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10화 (1차 통곡의 벽)
귓가에 알림음이 들렸지만 한동안은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게 대체...”
그리고 그건 나뿐만이 아니라 루시아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내게 손을 뻗은 채로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굳어 있었다.
“...어째서죠? 어째서 마법이 통하지 않는 건가요?”
“그걸 저한테 물어본들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모르겠는데요.”
정적을 깨고, 루시아가 내뱉은 말에 그렇게 대답하자 바로 옆에서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캬하하~! 뭐야, 뭐야~? 사실은 인간으로 보일 뿐 다른 거였던 거야~? 루시아의 마법을 튕겨 내다니~? 크흐읍...! 아, 안 돼. 너무 웃겨서. 배가 아파~”
“푸흡, 잔뜩 폼 잡고서 기억을 지우고 원래 세계로, 원래 당신이 살아가고 있던 시대로 보내드릴게요, 그렇게 말해놓고서 푸흐흡...!”
여태까지 지루해하던 얼굴은 어디로 갔는지 배를 움켜쥐고서 웃어재끼는 아르카와 내 옆에서 입을 가리고 크큭, 하고 웃고 있는 아냐가 보였다.
“...저기, 루시아? 미안해?”
어쩐지 사과해야 될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다. 아니, 내가 사과해야 될 일은 아닌 것 같기는 한데 말이지.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 눈앞에서, 조용히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루시아를 보면 누구라도 사과하고 싶어질 거다.
“...아뇨, 사과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보다 이지경님, 제 눈을 바라보시겠어요?”
“어? 눈은 왜...”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루시아네스 파라모아'의 「매료」의 저항에 성공했습니다.]
어라? 귓가에 들려오는 알림음에 루시아를 바라봤다. 나, 또 뭔가 당한거야? 일단 아무렇지도 않기는 한데.
“...역시나, 제 마법에 저항하신 게 맞네요. 정신계 마법의 저항능력? 아니, 조금 다른 느낌이네요. 벽에 가로막혔다. 그런 느낌에 가까울까요...?”
“저기, 루시아?”
갑자기 혼자서 뭔가 중얼거리기 시작하는 루시아를 보고서 갑자기 오한이 끼쳤다. 뭔가, 엄청 위험하다, 그런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르카. 부탁할게 있어요.”
“크흡... 뭐야아? 루시아, 나 지금 너무 웃었더니 허리가 풀렸거드은?”
“이지경님에게 마법을 사용해주세요. 강하지 않은 것으로요.”
“에~? 그래도 괜찮겠어어?”
“당신의 마법이, 저희들 중에서 가장 손대중하기 쉬우니까요.”
“응~ 뭐, 그것도 그렇네에? 루시아, 네가 하라고 한 거니까아 무슨 일 생겨도 네가 책임지라구우?”
잠깐만, 지금의 흐름은 내게 매우 좋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마법이라고 했지? 손대중이라고 했지? 쏘는 거야? 나한테? 마법을? 그 순간 기억 속에 떠올린 것은, 드래곤들... 그녀들의 선조이기도 했던 여섯 명의 드래곤들이 마왕을 상대로 레이드를 펼쳤던 광경이였다.
그런 거, 맞으면 죽어버릴게 분명하잖아! 싫어, 그만둬! 내 하반신이 너덜너덜해져버린다고?!
“약한 거라아 이거면 되겠지이?”
작은 빛이 섬뜩하게 반짝였다. 그렇게 여겼을 때 눈앞에 보인 것은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이 멈춰서있는 나무로 만들어진 창이였다.
파사삭!
눈앞에서 나무로 된 창이 갈라지더니 이윽고 분쇄되면서 조각이 흩날렸다. 그렇게 흩어진 조각들 역시, 나에게 닿는 일 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이윽고 사라져가는 것이 보였다.
띠링~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아르카네스 브란시아의 「나무의 창」의 방어에 성공했습니다.]
“...역시나.”
“루시아? 이게 대체 뭐야아?”
자신의 마법조차도 가로막히는 것을 본 아르카가 신기하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마법저항능력, 아니 이 경우에는 마력무효능력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죠. 그런 것이 이지경님의 주변에 걸쳐져 있어요. 그것도 물리계와 정신계, 어느 쪽에도 발동하는 것이.”
