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4화
ㅡ아, 시끄러워. 주둥이 안 닥쳐? 응? 그러기에 왜 혼자 여길 기어들어왔어? 안 그래도 너희들 여기서는 힘의 반도 못쓴다며? 응? 뭐가 그렇게 잘나서 혼자 여길 와? 응?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잘근잘근, 비명을 내지르는 마왕을 무시하고서 계속해서, 끈질기게 밟아 뭉개는 모습이 너무 잔혹해보였다.
“......”
아니, 마왕이 했던 짓은 알고 있다. 전혀 동정은 하지 않지만, 같은 남자로써 너무 잔혹한 광경이라는 것 뿐이었다.
ㅡ아무튼 간에, 이정도면 정신 차렸겠지. 곱게 돌아가서 다시는 올라오지 말라고? 네 부하들한테도 그렇게 전해.
ㅡ크, 크으으...
그렇게 말한 금빛 머리의 여자가 퉷하고 완전히 짓뭉개져서 신음만 토하고 있는 마왕의 얼굴에 침을 뱉고는 뒤도 안보고 마왕성 밖으로 걸어 나갔다.
ㅡ진짜, 귀찮아 죽는 줄 알았네... 에이! 한방 더 먹어라.
화르르륵!
붉은 머리의 남자가 그렇게 말하고서, 안 그래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어 보이는 곳에 불꽃을 내던지고는 금빛 머리의 여자를 따라갔다.
ㅡ아니 이런데 불내지 말라고. 안 그래도 네 불은 잘 꺼지지도 않는데. 야, 불 끄고 가라니까! 아, 진짜.
푸른 머리의 남자가 그런 붉은 머리의 남자에게 뭐라고 외쳤지만 붉은 머리의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머리를 벅벅 긁던 푸른 머리의 남자는 꿈틀거리는 마왕을 보다니 혀를 차며 말했다.
ㅡ항상 뒤처리는 내가 한다니까...
콰아아아!!
그렇게 말한 순간, 마왕의 가랑이 사이로 엄청난 수압의 물이 쏟아져 내렸다. 덕분에 마왕의 가랑이 사이를 불태우던 불꽃은 꺼졌지만 물줄기에 얻어맞은 마왕은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ㅡ좋아, 다 꺼졌네. 그럼 나도 돌아갈까.
하지만 푸른 머리의 남자는 그런 마왕은 안중에도 없는 듯 불이 꺼진 것에 만족하고는 앞서 간 둘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
슬슬 마왕이 불쌍하다. 이러면 안 되는 건 알지만 불쌍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ㅡ혹시 모르니까...
그리고 녹색 머리의 남자가 온갖 수모를 당하고 부들거리고 있는 마왕을 보더니 휙하고 무언가를 던지고 밖으로 나갔다.
마왕의 몸 위로 떨어진 무언가는 순식간에 꿈틀거리면서 싹을 틔우더니 이내 마왕의 몸을 양분으로 삼아서 성장하기 시작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마왕의 몸의 태반을 덮어버렸다.
ㅡ크, 흐억...
상당히 눈에 해로운 광경이었다. 나무줄기가 움직일 때마다 움찔거리면서 신음을 토하는 광경이 귀에도 해로운 광경이었다.
ㅡ...더러워.
그 모습을 보고서 검은 머리의 여자가 질색하면서 먼저 간 이들을 따라가고, 그런 검은 머리의 여자를 따라서 밖으로 나가던 은빛 머리의 여자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뒤를 보고는 마왕을 손가락으로 다시 한 번 겨누고는 입을 열었다.
ㅡ...빵!
콰직!
은빛 머리의 여자가 성문을 닫으면서 나가는 것과 동시에 어마무시하게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그런 마왕의 위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 보이는 것과 동시에, 눈에 비추던 광경이 사라졌다.
[그렇게, 마왕은 처단되었다.]
“...좀 너무하지 않아?”
마왕이 나쁜 놈인 건 맞는데 조금, 그래도 그냥 곱게 죽이거나 하면 안됐던 건가? 왜 하필 저런 식으로... 목소리에 무심코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수천이 넘는 인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인 마왕이였지만 저렇게 일방적으로 당한 모습을 봤더니 없던 동정심이 솟아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응?”
하지만, 끝이라고 여겼던 것과 달리 목소리는 그렇게 말하고, 눈앞에는 새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콰지직!
마왕의 위로 떨어졌던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산산이 조각이 나며 쏟아져 내리고 그 밑에서 마왕의 손이 튀어나왔다.
ㅡ그, 빌어먹을 도마뱀 자식드으을... 나를 죽이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해주마...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ㅡ크, 크크크... 중간계의 수호자 놈들이 오만하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렇게 한곳만을 집중해서 공격하면... 나도 그곳을 집중해서 보호하면 그만이지. 똑똑하다고 들었거늘, 생각보다 멍청했나보군...
그렇게 이죽거리는 마왕의 모습에 나는 이미 뭐라고 말할 만한 것이 아닌 마왕의 가랑이를 바라봤다. 이미 너덜너덜해서 재기불능으로 보였다.
