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5화
마왕의 저주, 마왕이 저지른 그 최후의 발작을 보았던 나는 드래곤들이 걸린 저주에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같은 남자로써 깊은 이해와 공감이 가기는 했지만, 그걸로 좋았던 거야? 그렇게 마왕이 앞에 있다면 물어보고 싶은 그런 저주였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는 달리 마왕의 저주는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섰다.
[마왕의 저주, 그 심각성을 깨닫게 된 선조들은 저주를 풀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시도들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죠.]
마왕의 저주. 그것도 마왕의 힘의 근원인 뿔을 대가로 한 마지막 발악은 아무리 중간계의 수호자인 드래곤들이라고 하더라도 해주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모양이었다.
정확히는 해주는 가능했지만 마법의 종주라고 불리는 드래곤들이라고 하더라도 몇 세대를 거쳐야만 어떻게든 가능한 수준의 저주. 신들이 세계에 세워놓은 법칙을 덧씌울 만큼의 강력한 저주였던 모양이다.
그 저주가 만약 인간들이나, 다른 종족들이라면 큰 문제는 없었을지도 몰랐다. 애당초 그들의 수준이라면 마왕의 저주를 해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겠지만, 그들에게는 마왕의 저주가 그렇게까지 치명적인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종족, 그 전체를 통틀어서 겨우 한줌조차도 되지 않는 몇몇이 아무리 그 후손이 여자만이 태어나는 저주를 받게 되었더라도 그 종족이 멸종하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드래곤들은 달랐다.
[남아있던 저희 종족들의 숫자는 모두 열. 그 중 넷은 이미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친 고룡들이였고 나머지 여섯은, 저희들의 선조. 그러니까 모두 마왕의 저주에 걸린 분들이셨죠.]
즉, 그거였다.
이미 남아있는 드래곤들은 스스로 몇 세대를 거쳐 가며 마왕의 저주를 해주할 시간조차도 벌 수 없을 만큼의 멸종위기의 종족 이였던 것이다.
[저희들의 수명은 다른 종족들에 비해서 무척이나 길다고 할 수 있지만, 결국 유한한 생명. 언젠가는 스러져 죽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 저희들은 어떤 금기로 인해서 근친간의 번식이 불가능한 종족이였죠. 하등한 몇몇 종족들처럼 부모자식 간의 근친으로 수를 어떻게든 늘리면서 버틴다는 것은 논외였습니다. 마왕의 저주, 단순히 여자만이 태어난다고 하는 우스꽝스럽다고 여길 수도 있는 저주. 그것은 저희들의 종족에 있어서는 무척이나 위협적인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입니다.]
이대로라면 드래곤이라는 종족이 멸종하게 생겼다. 애당초 드래곤들은 성욕과는 거리가 먼 종족이였다. 맹약에 의해서 일정수를 유지하고, 그저 좋을 대로만 살고 있던 그런 종족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였다. 드래곤은 강하고, 대항할 수 있는 적수가 없는 존재들이였다. 마계의 최강자, 마왕조차도 중간계에서는 드래곤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으니까 그 강함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나마 위협되는 것이라고는 같은 드래곤들이나, 종의 한계를 초월한 몇몇의 초월자들 뿐. 그마저도 대부분은 드래곤의 존재, 그 이유를 알고 있기에 그 누구도 드래곤에게 위협을 끼치지 않았다.
강하고, 대항할 적수가 없으며, 성욕보다는 자신의 재물을 불리거나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탐욕적인 생물. 의무적으로 제비뽑기하듯이 뽑힌 몇 쌍이 아이를 만들었을 뿐, 조금씩 줄어가고만 있던 드래곤은 결국 마왕의 저주로 멸종위기라는 어이없는 사태에 처하게 된 것이였다.
