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화 〉13화 (13/370)



〈 13화 〉13화

"그걸 다 먹을 줄은 몰랐는데."

나는 내 앞에 있는 걸 먹기도 벅찼지만, 눈치 챈 순간 식탁 위는 깨끗하게 비워진 접시만이 그득했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지만, 비워진 접시는 결과만을 말할 뿐이었다. 그리고 드래곤들이 엄청난 대식가라는 새로운 지식을 얻은 나는 지금 나 홀로  방에 있었다.


아직 내 방이라고 말하기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말이다. 혼자 있는 이유는 식사를 마치고 나자 자연스레 일단 볼일은 끝난 거지? 하고 그녀들이 자신들의 영지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까 이곳은 그녀들이 생활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오직 마법진과 소환될 누군가, 그러니까 나를 위해 만들어진 장소였던 모양이었다. 그것도 하늘 위에 만들어진, 날아다니는 천공성인 것이다.

지금은 루시아의 영지, 파라모아라는 이름의 땅.  상공을 둥둥 떠다니고 있는 모양이라서 이 넓은 성에 남아있는 것은 나와 루시아뿐이었다.


그렇다면 루시아는 어디에 있는 건가, 거기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도중에 루시아에게도 할 일이 생겨서 결국 나 혼자 이 넓은 방에 남아있게 됐다. 그게  상황이었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편이 지금은 더 편했다. 눈이 돌아갈 만한 미녀와, 그것도 한명도 아니고  팔로도 모자랄 만큼 잔뜩, 주위에 있으면 부담스러워서 죽는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나는 죽는다.

일단 고쳐야겠지, 이거. 이대로라면 1년이 되기도 전에 쓰러져버릴 거다.


"고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고쳐진다면 참 편하겠지만..."


그렇게 편하게 된다면 세상에는 위인들로 가득할 거다. 그리고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은 세상이니까  모양인거고. 그게 아니라면 진즉 지구는 어디 게임 속에서나 나올법한 곳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안을 둘러봤다. 막상 혼자 남게  것까지는 좋았는데 할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에 게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그러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발견했다. 처음 여기 왔을 때는 없었던  같았는데 어느 샌가 대체 어떻게 채워야할지 막막했던 책장 안에 책들이 가득 있었다.

"언제 가져다 놓은 거래."

아니, 가져다 놓을 새가 있었나? 머릿속에 의문이 생겼지만 심심하던 차에 마침 잘됐다 싶어서 책 한 권을 꺼내보았다.

"어디보자, 제목이... 참, 나 여기 글자 읽을 수 있던가?"

읽을 수 있었다. 걱정과는 달리 표지에 적혀져 있는 난생 처음 보는 문자가 술술 읽혔다.

라이어스 제국, 약 600여 년 전에 건국한 제국으로 현존하는 국가 중에서 가장 강성한 국가의 이름. 그 나라의 문자로 적혀져 있는 책이었다.


제목은 '라이어스 제국의 건국과 역사.  바탕이 된 제국검술에 대한 고찰'. 뭔가 복잡해 보이는 제목이었다.

"뭐 시간 때우기로는 좋겠지."


평소에도 이 책의 두어 배는 되는 책도 즐겨 읽었다. 물론 게임 설정집이였으니 이거랑은 다르겠지만.


“어디보자...”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라이어스 제국 검술서'을 읽으셨습니다.]

“엥?”

띠링~


['라이어스 제국 검술'을 정독하시면 기능 '라이어스 제국 검술'을 습득하실 수 있습니다.]

"에엥?"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기능 '독서'를 습득하셨습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기능 '속독'을 습득하셨습니다. 상위기능 '독서'와 연동됩니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플레이어 최초로 '독서'를 습득하셨습니다. 특성 '독서가'를 습득하셨습니다.]

책을 펼치고 몇  읽기도 전에 쏟아지듯이 퍼부어대는 알림음에 정신 차리기가 힘들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도 모르겠다.

"...상태창?"

「상태창」
「이름 : 이지경」
「칭호 : 차원을 넘은 자, 벌레만도 못한 자」
「성별 : 남성」
「나이 : 27세」
「직업 : - 」
「종족 : 인간」
「근력 : 38(D)」
「민첩 : 50(C)」
「체력 : 40(D)」
「지력 : 79(B)」
「마력 : 0(F)」
「매력 : 30(D)」
「행운 : 91(A)」

「생명력 : 400/400」
「마나력 : 0/0」
「지구력 : 99%」


「고유 특성 : 차원을 넘은 자(SS), 개변자(S), 만인지상(S)」
「보유 특성 : 황금률(A), 독서가(B)」
「보유 기능 : 안정(B), 독서(F)」

「상태 :혼란 (이건 또 뭐야?)」


혹시나 싶어서 상태창을 펼쳐보니 새로운 기능과 특성이 생겨 있었다. 어째 상태창을  때마다  상태가 혼란인 것 같다. 그럴 만은 했지만...


