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1)
"노가미 씨! 노가미 씨 아니십니까."
개찰구에서 나오는데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어서 노가미가 돌아보자 키 크고 아직 소년의 앳된 모습이 남아있는 젊은 남자가 달려왔다.
"오, 니시오카? 그러고 보니 너도 본청에 있었군."
니시오카 히로타카는 노가미의 고등학교 후배였다. 물론, 열살 이상 차이가 있었으니 같은 시기에 재학했던 것은 아니었다. 노가미가 모교의 검도부에 들러 잠시 지도했을 때 처음 만난 이후 그를 동생처럼 보살핀 것이다.
"본청으로 옮기셨군요. 형사부입니까?"
"아, PFFT대책 본부야."
그것은 테러 조직 PFFT(전체 통일 전선)의 사건 때문에 올해 경시청 형사부에 새로 설립된 특별 팀이었다.
"아, 그거 곤란하게 되었군요. 어제도 테러가 있었죠? 지난 주, 모토무라 대의원의 승용차가 폭파된 이후 벌써 세번째구요."
"우리가 놈들을 잡으려면 더 열심히 해야지."
노가미는 쓴웃음을 지으며 후배에게 대답했다.
사쿠라다몬 역 계단을 올라가면 경시청은 코앞이다. 두 사람은 정문을 지나 엘리베이터 홀까지 왔다.
니시오카과의 대화가 끊기고 무심하게 시선을 돌린 노가미는, 그대로 시선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조그마한 충격이었다.
그곳에 서 있는 것은 마치 그라비아에서 빠져나온 듯한 미녀였다.
아니, 미녀라기보다는 인상으로는 미소녀라 부르는 편이 어울린다.
멋진 여성용 갈색 정장 차림이었지만 가냘픈 어깨 위로 뻗은 흰 목, 선명한 쌍꺼풀과 큰 눈동자,
오똑한 코, 아래로 부드러운 라인을 그리는 아름다운 턱, 작은 분홍빛의 입술.
그 모습에서는 아름답다 못해 청조함과 가련함이 묻어났다.
그 여자는 왠지 긴장한 표정으로 초로의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노가미 씨, 노가미 씨라면…, 뭘 멍하게 보고 있어요?"
갑자기 대답을 하지 않게 된 노가미를 몰아세우는 니시오카의 목소리에 노가미는 겨우 정신이 들었다.
"어..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노가미는 속이려 했지만, 니시오카는 눈치 빠르게도 노가미의 시선의 끝을 쫓아 그 여자를 발견했다.
"아하, 그녀를 본 거죠?"
"음..., 아, 아니..."
정곡을 찔리자, 노가미가 우물거린다.
"속여도 소용 없어요. 뭐, 그녀라면 그렇게 넋을 잃고 쳐다보는 것도 이해는 가네요."
아무래도 니시오카는 그녀를 알고 있는 듯하다.
"너 그녀를 알아?"
"물론이죠."
니시오카는 으스대는 어조로 답했다.
"우리 경비부의 마돈나, 하야세 미즈키 씨입니다."
"정말 경찰청 직원이라고? 어느 여배우가 드라마 촬영에서 온건가 하고 생각했어."
정말이지, 그녀는 웬만한 여배우와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미인이었다.
"하긴 그렇죠. 사실은 작년에 가을 교통 안전 주간에 한 아이돌이 여길 방문했었는데요. 마침 하야세 씨가 경호에 나서고 있었어요. 그러자 무려 그 아이돌보다 하야세씨에게 사진 플래시가 집중했거든요. 안에는 아이돌을 팽개치고 사인과 악수를 청하는 구경꾼까지 있었고. 그 아이돌이 심통이 났었다는 믿기 힘든 소문이 있었어요.“
니시오카의 말에 따르면 이미 그것은 경시청에서는 유명한 일화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하야세 미즈키와의 대화가 끝난 듯, 상사로 보이던 남자가 그 자리를 떠났다. 그것을 보고, 니시오카가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얘기가 끝난 것 같군요. 딱 좋은 타이밍이네. 하야세 씨에게 소개해줄게요."
