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75)

15.

??저리 물러나지 못해...이 새끼들아!!??

옅은 가로등 불빛 하나만 있는 공원의 어두운 벤취 주변에 두 명의 취객이 그녀 앞에서 희죽거리고 있었고, 그녀는 겁에 질려 소리치고 있었다.

그런 장소, 그런 시간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하고 울고 있었던 그녀에게 술에 취한 두 명의 남자가 그녀를 막아서 있었고, 여자의 비명을 들은 나는 미친 듯이 소리가 들린 곳으로 뛰어 갔다.

갑작스런 나의 등장에 약간 놀란 듯이 날 쳐다보는 놈들에게 소리쳤다.

술기운을 빌어 나에게 덤벼들 듯 다가오던 놈들은 공원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다가오며 웅성거리자 곧 자리를 피해 달아났다.

그녀 앞에 나타난 나를 본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는 듯 싶더니, 이내 어쩔 줄 몰라 고개를 숙이곤 손에 든 앞치마를 꽉 잡아 비틀며 그대로 서 있었다.

그녀를 찾았다는 반가움도 잠시 그녀의 모습을 본 나 역시 어떻게 해야할지 망설여지는건 마찬가지였다.

주위로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진 후 그렇게 우리 둘은 간격을 두고 어색하게 한참을 서 있었다.

??장모님.....늦었어요...들어가셔야죠....??

어색한 침묵을 깨고 내가 말했고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의 침묵과 고개를 떨군 모습은 한 시간 전에 내 귀를 의심하게 했던 지윤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너무도 명확히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장모님.....??

??.......김...서.....방.....??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내게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두 손을 움켜쥐었다. 그것이 그녀와의 첫 신체적 접촉이란 생각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하루 종일 음식 준비하시느라 힘드셨을텐데..어서 들어가서 쉬셔야죠...??

그녀가 내 눈을 잠시 쳐다보더니 이내 내 앞을 지나 집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몇 걸음정도 그녀의 뒤에서 그녀의 느린 걸음을 쫒아 나도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처진 어깨와 땅바닥에 끌려 지저분해져있는 그녀의 치맛자락에서 지난 시간 그녀의 고통스런 삶을 느꼈다.

??엄마...엄마.....??

머뭇거리며 현관으로 들어오는 그녀를 동철이 와락 끌어 안으며 소리쳤다.

그렇게 동철의 품에 안긴 그녀는 뒤에 있는 나를 의식한 듯 동철을 살짝 밀쳐내며 거실로 들어가 앉았다.

??엄마...미안해....엄마...죄송해요....??

동철이 울먹이며 그녀에게 말했고 그녀는 역시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나 역시 어떤 행동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처남....누나는???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나였다..

그제서야 술에 취한 아내가 생각났고,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어렵게 말을 건넸다.

??누나 방금 전에 잠들었어....??

동철의 방문을 살며시 열어보자, 곤히 잠들어 있는 지윤이 보였다.

지윤 역시 많은 눈물을 흘린 듯 화장이 얼룩진 얼굴을 베게에 뭍고 거친 숨을 쉬며 잠들어었었다.

지윤을 업고서라도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매형...이리로 좀 앉으세요..??

조용히 방문을 닫고 거실로 나오자 동철과 장모가 나를 쳐다 본다.

남은 안주를 정리하며 동철이 소주잔을 건넨다.

??많이 당황스러우셨죠?...죄송해요..어쨋든...??

한참을 뜸을 들인 동철이 말을 이어나갔다.

??아까 누나가 했던 말...있는 그대로 사실이예요...하지만....전 누가 뭐라고 해도 떳떳해요. 여기 계신 우리 엄마를...사랑하고 있어요..물론 평범한 일은 아닐테죠..그래도...??

??동철아!!.....??

??엄마는 가만히 계시고 제 말 계속 들으세요..??

동철이 단호하게 장모의 말을 끊고 계속 이야기 했다.

??후회나 부끄러운 마음 같은 건 전혀 없어요...다만 매형에게 좀 미안할 뿐이죠..??

??내가 미친년이야....다 나 때문에...흑흑...??

그녀가 참았던 눈물을 다시 흘리며 흐느꼈다..

??엄마....엄마 잘못은 하나도 없다니까 그러네...가만히 좀 계세요..??

동철의 목소리가 커지고 난 그저 그녀와 동철의 말을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죄가 있다면 나나 누나는 천벌을 받을거야.....엄마도 지금부터 내 이야기 잘 들으세요..??

??매형...담배 있으세요?? 저 한 대만 피울게요...??

얼떨결에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피를 동철에게 건네주곤 불을 붙여주었다..

동철이 몸에 익지 않은 듯 어색하게 담배연기를 빨아들인 후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맞아요..엄마와 나 부끄럽진 않지만 평범하지 못 한 관계 맞아요...하지만....??

잠시 뜸을 들인 동철의 말에 난 순간 또 한 번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에 휘청거렸다.

??누나,,...매형의 와이프와 나 또한 평범하지는 않아요..??

