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11화
말을 마치자 나로서는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루시아를 비롯한 모두가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부담감이 장난이 아니다. 내 나름대로 각오를 다졌지만, 이런 압박감을 버티는 건 역시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 침묵을 깬 것은, 예상외로 크리샤였다.
“우리들이 너에게 반하게 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니, 너 바보야? 아니, 혹시 네가 뭐라도 된 줄 알고 착각하는 거 아냐? 애당초 마법진에서 소환된 것이 네가 아니었다면 겨우 인간 따위가 우리에게 말이라도 걸 수 있었을 것 같아? 그런데, 뭐? 반하게 만들겠다고? 웃기는 소리는 집어치우시지 그래?”
침묵은 깬 건 좋지만 팩트로 내 멘탈을 깨부수려고 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다. 온갖 쓰레기 같은 게임으로 단련된 내 멘탈이 겨우 그런 걸로 깨질 일은 없겠지만. 그리고 크리샤의 말이 맞는 말이기도 했다. 애당초 소환된 것이 아니라면, 말을 걸 수도 없었을 것이다. 말을 걸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그건 그렇다고 쳐도 저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여러 가지로 크리샤를 놀릴 수 있는 방법들이 마구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저런 타입한테 먹힐만한 것이 여러 가지로. 그래도 이건 그냥 속으로 묻혀두기로 했다. 이제부터 반하게 해야 할, 또 반해야할 대상 중의 하나인데 처음부터 스스로 초를 뿌릴 필요는 없었다.
“크리샤! 그 이상 이지경님을 모욕하는 것은 그만두세요. 아무리 당신이라도, 그 이상은 용납할 수 없으니까요.”
거기에, 내가 굳이 크리샤에게 뭐라고 말할 필요도 없이 루시아가 나서서 크리샤를 만류하는 것을 보고서 확신할 수 있었다.
눈에 띄게 루시아의 태도가 처음과는 달라진 것이다. 처음에는 크리샤와 나, 둘 중 그 누구를 위한다거나, 어느 쪽을 우선한다거나, 그런 느낌이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의 루시아는 명확하게, 크리샤에게 선을 그으면서 말한 것이다. 그 이상으로 나에게 해코지를 한다면 가만 두지 않는다는 엄포를 말이다.
아르카와 샤르, 둘이 날뛰려고 하던 크리샤를 막아섰을 때랑은 달랐다. 그때는 동족끼리, 과한 행동을 나서는 크리샤를 어디까지나 동족으로써 말리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드래곤들을 대표하고 있는 몸으로 보이는 루시아가 직접적으로 자신의 동족을 면박해가며 나를 우선해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아르카나 샤르가 동족으로써, 동족인 크리샤를 말리는 것과, 동족의 대표인 루시아가, 크리샤를 말리는 것.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것은 적어도, 동족이자 자매처럼 같이 자라온 크리샤보다 루시아는 내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었다.
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적어도 지금 우위에 있는 것은 그녀들이 아니라 나라는 것을.
물론 힘의 관계에서는 분명 내가 한참이나 밑에 있기는 했다. 아마 인간과 개미정도의 수준으로 차이가 날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저들에게는 내가 필요했다. 정확히는 나와 그녀들 사이에서 태어날 자식들이 필요했다.
그런데, 내가 거부한다면?
원래대로라면, 겨우 인간이 드래곤들의 말에 거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겨우 인간 따위가 아무리 거부해봤자 루시아가 나에게 사용했던 정신조종이나 매료, 혹은 폭력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운 좋게도 나는 그것과는 전혀 무관계한 몸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루시아의 정신조종이나 매료를 저항할 수 있고, 아르카가 사용했던 나무의 창도 방어에 성공했다. 거기에 다른 수단을 사용한다 치더라도, 나를 상처 입힌다는 수단은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내가 필요해서 설득을 위한 조금 강압적인 방법을 취한 것 때문에 정작 내가 죽어버린다면 말짱 황이니까.
찾아보면 다른 방법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내 의지를 강제로 꺾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절대로 사용하기도 싫고, 사용할 생각도 없지만 그녀들에게 있어서는 내가 가진 최고의 거절 방법도 있었다.
바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이거 한방이면 드래곤의 수명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그마치 넷이나 되는 고룡의 심장과 그 외에도 어마어마하게 들어간 마력석을 사용한 대마법이 다시 발동되기까지, 자연적으로 마력이 채워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다시 대마법이 발동되기까지, 다시 또 다른 누군가가 소환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릴 거란 예상이 될 뿐이었다.