“...보호한 거 맞아?”
유기 방치한 것 같은데.
ㅡ다시 시작해주마. 인간들을 덮치고, 더욱 강한 마물을 만들어 내주마. 그리고 너희들이 해준 충고, 고맙게 받아들여주지. 제물을 바쳐서, 마계에 있는 부하들을 이곳에 불러들이면... 크읏, 그래도 역시 중간계의 수호자라는 건가. 몸을 다시 수복하는데에 필요한 마력조차도 남아있지 않았군. 일단 회복에 전념하면서...
휘청,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마왕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ㅡ딱, 백년이다. 기다려라. 빌어먹을 도마뱀 녀석들... 너희들에게 반드시 오늘의 일을 갚아주...
푸욱!
ㅡ이 마왕! 네가 그 악랄한 마왕이렷다. 나 용사 제임스가 마왕, 너를 처단해주마!
“......”
ㅡ........
마왕도, 나도 말없이 칼날이 튀어나온, 마왕의 가랑이 사이를 바라봤다. 용사 제임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의 칼이, 정확하게 마왕의 가랑이 사이를 관통해 있었다.
툭...
그리고 어떻게든 달려있던 것이 바닥에 툭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ㅡ...이, 씨발, 것들이...
툭, 하고 마왕도 그 물건과 마찬가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렇게 정말로 마왕은 처단되었습니다.]
“...진짜로? 진짜로 저렇게 죽었어?”
진짜 이걸로 끝이야? 마왕의 가랑이는 이제 더 이상 괴롭힘 당하지 않는 거 맞지? 그렇지? 맞지? 맞다고 말해줘라... 비참함의 끝을 달린 마왕과, 그 가랑이에 이제 그만 편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 생각했습니다만.]
“아직도 계속되는 거야? 어? 또 가랑이를 괴롭히는 거지? 맞지? 그렇지? 내 말 맞지?”
이제 더 이상 그만해.
ㅡ크, 크크크크...
제임스가 쓰러진 마왕을 보고서, 내가 진짜로 용사가 됐다~! 하고 엄청 기뻐하면서 밖으로 달려 나가고서, 한참이 지나자 마왕의 몸이 들썩거렸다. 그리고 그런 마왕의 몸에서부터 검붉은 아우라가 마구 뿜어져 나왔다.
ㅡ크, 크하하하하하!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여!
그리고 마왕이 울부짖었다.
ㅡ이 빌어먹을, 개 같은 새끼들이여! 그리고 그 개 같은 새끼들을 만들어낸 개 씨발같은 신들이여! 왜 하나같이 내 가랑이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 인거냐! 이 씨발새끼들아! 아니, 내가 마왕인 것은 맞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지상에 강림한 것도 맞다. 너희들에게 위협을 끼친 것도, 너희들의 입장에서 나는 악이고 반드시 무찔러야하는 적인 것도 맞다!
마왕이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
ㅡ근데 왜 자꾸 내 가랑이 가지고만 지랄하는 거냐?! 이 씨발! 좆같네 진짜. 나한테 때릴 구석이 가랑이 말고는 없는 거냐?! 머리도, 팔도, 배도, 그래 배도 있다. 구멍이 휑 하니 뚫려서 약점이 되어버린 배도 있단 말이다! 근데 왜 가랑이냐! 어째서, 어째서, 이 씨발!
마왕이 캐릭터를 마구 무너뜨리면서 지랄발광을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는 나를 배려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사양인 것인지 엄청난 속도로 광경이 뒤바뀌었다.
해가 떠오르고, 달이 떠오르고, 다시 해가 떠오르고, 또 저물었다. 사흘 밤낮이 지나도록, 마왕의 지랄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덜컥, 마왕의 몸이 멈춰 섰다.
ㅡ좋다... 어차피 내 몸은 곧 소멸하게 될 것이다. 이 몸은 완전히 망가졌고, 그나마 온힘을 다해 보호했던 신체의 일부는 크기가 너무 작... 작, 지는 않지만... 완전한 부활을 위해서는 부족한 크기임은 틀림없다... 설령 부활한다하더라도 한낱 미물이 되어 버릴지도 모르지...
그렇게 중얼거린 마왕이 자신의 두 뿔을 붙잡았다.
ㅡ그러니, 나는 가능할지 불가능할지도 모를 부활이 아니라... 너희를 저주하는데 내 남은 힘을 전부 쓰도록 하겠다.
쿠오오오오, 검붉은 아우라가 뿜어 나오는 것과 동시에, 뿌각하고 스스로의 뿔을 부러뜨린 마왕이 외쳤다.
ㅡ빌어먹을 것들이여! 너희 모두에게 저주를 내리마! 그리고 제임스인지 뭐시기하는 씨발놈의 인간이여! 너에게도 저주를 내리마! 기뻐하라! 빌어 처먹을 새끼들이여!
크하하하, 마왕이 광소하며 외쳤다.
ㅡ너희를 내가 저주하노니, 너희들의 후손은 영원토록 나와 같은 고통을 알지 못할 것이다! 영원히! 영원히 말이다! 크하, 크하하하하!
