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7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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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나 나나 서로에게 동생을 빼앗기고 빼앗아오며 그렇게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며 살아왔던 것 같았다.

엄마가 어렸던 나의 가슴에 상처를 내었던 것 보다 더 큰 상처를 입은 채 살아왔다는 사실이 며칠 동안 나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었다.

누구보다 동생을 사랑하고 또한 동생의 여자로서 살아온 엄마는 지금도 동생과의 이별을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가족들에게 버림받게 되어 버릴까봐 아직도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는 엄마의 심정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런 엄마가 최근 몇 년 동안 급작스럽게 이어져온 동생과 남편, 그리고 나의 너무도 음탕한 행동에 순응하며 지낸 것 역시 그런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너무도 부끄러워졌다.

전날 밤 역시 동생과 남편은 그런 엄마와 한 방에서 잠들었고,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한 엄마는, 비어있는 동생의 방에서 다시 잠들어 있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 엄마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전 날 밤의 흔적을 말해주듯 팬티와 브래지어를 입고 있지 않은 채 죽은 듯 누워 있는 엄마의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잦았던 동생의 외박은 원장의 집에서 자고 온 다음날 이후로 없어졌다.

직접 물어보진 않았지만 원장과의 정리를 끝내버린 듯 했다.

평온한 시간이 그렇게 물 흐르는 듯 흘러갔고, 몇 달 동안 그렇게 엄마에게 지은 죄에 대해 스스로를 질책하며 보냈다.

??오빠...엄마랑 동철이 말야...너무 잘 어울리지 않아???

??어?...그렇지...좋아 보여..처음 봤을 때부터..많이 느꼈어...??

??그러니까...둘이 뭐랄까...음...둘이 말야...남자와 여자 사이의 그런거...결혼식같은 뭐...그런거 없을까???

??응?...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와 동생이 결혼을 한다는 그런 말은 자칫 농담처럼 들리거나, 엄마와 동생이 모욕감을 느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른 무엇인가를 떠올리려 했지만 결혼이란 말 외에는 다른 말을 찾아 낼 수가 없었다.

몇 달 동안 엄마에게 무엇인가 위로를 해줄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어보였다.

그렇게 나름대로 고민하여 찾아낸 것이 엄마와 동생의 결혼식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자리에 누운 남편의 방으로 들어가 남편의 품을 파고 들어 남편에게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게말야..동철이는 누가 뭐래도 엄마 남자인거 같은데...뭔가 그에 대한 절차가 있어야 하는건 아닌지...내 말 웃기지?...나 그래도 나름 고민한거니까..웃지는 말고...??

??글세...무슨말인지는 알겠는데...장모님이나 처남이 어떻게 생각할까..만약에 그렇게 한다고 해도 누굴 초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누굴 초대할 필요는 없지...엄마랑 동철이의 사이를 이해해주고 축복해줄 수 있는 게 우리밖에 더 있어???

??그래서 하는 소리지...??

??그냥...거창한거 말고 우리끼리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우리들만의 그런 식을 치루면 안될까???

??그렇게 하자...??

남편과의 상의를 끝내고 며칠 후 저녁식사 자리에서 엄마와 동생에게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지..지윤아...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농담 아냐...그렇게 보지마...??

황당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는 엄마에게 겸연쩍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누나..엄마랑 나랑 그런 거..이미 했어...옛날에 아빠 제사 치루고나서 아빠 앞에서 했어..??

??그러니까...그렇게 쓸쓸하게 한거 말고, 우리 어디가서 파티라도 열면서 하자...그렇게 하자..응???

??그래...그렇게 해 처남...이번엔 우리가 축하해줄게..??

나의 말에 남편도 거들어주며 동생과 엄마를 설득했고,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보자는 엄마의 말에 그렇게 나와 남편의 제안은 일단락 되었다.

학교에 복학한 동생은 학원을 그만 두고, 학교생활에 빠르게 적응해갔다.

나의 사업계획은 까마득하게 멀어져 갔고, 얼마 후 엄마는 엄마와 동생이 다니던 학원을 인수하려는 듯 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원장은 그녀의 아들이 있는 캐나다로 이민을 준비하고 있어 학원을 처분하려했고, 원장의 제안에 엄마는 몇 일을 고민 한 끝에 결정을 내렸다.

학원운영을 도와달라는 엄마의 제안에 망설임 없이 따르기로 했다.

나는 학원 인수에 대한 여러 가지 절차를 도맡아 처리했고, 전공을 살려 학원의 실내 디자인과 내부수리를 순조롭게 끝냈다.

??누나....그때 말했던 거..엄마랑 내 결혼식 말야....다음 주에 하자...??

학원의 인수 작업이 마무리 된 어느 날 동생이 나에게 말했고, 엄마가 인수한 학원의 전 원장이 가지고 있는 춘천의 별장으로 장소를 잡았다.

시간이 가장 많이 있는 나는 엄마가 말해준 장소를 일주일 동안 오가며 엄마와 동생의 결혼식 준비를 끝냈다.

??동철아 어때? 기분이???

??몰라....그냥 기분은 좋으네...엄마는 어때???

??그...글세....나도 좋아...??

시원스럽게 경춘가도를 달리는 차안에서 동생과 엄마는 신혼여행을 떠나는 신랑신부처럼 뒷자리에 다정하게 앉아 있었다.