"아니, 잠깐만!"
아까까지 넋을 잃고 그녀를 쳐다봤던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낀 노가미는 니시오카를 말리려 했지만, 니시오카가 말을 건것이 약간 빨랐다.
"하야세 씨, 안녕하세요."
니시오카의 목소리에 하야세 미즈키가 이쪽을 향해 정다운 듯한 미소를 띠고 다가왔다.
그리고 "안녕, 니시오카 씨"라고 말하며, 옆에 있던 노가미에게도 인사했다.
노가미는 나잇값도 못하고 순진한 소년처럼 설레는 것을 느꼈다.
가까이서 본 미즈키는 더욱 아름답고 귀여웠다.
"이쪽은 노가미 씨, 제 고교 선배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하야세입니다."
미즈키는 그렇게 말하고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아름답고 맑은 목소리였다. "옥구슬을 굴리는 듯한 목소리"이란 이런 것인가 하고 노가미는 생각했다.
"노가미 씨는 그 타누마산업 사장 영애의 유괴 사건 때 PFFT의 히무라 카즈키를 체포한 사람이죠.“
그 말을 듣자, 미즈키는 존경의 눈길로 노가미를 바라보았다.
"아, 정말인가요? 대단하세요. 전 경찰이 된지 아직 일년 남짓밖에 안되었고 아직 많이 배워야 하니
앞으로 여러가지로 많이 가르쳐주세요.“
경찰이 된 지 일년이라는 것은 고졸이면 열아홉, 대졸 이상이면 거기서 두세살 가량 더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노가미의 눈에는 그 작고 가냘픈 몸,
부드러운 뺨과 반짝거리는 커다란 눈 때문에 겉보기로는 아무리 높게 잡아도 보아도
스무살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정장 차림만 아니었다면 열일곱, 여덟살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 후 미즈키는 두세마디 니시오카와 대화를 나눈 이후에 두 사람에게 인사를을 하고서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갔다.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노가미는 한숨을 내쉬며 니시오카에게 말했다.
"하야세 순경인가. 귀여운 사람이군.“
그것을 듣고, 니시오카는 웃음을 띤 얼굴로 말했다.
"노죠 씨. 틀려요."
"응? 뭐가?"
"그녀의 계급은 경위에요. 국가 T종 시험 채용의 경력조요."
*
미즈키는 긴장한 얼굴로 문을 노크했다.
경력조라 하지만 채용된 지 오래되지 않은 그녀는 혼자서 경시총감의 방에 불려진 경험은 없었다.
경찰관의 계급은 순경에서 시작되어 아홉 계급이다. 일반 경찰관은 순경에서 시작이지만 미즈키처럼 국가 공무원 T종 시험에 합격하고 경찰에 들어오는 사람은 간부 후보생으로 처우되고 경위로부터 시작된다.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경찰관이라면, 베테랑이 되어서야 도달할 수 있는 계급이다. 그리고 이 아홉 계급의 정점에 있는 것이 경시청을 이끄는 경시 총감이었다.
"들어오게나."
중후한 저음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미즈키는 "실례합니다"라고 말하며,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입구에서 머리를 숙여 인사하자 안쪽에 앉아있던 경시 총감의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네가 하야세 미즈키 경위?"
경시 총감은 의아스러운 얼굴로 방에 들어온 미즈키를 쳐다보았다.
경시청의 미인 여자 경위 하면, 또렷하고 단단한 미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게다가, 도쿄 대학 법학부 졸업한 경력 인재라니. 당당한 커리어 우먼풍의 여성일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신상정보를 먼저 듣고 미즈키를 만나는 사람들은 항항 그 아름다운 외모와 온순한 성격에 놀라곤 했다. 물론 나쁘지 않은, 좋은 의미의 놀라움이었다. 인사파일로 밖에 그녀를 알지 못한 경시 총감도 예외는 아니었다.
