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3화 (3/370)



〈 3화 〉3화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


그 목소리가, 눈에 비추기 시작한 이상한 것들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은 얼마 있지 않아서였다.

[저희들의 선조이자, 저희들의 부모의 세대에 일어난 일입니다.]

400년 전,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와 함께 눈에 비춘 것은 거대한 숲이였다.


그리고 그 거대한  사이로 우뚝 서있는 성이 보였다. 나는 분명  방에 있었는데, 내 눈에는 난데없이 숲과 성이 보이는 현상에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중간계, 여기서는 저희들은 인간계라고도 불리는 곳과 다른 곳. 수천 겹으로 이루어진 차원의 관문을 넘어선 미지의 땅. 마계에서 천년마다 한 번씩 태어나는 마왕이 어쩐 일에서인지 중간계에 강림하게 되었습니다.]

 말과 동시에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커다란 뿔은, 양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남자는 그런 뿔을 머리에 두르고 있었다. 단순한 장식이라고 여기고 싶었지만 뿔의 시작은 그 남자의  밑이었다. 귀 밑으로부터, 뿔이 솟아있었다.

무언가로 붙여놓은 것 같은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뿔은 아무리 봐도 남자의 몸속에서부터 솟아나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남자는 엄청난 미남이었다. 별안간 쓸데도 없어 보이는 뿔은  개나 더 달고 있으면서 엄청난 미남이었다. 괜히 배가 아파왔다. 왜 난 미남으로 태어나지 않은 건가.

그나저나 저 남자가 마왕인건가? 눈에 비추는 이상한 광경과 목소리. 전부  이상한 현상이였지만 본능적으로 목소리가 말했던 마왕이  남자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등골에서 식은땀이 날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처음에는 엄청난 미남이라 놀랐지만 보면 볼수록, 기이할 느낌이 감도는 그 모습에 아무리 봐도 저 모습이 꾸며낸 무언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마왕이 입을 열었다.

ㅡ이곳이 중간계인가.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얼굴도 잘생긴 주제에 목소리도 좋았다. 하지만 전혀 호감이 생기지 않았다. 꾸며낸 모습, 꾸며낸 목소리. 이것저것 모아다가 ‘좋은 것’들만 섞어놓은 듯한 기이한 것을 보고 듣는 기분이었다.

ㅡ훌륭하다. 마계보다 흐르는 마력은 적지만 훨씬 윤택하고 풍요로운 땅이지 않은가. 아름답구나.


그렇게 중얼거린 마왕이 움직였다. 성으로 향한 것이었다.

마왕이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성은 활기차고, 그 안의 사람들은 입가에 미소가 띄어져 있었다. 마왕이 성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성 안에서 살던 모두가 무참히 도륙됐다. 그저 손을 휘둘렀을 뿐인데, 마왕의 앞에 서있던 모두가 고기조각이 돼서 흩어져갔다.


그 광경이, 고스란히 눈에 비쳐왔다.


“우웁...”


어제 먹었던 라면사리가 구역질과 함께 올라왔다. 사람이, 남자도 여자도 아이도 노인도 마왕은 가리지 않고 살해했다. 피를, 살점을, 내장을 갈기갈기 찢어서 사방에 흩어놓았다. 그 광경이 눈에 고스란히 새겨지는 것은 뭐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어떻게 하던 간에 그 모습이 비쳐보였다.


[그리고 마왕은 무도한 살육을 저질렀습니다.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자신이 강림한 땅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왕은 모두를 죽인 것은 아니였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살려서 밖으로 도망치게 두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들에게도 마왕이 강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죠.]


그 결과,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다시 비추기 시작한 광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탄식이  밖으로 나오는 광경이었다.

나라가 일어섰다.


병사들이 창을, 방패를, 검을 손에 쥐고서 진군했다. 엄청난 장관이었다. 수천, 아니 수만 명의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은 정말로 장관이었다. 그리고 그런 병사들을 지휘하는 기사들의 모습도 보였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갑옷을 갖춰 입고 말을 타고서 호령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기사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마왕이 머무르게 된 성을 포위했다.


[그리고, 모두가 죽었습니다.]


목소리와 함께, 다시 눈에 비추기 시작한 광경이 바뀌었다. 마왕이, 자신이 지배한 성의 사람들을, 모조리 마물로 바꿔 성을 포위한 병사들과 기사들을 죽이는 모습이 눈에 비쳐보였다.

병사들은 용감했다. 마물들에게 창과 검을 휘두르고 찔렀다. 기사들은 강했다. 서슬 퍼런 검날이 마물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자르고 베었다. 그렇지만 죽었다.


