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5)

요즘 따라 글이 잘 안 써져서 그런지 새벽4시까지 글을 쓰고 2시간 정도 잠을 청하고, 출근을 하니 제 정신이 아닌 듯하다.

미어터지는 출근길 지하철 안으로 들어가 재빨리 구석의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 주변을 스윽 살핀다.

이렇게 더운 여름날 근처에 땀내 나는 남정네들만 득시글거리면 출근길부터 기분을 잡치기 때문이다. 그나마 예쁘장한 여자들 한 둘 정도만 있어도 출근길의 피로도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그런 느낌은 비단 나만이 느끼는 건 아닐 테지.

재빠른 시선처리를 하며 주위를 스캔해 본다. 오늘은 어떤 예쁜 아가씨가 있나..한 명, 두 명, 세 명, 아....예쁜 아가씨들이 보이지 않는다. 삼일동안 마주친 출근길의 포니테일을 하고 기분 좋은 샴푸냄새를 풍기던 20대 초반의 그 아가씨조차 보이지 않다니..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한 명의 여자, 30대 중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지나치게 꾸밈없이 수수해 보이는 여자.. 그 여자가 지금 내가 볼 수 있는 곳에서 그나마 여성스런 매력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여자였다.

여자는 출근길의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듯 스마트폰을 들고 무척이나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뭘 저리 열심히 보지..’

모든 출근길의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보긴 하지만 여자는 그 사람들 중에서도 유독 집중해서 화면을 보고 있는 듯 했고, 난 호기심에 화면을 슬쩍 훔쳐봤다.

‘글인가...엄청 빡빡하게 무언가 화면 안에 잔뜩 적혀 있는데...’

기사라고 하기엔 화면 전체가 글로 가득해 소설인 듯 해보였고, 난 조금 더 여자의 가까이 접근해 무슨 글을 읽고 있나 다시 한 번 훔쳐봤다.

그런데...세상에 이런 일이.. 여자는 내가 쓴 글을 읽고 있었다.

난 순간 너무나 놀라 소리를 지를 뻔 했다. 공공장소에서 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있다니..

그것도 출근길 지하철에서! 내 글은 그냥 글이 아닌 야설인데....!

내가 잘못 본 건 아닌 가 다시 한 번 화면을 들여다봤지만 분명 내가 쓴 글이었다. 그것도 오늘 새벽에 완성해서 올린 따끈따끈한 신작..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아는 척을 하면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겠지?’

머릿속엔 오만가지 생각이 맴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생각 중 가장 미친 생각으로 보이는 아는 척을 하고 싶었다.

온라인상에서야 내 글에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도 있고 쪽지로 응원을 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실제로 이렇게 내 글을 이렇게 보고 있는 사람을 오프라인으로 보는 경험은 정말 놀랍고 신기했다.

더군다나 저런 30대 중후반의 무척이나 평범하고 수수해보이는 여자가 내 글을 읽고 있다니..

도저히 모른 척 지나가면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말하지...? 어.. 제가 이 글 쓴 작가입니다. 아니 글 쓴 사람입니다...하아 너무 이상한데 진짜 미친놈으로 보이는 거 아냐? 나라도 못 믿을 거 같은데...’

여자가 언제 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난 여자의 목적지를 모르는 상황이었고 애가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여자가 내려 버리면 생전 처음으로 오프라인에 있는 내 팬을 그냥 보내는 상황인데 어떻게 말을 붙여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니..

살면서 이렇게 내가 바보 같다고 느껴지는 건 정말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안 좋은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는다고 하던가, 지하철문이 열리며 여자는 보고 있던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발을 내밀고 있었다.

“저..저기요..!!”

어..미친 것 같다. 진심으로.. 무슨 생각인지 그런 것 따윈 없었다. 여자가 내리는 걸 보고 무작정 같이 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내렸는데 내리고 나니 내 판단이 어이가 없었다.

“네??”