"네, 경시 총감에서 직접 특별한 임무를 지시할 것이 있다는 연락을 카노 경비부장으로부터 받고 바로 왔습
니다."
미즈키는 명료한 어투로 말했다. 소녀 같은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견실한 경찰관이라고 본 경시 총감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본론을 꺼냈다.
"알다시피, PFFT의 연쇄 폭탄 테러는 우리 나라 치안의 안전 신화를 완전히 파괴하고 있네."
모토무라 대의원에 대한 폭탄 테러 사건에서 리더 히무라 카즈키의 석방을 요구를 시작한 이후 이미 세곳이 폭파되고 있었다. 한곳은 도내의 파출소, 한곳은 지하철 역, 그리고 어제는 가스미가세키 중앙관청이 수난을 당했다. 나날이 국민의 불안은 점점, 언론의 비판은 PFFT과 함께 그들을 검거하지 못하는 경찰에 집중하게 되고 있다. 사실, 경찰이 취한 대응에서도 실수가 겹치면서 가스미가세키가 폭파됐을 때는 잡을 수 있던 범인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에 PFFT가 공격한 곳은 무려 원자력 발전소였다.
여러가지 의미로, 경찰에게는 이제는 물러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일단 범인 그룹의 요
구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검거에 총력을 기울이는 양면 작전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미즈키는 긴장한 표정 그대로 입을 다물고 경시 총감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범인 측에 요구를 받아들이겠다고 연락한 결과 히무라의 석방과 10억엔, 그리고 무슨 꿍꿍이 속인지 모르지만 여경에게 돈을 운반하게 하고 지시할 때까지 전 TV사에 중계시키는 것이라는 조건을 추가했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흐르자 비로소 자신이 불린 이유가 보였다..
"범인 그룹은 현금을 운반하는 여경으로, 하야세, 자네를 지명했다네."
"슬슬 시간이 되었나."
노가미는 살풍경한 콘크리트 벽을 바라보면서 차의 뒷좌석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곧 히무라가 석방되는 시간이다.
그러나 지금 노가미가 바라보고 있는 벽 너머는 구치소가 아니라 원자력 발전소이다.
"젠장!"
분노를 터뜨리는 소리에 놀라, 운전석에 앉아 있던 현지 부서의 형사가 돌아보았다.
"무슨 일 있습니까?"
그러나 노가미는 대답 없이 그저 벽을 노려볼 뿐이었다.
이틀 전의 수사 회의에서, 노가미는 PFFT의 요구에 응한다는 상부의 결정에 반대하며 거세게 항의했다.
"테러리스트에게 무른 얼굴을 보이면 안 됩니다. 그래 봤자 더 기어오를 뿐입니다! 절대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하.. 하지만 이 건은 경시 총감이 총리와 직접 상담해서 내린 결정인데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항이야."
PFFT 대책 본부장 호소이 경사는 무시무시한 얼굴 표정을 하고 달려드는 노가미에게 굳은 얼굴로 그렇게 대답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 정도로 큰 사건을 담당하는 중책을 맡고 있긴 하지만 호소이 경사는 전형적인 허수아비 타입의 인물이었다. 자신의 생각 없이 상층부가 시키는 그대로 행동하는 것이 분명하다.
노가미는 지금까지도 모조리 호소이 경사와 여러 차례 부딪쳤지만, 이번에야말로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바보 자식! 누가 결정한 건지는 모르지만 상식적으로 우리가 해야 하는건 원자력 발전소에 제대로 인력을 배치해야 하는 거라고! 그래야 녀석들을 잡을 수 있을거 아냐!"
기세 좋게 외쳐 버린 것이 문제였다. 노가미는 본인이 희망했던 히무라 추적 팀이 아니라 원자력 발전소의 잠복조에 배치되고 말았다. 게다가 PFFT가 공습 대상을 특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원전이 옳은 타깃인지조차 분명하지 않았다.