마물들은 죽어서 땅에 누워도 다시 되살아났다. 주변에 흩어진 살점들과 핏물을 모아서 다시 되살아났다. 하지만 사람들은 달랐다. 마물들에게 살점이 뜯어 먹히고, 내장을 파 먹혔다. 그리고 죽어서 다시 마물로 되살아났다.

장관이란 말은 취소다. 끔찍한 살육의 광경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저희들의 선조이자 부모님들이 일어나셨습니다.]


다시 휙하고, 구역질이 치솟아 오르려는 순간 눈에 비치는 광경이 바뀌었다.

“...어?”

그 광경 속에는 여섯 명의 미남미녀들이 보였다.


어느 쪽이든 장난 아니게 아름다운 미남과 미녀들이였다. 마왕이 어딘가 섬찍한 미남이었다면 저들은 각각의 개성이 돋보이는 느낌의 미인들이였다.


붉은 머리, 푸른 머리, 녹색 머리의 남자와 금빛 머리, 은빛 머리, 검은 머리의 여자들. 평범하게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머리카락 색의 미남미녀들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하던 찰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저희들의 선조는 마왕 성으로 향했습니다.]


목소리의 말대로, 갑작스레 숲에 나타난 그들은 곧장 마왕 성으로 향했다. 그런 그들에게 마물들이 덮쳐들었지만,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마물들을 찢어 뭉갰다.

손을 휘두르면 마물들의 머리가 파편처럼 흩어졌다.


그와 같은 광경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덮쳐오는 마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맨손으로 패죽이는 모습에 보다 못해서 입이 열렸다.

“뭐야? 지들이 육천왕이야?”

고작 여섯 명이.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들을 잡아 뜯던 마물들을 그저 손을 휘둘러가며 죽여가는 광경에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죽어나가는 것이 마물들이 아니었다면 마왕과 사천왕, 아니 육천왕 딱  꼴이었다.

인간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저들은 아마 마왕의 적인 모양이지만 말이다.

[마왕성에 도착한 선조분들께서는 그곳에 사는 온갖 마물들을 무찌르고]


마침내 마왕성에 도착한 그들은 여태까지의 귀찮아보이던 모습을 벗어던지고서 진지한 얼굴로 주변을 경계했다. 어째서 여태까지는 귀찮아보였느냐고 물어도 내가 대답할  있는 것은 이것 밖에 없었다. 한 손으로 마물을 죽이면서 다른 손으로 귀를 후비적거리는 모습이 보였을 뿐이라고.


그래도 마왕성에 도착해서 그런지 진지해 보이는 모습에 그래도 역시 마왕성은 마왕성이구나 싶었다.

여태껏 나왔던 마물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무시무시해 보이는 마물들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온몸에 팔과 손이 달려있는 마물들이 포효하며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수백 개의 눈을 가진 마물들이  눈에 새겨져있는 제각각의 마법을 쏟아 부었다. 온몸에서 극독을 게워내는 마물들이 스스로 살을 찢어 피를 뿜어 보냈다.

그리고 모두 한방에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마왕성의 마물이고 뭐고 숲에 돌아다니던 마물들과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죽임을 당해버렸다.


대체 어디에 진지해질 필요가 있었던가, 그런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아니, 나도 안다. 그 마물들이 기사들을 가볍게 찢어버리고, 말째로 뭉개 죽이는 숲의 괴물들보다 훨씬 강한 것 정도는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그래도, 한방에 죽어버리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거다.

그때였다.

ㅡ호오, 그 녀석들을 한방에 죽여 버리다니... 너희는 대체 누구지?

마왕이 나타났다.

고오오...


 숲속에 강림했을 때보다 훨씬 무시무시해 보이는 마왕의 주변으로 검붉은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아마 인간들을 죽이면서 파워 업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전보다 훨씬 강해 보인다는 얘기였다.


아무리 이제까지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쾌진격을 했던 그들이라고는 하지만 저 마왕에게서는 고전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다.

ㅡ그건 알아서 뭐하게?


ㅡ귀찮게 기어 나오고 지랄이야.


ㅡ너 때문에 모처럼의 유희가  망했잖아. 책임질꺼냐? 어?


여태까지 한마디도 않고 무표정하게 마물들을 죽여 나가던 그들이 처음으로 분노를 드러내며 그렇게 말하고서는 마왕이 미처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붉은 머리, 푸른 머리, 녹색 머리의 미남들이 달려나갔다.

ㅡ불이여, 영겁을 태우는 시초의 불꽃이여.

ㅡ물이여, 영원토록 흘러가는 태초의 푸른 물이여.

ㅡ대지여. 영원에 견뎌내는 시작의 땅이여.


그와 동시에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노래하듯이, 낭랑한 목소리가 마왕성에 울리고, 그런 그들을 보자 마왕이 당황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ㅡ너희들은 설마...!?