“흐응~? 그건, 무슨 뜻이야?”
“간단하게 말해서, 마력으로 된 모든 것이 통하지 않는다고 보면 될까요? 어떤 식으로 발동되는 것인지, 한계는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요... 적어도, 고위의 정신계 마법인 ‘정신조종’을 막아내고, 아무리 저위의 물리계 마법이라고 할지라도 아르카의 ‘나무의 창’을 손쉽게 박살낼 정도로 강력한 것이.”
“...헤에에”
새삼스럽다는 듯이 나를 보는 아르카와 루시아, 그리고 양 옆에서 신기하다는 듯이 내 몸을 만져보는 아냐와 아샤가 보였다. 나도 내 몸을 만져봤다. 혹시라도 상처라도 나지 않았을까 확인 차에서. 그리고 몸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저기, 루시아. 아르카의 마법이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거, 알고 있었어?”
“......”
대답이 없었다. 나는 아르카를 바라봤다. 내 시선을 느낀 듯 아르카는 조금 무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뭐어어 아무런 일도 없었으니까 괜찮지 않아아?”
이제야 조금, 그녀들에 대해서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방금은 엄청나게 운이 좋았던 거고 만약 잘못됐더라면 작은 상처로 끝나지 않았을 거란 것도. 이대로라면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할 것 같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물어보기로 했다.
“만약에 말이지, 아까 그 나무의 창? 그거에 맞았더라면 나 어떻게 됐을 것 같아?”
“...글쎄에? 겉으로 보기에는 훌륭한 몸이지만, 단련한 전사들처럼 투기를 몸에 두를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구? 아마 평범하게 꿰뚫리지 않았을까 싶은거얼?”
꿰뚫린다고... 방금 봤던 창, 크기가 게임 속에서나 봤던 발리스타의 뺨을 왕복으로 후려칠 것 같았는데 말이지...?
아니, 여기서 화를 내봤자 아무 소용도 없었다. 애당초, 그녀들은 그런 존재인 것이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하고자, 동의를 구하거나 자신의 행동으로 상대가 어떻게 되던 간에 상관이 없는 존재.
만약 그것이 내가 원래 살고 있던 세계였다면, 그런 그녀들을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방약무인, 자신만이 세계의 중심이고, 자신 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그녀들에게 당연한 것이라면, 그리고 그런 세계에 내가 소환된 것이라면, 그런 것으로 화를 낸다는 것은 그녀들에게 있어서 너무한 일이다. 그녀들은 그저 몰랐던 것뿐이니까.
그러니까 여기서는 화를 내면 안 된다. 대신에, 말해줘야 하는 것이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루시아. 한마디 해도 될까?”
“...네, 무슨 일이신가요?”
“나에게 뭔가 할 생각이면, 우선 나한테 동의를 구하고 해주지 않을래? 너희도 알다시피 나는 평범한 인간이니까. 루시아, 너도 알고 있었겠지만, 조금 전의 창을 맞았더라면, 너희들 덕분에 죽지는 않았더라도 크게 다쳤을 게 분명하니까. 말해두지만 나 아픈 건 질색이거든?”
“...네, 죄송해요.”
“사과할 필요는 없어. 나도 몰랐고. 네 입장에서는 괜찮다고 여겼을 지도 모르는 일이였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인간이야. 여기서는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방금 그걸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확실한 것도 아닌 것을 확인하려고 그런 짓을 하는 건 말아줬으면 좋겠어. 내 말 이해되지?”
“...그것도 정말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또... 아니,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할게. 루시아, 정말로 나를 위한다면 내 의지를 거슬러서, 나를 마음대로 할 생각은 하지 말아줘.”
“하지만 그건...”
여태껏 순순히 내 말에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던 루시아였지만 마지막 한 마디에 고개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이럴 것이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물론 너희들에게 있어서 그, 아이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건 이해하고 있어. 잘은 모르겠지만, 너희들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거지?”
“네, 맞아요. 이대로라면 드래곤이라는 종족은 멸종하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이 세계는 결국 멸망하게 될 테니까요. 그러니까, 부탁이에요. 저희에겐 이지경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요.”
