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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장 : 익시온의 수레바퀴 (30/65)

외장 : 익시온의 수레바퀴

 그래, 그래. 좀 기다려 보려무나.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그렇지, 생각났다.

 그 여행자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인간은 아니었단다. 영원한 생명을

 선사받은 하이랜더였지. 응? 그게 뭐냐고? 허허, 그건 불노불사의 전투종족을

 가리키는 말이란다. 

 그네들은 영원한 생명을 선사받은 대신 영원히 투쟁 속에서 살아야 하지.

 그들에겐 약점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심장과 목이 분리되면 죽는다는

 것이었단다. 게다가 동족의 손에 죽을 경우엔 자신의 힘과 기술, 지식은

 고스란히 자기를 죽인 자에게 흡수되어버리지.      

 그러니 그들은 서로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서로를 죽여야 했단다.

 그네들 가운데서 전해져 내려오는 말 중 이런 말이 있지.

 '오직 그 하나만이 존재할 뿐.'

 이보다 더 그들의 삶의 방식을 잘 설명한 말은 없을거다.

 응? 재미없다고? 허허, 좀만 기다려 보거라. 이제 곧 그 여행자에 대한 얘기가

 나오니 말이다. 여하튼 그런 이유로 해서 하이랜더들은 항상 투쟁 속에서

 살아왔고,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하는 생활을 해왔지.

 그러다 보니 그들은 저절로 어느 누구도 사랑할 수 없고, 어느 누구한테도

 사랑받을 수 없는 종족이 되어버렸단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영원한 생명과

 젊음, 그리고 넘쳐나는 투쟁본능을 감당할 수 있는 종족은 없으니까 말이다.

 드래건? 허허, 샬라가 그 종족을 알고 있었다니…. 그래, 네 말이 맞다.

 드래건이라면 그들 종족을 감당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드래건들은 그 자체로

 완전한 종족이란다. 그들은 결코 무리를 짓는 법이 없고, 짝을 짓는 법도 없지.

 그렇게 해서 어떻게 새끼를 낳느냐고? 글쎄다, 그건 이 할아버지도 모르겠구나.

 어쨌든 그 여행자는 그런 자기네들 종족의 특성이 지쳐버리고 말았단다.

 솔직히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며 보내야 하는 무수한 시간들이 엄청난 무게로

 다가왔겠지. 그래서 그는 여행을 시작했던 것이란다. 

 오랜 세월 동안 그는 이 세계를 돌아다녔지. 그러면서 무수히 많은 직업을

 가졌단다. 도적, 용병, 해결사, 전사, 마법사, 선원, 신관…. 그가 마지막에

 가졌던 직업은 바로 시인이었지.

 왜 하필 시인이었냐고? 글쎄, 아마도 시인이란 직업이 세상 모든 사물들과

 대화할 수 있는 직업이어서가 아닐까. 샬라 너도 네가 키우는 카이의 감정을

 알아채지 않니? 바로 그런 것을 그는 느끼고 싶어했던 걸꺼다.

 아무튼 시인이 된 그는 자신이 그토록 찾아왔던 질문의 답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단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 달려갔지….

 ※     ※     ※

 "그것이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솔리아드 레넬."

 하얀 수염이 인상적인 대신관은 수염 속에 감추어진 입술에 미소를 띄우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한번 해보십시오. 난 당신이 당신 종족의 운명을 바꾸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난 단지 저 자신이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대신관님."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동족 전체에게 도움을 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솔리아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향해 대신관은 손을 내밀었고,

 그는 서투르게 그 손을 잡았다. 아직도 이 '악수'라 불리는 인간의 관습은

 그에게 어색하기만 하다. 그리고 대신관은 그의 가슴에 자신의 손을 갖다대며

 축복을 해주었다. 

 "그 분의 뜻이 당신이 가는 길 끝에 있기를 빕니다."

 "갑사합니다. 하지만 대신관님, 그분의 뜻을 발견하지 못 한다면

 전 엔들레스 홀이라도 들어가 그분의 멱살을 쥐어 잡고 물을 것입니다."

 솔리아드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려 신전을 나섰다. 신전의 정문을 벗어나던

 그는 갑자기 몸을 돌려 신전 정문으로 눈을 돌렸다. 그곳에는 독특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회색빛이 도는 구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일곱 명의 날개달린

 인간들이 서있는 모습이었다. 

 저 날개달린 인간을 '천사'라고 부른다지. 회색빛 구 왼편에 서있는 것이 암천사

 사마엘, 오른편에 서있는 것이 광천사 루시펠…그리고 그들 사이에 있는 회색빛의

 존재는 바로 이 세계의 창조신 엘시타이.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신전을 빠져나가는 솔리아드의 그림자를,

 대신관은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의 뒤로

 다가온 젊은 주신관은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가 그의 소원을 이룰수 있을까요?"

 "글쎄, 생명을 헤치지 않고 생명을 돕는 일만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니까…."

 "행동뿐만 아니라 생명 존속에도 어려움을 느끼겠죠. 생명을 헤치지 않고 먹을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래…고작해야 물과 공기, 그리고 짐승의 젖 정도가 고작이겠지."

 주신관의 잘생긴 얼굴에 잠시 미소가 감돌았다.

 "그는 꽃가루와 꿀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그것도 가능하겠군."

 대신관은 그러나 여전히 뚱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건 작은 부분에 불과하네. 내가 가장 걱정하고 있는 것은 엘시타이에

 대한 것이야."

 "마음에 걸리시는 일이라고?"

 "아니, 아닐세…."

 두 신관은 천천히 몸을 돌려 신전 안으로 들어섰다. 이제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한 걸음을 내딛은 솔리아드의 등뒤에는 회색빛으로 빛나는 구체 하나만이

 신전 중앙에 떠있을 뿐이었다.

 ※     ※     ※

 그리고 그는 엠트 분지로 향했단다.

 그가 과연 이 환타지아의 창조신이 엘시타이를 만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엘시타이가 그의 질문에 과연 답해줄 것인가에 대해서도….

 잘은 모르지만 엘시타이는 가장 어두운 그림자이면서, 동시에 가장 밝은

 빛이라고 하더구나. 절대인 동시에 상대인 존재, 남성이면서 여성인 존재,

 모든 것들의 위에 서있으며 동시에 모든 것들의 발 밑에 엎드린 존재….

 엘시타이를 섬기는 신관들은 그렇게 말을 하곤 하지.

 모든 것들을 이해하지만, 동시에 무관심하기도 하다고.

 과연 그런 존재가 그의 절규에 응해줄까.

 이런, 이런, 얘기가 너무 길어졌구나. 오늘은 여기서 그만….

 응? 후훗, 이 녀석 잠들었군. 하긴 저 아이에겐 너무 어려운 얘기였겠지.

 아, 들어오시오. 

 자네였나? 마침 잘 됐군. 이 아이를 자기 침대에 눕혀주고 오게나.

 내 몫으로 이마에 입맞춤도 해주고. 

 자, 그럼 난 슬슬 준비를 해볼까….

 오늘밤은 유난히 달이 붉게 빛나는군. 야습하기엔 좋은 밤이야….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솔리아드?

 내 오랜 친구 솔리아드여,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             +              +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외장은 육장 5편에서 이어지는 얘기입니다.

 하탄 아베브의 시점을 빌려 하이랜더란 종족과 솔리아드란 인물을

 제 역량이 닿는 한 묘사해보려 했던 부분이지만...

 다시 읽어보니 영 아니군요.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북녘을 다스리는 검은 물의 가라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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