하지만 미처 마왕이 움직이기 전에, 남자들의 목소리, 주문이 먼저 끝맺어졌다.


ㅡ저 개새끼를 영원토록 불태우소서.


ㅡ저 망할 새끼의 주둥이를 막으소서.

ㅡ저 씹새끼의 다리를 묶으소서.

콰아아앙!


불꽃이 마왕의 몸을 불태웠다. 순식간에 마왕의 살점이 타올라, 녹아내렸다가 재생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런 불꽃에 마왕이 입을 열려는 순간, 불꽃이 잦아들고 곧바로 물이 마왕의 입을 틀어막았다.


ㅡ으으읍!


입이 막혀서 뭔가 하려던 것이 막힌 마왕이 몸을 피하려고 하자 이번에는 땅이 치솟으면서 도망치려던 마왕의 다리를 묶었다. 그리고 다시, 불꽃이 그런 마왕의 몸을 불태웠다.


ㅡ크아아아! 너, 너희들...! 중간계의 수호자...! 드래곤들이구나!

불꽃과 함께 입을 막고 있던 물이 증발하자 비명과 함께 마왕이 그렇게 외쳤다. 드래곤, 판타지에서 흔하게 나오는 강함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들.

마물들을 무슨 벌레들을 짓이기듯이 잡아대던 남녀의 정체가 드래곤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어느 정도 납득이 가기 시작했다.

ㅡ그래서? 그걸 이제 와서 알아서 뭐하게?


ㅡ아니면 뭐에요? 그런 짓을 저질러놓고 우리가 가만히 있기를 바란거에요?

ㅡ...그러길래 왜 나왔어?

다시 몸을 불태우기 시작하는 불꽃을 옷째로 벗어던지며 짐승처럼 변해버린 몸을 드러내며 불로부터 뛰쳐나온 마왕의 앞에, 그렇게 말하며 금빛 머리, 은빛 머리, 검은 머리의 여자들이 막아섰다.


ㅡ으읏!?


앞을 막아선 여자들을 보고서 주춤했던 마왕이였지만, 곧바로 칼날처럼 날카로운 손톱으로 그런 여자들을 공격했다.

ㅡ우선, 저주를 내릴게. 괜히 올라왔다고 울부짖으면서 후회할 저주를.

ㅡ그럼 저는 가볍게 두드려줄까요. 주먹으로요.

ㅡ...그럼 나는 둘을 보조할게.


콰직!


검은 머리카락의 여자가 땅을 박찼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마왕의 손톱을 피하고 안으로 파고들더니, 그대로 주먹을 꽂아 넣었다.

ㅡ크헉!


주먹으로 얻어맞고 배에 구멍이 뚫린 마왕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런 마왕을 향해, 은빛 머리카락의 여자가 손가락을 겨눴다.


ㅡ...쾅~

콰과과곽!


하늘에서 생겨난 무수한 얼음조각들이 그런 여자의 신호에 맞춰서 마왕을 덮쳤다. 마왕이 날아드는 얼음조각에 황급하게 몸을 보호했지만 얼음조각들은 그런 마왕의 몸을 찢고, 가르고, 난자했다.

ㅡ크아아아!!

결국 버티다 못해 추락한 마왕이 신음하며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때였다. 금빛 머리카락의 여자가 그런 마왕의 앞에 섰다.

ㅡ자, 그럼 저주를 내려줄게.


그리고, 밟았다.

마왕의 가랑이 사이를.

으직, 하고.


“으아...”

몹쓸 것을 본 내 눈이 아파왔다. 괜히 내 가랑이 사이도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었고. 보는 것만으로도 이러는데 직접 밟힌 마왕은 어땠을지 알만 했다. 그것도, 주먹으로 마왕의 배에 구멍을 내는 여자와, 아마도 동급으로 강한 여자가 그곳을 밟아 뭉갰으니 말이다.

어마어마한 비명소리가, 귀를 울려댔다. 하지만 발광하며 날뛰는 마왕은 그런 여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콰직콰직!

이미 다른 주문들을 완성한 남녀, 드래곤들이 그런 마왕의 몸에 온갖 마법을 때려박으면서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마왕에게, 금빛 머리카락의 여자가 잘근잘근 마왕의 가랑이 사이를 짓이기면서 말했다.


ㅡ자, 마왕. 내  잘 들어. 이곳은, 여기, 중간계는... 태고부터 이어져온 맹약에 따라서, 우리들이 수호하는 땅이야. 너희같이 지들 잘난 줄만 아는 벌레들이 머리를 기웃거릴만한, 그런 땅이 아니라고.

ㅡ크, 크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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