엄밀하게 말하면 말하면, 노가미는 수사에서 제외된 셈이었다.
*
도쿄 고스게에 위치한 도쿄 구치소에는 신문, 잡지, 텔레비전, 라디오 등 다수의 보도진이 빽빽하게 몰려들고 있었다.
정오 정각에 보도진 사이를 비집고 은회색의 차가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코발트 블루의 정장을 입은 아름다운 여성. 하야세 미즈키였다. 텔레비전 카메라가 일제히 그녀의 모습을 잡았고 카메라의 셔터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경찰관은 미즈키 혼자만 와야 한다는 PFFT의 요구 때문에 이곳에 들어온 것은 그녀 혼자였지만 당연하게도 구치소 주변에는 몇대의 잠복 경찰차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또한 보도진 중에서도 사복 경찰관이 잠복해 있었다.
곧, 교도소 입구가 열리고 문 사이로 히무라가 양팔을 위에 올리며 거드름 뺀 포즈를 취하면서 나왔다.
히무라는 주위를 둘러싼 보도진의 마이크를 잡아채더니 자신의 독자적 정치 사상이 박힌 제멋대로인 말을 두 세마디 말한뒤 먼 발치에 서있던 미즈키에게로 눈을 돌렸다.
"이야, 이거 하야세 경위. 역할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네."
히무라는 미즈키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평가하는 듯한 눈길로 훑었다. 미즈키는 전신을 쓰다듬다는 듯한 눈길에 불쾌감을 견디며 아무 말 없이 서있었다.
이윽고 만족한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히무라가 미즈키에게로 다가왔다.
"10억엔은 가져왔겠지."
"이 차 안에."
히무라의 질문에 최대한 무뚝뚝한 대답하겠다고 마음먹었던 미즈키의 목소리는 긴장 때문에 미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잠시 확인 해볼까."
그렇게 말하면서 히무라는 스스럼없이 미즈키의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창백해진 얼굴의 미즈키를 데리고 차 쪽으로 걸어갔다. 미즈키가 트렁크를 열고 안에 들어 있던 검은색 상자들 중 하나를 열자 거기에는 만엔짜리 지폐가 빽빽하게 차 있었다.
"앗!"
미즈키가 무심코 소리 질렀다. 히무라가 갑자기 미즈키의 팔을 등 뒤로 잡더니 조금 떨어져서 빽빽하게 붙어 있는 보도진 쪽을 향했다.
"나는 앞으로 이 미인 여경과 함께 드라이브를 즐기려고 한다. 방송사 여러분들은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동행하면서 모든 채널에서 편집 없이 드라이브하는 모습을 생중계하고 전국 방송하도록. 시청률은 좋을 테니까 안심하고 방송하시고."
히무라는 거기까지 말하고 한 호흡 쉰 후에 좀 더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보도진 중간중간에 섞인 짭새들, 그리고 건물 주변 여기저기에 숨어 있는 개들, 잘 들어! 허튼 짓 하다 걸리는 순간 거래는 없었던 걸로 할거야. 그 때는 즉각 나의 동지가 원자력 발전소를 폭파한다. 이미 폭탄은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미즈키의 팔을 잡았던 손에 힘을 주었다. 통증 때문에 미즈키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리고 이 여자도 죽인다. 물론 이 여자가 내 말에 거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원자력 발전소를 폭파하고 여자도 죽인다."
히무라의 협박은 텔레비전을 통해서 전국에 생중계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경찰의 행보에 무거운 족쇄를 거는 셈이 되었다. 또한 미즈키의 행동에도.
"자, 출발하지."
히무라가 재촉하자 미즈키는 차에 올라탔다. 미즈키가 운전석에 히무라가 조수석에 앉았다.
"휴대폰 좀 빌려줘."
미즈키부터 휴대 전화를 건네받은 히무라는 번호를 못보도록 가리면서 버튼을 누른 후 귀에 가져다 댔다.