이 사람은 뭐지? 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여자..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된다. 무슨 말이라도..!

그런데 그런 내 마음과 달리 내 입에선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이겠다.

여자는 살짝 인상이 찡그러지며 도대체 이 사람이 왜 이럴까 라는 표정으로 날 잠시 바라보더니 뒤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이렇게 끝인가..오프라인에서 내 팬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는 기회가...’

지각을 무릅쓰고 지하철에서 내리기까지 했는데 이렇게 끝이라니..이럴 순 없다.

난 다시 용기를 내어 여자에게 다가갔고, 여자는 조금 신경질적인 눈빛으로 날 노려봤다. 왜 이렇게 자기를 귀찮게 하느냐는 그런 표정으로..

“아..죄송합니다. 제가 아침 출근길부터 자꾸 귀찮게 해서..”

“......”

“저..정신 나간 놈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아니 정신 나갔다고 밖에 생각이 안 되겠네요. 그런데 꼭 말씀드리고 싶어서..”

“하아..무슨 말인지 대체 모르겠네요...”

“네..저도 지금 횡설수설 하고 있어서..저도 무슨 말을 하는지..”

“그럼..나중에 얘기하시죠..”

“저..저 잠깐만요!!”

“아직 할 말이 있으세요?”

“제..제가 그 글 쓴 사람이에요!”

“네???”

여자는 무척이나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생각한 것처럼 나를 정신 나간 놈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그..글 제가 썼다구요..”

“제 휴대폰 훔쳐보셨어요??”

“아...그건 죄송합니다. 볼 생각은 없었는데..너무 열심히 보고 계셔서 궁금해서..”

“하아...좋아요. 그건 그렇다고 치고..그 글 쓴 작가라구요? 제가 그걸 어떻게 믿죠?”

“어..음..잠시만요...”

여자는 그럼 그렇지 구라치다 걸려서 당황스럽지? 라는 표정으로 날 비웃고 있었고, 난 여자가 그러든가 말든가 신경도 쓰지 않고 휴대폰을 꺼내 들어 늘 가는 사이트에 로그인을 했다.

그리곤 여자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내가 구라를 치고 있는 거라 자신만만하던 여자의 표정은 내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점점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어느 순간 내 휴대폰을 빼앗아서 놀라운 표정으로 하나하나 살펴본다.

“어머..이건 내가 보낸 건데...”

“무슨...?”

“저..정말 맞으시네요..”

여자는 무척이나 당황한 말투로 휴대폰을 돌려줬고, 휴대폰 화면엔 며칠 전 나에게 왔던 쪽지가 화면에 떠 있었다.

-정말 잘 읽고 있어요.. 여자 작가님이신가요? 어쩜 이리 여자 심리를 잘....어쨌든 무척이나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려요..

평소 쪽지는 그리 자주 오지 않아 분명히 내가 기억하는 내용이었고 답장을 보낸 것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쪽지를 보낸 사람이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이라니..

정말 세상 참 좁다더니.. 어떻게 이렇게 만날 수가..

여자는 아까 조금은 쌀쌀맞던 태도와 전혀 달리 얼굴이 발그레하게 붉어져서 수줍은 여고생 같은 모습으로 어쩔 줄을 몰라 했고, 나 또한 그저 이 놀라운 상황에 눈만 그저 꿈뻑 하며 어리버리 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건 내가 아닌 여자였다.

“저..작가님 정말 죄송한데 제가 지금 출근해야 돼서..”

“아..아..네에..가..가보셔야죠...”

그제야 나도 출근길이 늦었다는 생각에 시계를 들여다봤다. 8시50분, 9시까지는 택시를 타고 가야 도착할 수 있을까 말까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여자를 보낸다는 게 무척이나 아쉽다.

난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용기를 짜내서 마지막으로 말을 꺼냈다.

“저..정말 실례가 안 된다면 연락처를 좀.. 이렇게 보내드리려니 너무 아쉬워서..”