검붉은 아우라가 넘실거리며 퍼져나갔다. 퍼지고, 퍼져나가더니 마왕의 몸조차도 검붉은 아우처럼 바뀌어가며 흩어져갔다.
ㅡ...아아, 나의 딸이여... 나의 복수를 너에게 맡기, 마...
“......”
처참한 마왕의 최후에 이제 눈물을 참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마왕은 진짜, 진짜로 처단되었습니다.]
“진짜지? 이번에는 진짜 맞지? 막 가랑이만 부활해서 다시 공격당하거나 그런거 아니지?”
[그리고 마왕의 저주가 어떤 저주였는지,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그런 내 물음에, 애당초 처음에 얘기했듯이 목소리는 대답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내가 보고 있던 광경이 또다시 바뀌었다.
마왕을 처단한 용사.
마왕의 가랑이에 막타를 넣고 용사가 되어 돌아간 제임스는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가 그 나라의 공주들과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래, 공주들이다. 한명이 아니였다. 아직 시집을 가지 않았던 셋째 공주부터 시작해서 막내인 일곱째 공주까지, 아주 홀랑 다 제임스라는 놈팽이와 결혼했다.
그리고 제임스는 불구가 아니었고, 또 공주들도 불구가 아니었던 관계로 하나 둘, 제임스와 공주들 사이에서 자식들이 태어났다.
딸이였다.
그리고 딸이였다.
또 딸이였다.
딸, 딸, 딸... 이러니까 조금 그렇군. 아무튼 간에 셋째 공주부터 시작해서 넷째, 다섯째, 여섯째, 막내 공주였던 일곱째 공주까지 모두 딸을 낳았다.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왕자가 아닌 것이 아쉽지만 아직 제임스와 공주들은 젊었고 앞날도 창창했다.
얼마든지 다음 기회가 있다. 그렇게 여겼다.
그리고 또 다시 딸이 태어났다.
셋째 공주부터 시작해서 넷째, 다섯째, 여섯째, 막내 공주였던 일곱째 공주까지 모두 딸을 낳았다.
이때부터 왕가는 어라?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낳는 족족 딸만 태어나다니 엄청난 확률이 아니고 또 뭔가, 그래도 아직 젊으니까...
그리고 또 다시 딸이 태어났다.
경사롭게도 쌍둥이가 태어나, 정확하게 스무 번째 무남득녀를 거듭한 왕가는 그제서야 심각성을 깨닫고서 원인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ㅡ큰일났는데.
ㅡ뭔데?
ㅡ아, 그게 말이지. 실은 전에 마왕 녀석을 때려잡을 때 말야. 혹시 몰라서 세계수의 씨앗을 심어놨거든?
ㅡ근데 그게 뭐?
뭔지는 모르겠지만 음료의 일종으로 보이는 것을 마시고 있던 붉은 머리의 남자와 녹색 머리의 남자가 그런 대화를 나눴다. 주변에는 비슷한 것을 마시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보였다. 아무래도 술집인 것 같았다.
마왕을 때려잡은 장본인들이 태연하게, 술집에 있다는 것이 황당했지만 정작 둘은 자연스럽게 주변에 이상한 막 같은 것을 치더니 대화를 계속했다.
ㅡ근데 마왕 녀석이 마지막에 자기 뿔을 부러뜨렸는데 말이지.
ㅡ지 뿔을? 마왕이?
ㅡ그래, 지 뿔을 동강하고 부러뜨리더라고.
ㅡ와, 그건 좀 큰일인데. 그래서 그걸 왜 지금 말해?
ㅡ아니, 별일 없었거든. 주변의 숲이 날아간 것도 아니고 이상한 질병이 창궐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심한 일을 벌였던 모양이야.
그렇게 말한 녹색 머리의 남자가, 붉은 머리의 남자에게 손거울 같은 것을 건네주었다.
ㅡ뭐야 이건?
ㅡ아, 보면 알아.
붉은 머리의 남자가 미심쩍다는 듯이 거울을 바라보자, 거기에는 소녀들이 잔뜩 비쳐보였다.
소녀들이, 나신으로 잔뜩, 아주 잔뜩 한 욕조에서 꺄아꺄아거리면서 떠들법썩하게 목욕을 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소녀도 스물이 채 안되보였고 제일 어린 소녀는 인간의 일생에서 가장 귀여울 때라고도 불리는 예닐곱 정도의 아이로도 보였다.
ㅡ언제부터 이런 취향이 있었냐?
ㅡ그런거 아니거든. 난 여전히 쭉빵하고 잘록한 가슴과 허리를 사랑한다고.
ㅡ그럼 이건 뭔데?
붉은 머리의 남자의 말에 녹색 머리의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다가 말했다.
ㅡ실은, 마왕 녀석이 자기 뿔을 부러뜨리고, 그 마력으로 우리들에게 저주를 걸은 모양이야.
ㅡ...저주?
ㅡ아, 응... 그러니까.
[후손 중에서, 결코 남자가 태어나지 않는 저주. 마왕이 저희들의 선조에게 건 저주의 정체는 바로 그것 이였습니다.]
“......”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