아집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상태이상 '마비'에 저항합니다.]
움직인다.
연이은 알림음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는 손과 발. 그리고 혀에 나는 급하게 입을 열었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 말만큼은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나는 말했다.
“내가 널 싫어할 리가 없잖아.”
나는 아직 루시아를 싫어한다고 말하기엔,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내가 루시아에 대해서 아는 거라고는 그녀가 단지 드래곤이라는 종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희생해야만 하는 가련한 소녀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녀가 원하던 것이 아니더라도, 대마법이 소환했을 누군가와 자식을 가져야만 하는, 그런 운명을 가진 가련한 소녀라는 것뿐이었다. 나에게 루시아란, 그런 존재였다.
루시아는 드래곤이었다. 나보다 몇 십, 몇 백배는 더 강할게 분명한, 이 세계의 최강의 생물이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봤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여겼다. 오직 그것만이 중요했다.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이다. 어디까지나 나의 독선이다. 하지만 그럼 뭐 어떤가. 내가 보는 세계가 나의 세계였다. 오직 나만이 나였다. 나의 기준은 나의 것이었다. 내가 루시아라는 드래곤 소녀를 가련하게 여기던, 사랑을 하던, 남이 뭐라고 할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할 뿐이었다.
“루시아네스 파라모아. 내가 널 싫어할 리가 없잖아.”
이 세계에서 이름이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손가락으로 셈할 수 없는 많은 책 중에서, 그런 내용의 책이 있었다.
이 세계에서 이름이란, 그 대상의 존재와 삶, 그리고 그들이 살아갈 미래를 지침하는 이정표와 같은 것이었다. 자식이 그렇게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담아, 부모들이 지어주는 것이 이름이었다.
그리고 루시아의 이름. 그 이름이 가진 의미는 이랬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자신뿐만이 아니라, 모두를 비추어 밝히는 휘광과도 같은 꽃. 광휘의 꽃. 그것이 루시아네스라는 이름이 가진 의미였다.
그런 이름을 지어준 루시아의 부모... 본인이면서도, 동시에 본인이 아닌 그녀의 부모는 루시아가 저런 얼굴을,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루시아가 저런 울상을 짓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지어야하는 것은, 그녀가 내게 보여줬으면 하는 것은, 그 때 보았던 것처럼.
그래, 그 때 보았던 것처럼. 눈이 부실정도로, 아름다웠던 그런 미소뿐이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나의독선이라도, 그것이 나의 고집이라도, 나는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욕심일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내가 루시아를 웃게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자, 그렇다면. 이지경아, 네가 상황이 이지경이 되게 만들었으니까 네가 해결하는 것이 당연한 거겠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어떻게 해야만 좋을까.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평소에 미연시 같은 것을 많이 해뒀으면 좋았을 것을. 그것도 아니면 내가 얻은 능력이 눈앞에 선택지 같은 것이 보이는 것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그런 볼품없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볼품없냐면, 만약 루시아가 정말로 내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거라면 아마 호감도가 감소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볼품없는 생각이었다.
누군가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말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스스로가 선택하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만들어서, 제시해주는 선택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내가, 나만이 선택지를 만들고 나만이 선택해야만 했다.
선택해라, 이지경아. 정답이 아니더라도, 최악의 오답이 아닌 선택을.
적어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나는 입을 열었다.
“루시아, 네 말대로 나는 두려워. 이 세계에 소환되고, 내가 보는 모든 것들이 낯선 것들뿐이었으니까. 처음 보는 옷에, 처음 보는 음식, 처음 보는 것 투성이였으니까. 어떻게 입으면 좋을지 몰라서, 어떻게 먹으면 좋을지 몰라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라서, 나날이 두려워.”
하지만 그것이 내가 너를 싫어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
“네 말대로 나는 무서워. 내가 뭔가 실수는 하지 않을까, 잘 못 되면 어떻게 하지, 에루나나 루시아, 너의 도움이 없으면 내 방의 조명조차도 못 켜는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때마다 무서워.”
하지만 그것도 내가 너를 싫어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너를 싫어하지 않아. 너뿐만이 아니라, 크리샤도, 아르카도, 카르네도, 샤르도, 아냐와 아샤도. 나는 싫어하지 않아.”
겨우 그런 걸로, 누군가를 싫어하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그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겨우 그런 걸로, 누군가를 싫어하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그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너를 싫어하지 않아. 루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