처음 본 사람에게 부탁하는 무례한 요청, 하지만 거절 당한다고해도 상관없었다. 이렇게 한 마디 말도 못 하고 보낸다면 그게 더 아쉬울 테니까..

여자는 내 예상대로 무척이나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지.. 아무리 내가 그 글 쓴 사람이 맞다고 해도 이렇게 처음 본 사람에게 연락처를 준다는 건 힘든 일이겠지..

“휴대폰 좀 주시겠어요?”

“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여자의 손은 내 휴대폰을 요구하고 있었고, 엉겁결에 휴대폰을 넘겨주자 본인의 연락처를 누르곤 전화를 건 후 다시 돌려주었다.

아쉬움에 그냥 한 번 꺼낸 말이었는데 정말 연락처를 주다니...

“제 이름은 민영이에요..최민영..그럼 출근길이 늦어서 전 이만..”

여자는 나에게 꾸벅 인사를 건네고 빠른 걸음으로 종종 사라졌고, 난 한참을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후에야 정신이 다시 돌아오고 지각하겠구나라는 생각에 서둘러 움직였다.

그리고 결과는 당연히 지각.. 회사에 도착하니 이미 9시에서 10분이 지나 있었다. 지각이라면 학을 떼는 팀장에게 출근하자마자 회의실로 붙들려가 30분 동안 일장연설을 들으며 털리고 있었지만 내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민영...민영이라..’

“야!! 야!!”

“네? 어..네!”

“너 내 말 듣고는 있냐?”

“네..네 팀장님 그럼요. 다만 제가 잠을 잘 못자서 지금 정신이..”

“하아...이 노답..넌 그 잠 제대로 못 잔다는 핑계 언제까지 댈래? 어제도 8시에 퇴근했다매~!! 이놈아 난 어제 외근하고 11시에 들어갔어~ 근데 네가 더 피곤해?”

“네..저 죄송합니다..”

“아오..골이야..알았어 나가봐”

“넵...”

“내 저 놈을 언젠가....”

팀장은 마치 당장이라도 헐크로 변할 것처럼 씩씩대고 있었지만, 지금 내 관심은 오로지 민영에게 쏠려있었기에 난 기계처럼 고개를 90도로 꾸벅 숙이고 회의실을 나와 내 자리에 앉아 휴대폰 속 민영의 연락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먼저 연락하면 엄청 찌질해 보이겠지...? 하아..근데 먼저 연락하고 싶다...’

사심.. 사심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 물론 민영의 외모가 나쁘진 않았지만 그냥 전형적인 30대 중반 정도의 평범한 여자의 외모였다. 몸매는 자세히 보지 못해서 모르겠고, 민영이 처녀인지 유부녀인지 모르겠지만 만약 유부녀라고 한다면 외모는 관리를 잘한 편이니 가산점을 줄만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고 난 그저 이 사람을 한 번 더 제대로 만나보고 싶었다. 오늘 아침의 만남은 정말 너무나 짧았고, 내 글을 읽는 사람과 다시 한 번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그것도 남자가 아닌 야설을 읽는 여자라면..

오전 시간을 어떻게 보냈나 싶을 정도로 민영의 연락만 기다리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고, 난 점점 안달이 났다.

‘이 정도면 충분히 시간이 지난 거 같은데 연락해볼까....?’

그 순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카톡이 날아왔다.

‘혹시....?’

그 혹시는 민영이 맞았다.

-저 아침에 민영이에요.

-아..네.. 카톡은 친구 추가를 아직 안 해서..모르는 사람으로 와서 조금 놀랐네요..“

-아..그러셨구나..식사는 하셨어요?

-네..좀 전에..민영씨는..?

-저도 좀 전에 먹었어요. 아침엔 너무 경황이 없어서..죄송했어요..

-네? 아니 괜찮아요

-아니에요..제가 무례하게 이상한 사람으로 몰고 간 거 같아서..

