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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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매형이 난 늘 마음에 걸려....죄스럽기도 하고....그래서..??

동철의 품에서 한차례 격렬한 오르가즘의 여운을 느끼고 있을 때 나의 얼굴을 쓰다듬어주며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맞는 말이었다.

나 역시 누구보다 경수의 처지가 안스러웠고, 고마웠고,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보여준 동철과 나의 행동이 옳은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난 이미 동철의 뜻을 거스를 수 없는 여자였다.

그래서 늘 경수가 마음에 걸렸고 죄스러웠다.

우리를 보며 지어주던 그의 옅은 미소가 머릿속에 가끔 떠올랐다.

경수와 나의 관계...

그를 더 이상 ??김서방??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그건 그에게 너무도 가혹한 짓이라는 생각을 얼마 전부터 해왔었다.

경수의 차에 올라 그가 운전을 하며 적당한 장소를 살피는 중 그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유난히 오똑한 콧날이며 짙은 눈썹.

거칠어 보이는 턱 수염..

참 남자답고 잘 생겼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윤, 동철,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은 각자가 원하는 걸 당당히 요구했고 이기적인 욕심을 채워가는 동안, 우리 곁에서 그는 너무 많은 희생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 모두 그에게 너무 많은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에 그가 가여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그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쉽게 생각이 나질 않는다.

동철이 지윤을 찾는 날, 지윤이 동철을 찾는 날, 아마도 이렇게 우리 둘은 자주 만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급하게 마신 술 탓인지 약간은 상기된 듯한 그런 얼굴로 나를 위로해주는 경수를 보며 동철과는 또 다른 남자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동철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나를 위로해주고, 이해해주는 경수를 보며 내가 그리 불행한 여자는 아니라는 생각에 기분이 들떠 오며 경수를 안아 주고 싶어 졌다.

지금도 경수 혼자만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것 또한 그에게 미안했다.

나 못지 않게 위로가 필요한 그였다.

그런 그가 오히려 나를 위로해준다. 그의 앞에서 온갖 음탕한 행동을 보여주었던 나 같은 몹쓸 여자를 위로해주는 경수가 너무도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경수가 비워가는 술의 양만큼 나도 따라 마셔 버렸다.

이젠 얼마 남아있지도 않은, 그와 나를 가로 막고 있는 벽을 마져 헐어내 버리고 싶다.

그 벽을 지키기 위해 애써 술을 자제하던 나의 행동을 후회하며 그냥 그렇게 술을 마셔버렸다.

경수를 기다리는 동안 내목에 향수를 뿌릴 때 나는 이미 마음을 정했을 지도 모른다.

그와 나 사이의 벽을 허물어 버리는 것을 동철 또한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 넷은 세상의 기준 따위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만일 내가 그와 나사이의 벽을 깨어버린다면,

동철과 지윤, 그리고 나와의 관계에 대해 적지 않을 충격을 받았던 경수, 이제 그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듯한 경수에게 또 다른 충격을 안겨주는 것은 아닐까....

머릿속을 맴도는 온갖 고민을 씻어버리려 그렇게 술 잔을 비워갔다.

??엄마...매형이 난 늘 마음에 걸려....죄스럽기도 하고....그래서..??

동철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메아리 친다..그래서 어쩌자는 것일까...내가 그래도 되는 것일까...경수가 날 어떻게 생각할까...진짜로 미친년이라고 욕하지는 않을까...내가 정말 미친년일까...

그렇게 정신이 혼미해져 갔다.

비틀거리는 내 어깨를 감싸쥐어 주는 경수의 품이 참 따뜻하다는 생각을 했다.

차 안에서도 어깨를 꼭 감싸 쥐어주는 경수의 품으로 안기고 싶었다..

그렇게 버티기 힘든 이 밤에 만이라도 그와 함께 있고 싶었다.

경수의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집으로 그와 함께 들어왔다.

아직도 머릿속에서 뒤엉켜있는 생각에 어지러워 침대에 누웠다.

경수가 가져다준 차가운 물을 마셔도 머릿속은 더욱 어지러워져만 갔다.

그가 무슨 말이라도 건네어 주었으면 했지만 아무 말이 없었고 나 역시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할지 몰랐다.

방문을 닫고 거실로 나간 경수가 서성이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나의 온 신경은 거실에 서있을 그의 소리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가 신발장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집으로 돌아가려나 보다...

이 늦은 새벽에 경수 홀로 밤거리로 내미는 듯한 느낌에 정신이 번쩍 든다..

경수를 이렇게 보내면 안 되는 일이었다.

적어도 나와 동철과 지윤은 경수에게 이러면 안 되는 것이다.

가슴이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현관문을 열고 차가운 밤거리로 버려지는 경수의 뒷모습에 눈물이 왈칵 나올 것 같았다.

그의 쓸쓸한 뒷모습이 너무도 애처로워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내 머릿속에서 고함이 터져나왔다

??경수씨....이렇게 가지마...미안해....제발 가지마....??

그가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내게로 뛰어 왔다....

그런 그를 보며 팔을 벌려 주었고, 눈에선 눈물이 더욱 흘러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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