그래도 이상한 것은 아닌 것 같아서 금방 안심이 됐다. 새로운 기능? 뭐, 스킬 같은 것을 습득했다고 치면 되는 거니까.

스킬이 많아서 나쁜 적은 없었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생각하면서 새로 얻은 기능과 특성을 확인해봤다.

「이름 : 독서가」
「등급 : 천재(B)」
「효과 : 책을 읽는데 있어서 보다 많은 것을 기억하고 이해하는 것을 도와준다. 책 속에 숨겨진 의미나 저자의 의도 등을 낮은 확률로 읽어낼 수 있다.」
「설명 : 책을 읽음으로써  안에 담겨져 있는 정보를 기억하거나, 담겨진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와주는 특성이다. 글자를 읽을  있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며 단순히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당한 교양, 지식을 갖춰야만 습득할 수 있다.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책을 이해하거나 기억하는 일이 많은 학자들이 주로 많이 습득하고는 한다.」


우선은 새롭게 얻은 특성인 독서가였다. 이름에서부터  수 있듯이 책을 읽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특성이었던 모양이다. 단지 설명만 보면 단순히 책을 읽는다고 얻을 수 있는 특성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왜 나한테 생겨난 것인지는 모르겠다. 듣기로는 플레이어 최초로 ‘독서’기능을 습득해서 얻었다는데, 플레이어 최초라니. 내가 처음으로 ‘독서’기능이란 것을 얻었을 리가 없었다.

여기에서 살아가는 사람 중에 설마 단 한명도 없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잠깐만...”


플레이어 최초? 그러고 보면 알림에서 나를 말할 때는 플레이어 ‘이지경’님,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루시아를 비롯한 드래곤들에게는 뭐라고 했었더라, 분명... 그저 ‘루시아네스 파라모아’같은 이름으로만 불렀을 뿐이었다.

“설마 플레이어가 나 밖에 없는 건가?”


애당초 전제가 이상했던 건지도 몰랐다. 루시아와 말이 통했던 것도 드래곤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그렇게 넘어갔던 것처럼. 상태창이 떠오르고, 근력이라던가 수치로 보이고, 그랬던 것도 이 세계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넘어갔던 전제 자체가 이상했던 건지도 몰랐다.

만약에 이런 것이, 나에게만 있는 거라면?


“아직 확실한건 아니니까 나중에 물어보자.”

괜히 설레발 친 거라면 부끄러울 거다. 어디보자, 그럼 다음이, 독서가를 얻게 해준 기능 ‘독서’ 차례였나.



「이름 : 독서」
「등급 : 초보(F)」
「효과 : 책을 읽는 것을 통해 필요한 정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책을 통해 습득한 정보나 지식을 기억하는 것을 쉽게 해줍니다. 연동된 하위 기능 ‘속독’에 의하여 해당 효과가 일부 증폭, 변경됩니다.」
「설명 : 책을 읽는 속도를 10%만큼 증가시켜줍니다. 책을 통해 습득한 정보나 지식을 기억할  5%만큼 더 쉽게 해줍니다. 동일한 내용의 책을 반복해서 읽었을  최대 3번에 걸쳐서 중복되어 효과를 발휘합니다. 속독하여 읽을 시, 본래의 효과의 최대 50%만큼 발휘됩니다.」


“으음... 나쁘지는 않은데.”

등급이 초보? F? 만약 내가 기존에 해왔던 게임과 같은 시스템으로 되어있는 거라면, 아마도 최하위의 등급이라서 그런 건지 내용이 너무 수수했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다. 수수하다는 거지. 속독이라는 하위 기능까지 추가된 것이 저거라면 수수하다는  밖에 할 말이 없었다.

뭐, 독서라는 것이 그렇게 눈에 띄는 것도 아니니까 수수한 기능인 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한  같지만... 거기에 아직까지는 예상이기는 하지만, 안정이 전문 등급의 기능이었고 독서가 초보 등급의 기능인 것을 보니, 기능도 성장하는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좋아질 수도 있는 거니까, 두고 봐야겠네.”

특성 ‘독서가’와 연동된다면 독서가 나쁜 것도 아닐 테니까. 분명 쓸데가 많은 기능일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일단 새롭게 얻은 특성과 기능을 확인했으니 본론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는 내가 들고 있는 책을 자세히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검술서로는 안 보이는데 말이지?”