"히무라다. 어떻게 가면 되지? 아, 그렇군. 알았다."
히무라는 전화를 끊고 휴대 전화를 그대로 자기 주머니에 넣으며 운전석의 미즈키에 명령한다.
"일단 내가 시키는 대로 운전해."
그러면서 히무라는 자동차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켰다. 엔진 소리와 함께 화면 속의 은회색 차가 출발하는 모습이 방송되고 있었다.
"미즈키, 너와 드라이브도 하게 되고 정말 즐거운걸."
히무라는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즈키는 못 들은 척 했다.
"그렇게 매정하게 굴지 말라고. 네가 패션 잡지 모델이었을 때부터 팬이었으니까."
히무라가 말한 그순간, 자동차 텔레비전에 비친 아나운서가 미즈키의 프로필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중계를 보고 계시는 시청자 여러분으로부터, 히무라 씨가 탄 차를 운전하는 여성 경찰관에 대한 질문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FNC 텔레비전이 독자적으로 조사한 결과 이 여성 경찰관은 경시청의 하야세 미즈키 경위입니다. 경위는 고교 시절에 모델 클럽에 소속되어있었고 그녀가 실린 호는 발매 당일에 매진되었을 정도로 인기 모델이었다는 정보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동경대에 진학했고 2학년 때에는 대형 연예 기획사나 방송국들의 협찬으로 열린『 전국 캠퍼스 아이돌 콘테스트 』에서 우승했는데 결국 연예계로 진출하지 않고 국가 T종 시험에 합격해서 경시청에 채용된 재색을 겸비한 미녀입니다."
예능 프로그램에 강한 FNC답게 미즈키가 실린 잡지나 대회 때의 영상 등을 보여주며 소개가 이어졌다.
(사건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들까지 방송할 필요는 없잖아.)
미즈키는 분노와 부끄러움으로 귀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질문이 쇄도한다고? 물론 그렇겠지."
히무라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15분 정도 달린 후 히무라는 큰길을 벗어나서 옆길로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그곳은 분쿄구의 한적한 주택가였다.
"좋아, 저기에 세워."
히무라가 작은 주차장을 가리켰다.
두 사람은 텅 빈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옆에 덩그라니 세워져 있는 하얀 세단으로 다가가 히무라가 문을 열었다. 문은 잠겨있지 않아 있었고 운전석에는 무전기가 놓여져 있었다. 히무라는 그것을 손에 들고 스위치를 켰다. 히무라가 스위치를 켜길 학수고대했던 듯 무전기에서 바로 소리가 흘러나왔다.
"히무라 동지. 지금 타고 있던 차에는 발신기가 부착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이 차로 갈아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일단 10억엔을 이 차의 트렁크로 옮기세요."
히무라는 미즈키에게 돈 가방들을 옮겨 싣도록 명령했다. 그러는 사이에 각 방송사 중계 차량이 속속 뒤이어 도착하더니 곧 주차장 주변은 텔레비전 카메라로 에워싸였다.
10억엔이 든 가방을 거의 다 옮겼을 때 무전기를 통해 다음 지시가 전달되었다.
"옷에도 발신기가 숨겨져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갈아입으세요. 물론 여자도요."
미즈키는 움찔하면서 히무라를 보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히무라가 무선기를 통해 물었다.
"갈아입을 옷은 어디있지?"
"뒷좌석에 있습니다."
히무라는 뒷좌석에 놓여있는 옷을 꺼냈다. 그가 좋아하고 즐겨 입는 세련된 이탈리아제 명품 정장이었다. 그러나 뒷좌석에 놓여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하야세 경위가 갈아입을 옷이 없는 것 같은데?"
히무라가 얼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미즈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없습니다."
무전기의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여자는 속옷 차림이면 충분 하겠죠."
미즈키의 주위를 수십대의 텔레비전 카메라가 둘러쌌다.