눈물을 글썽이며 이어진 동철의 말에 정신이 혼미해져갔지만 나 못지 않게 또 다른 충격에 몸을 가누지 못하며 흐느끼는 그녀를 보며 정신을 가다듬고 동철의 말에 귀를 귀울였다.

동철을 잃게 될까 두려워하는 마음은 장모나 지윤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철이 새엄마와 함께 매일 같이 한 방에서 잠드는 걸 보는 지윤의 마음은 복잡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생활을 하고 있던 스무살 지윤의 눈에 보이는 그런 모자의 행동은 너무도 참기 힘들었다.

동철이 어렸을 때에는 상처받은 동철을 어루만져주는 새엄마의 행동에 고마움까지 느꼈지만 성인의 모습을 갖추어가는 동철과 매일 밤 같은 침대에서 자는 새엄마의 행동에 뭔지 모를 불안감과 질투를 느꼈다.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의 동생을 새엄마에게 빼앗겼다는 느낌..

스무 살 그리 어리지만은 않았던 지윤의 머릿속에 맴도는 불안한 상상...

지윤의 상상이 그저 상상만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 물을 마시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기 전 지윤은 항상 머릿속을 맴돌던 불안한 생각에 가만히 새엄마의 방문에 귀를 기울였고, 방안에서 들려오는 작은 신음소리를 확인했다.

새엄마에 대한 증오심은 어느 정도 빛이 바래가고 동생과 자신에 대한 헌신에 대한 고마움, 같은 여자로서의 연민이 지윤의 가슴속에 자리 잡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한 고통, 분노, 새엄마에 대한 증오, 그리고 동생 동철에 대한 미움, 질투....

그런 복잡한 심정이 스무살 지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누구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는 커다란 짐을 지윤의 작은 가슴에 품고 미친 듯이 공부에만 열중을 했다.

대학에 합격한 후 지긋지긋한 집에서 독립을 요구했다.

밤마다 지윤을 고통스럽게 하던 그 집에서 지윤은 그렇게 탈출했고, 그런 지윤에겐 또 다른 할 일이 있었다.

그건 하나뿐인, 누구보다 사랑하는 동생 동철을 찾아오는 일이었다.

동철은 완강했다.

동철과 새엄마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는 틈이 보이질 않았다.

동철은 새엄마를 다른 상대에게 빼앗길까 두려웠고 새엄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철에게 새엄마와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악을 써대며 털어 놓은 후, 동철은 더 이상 지윤의 아파트에 오지 않았다.

혼자 남겨졌다는 느낌, 드디어 새엄마에게 동철을 빼앗겨 버렸다는 생각에 몇 일을 앓아 누웠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 동철이 어색하게 다시 지윤을 찾았다.

그렇게 어색한 오누이로 일년을 보냈다.

동철이 새엄마가 챙겨준 보자기를 들고 지윤의 아파트에 온 어느 날..지윤은 벌써 술에 취해 가끔 머릿속에서만 스치듯 상상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동철 역시 그런 지윤의 계획에 순조롭게 응했고, 오누이 역시 평범하지 못한 관계가 되었다.

동철 역시 그런 누나의 행동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지윤과 그런 관계가 됨으로서 더 이상 지윤은 엄마와 동철의 행동에 대해 할 말이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엄마 못지 않게 동철도 누나를 사랑했고, 둘 중 어느 누구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동철의 입장에선 최선의 해결책을 지윤이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

??엄마...누나가 엄마에게 그동안 그랬던 건 말이지....아빠일에 대한 원망보단,,,질투심이었어...그래서 난 누나와 엄마한테 너무 미안했어..나...정말 힘들었어...오늘 일 차라리 잘 된 일인지 몰라..

그러니 죄가 있다면 내가 가장 큰 죄를 지은거지 누나나 엄마는 절대로 죄가 없는 거야..??

길고 긴, 너무도 충격적인 동철의 이야기가 끝이 났다.

??매형....경수형...정말 미안해.....그래도 형이 나타났을 때 정말 좋았어...누나라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될거같아서...그래서 좋았어..형이 누나를 행복하게 해줄거 같았고..빨리 형이랑 누나가 행복하게 살게 되길 빌고,,그렇게 되도록 나름대로 노력 많이 한거야..??

??어...응......??

??형....미안해...지금 난 이렇게 홀가분한데...이젠 형이 걱정되....너무 큰 짐을 주게 되어서..형이 어떤 선택을 하든...원망하지 않을게...그냥...용서를 구할 뿐이야...??

??한..한가지만 물어볼게....??

정신을 가다듬으며 동철에게 물었다.

??누나를...지윤이를 사랑해??? ??

??물론 사랑하지....하지만 그건 내 친누나에 대한 사랑 그이상 이하도 아냐..내가 여자로서 사랑하는 건 세상에 우리 엄마.....오...혜...경 뿐이야...아까 말했지만 엄마와 나의 관계...부끄럽지 않아...절대루...또한 누구든지 엄마를 또 울게 만든다면 내가 용서 못해!!!??

동철은 이내 옆에 앉아 숨을 죽이고 있던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 그녀를 품에 안아 주었다.

그녀가 동철의 품에 안겨 숨죽여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모자, 아니 연인을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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