-아닙니다. 저라도 이상하게 생각했을 거예요.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뜬금없이 당신이 읽던 글 쓴 사람이라고 한다면..저라도 황당했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고맙구요..

-넵..!

-저 그런데 실례가 안 되신다면 성함이..그냥 작가님이라고 저장해서..

-아..정수입니다. 이정수

-네에..그럼 수고하시고..다시 연락드릴게요..

-네에..민영씨두요..

-네. 고맙습니다..

두근거림,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었다.

늘 식후 졸음이 밀려오던 점심시간이었지만 민영과 카톡을 하며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갔고 다시 연락하겠다는 민영의 말이 몹시도 아쉬웠다.

더 더 이야기 하고 싶은데..

그리고 저녁..벌써 저녁이다. 오늘 하루 종일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나 모르겠다.

일은 제대로 한 건지..하루 종일 멍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하루가 그냥 지나가버렸다.

“퇴근 안 해? 벌써 9시야. 그러다 또 내일 지각하려고?”

“네? 아.. 네..아닙니다”

“됐고, 크게 할 일 없으면 그만 퇴근해봐. 내일도 하루 종일 멍 때리고 그렇게 있지 말고”

난 팀장의 말에 뜨끔해 자동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미안한건 아냐? 회사 와서 놀다 갈 거 아니면 내일부턴 정신 좀 차리고 일하자 응?”

“넵....”

“나 먼저 퇴근한다. 그만 정리하고 퇴근해”

“네..”

홀로 남은 사무실, 주변을 둘러보니 언제 다들 퇴근했는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 가자..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첫 페이지를 썼다 지웠다 결국 꼴랑 5줄 밖에 적지 못한 보고서를 저장하려다 지워버리고,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서 사무실을 나왔다.

“아..술이나 한 잔 했으면...”

회사에서 빠져 나오며 휴대폰을 꺼내 연락처를 뒤적여 본다. 가장 최근 연락한 친구놈이 5개월 전이다. 마지막 연락 했을 때 곧 있으면 애기 돌잔치 한다고 오라고 했었는데 결국 그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그런데 무슨 염치로 연락을 하랴..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버스에 올라탔다. 오늘은 왠지 지하철보다 버스로 퇴근하고 싶은 그런 날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밤거리나 구경하면서..

-카톡

‘누구지?’

이 시간에 연락 올 사람이 없을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혹시 팀장인가라는 생각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민영이라는 글자에 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세어 나왔다.

-퇴근하셨어요?

-하는 중이에요~

-늦으시네요..전 집인데..오늘도 글이 늦으시나 궁금해서요..어제도 기다리다 늦게 잠들었거든요..

-아...이런..죄송하네요..제가 글 쓰는 주기가 들쭉날쭉해서..

-아니에요..작가님이 죄송하실 일은 아니죠. 늦게 연재하셔도 괜찮아요. 그냥 오늘은 언제쯤 올라오나 궁금해서..

-조금 써놓긴 했는데..이제 퇴근하다보니 늦을 거 같은데..

-아...그럼 오늘은 일찍 자야겠네요..

-네..그러심이..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 중에 피곤하실텐데 괜히 귀찮게 해드려 죄송해요..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아니에요. 귀찮지는..저 민영씨..

-네??

-이런 말하면 엄청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긴 하는데..우리 한 번 더 만날 수 있을까요? 오늘 아침에 너무 짧은 시간이라 그런지 자꾸 아쉬움이 남아서 솔직히 하루 종일 일이 집중이 안됐거든요..

-아...흐음..잠시만요

-네..

-혹시 내일 시간 괜찮으세요? 내일 낮에 시간 괜찮을 거 같은데.. 토요일도 혹시 일하시나요?

-아뇨..괜찮아요.

-그럼 내일 낮에 보기로 하죠. 제가 오전 중에 연락드릴게요

-네..알겠습니다

정말 어렵게 꺼낸 말이었는데 생각보다 흔쾌히 수락해준 민영의 대답을 듣고서 난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됐어..”