히무라가 중계 요원에게 명령해서 모니터를 가져오게 하여 미즈키의 정면에 놓도록 했다. 미즈키가 바라보는 모니터 화면에는 청조한 코발트 블루 정장 차림의 자신이 그대로 보였다. 지금 이순간에 전국에 생방송되고 있는 영상인 것이다.
미즈키는 말을 잃었다. 새하얀 얼굴의 광대뼈 언저리와 눈가가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자, 옷을 어서 벗어서 내놓으실까."
히무라는 이미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자, 잠깐만 기다려요..."
미즈키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야외에서, 게다가 텔레비전 카메라가 늘어선 앞에서 옷을 벗고 속옷 차림이 되는 짓을 제 정신으로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주위에 보이는 집 창문을 통해 인근 주민들이 주차장의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깨달았다. 말려드는 것이 무섭기 때문에 대놓고 내다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여기저기 창문에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임무는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되지. 꾸물거리고 있으면 원전이 폭발할거야."
히무라의 말에 벼랑 끝까지 내몰린 미즈키는 간신히 얼굴을 들었다. 미즈키는 무거운 한숨을 길게 내쉬고 고개를 돌려 히무라를 노려보면서 조용히 코발트 블루 재킷을 벗었다.
"오오..."
생각지도 않은 광경에 카메라 맨들이 일제히 탄성 소리를 냈다.
미즈키의 하얀 섬세한 손가락이 천천히 주저하며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더 잘 보이도록, 확대해서 찍어!"
모니터를 들여다보면서 히무라가 외쳤다. 그에 화답하듯 미즈키의 정면에 놓여졌던 카메라가 줌업한다. 풀어 헤친 블라우스 앞가슴이 크게 비추어졌다. 브래지어의 레이스 자수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앗!"
모니터의 영상을 본 미즈키는 무심코 앞가슴을 여미었다.
"뭐 하는 거야. 빨리 해!"
곧바로 히무라에게 혼나고 미즈키는 애써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떨리는 손가락으로 단추를 풀었다. 앞이 서서히 벌어지자 눈부신 순백의 브래지어와 함께 부드러운 가슴의 골짜기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가장 아래 단추까지 푼 미즈키는 블라우스 자락을 치마에서 끄집어 냈다.
"아아…"
긴장과 수치심 때문에 다리가 후들거리자 자신도 모르게 눈이 감기고 분홍색 입술에서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블라우스를 이대로 벗으면 브래지어만의 상반신이 전국에 중계된다. 모델 시절이나 콘테스트의 때에 수영복이 된 경험은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평범한 속옷 차림을 노출하는 부끄러움은 원래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수영복 차림을 보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어이, 이쪽을 보라구."
미즈키가 말을 걸어오는 히무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텔레비전 카메라도 무전기를 손에 든 히무라의 모습을 방송으로 내보냈다.
"네가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아까 말했지. 내가 이 무선에서 신호를 보내면 동료가 원전을 폭파할거야."
도저히 저항할 수 없었다. 미즈키는 눈을 꽉 감고 굴욕감에 긴 속눈썹을 떨며 블라우스의 앞을 열었다. 소녀같은 얼굴이 수치심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좋아, 좋아."
히무라는 즐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TV는 주차장에서 옷을 벗고 있는 미즈키의 모습을 방송했다. 마침내 미즈키는 블라우스를 벗었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아름다운 어깻죽지가 드러나고 거기에 꼭 끼는 속옷의 가느다란 끈이 눈에 들어왔다.
블라우스를 벗자마자 미즈키는 재빨리 두 손으로 자신의 몸을 꽉 껴안았다. 우아한 어깨로부터 등으로 이어지는 곡선이 남자들의 마음을 자극했다.
"음... 조금 영상에 변화를 주면 좋겠는데."
미즈키와 모니터를 번갈아 보면서 히무라가 일부러 들리도록 말했다. 그리고 멀찍이에서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던 보도진에게 손짓했다.
"거기 JBC와 ATV의 카메라 맨, 이리 와봐."