루시아는 그렇게 말하고서, 다시 한 번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 루시아의 말에 떠오른 것은 드래곤이 없었던 몇 년 사이에 온갖 재앙이 일어났던 세계의 모습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분명 그런 것을 보았던 것 같았다. 그것이 정말로 드래곤이라는 종족이 없다는 이유로 그렇게 된 것이라면 마왕의 저주로 인해서 멸망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이 얼마나 심각한 건지는 알 수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 중요한 일에 내가 소환된 것인지 도통 모를 일이었다. 이런 일, 아무리 생각해도 내 적성에 맞지 않는데. 차라리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왔더라면 더 나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그쪽의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소환됐더라면...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약의 일이었다. 만약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생각해봤자 소환된 것은 나였다. 이건 내가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사랑하지도 않는 그녀들을 안고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 그녀들에게 내 아이를 갖게 해야 하는 것이다. 간단한 일이었다. 정말로 간단한 일인 것이다. 이 나이가 되도록 동정인 것도 아니고, 여자를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나라는 개인의 양심을 조금만 버리는 걸로 멸망할 예정이 되어버린 이 세계를 구할 수도 있다. 나에게 있어서 나쁜 얘기도 아니었다. 그렇게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결과적으로 내가 봤던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미소녀들을 하나도 아니고 일곱과 그 짓을 해야 하는 거니까.
하지만 어느 쪽이 옳은 건지는 모르겠다. 이 세계에도 인간은 살아가고 있었다. 살아가고 있는 것은 인간뿐만이 아니었다. 이 세계에는 원래 세계에서는 없었던 수많은 종족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세계를 저버리고, 내 양심을 챙기는 것이 옳은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세계를 위해 그녀들이 이렇게까지 희생하는 것을, 그저 외면해야만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나라는 인간은, 그 둘 중 무엇도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나는 이 세계를 내 마음대로 저버릴 만큼 이기적이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그녀들을 마음대로 안아서, 내 아이를 낳게 하고, 그렇게 내 자식들이 도구로써 태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을 할 수 있는 인간인 것도 아니었다.
나는...
“...루시아, 그리고 모두에게 제의할게 있어.”
“제의, 라고요...?”
내 말에 루시아를 비롯한 모두가, 나에게 시선을 모았다. 의외인 것이라면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 보였던 크리샤와 카르네도, 나를 바라봐줬다는 점일까. 나쁜 일은 아니었다. 애당초, 그녀들에게도 허락을 구해야만 하는 일이었으니까.
살면서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정말로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입을 열었다.
“바보 같은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나는 이런 식으로 아이를 만드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해.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리 고민 해봐도, 이건 아닌 것 같아. 나에게도, 그리고 너희들에게도.”
“...그 결과, 세계가 멸망해버려도. 그 결과, 수많은 생명이 덧없이 저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내 말에 당장 루시아가 그렇게 말하며 반박해왔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제의하는 거야.”
나에게 시간을 줘. 나는 그렇게 말했다.
“시간을... 달라는 말씀인가요?”
“응, 나에게 시간을 줬으면 좋겠어. 길게 바라는 것도 아냐. 일 년, 그 정도만 있어도 충분... 할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서 노력할 테니까.”
내 말을,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얼굴의 의문부호가 떠오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바라봤다.
“일 년 동안... 나는 너희들이 나에게 반하도록 노력할거야. 일 년 동안, 나는 너희들에게 반하도록 노력할거야.”
내가 선택한 것은, 세계를 저버리는 것도, 그녀들을 저버리는 것도, 그 무엇도 아닌 다른 방법이었다. 별로 대단하지도 않는 머리를 최대한 쥐어짜서, 어떻게든 찾아낸 방법이었다.
사랑이 없는 관계로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 싫다면, 그렇다고 세계가 멸망하는 것을 방치하는 것도 싫다면.
그렇다면 그녀들을 나에게 반하게 하면 된다. 그렇다면 내가 그녀들을 사랑하게 되면 된다. 바보 같고, 멍청한 방법이지만 그게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시간을 줬으면 좋겠어.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게 될 수 있는 시간을, 내가 너희들이 나에게 반하게 할 수 있는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