[하지만 이대로 멸종하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는 법이였습니다. 비록 저희들의 종족이 기본적으로 태만하더라도, 종족의 멸종위기, 아울러서 세계의 종말 앞에서까지 게으름을 부릴 여유가 없었으니까요. 어찌됐건 중간계의 수호자인 저희들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그리고 선조들은 자연으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고룡들의 도움을 받아, 그들의 심장을 빌려 어떤 대마법을 완성시킬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죽어가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하더라도, 선뜻 자신의 심장을 뽑아서 내주는 드래곤들이나 그것을 고맙다며 받아드는 드래곤들의 감성이 이해가 가지 않는 장면이 스쳐지나갔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고룡들의 온몸을 내주는 도움으로 대마법이라는 것을 완성시킬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대마법, 그것은 신의 힘을 모방해서 드래곤들을 비롯한 몇몇 초월자들이 만들어낸 마법. 그 중에서도, 가장 신의 힘에 근접한 현상에 가까웠다. 마왕의 저주가 신들이 세운 법칙을 덧씌웠던 것처럼, 대마법 또한 그것과 비슷한 일이 가능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대마법이라하더라도 마왕의 저주를 해주하는 것은 할 수 없었다. 애당초, 저주는 거는 것보다도 푸는 것이 더욱 까다로운 것이었다.
그렇기에, 드래곤들이 만들어낸 대마법은 마왕의 저주를 풀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마왕의 저주는 사실상 그들에게 걸려있다기보다는 그 세계의 법칙이 덧칠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누구든지 그 세계에서 태어난 생명이라면 저주에 걸린 드래곤들과 제임스, 그리고 그 후손들과 아무리 자식을 만들더라도 여자만이 태어나는 세계의 법칙이 세워진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마왕의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욱 강한 대마법을, 수십 차례를 거쳐서 조금씩 교정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건 여섯밖에 남지 않은 드래곤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생각해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계의 법칙과는 무관한 자를 데려오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말이다.
그런 발상에서 만들어낸 대마법을 완성시킨 드래곤들은 여섯 개의 알을 낳았다. 정확히는 낳았다기보다는 만들어냈다. 자신의 육신을 대가로 해서, 전생체를 만들어낸 것이다. 보통의 생명체로써는 불가능한 일이였지만 마법의 종주인 드래곤들은 한번 정도라면 이런 식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두 번은 없다. 다시 태어났다하더라도 조금 시간을 벌 수 있는 것 뿐, 이대로라면 결국에는 멸종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당사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기에 전생을 위한 알을 만들어낸 드래곤들, 정확히는 육신을 벗어던지고 알로 돌아가기 전에 마련해둔 드래곤들의 정신체들은 대마법에 필요한 마지막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우선 네 마리의 고룡, 그 심장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던 대마법에 필요한 마력을 준비했다. 정신체들은 오랜 세월을 거듭하며 모아뒀던 마력석들을 모두 대마법을 위해 만들어두었던 마법진에 들이부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든 필요한 마력의 9할 가까이를 채워 넣을 수 있었다.
다음은 정신체들이 소멸하게 된 이후에 알이 되어 무방비하게 된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가디언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알이 되어버린 자신들은, 대마법에 필요한 마력이 모두 모였을 때 태어날 수 있도록 해두었다. 그렇기에 사실상 언제가 될지도 모를 시간동안 알을 지켜야할 가디언은 수명이 있는 존재로는 불가능했다.
정신체들은 남아있던 가죽과 뼈를 비롯한 비늘, 즉, 자신들의 육신을 가지고서 골렘을 만들어냈다. 세월을 거듭해가며 더욱 견고해져가는 드래곤의 뼈와 이빨을 있는 대로 쏟아 부어 만든 최강의 골렘이 완성되는 것은 순식간이였다.
마지막으로, 정신체들이 준비한 것은 자신들이 알이 되어버린 탓으로 발생한 일들, 세계의 균형이 무너져가는 것을 잠시 동안이라도 관리해줄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이였다. 아마 이것이 가장 까다로웠던 모양이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갔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둘 씩 정신체들이 힘을 다해서 사라져갔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정신체가, 드래곤들의 빈자리를 메꿔놓을 마지막 관리자를 만들고 사라졌다.