고작 그 말을 꺼내면서 긴장을 했던 것인지 잔뜩 경직되어 있던 몸은 민영의 대답을 듣고 힘이 쭉 풀리며 그대로 난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나 쿨쿨 잤던 걸까, 이쯤이면 도착할 때가 됐을텐데 라는 생각을 하며 눈을 뜨니 이미 목적지는 한참을 지나 있었다.

“이런...”

버스가 정거장에 멈춰서고 반대편으로 건너가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니 평소 도착시간보다 30분을 초과해 벌써 10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이러다 오늘도 또 늦게 자겠네...오늘 한 편은 올려놓고 자야 되는데...”

민영이 기다릴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집에 오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고 난 컴퓨터를 켜고 바로 타이핑을 시작했다. 어차피 스토리는 미리 짜둔 여유분이 꽤나 있으니..생각해 둔 걸 쓰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역시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어제도 거의 5시간 넘게 매달려서 겨우 한 편을 올려놓고 잤는데 하루가 지났다고 글이 갑자기 잘 써질 리가 없었다.

조금 쓰다가 막히고, 조금 쓰다가 막히고가 반복되며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아..돌겠네....”

이미 1시가 넘어가고 있는 시계, 꼴랑 2페이지를 쓰는데 거의 2시간 반 가량을 허비한 것이다.

이렇게 쓰다가는 오늘 밤을 꼴딱 세더라도 다 쓰고 올리고 잘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글을 쓰기 위해 샤워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다시 의자에 앉았다.

씻고 나와서 개운해서 그런 것일까, 아까보다 조금 더 막힘없이 써지기 시작한다. 딱히 걸림돌 없이 진행이 되고 있고 그렇게 거슬리는 표현들도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 속도라면 4시 전에는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한 번 안 풀리면 10시간이고 안 써지다가도 한 번 써지면 2시간도 안 돼서 완성이 되는 것이 글이란 놈인지 다시 앉아서 쓰기 시작한지 2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에 글이 거의 완성이 되어가고 있었다.

시간은 새벽 3시를 조금 넘은 시간, 난 꼼꼼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훑어본 다음 글을 업로드 했다.

“휴우..됐다..이 정도면 최선을 다 한 거야...”

난 괜히 혼자 뿌듯한 마음에 올린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을 했다. 혹시라도 이상한 표현이나 오타가 있을까봐..

그리고 새로 고침을 누르는데 벌써 댓글이 하나 달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민영의 닉네임 ‘가을향기’로 달려 있는 댓글,

-오늘은 어제보다 일찍 올리셨네요..잘 보고 갈게요..

그렇게 늦게 올라 올 테니 일찍 자라고 했는데 아직 안 잔 모양이었다.

-아직 안자요?

-네...잠이 잘 안 와서..

-우리 내일 보기로 했는데 일찍 자야죠..

-네..이제 자야죠. 작가님도 어서 자요..

-네..

-아..그리고 항상 좋은 글 감사해요..오늘 글도 좋네요...다 읽고 얼른 잘 테니..먼저 자요..

-네..얼른 보고 자요..

웃음..왜 그런지 모르겠다. 민영을 생각하고 있으면 바보처럼 그냥 웃음이 세어 나왔다. 정말 짧은 시간 동안 잠깐 마주친 사람인데 그 사람을 생각하면 왜 이리 웃음이 나는 걸까..

내 글을 좋아해주는 사람이라 그런 것일까, 아니면 정말 아주 작지만 사심이 있어서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맘을 아직 잘 모르겠다. 내일 만나보면 아마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뭐..아무래도 상관없지..이제 그만 정말 자야겠다.

이러다간 내일 도저히 12시 전에 일어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깜깜한 방 안을 감싸고도는 적막감..

자기 전의 이 고요한 분위기가 좋다. 그리고 레드썬 마법을 부리듯 내 의식은 어느새 잠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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