그야 제목부터가 '라이어스 제국의 건국과 역사. 그 바탕이 된 제국검술에 대한 고찰‘이였다. 당연히 라이어스 제국 검술에 대한 글도 적혀져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대충 책을 훑어봤지만, 어디까지나 그 뿐. 대부분은 라이어스 제국의 역사, 시대별로 국토의 변경 지도라던가, 왕들의 이름이나 업적 같은 것이 적혀져 있을 뿐이었다.


혹시나 뭔가 숨겨져 있는 건가 싶어서 책을 들어다보기도 하고 불빛에 비쳐보기도 했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대체 어디가 검술서라는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책이었다.


“혹시 책에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오히려 아무것도 없어서 문제인데... 그런데 누구?”


갑자기 걸어온 말에 반사적으로 대답했다가, 처음 들어본 목소리라는  깨닫고서 고개를 들어보니, 역시나 처음 보는 소녀가 서있었다.

그리고 그 소녀는 내 물음에 태연한 얼굴로, 옷 끝자락을 살며시 집어 올리며 우아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실례, 처음 뵙겠습니다. 주인님. 제 이름은 ‘에루나 투아레’. 앞으로 주인님이 생활하시는데 필요한 모든 편의를 도맡을, 당신의 시종입니다. 부디 편하신 대로 불러주시길.”

“에루나 투아레?”


“네, 태어나는 순간부터 오직 당신을 모시기 위하여, 오직 당신만을 위한 시종의 이름입니다.”

그건 또 뭐냐고 물을 새도 없이, 에루나 투아레가 다가오더니 내가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그 책은... 200여 년 전에 살았던 라이어스 제국의 검의 주인. 프란이 쓴 책이로군요. 주인님께 전해졌을 지식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을 것 같아 준비해둔 책입니다."

"프란...?"


확실히 모르는 이름이었다. 아니, 모르는 이름인 것이 당연했다. 이 세계에 소환된 나로서는 이 세계에 대해서 아는 거라고는 하나도 없어야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게는 이 세계에 대한 온갖 지식과 기억이 있었다. 드래곤들, 루시아를 비롯한 모두의 선조이자 부모이자, 당사자들이기도 한 드래곤들이 나를 위해, 정확히는 소환될 누군가를 위해 준비해둔 지식과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지금으로부터 약 400여  전까지의 기억과 지식들이었다. 대마법을 만들었을 당시, 이미 준비되어 있던 지식과 기억들인 것이다. 나중에 몇 가지가 더 추가된 것 같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전해받은 기억과 지식 중 일부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에루나 투아레라고 밝힌 소녀의 말대로 200여 년 전의 인물인 프란이라는 작자가 쓴 책에 대한 기억이나, 지식은 당연하게도 없었다. 애당초 검술서라던가 역사서라던가, 대마법을 통해 소환될 존재에게는 굳이 필요한 내용의 지식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에루나 투아레, 그 이름은 기억에 있었다. 내가 갖고 있던 기억이 아닌, 드래곤들로부터 부여받은 기억 속에.


"에루나 투아레라면... 분명 그  그 골렘의 이름일 텐데...?"

입으로 곱씹듯이 불러보자 기억이 안날 때처럼 가물가물했던 것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에루나 투아레, 고대의 언어로 준비된 시종이라는 이름을 가진 골렘.

드래곤들이 자신들의 알을 보호하기 위해 작성했던, 드래곤의 뼈며 비늘 같은 온갖 초호화 재료를 사용해 작성한 골렘의 이름이 에루나 투아레였다.

나는 눈앞의 소녀를 바라봤다. 이 소녀가 그 골렘이라고? 기억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던 게 당연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에루나 투아레와 눈을 씻고 다시 바라봐도 동일인물, 아니 동일골렘이라고는 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때는 누가 봐도 아, 이거 골렘이다 싶었던 투박한 외형이 지금은 누가 봐도 소녀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떠올릴 수 있는 게 이상한 거였다. 오히려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 나와 보라고 하고 싶었다.

그런 에루나 투아레를 바라보다가, 아무리 봐도 과거의 모습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고서야 입을 열었다.

“뭔가... 많이 바뀌었는데?”


“주인님께서 갖고 계시는 기억으로부터 400년이 흘렀으니까요. 당연한 결과입니다.”

당연한 건가? 그야 본인이 당연하다고 말하니까 당연한 거라고 받아들여야하는 건가? 내가 갖고 있던 상식에서 생각하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응, 본인이 당연하다는 데 내가 신경 써서 뭐해.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내 시종이라고 말한 것이었다.

“에루나. 아, 이름이 너무 길어서 줄여서 말한 건데 괜찮을까?”


“상관없습니다. 주인님께서 원하신다면 어떤 호칭으로 저를 부르셔도 문제없습니다. 네, 원하신다면 육변기, 암퇘지, 폐기물, 어떤 호칭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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