[그렇게, 저희 선조들은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최후. 그것은 사실상의 최후나 다름없었다. 전생체로 남겨진 알들은, 자신을 만들어낸 드래곤의 지식과 힘을 이어받았지만 결코 그것이 같은 드래곤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였다. 그 둘은 완전히 별개의 개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였다.
[그리고, 세계는 저희들이라는 존재가 없이,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 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유지되는 듯 했다. 하지만, 드래곤들이 만들어낸 관리자만으로도 세계가 유지되는 것이었다면, 애당초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필요 없는 법이였다.
중간계의 수호자이자 관리자. 그런 드래곤의 부재가 가져온 재앙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쉬도 때도 없이 비가 내리는 곳이 있는가 하면 단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는 곳도 있었다. 모든 작물이 심는 족족 죽어가는 땅이 있는가 하면 지나치도록 거대한 생물들이 태어나는 곳이 생겨났다. 시도 때도 불길이 치솟았고, 계절과는 관계없이 추위가 찾아왔다.
균형이 무너져가기 시작한 것이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대마법의 마력이 전부 모인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목소리와 함께, 눈앞에 비친 광경에는 쩌적, 하고 드래곤들이 남긴 알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선조들의 안배에 따라서 대마법의 준비가 끝나자 저희들도 태어날 수 있었죠.]
알이 깨지고, 그 안에서 아직 작기 만한 드래곤들이 태어나는 광경과 함께, 눈에 비치던 것이 돌연 멈췄다.
멍하니 눈을 깜빡인다. 이상한 숲도, 거대한 성과 비슷해보이던 어딘지 모를 장소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평소와 같은 방이 보이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입 밖으로 저절로 한숨이 토해져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몰려오는 두통에 인상을 찌푸렸다.
“으윽...”
대마법, 드래곤, 세계의 법칙, 하나같이 몰랐던 것들이 머릿속에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눈에 비쳤던 숲의 이름, 제임스라는 용사의 조국이라는 나라의 이름. 그 밖의 온갖 지식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리고, 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듭해서 저지르는 무례를 사죄드립니다.]
“사죄고 자시고... 이게 대체...”
말이 사과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들어오는 방대한 지식량에 머리가 펑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지금 당신에게 전해지는 것은, 저희들의 세계에 대한 지식. 저희들이 알고 있는 모든 나라의 문화와 역사. 그 밖에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입니다.]
“크으으... 그걸 왜...?”
눈에 이상한 광경이 비치는 현상이라던가, 이상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거라던가, 이미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는 일이 계속 일어나니까 지금 있는 일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쯤은 진작 깨달았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안한 것은, 아무것도 못했기 때문이였다. 눈을 뜨던 감던 간에 눈에 비치는 것은 별세계의 광경이었다. 몸을 움직이려고 해도 움직이질 않았다. 그저 보여주는 대로 보고, 듣는 대로 들을 수밖에 없어서 아무것도 못한 거지, 안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프기까지 했다. 미쳐 돌아갈 것 같다는게 무슨 의미인지 깨달아버릴 것 같았다. 그딴 거 깨닫기 싫은데.
[그리고, 당신에게 이런 지식을 전해주는 이유는... 그것이 필요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콰지직!
“...어.”
눈앞에서 컴퓨터가 우그러졌다. 위이이잉~ 하고 무언가가 돌아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는데, 눈앞에 있던 광경들이 하나둘 일그러져가기 시작했다.
아니, 우그러지는 것은 컴퓨터가 아니었다. 일그러지는 것은 주변의 공간이 아니었다.
“뭐야 이거.”
우그러지는 것은, 일그러져가는 것은 나였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명백하게, 시야가 접혀졌다. 아픔 같은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접혀진 시선에 비친 것은 손끝에서부터 접혀지고 있는 내 몸의 모습이었다.
“이게 대체 뭐...”
콰지직!
귓가에 울리는, 무언가가 완전히 접혀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나는 까무룩하고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