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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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프다고 조퇴까지 했다는 사람이 어딜 쏘다니다 온 거야????

조금 늦은 시간, 집에 들어오자 지윤이 걱정과 원망이 섞인 목소리로 쏘아붙인다.

??사실은 누굴 좀 만나야 되서 핑계 댄거야...??

??누굴 만났는데 거짓말로 조퇴까지 한거야???

??그냥 좀 급하게 만날 사람이 있었어..??

서로간의 사생활에 대해 존중해주기로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던 터라 그녀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내가 오기 전에 준비한 듯한 음식을 내어놓는다.

그녀와 레스토랑에서 한 시간쯤 이야기를 나누고 혼자 가도 된다며 사양하는 그녀를 반강제로 떠밀 듯 내차에 태워 그녀가 근무하는 학원까지 태워주었다.

내 옆에 다소곳하게 앉은 그녀는 어깨에 맸던 가방을 무릅 위에 살며시 올려놓고 앞을 주시하며 학원까지 가는 길을 안내한다.

수없이 가봤던 터라 눈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나였지만 그녀의 지시대로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가며 그녀의 옆모습을 힐끗거리며 쳐다봤다.

십여년 전 내가 처음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겼을 때의 간격과 각도에서 그녀의 얼굴과 입술을 감상했다.

유난히도 자극적이었던 그녀의 입술과는 좀 다르게 그녀의 볼, 눈, 콧날, 이마의 굴곡이 눈에 들어온다.

직진을 해서 굳이 사이드 미러를 보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난 계속해서 사이드미러에 눈길을 주었다.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르켜가며 정성껏 길을 안내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메아리치는 듯한 느낌.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 귀가 멍멍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녀의 목소리가 마치 꿈속에서 들리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서 윙윙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다리위에 있는 가방이 흘러내리려고 하자 다시 가방을 위쪽으로 조금 당겨 놓았다.

가방아래로 그녀의 조그마한 무릅이 보였다.

큼직한 감자처럼 탄력있고 부드러워 보이는 그녀의 무릅이 보였다.

그녀의 양 무릅은 자석처럼 꼭 붙어있었다.

많은 세월 오누이에 대한 의무감과 세상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몸에 베인 자세일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그녀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자세로 나를 대했고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행동해 왔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경계심을 먼저 보이고, 또 다른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 힘들었했을 그녀를 생각하며 마음 한 구석이 찌릿해오며 앞으로 그녀가 많이 웃을 수 있게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윤이 차려준 음식을 입에 넣어 갔다.

??혹시.....혹시 말야... 오늘 만났다는 사람....내가 아는 사람이지???

??응??...으...응..??

??새엄마 만났지???

??어?...어....맞아...??

속일수도 없고 속일 필요도 없었다.

??머하러 시키지도 않는 짓을 해???

??짓?? 내가 무슨 못 만날 사람 만났냐? 장모님 될 사람 만나보는게 무슨 죄라도 되냐???

갑자기 울컥해져서 지윤에게 소리쳤다.

??난 네가 이해가 안 된다..장모님이 무슨 그런 큰 죄인이라고 그렇게 유난스럽게 그래? 그동안 그 정도 했으면 됐다.. 너나 장모님이나 그 분을 잃어서 마음 아픈 건 마찮가지 아냐??..??

??그 여자가 뭐가 마음이 아파?? 나만큼 아프대?...??

??너 못지 않을 거야...그렇게 그동안 너희를 위해서 희생하셨으면 됐지...장모님이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하냐...솔직히..너희 둘..장모님 아니면....??

??그만해....그만하란 말야...오빤 몰라...그여자가 어떤 여잔지 뭘 안다고 그래..??

지윤이 벌떡 일어나 뛰쳐나간다.

지윤을 잡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저런 지윤에게 십년 넘게 시달려왔을 장모가, 그녀가 안쓰럽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집에 들어올 때 사 들고온 검은 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골뱅이 캔 하나와 소주 두 병이 들어있는 봉지를 손에 들고 쇼파에 앉았다.

급하게 뚜껑을 따고 반 병을 들이킨 후...나머지 술을 천천히 비워갔다.

지윤에 대한 섭섭한 마음과 그녀에 대한 연민이 술이 몸에 흡수되듯이 뒤엉켜갔다.

핸드폰을 꺼내어 들었다.

??지윤아 미안해...난 그저 앞으로 너희 가족이 될테니까..나라도 장모님과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에 그랬어..네 기분 모르는 거 아냐..앞으로 너에게나 동철이, 어머니에게 잘할게..우리 더 노력해보자??

지윤에게 장문의 문자메세지를 보냈다.

술기운이 오르기 시작하기 시작한다..

핸드폰 통화 내역을 보자, 낮에 통화했던 그녀의 휴대폰전화번호가 눈에 들어온다.

[장모님]이라고 무미 건조하게 저장된 이름을 보고, [내사랑]이라고 바꿔보곤 [오혜경]이라고 다시 바꾸어 본다.

통화버튼을 누르자

[오혜경]이란 글자가 선명하게 나타나며 ??전화거는중??이란 메시지가 뜬다.

뚜 뚜 하는 흔한 컬러링도 되어있지 않은 그녀의 핸드폰으로 발신음이 귀를 때린다.

그제서야 지금 시간이 열한시가 넘었다는 걸 생각하곤 끊어버릴까 하지만 술기운 때문인지 그녀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여...여보세요....??

그녀의 목소리다..

약간은 잠에 취한 듯하면서도 목이 잠긴듯한 묘한 톤의 느낌이 든다...

내가 머뭇거리자 그녀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김..김서방...잘 들어갔어???

??예...예...장..모님도 잘 들어가셨죠????

??응....오.늘 즐거웠어...전화해줘서 고마워...요..??

존댓말도 아니고 낮춤말도 아닌 그녀의 목소리가 좀 떨리는 느낌은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을까..왠지..느낌이 이상하다.

??혹시 무슨 일 있으신거 아니시죠????

??응?..응....무슨일은..그...그냥..자다 일어나서...??

??그러셨어요??전..전 그냥 좀 궁금해서요..죄송해요..주무시는걸 깨웠네요..주무세요..??

??아냐...괜..괜찬아...김서방도 잘 자구...늦..늦었자나..다음에 또 만나요..??

짧은 통화를 끝내고 후회가 밀려왔다..

또 괜한 짓을 했다고 자책하며 내 머리통을 쥐어 뜯었다.

멍청한 놈 말은 왜 이렇게 더듬냐..

술기운이 온몸을 휘감아온다..

욕실로 들어가서 차가운 물을 온몸에 뒤집어 쓰며 미친 듯이 자지를 흔들어대곤 허연 정액을 바닥에 쏟아 부었다..

내 사랑 혜경이를 미친 듯이 불러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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