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 (55/65)

 #2.

 "헌?"

 "…네, 카프린."

 카프린은 반대편 팔을 들어 올려 머리를 감싸쥐었다. 그의 목소리는 믿을 수

 없게도 떨려 나오고 있었다. 과거엔 그다지도 쾌활한 목소리였는데….  

 헌은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여 카프린의 작은 유두를 혀로 핥아주었다. 몇 번이고 

 계속해서 정성스럽게 애무하는 소년의 혀에, 카프린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입을 열었다.

 "…'나'는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

 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방금 전 알라우네의 정신 공격에 의해 심한 손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존재는

 거의 없다. 설사 불노 불사의 전투종족인 하이랜더라도 그건 불가능할 것이다. 

 유난히 강한 마법에 대한 방어력, 이상할 정도로 넘쳐흐르는 생명력,

 그리고 카프린의 검은 머리칼과 피부는 이미 정답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사내가 끝까지 그 답을 피하려고 하는 것은….

 카프린의 손이 소년의 입술을 더듬었다. 그의 다른 손은 이미 깊숙한 곳에 닿아

 축축한 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다시 가빠지는 헌의 숨소리를 들으며, 카프린은 

 혼잣말인 듯 중얼거렸다.

 "난 정말 블랙 드래건인 건가…. 확실히 아까의 알라우네와 눈을 마주쳤을 때

 알 수 있었지. 그녀는 무의식 중에 내게 말해주고 있었어."

 카프린의 손길이 점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에 따라 소년의 몸도 움직이는 정도가 

 심해졌다. 급기야 소년은 다시금 카프린에게 자신을 맡겨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카프린은 악사가 되었다.  

 "…흑월에 맡을 수 있는 밤의 향기…그 향기는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유혹…. 난 알라우네를 알고 있어, 나와 같은 동류이니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난 터져버릴 듯한 광기로 상대를 대하고, 알라우네는 녹아버릴 듯한

 요염함으로 상대를 대한다는 거지."

 카프린은 문득 손을 멈추고는 의아해하는 소년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자신을 갈구하는 보라빛 눈동자가 그의 뇌리 깊숙한 곳에 들어왔다.

 "내가 왜 이렇게 갈등하고 있는지 넌 그 이유를 알고 있겠지…

 넌 무척 영리하니까."

 "……."

 헌은 말없이 얼굴을 붉히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어지는

 사내의 거센 공격에 처음 만난 그날 밤처럼 달아올랐다.

 "…드래건은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영혼의 짝 따윈

 필요없기 때문이야……."

 "…앗…으음…드래건은…후우 폴리모프한 상태를 하나의 연극으로…

아…본다면서요…."

 카프린은 두 번째로 동작을 멈추었다. 

 "…그래. 특정한 가면을 쓰고 그 가면에 맞추어 거짓된 행동을 하는 거지.

 그것도 자신을 속일 정도로 진실하게 말이야."

 그런 사내의 목에 자신의 팔을 걸며, 헌은 그를 자신의 몸 위로 이끌었다. 

 "…그럼 날 당신의 연극 속에 집어 넣어줘요, 당신의 소울 페어로써." 

 동굴의 어둠이 그들의 어깨 위에 내렸다. 이내 소리마저 그 어둠 속에 파묻혀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은 잠시 그 둘에게서 손을 떼었다.

※     ※     ※

 레일리스는 날개를 접고 공손한 태도로 자신의 앞에 내려선 존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엔 존경과 공포가 같이 서려 있었다. 문득 그녀의 앞에 서있는 존재가

 말을 시작했다.

 [복수는 끝마치지 못한 것 같구나, 아이야.]

 […죄송합니다, 어머니 릴리스 님.]

 그렇다. 뱀의 비늘로 덮여 은색으로 빛나는 매끈한 다리의 소유자,

 그 날개는 한치의 주름도 없이 펼쳐져 밤의 어둠을 소화하고,

 가느다란 팔은 약 60명 정도 되는 자식들을 받아내었다. 

 자신의 다리 곡선만 가지고도 충분히 하늘을 유혹할 수 있는 존재,

 세상 뭇 남성들로부터 두려움과 멸시와 연모와 존경을 한데 받는 존재.

 서큐부스의 여왕 릴리스, 그녀가 그녀 앞에 서있는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의 60번 째 자식을 바라보며 붉은 입술을 움직였다.

 같은 종속인 그녀마저도 홀려버릴 것 같은 미소다.

 레일리스는 자신의 염력을 암암리에 모으며, 자신의 형상을 이루고 있는 그 힘의

 분배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자칫하면 자신의 존재가 위험해지는 것이었다.

 그 상태로 레일리스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몇 번이나 시도해보았지만 그는 곧 알아챘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어머니 릴리스 님. 그의 곁에 붙어있는 블랙 드래건의 영향으로

 그의 정신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 힘들어졌지만, 때문에 그의 정신 세계는

 상당히 방어력이 약해졌을 겁니다. 그러니….]

 그녀의 어머니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검은 색도 아니고 은색도 아닌

 머리칼이 휘날리며 살짝 남은 하현달의 조각들과 멋진 조화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것은 강한 유혹이 되어 레일리스의 형체를 약간 위협했다.

 다행이 릴리스는 곧 자신의 그런 행동을 멈추고는 입을 열었다.    

 [아직 어리구나, 아이야. 그의 은빛, 아니 투명한 무색에 가까운 눈동자가

 마음에 걸리지 않더냐….]

 레일리스는 어머니의 말투가 은근히 꾸짖는 투에 가깝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한층 더 조심스러운 태도로 물었다.

 […그 말씀은?]

 릴리스는 그런 그녀의 태도를 보더니 그녀답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는 조용한 태도로 자신의 60번 째 딸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해주기 시작했다.

※     ※     ※

 지지, 아니 지즈는 녹색으로 빛나는 네 장의 날개를 갈무리하며

 서서히 몸을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아직은 그를 돌봐주어야 했다. 아직까지는…. 

 로드에게서 연락이 올 때까지는 그가 다치지 않도록, 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리고 그가 너무 빨리 붕괴하지 않도록 지켜주어야 했다. 

 지즈는 자신의 몸을 한번 살펴보았다. 별 무리는 오지 않았다. 정령계에서

 소환되어 여태까지 꽤 많은 시간을 소환주의 정신력이 없이도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로드가 약속한 폴리모프의 법. 정령계는 날로 약해져가고 있었으며,

 정령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었다.

 풍계의 경우는 드물게도 풍혼(風魂)을 지닌 실프가 나타나 진을 대체하고

 있었지만, 다른 정령계는….

 그래, 알고 있다. 펜릴, 그대가 왜 조급해 하는 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대가 바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령계 안에서의 균형과 섭리,

 파천(破天)의 힘을 가지고 냉철한 송곳니의 판결을 내리는 그대도

 이번만은 날 막지 못하리.

 지즈는 충분히 몸을 줄였다고 생각될 때에 그것을 멈추었다.

 그리고 나뭇가지에 올라앉아 조심스럽게 다른 새들이 하듯 깃털을 손질했다. 

 잠시 후 녹색의 깃털에서 은은히 벼락을 뿌려대는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지즈는 지지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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