회사명의 스티커를 붙인 이동식 텔레비전 카메라와 두 사람의 카메라 맨이 다가왔다.
국영 방송으로 호칭되는 특수 법인 JBC와 민방 중에서도 뉴스 프로그램에 정평 있는 ATV. 어디가 더 낫다고 하기 힘들 정도로 가장 넓은 방송망을 가지고 있는 두 방송사였다.
"너희들. 여자의 지근 거리에서 줌업을 잡아라."
마치 영화감독인양 카메라 맨에게 지시를 내린다.
어느새 히무라가 이 자리의 모든 것을 총괄하는 듯한 분위기가 되어 있어서인지 두 사람의 카메라 맨들은 딱히 거스르는 기색 없이 미즈키의 주위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한명은 콧수염을 기른 40대 정도의 베테랑 카메라 맨,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젊은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각도에서 미즈키의 얼굴이 클로즈 업으로 비추어졌다. 그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입매가 딱딱하게 굳었고, 맑았던 눈동자 주위가 부옇게 변해 있었다.
"좋아, 다음은 치마."
치마를 벗기 위해서는 두 팔을 내려야 한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브래지어가 완전히 노출 되어 버리고 몸을 굽혔을 때에는 가슴도 노출 될수밖에 없다. 게다가 치마까지 벗게 되면 정말 속옷 차림이 전국에 중계되고만다.
"왜 그래? 여기서 모든 것을 무산시키고 싶은건가?"
"알겠습니다."
히무라의 위협에 미즈키는 체념한 표정으로 가슴 앞에서 교차시킨 양팔을 미끄러지듯 내렸다. 그리고 측면의 치마 지퍼가 들어 훅을 풀었다.
여기까지 단숨에 해치우다가도 미즈키는 다시 주저했다. 호흡이 불규칙해졌고 가냘픈 어깨가 파도치듯 흔들렸다.
이젠 아무래도 자신들에게 직접 피해는 없겠다고 생각한 것인지 주위 민가의 창문을 통해 주민들이 직접 몸을 내밀고 주차장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도진의 뒤에는 구경꾼들도 모이고 있는 듯했다. 미즈키는 무수한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고 있는 것을 느꼈다.
"이봐! 이봐, 빨리 하지."
그러면서 히무라는 미즈키가 부끄러워하며 주저하는 모습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즈키는 스커트를 내렸다.
냉정한 보도보다는 그녀의 모습을 극명하게 비추는 목적이 되었는지, 카메라 맨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브래지어에 싸인 풍만한 가슴을 확대해서 촬영했다.
상반신을 구부리고 한발씩 들어 발목에서 스커트를 빼낼 때 부드럽게 흔들리는 가슴과 순백의 팬티가 두대의 텔레비전 카메라에 의해 앞에서 뒤에서 동시에 촬영된다.
"좋아, ATV 잘했어. 역시 핵심을 파고드는 보도의 ATV답군."
뒤에 돌출된 둥근 엉덩이가 모니터에 크게 부각되는 것을 보고 히무라가 떠들어 댔다. 미즈키는 작아지고 싶을 정도의 치욕을 견디고 있었다.
스커트마저 벗은 미즈키는 순백의 브래지어와 팬티를 한사코 두 팔로 숨기기 위해 덧없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었다.
"숨기지 마. 제대로 속옷 차림을 보여라."
히무라가 든 무전기를 흔들면서 명령했다. 미즈키는 할 수 없이 양팔을 몸 옆에 내렸다.
"역시 상상 이상으로 좋은 몸매를 하고 있었군."
히무라는 미즈키의 매력적인 여체를 음심이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과 동시에 카메라를 통해 이 매력적인 자태가 남김없이 텔레비전 방영된다.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은 4분의 3컵의 브래지어와 여기에 세트인 세미 비키니 팬티. 청초한 흰 천에 고급스러운 레이스 자수가 세겨져 있다.
