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75)

3.

??넌 그게 머냐? 내 입장도 좀 생각해주지.. 얼마나 어색하고 뻘쭘한지..너 진짜 오늘 보니까 못됐더라. 아무리 친엄마가 아니라도 그렇지..??

??미안해 오빠..나도 오늘은 안 그래야겠다고 다짐하고 왔는데..그냥 그 여자만 보면 그냥 싫고 짜증나고 그래..오빠가 이해 좀 해주라..나도 노력할게??

지윤과 나는 삼십분 정도의 짧고 허무한 상견례자리를 마치고 회사로 들어가는 길이다. 사내 커플이란 이유로 여러 가지 걸리는 것들이 많아서 서로 조심하고 회사 내에선 서로 거의 말도 안하며 지내다보니 주말에 데이트하는 걸 빼곤 이런 저런 이야기 할 기회가 별로 없다.

??예전에는 어려서 그랬다지만 너가 지금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좀 너무한거 같더라..솔직한 말로 장모님 때문에 아버님이 돌아가신것두 아니구 말야. 장모님 나름대로 너희들한테 정말 잘 해주시려고 그동안 얼마나 노력했는데..동철이한테 듣기로는..??

??그만해..내가 미안하다고 했자너..??

??그러니까말야..다른 자리도 아니구 오늘같은 자리에서라도 어머니 대접 좀 해드리면 안되냐..아까 보니까 장모님의 니앞에서 무슨 죄인이라된 듯이 하시는데 불쌍하시더라..장모님 입장에서야...??

??그만좀 하라니까 그러네...그놈의 장모님 장모님 소리도 좀 그만해라..??

지윤의 격앙된 목소리에 위축이 되어 입을 다물 수 밖에 없다.

나한테나 회사 동료한테나 언제나 상냥하고 예의바른 지윤이 이렇게 화를 내는 건 흔하지 않기에 그냥 지윤의 기분을 맞추어주고자 난 입을 다물고 음악을 틀었다.

조용한 음악이 차안에서 흘러나오는 동안 난 아무 말 없이 운전을 하고 지윤 역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스피커에선 고등학교시절에 많이 들었던 발라드곡이 흘러나오자 자연스럽게 그 때가 떠오른다.

고등학교 2학년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을 해서 그만 두신 수학 선생님을 대신해서 새로운 선생님이 새로 오셨다.

수학에 재능이 별로 없었던 나는 그나마 수학선생님이 여자선생님이라서 위안이 되었었는데 그 선생님이 그만 두신다니 고1때 수학문제를 못 풀어 허벅지가 남아나지 않았던 악몽이 재현되나 싶어 우울했었다.

그런데 이건 왠 일인지 후임 선생님도 여자선생님이란 소문이 돌고 얼마 안 있어 부임하신

수학선생님을 보곤 그만 넋이 나가버리고 말았다.

아이들 말로는 서른 살에 미혼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보이는 모습은 우리학교 여자애들 만큼이나 애 띄고 청순한 외모의 말 그대로 선녀 그 자체였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뭐하나 특출나지도 못한 나는 그냥 조용한, 선생님들 입장에선 기억에 남지 않을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다.

반 아이들 중 유별난 놈들은 일부러 수학선생님에게 질문도하고 방과 후에 라면도 사달라구해서 수학선생님과 친분을 쌓아갔지만 난 그저 혼자 선생님을 마음에 둘 뿐 내가 할 수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선생님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 후 자기 전 그걸 떠올리면서 자위하는 것 밖엔 없었다.

그렇게 나 혼자만의 짝사랑, 아니 짝섹스라고 해야하나? 그런걸로 나름대로 선생님과의 사랑을 이어나간지 얼마 안 되서 선생님은 곧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셨는지 그만두셨는지 모르게 내 곁?을 떠나셨다.

내 나이 열여덜 살 가을 낙엽이 떨어지던 때로 기억이 난다.

선생님이 가신 후 일 년 만에 세 번째 수학선생님이 부임하셨고 역시나 불길한 예감대로 내 허벅지에는 또다시 마대 걸래 자루의 흔적들이 지워질 날이 없게 되었다.

그 때, 내 나이 열 여덜살에 내 짝에게 수학문제를 친절히 알려주면서 오물거렸던 입술..가슴이 터질듯하게 곁눈질로 훔쳐봤었던 그 입술.. 수 많은 밤 자위를 하면서 떠올렸었던 그 빨갛고 도톰한 입술..

그 입술을 오늘 12년만에 다시 보게 된 것이다.

그 입술은 내 첫사랑의 입술이자 이젠 우리 장모님의 입술이다.

오혜경 선생님의 입술..장모님의 입술... 그 입술 때문에 아무래도 오늘밤엔 잠을 이루기 힘들거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자동차의 속력을 높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