내게 불리한 것은 없었다. 있어봤자 여기가 홈그라운드인 내 방이 아니란 것과 내가 남들과 대화하는 것, 아니 정확히는 다수에게 말하는 것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는 것 정도였다.
그러니까 자신감을 갖기로 했다.
그때 루시아가 잔뜩 토라진 크리샤를 어떻게 달래놓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이지경님, 만약 이지경님의 말씀대로 시간을 준다면... 그런데도 당신의 계획이 실패해버린다면 그때에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때는 어쩔 수 없지. 적어도 나는 1년 동안 내 고집을 들어준 너희에게 최선을 다할 뿐이야.”
“그 말씀은... 1년 뒤에는 저희들의 뜻대로 움직여주시겠다는 말씀이신 거군요?”
“그래, 내가 소환된 이유가 그거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 경우에는 선후관계가 다소 바뀌겠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내가 과연 드래곤을 꼬실 수 있을지는 별개로 치고 말이다.
그런 내 말에 루시아가 동의를 구하듯 주변을 둘러봤다.
“뭐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과적으로 1년 뒤에는 어떤 식이 됐던, 목적은 달성된다는 거 아냐~? 그렇담 아무래도 좋지 않아~?”
루시아와 시선이 마주친 아르카가 그렇게 말하며 찬성을 했다. 저걸 찬성이라고 해도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싫다고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걸로 인간이 납득한다면, 그걸로 괜찮아.”
그 다음은 샤르가 그렇게 말하며 아무래도 찬성표를 던진 것 같다. 그나저나 인간이라고 말하지 말고 이름으로 불러줬으면 좋겠는데. 아직 너무 과한 기대였나.
“아샤는 잘 모르겠지만 인간씨가 마음에 들었으니까, 인간씨 말대로 할래!”
“크리샤가 심통 부리는 얼굴을 더 보고 싶으니까, 나도 찬성할게!”
아샤는 그렇다 치고, 아냐가 찬성한 이유가 이상했지만 어쨌든 이것으로 두 표가 추가되었다.
남은 것은, 카르네와 크리샤였다.
“아~ 알겠으니까아~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쳐다보지 말라구, 루시아. 나아는 크리샤처럼 반대하지는 않았으니까아. 인간이란 것은 조금 의외기는 했지마안, 제법 재밌는 구석도 있고. 어차피 해야 될 일이라면 이편이 유흥거리가 될지도 모르겠는 거얼.”
의외로 카르네가 찬성하자 마지막으로 남은 크리샤에게 모두의 시선이 옮겨졌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오자 크리샤가 부들부들 떠는 것이 보였다. 나도 안다. 그 마음, 부담감이 장난 아니지? 아니, 크리샤의 경우에는 이것 때문에 저러는게 아닌 것 같지만...
“으, 으으으으!! 진짜! 반드시, 1년 안에 다른 방법을 찾아내고 말테니까! 반드시!”
결국 크리샤가 분통이 터진다는 얼굴로 그렇게 외치자, 짝, 하고 루시아가 박수를 쳐서 모두의 시선을 모으고는 말했다.
“그럼 이걸로, 일곱 모두 찬성, 그렇게 여겨도 되겠죠?”
“아무리 봐도~ 크리샤는 찬성한 게 아닌 것 같지만~? 뭐, 상관없어~”
“...어차피 찬성이 더 많으니까, 이의는 불필요해.”
“응? 이걸로 인간씨가 이긴 거야? 야호, 잘됐네! 인간씨!”
“언니, 대신 크리샤가 잔뜩 삐졌어요.”
“뭐? 어, 진짜다. 크리샤, 삐졌어?”
“안 삐졌어!? 안 삐졌다니까!”
“그래서어? 이제 어떻게 할 건데?”
중구난방으로 떠들어서 왁자지껄해졌던 테이블이, 카르네의 말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나에게 시선이 모였다.
또 나야? 왜 자꾸 바톤을 나한테 넘기는 거야?
“아, 음... 그러니까...”
이럴 때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그래서 어디에서, 언제 써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은 말을 하기로 했다.
“일단, 밥부터 먹자.”
오랜만에 머리를 써서 그런지 엄청 배가 고프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