봉곳하게 쑥 내밀어진 가슴, 건강해 보이는 힙업된 엉덩이와 탄력 있는 새하얀 허벅지, 늘씬하고 긴 다리, 키는 크지 않지만 역시 모델 출신답게 뛰어난 몸매였다. 나이보다 앳된 외모 때문에 옷을 입고 있을땐 가냘프게 보이지만 이렇게 보니 흔치 않은 글래머였다.
"자, 전국의 텔레비전을 보시는 시청자 여러분들께 지금 보시는 하야세 미즈키 경위의 신체 사이즈를 공개하도록 할까."
히무라가 장난스레 말한다.
미즈키는 흰 살결, 고운 피부를 붉게 물들인채 서서 고개를 숙이고 피가 나올 정도로 강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가슴 사이즈는 어떻게 되지?"
"그런 걸 왜 말해야만 하죠!"
참다 못해 소리를 지르는 미즈키의 눈앞에 히무라는 무전기를 들이댔다.
"동경대학을 졸업한 재원인 것에 비해 기억력이 좀 나쁜 것 같군. 자신이 어떤 입장인지 잊었는가?"
이 협박에 거스를 수는 없다.
"..85.."
고개를 떨군 채 미즈키가 답한다.
"제대로 카메라에 시선으로 향하면서 정중하게 대답해야지. 그리고 가슴 사이즈를 물었더니 제대로 컵까지 대답하지 않으면 안되지."
히무라가 정면의 카메라를 가리키며 놀리듯 말했다.
"가슴은 85㎝, C컵입니다."
미즈키는 귀까지 새빨개진 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카메라에 향한 채 말했다. 그 모습은 남자의 기학성을 일으킨다.
"허리는?"
"56입니다."
"히프는?"
"86입니다."
대답마다 모니터에 클로우즈업 된 가슴, 허리, 엉덩이가 차례차례 포착됐다.
"마지막으로 물어보는거지만 발신기 따위는 숨기지 않겠지?"
"숨기지 않았습니다."
거기까지 질문하고 히무라는 미즈키가 지금까지 입고 있던 옷을 방송사의 스탭에게 던졌다.
"너희에게 줄게. 가져가."
"아!"
무심코 미즈키가 외쳤다. 이것으로 정말 속옷 그대로 히무라와 도피를 해야만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너."
히무라는 ATV의 젊은 카메라 맨에게 말했다.
"앗, 네."
"함께 차를 타고 다니면서 차안의 모습을 촬영하고 보도하는 거야."
대답은 듣지도 않고 히무라는 카메라 맨을 하얀 세단의 조수석에 밀어넣고 미즈키를 운전석에 앉힌 후 자신은 뒷좌석에 올랐다.
바로 차는 출발하고 주택가의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
"히무라는 추가로 ATV의 카메라 맨을 인질로 잡고 메지로 거리를 따라 동쪽으로 도주 중."
현장 상황을 추적하고 있는 잠복 경찰차로부터 무선이 들려오자 경시청 PFFT대책 본부 내부에 모여있던 호소이 경시 이하 5명의 수사관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모두들 넋을 잃고 텔레비전 중계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 그것을 알고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
"발신기는 무사한 듯 합니다."
제일 연장자인 나이토 경부보가 분위기를 바꾸려고 일부러 큰소리로 보고했다.
데스크 중앙에 설치된 내비게이션 같은 화면에 메지로 부근의 지도가 펼쳐져 있었고 붉은 점이 메지로 거리를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나, 하야세 경위의 속옷에 숨겨놓는다는 것은 명안이었어."
호소이 경시가 득의만면한 얼굴로 스스로 생각한 계획을 자랑했다. 그때 총경의 뇌리에 노가미의 얼굴을 떠올랐다. 노가미는 미즈키의 속옷에 발신기를 숨기는 데에 강력히 반대했던 것이다.
(그것 봐라. 잘 되었잖아.)
호소이는 뇌리에 떠오른 노가미의 얼굴에게 마음 속에서 자랑스럽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