그렇게 두 시간 남짓 달린 후 별장에 도착했다.

??우와~~~~이거 누나 혼자 다 준비했어???

??얘는...나 혼자 어떻게..이걸 다해...매형이 좀 도와줬고, 사람 사서 한거야..??

아름답게 물든 단풍으로 뒤 덮힌 뒷산이 별장을 감싸고 있었고, 주위는 온갖 새가 지저귀고 있었다.

나와 남편이 준비해 놓은 결혼식장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엄마와 동철의 등을 떠밀어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거실의 한 켠에 차려진 엄마와 동생의 침대를 둘러싸고 있는 갖가지 꽃들을 보며 엄마와 동생이 얼굴을 붉혔다.

??자...어서 준비하자....동철아 넌 옷갈아 입어..난 엄마...화장 해줄테니까..??

??잠깐...누나...저기...하객이 한 사람 있어...??

??어?...누구???

??음...원장님...원장님 오실거야...??

??잘했네...결혼식에 하객이야 많으면 좋지머..??

그녀를 초대했다는 동생의 말에 엄마는 이미 알고있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고, 그렇게 좋은날 화를 낼 수는 없기에 난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어머...오선생..아니..오원장이라고 해야지...너무 이쁘다..너무 너무 이뻐...호호??

잠시 후 대형세단이 별장으로 들어왔고, 차에서 중년의 여인이 내렸다.

신부화장을 끝내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엄마의 모습을 본 원장이 호들갑을 떨었다.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 엄마의 모습은 원장의 말처럼 너무 아름다웠다.

턱시도를 차려입은 동생의 모습 역시 제법 어른스러웠고 멋있어 보였다.

??신랑 강동철군은 신부 오혜경양을 평생의 동반자로 맞으시겠습니까???

??예!!!??

주례를 맡은 남편의 물음에 동생이 크게 대답했다.

??신부 오혜경양은 신랑 강동철군을 남편으로 섬기며 평생을 같이 하시겠습니까???

??예.......??

이어진 남편의 물음에 한참을 망설인 엄마가 모기처럼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나의 옆자리에 앉은 원장은 신랑 신부를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신랑은 신부에게 키스하십시오..??

남편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엄마의 입술에 동생의 입술이 천천히 다가갔다.

부케를 쥐고 있는 엄마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고, 동생의 키스는 꽤나 길게 이어졌다.

??원장님...이리 오셔서 부케 받으셔야죠...??

남편의 장난기 섞인 주례사가 끝나자 동생이 나의 옆에 앉아있는 원장에게 소리쳤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가 어정쩡하게 엄마의 뒤에 섰고, 엄마 역시 한참 뜸을 들인 후 어색하게 부케를 뒤로 던졌다.

그렇게 다섯 명의 너무도 작고 아름다운 결혼식이 끝났다.

??오선생...혜경씨...축하해...그리고 동철씨도...둘이 너무 잘 어울려...질투가 날 정도로..??

엄마와 동생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는 원장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엄마와 동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서울로 돌아갔고,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에게 가졌던 질투심과 원망을 마음 속에서 지워버렸다.

국화꽃이 만발한 별장의 정원에서 곧 우리가족의 파티가 시작되었다.

내가 준비해온 한복으로 갈아입은 엄마의 모습은 웨딩드레스를 입었던 모습과는 다르게 단아하고 차분해 보였다.

연신 웃음을 터뜨리는 동생의 옆에서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엄..마....축하해...그리고 너무 고맙고 사랑해....??

??장모님....아니..혜경씨....축하드려요....??

나와 남편의 축하인사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엄마는 얼굴을 들었고 엄마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고...고마워...너무....??

??에이...이런날 울긴 왜울어...이리와...우리 각시...눈물 닦아줄게...??

엄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다시 고개를 숙였고, 동생은 그의 신부를 포근히 안아주었다.

??누나..이리와....누나랑 나도 식 치루자...??

파티의 분위기가 달아 올랐고, 분위기에 한참 들떠있던 동생이 나의 손을 끌어 결혼식 단상으로 데려갔다.

??뭐..뭐야?...무슨 식???

??나랑 누나는 유부남 유부녀니까..결혼식은 안되고...음...그냥 언약식정도로 하자..하하..??

??얘는 무슨...결혼식 한 첫날부터 바람피울 생각하네...호호..??

장난처럼 시작한 동생과 나의 언약식에 이어 남편과 엄마도 동생에게 이끌려 간단한 언약식을 치루었다.

??저기...근데..이제 우리 호칭을 정리해야하지 않을까????

약간의 취기가 있어보이는 남편이 우리를 향해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그렇긴 하다..하하..??

동생이 웃으며 대답했고, 엄마는 다시 고개를 숙여버렸다.

??음...좀 복잡하다...어떻게 해야할지...??

동생이 한참을 고민한 끝에 말을 꺼냈다.

??엄마랑 나랑은 각자 알아서 할게...앞으로 난 엄마한테 여보, 당신이라고 할거야...엄마도 나한테 그렇게 해...??

??그럼 난 그냥 엄마한테...언니라고 할까???

동생과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이 뒷산 단풍처럼 붉게 물들어갔다.

??음....난...처남한테 앞으로 장인어른이라고 불러야겠다.??

남편의 말에 모두 폭소를 터뜨려 버렸다.

어느덧 우리의 행복한 결혼식과 언약식의 밤은 우리 곁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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