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누나 - 또다른 재회
1.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은 십 여년 동안 늘 해왔었다.
이런 자리 이런 상황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조용한 호텔 커피숍. 창을 뚫고 들어오는 오월의 햇살을 등에 지고 또박 또박 내 자리로 걸어오는 중년의 여인.
화사하고 밝은 투피스 정장을 입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작은 핸드백을 손에 쥐고 내 쪽으로 다가오는 그녀를 맞으려고 벌떡 일어나 엉거주춤하게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한다.
그녀 역시 약간 어색한 미소를 띄우며 어느 쪽에 앉을지 잠시 살펴본다.
난 맞은편 의자를 밀어 그녀가 앉을 수 있게 자리를 내어준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경수입니다.??
그렇게 그녀에게 12년만에 인사를 건넨다..
??예..제가 좀 늦었네요..??
그녀 역시 어색한 인사를 건넨다.
내 옆 자리에는 잔뜩 찌뿌린 얼굴을 한 나의 애인이자 두 달후 결혼할 예비 아내가 앉아있다.
??지윤아 미안하구나...오는 길을 좀 헤맸어. 서울 지리에 어두우니까...음...내가 어딜 잘 돌아다녀보지 않았잖니..그래서...음..또 처음 오는 길이고 해서 말야....그래서....??
??됐어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변명을 더듬거리며 말하는 그녀..싸늘하고 짧은 대답으로 그녀를 무안줘버리곤 이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버리는 내 옆자리의 지윤.
그렇게 우리의 어색하고 내 입장에선 설레고 어려운 상견례 자리가 시작되었다.
??동철이나 지윤이 통해 얘기 많이 들었어요...지윤이나 동철이 한테 참 잘해주시고...많이 고마워했어요. 이렇게 직접 보니 참 좋은 사람일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부터 이렇게 늦어버려 미안해요..??
그녀가 먼저 내게 말을 건넨다. 그녀의 입술..약간은 도톰하며 유난히 입술의 주름이 가늘고 많은, 그래서 왠지 귀엽고 섹시해 보이는 그런 입술을 오물거리면서 내게 천천히 말을 건넨다.
12년 전 내 가슴을 터뜨릴 듯 오물거렸던 그 입술, 지난 시간동안 내 머릿속 한 구석에서 희미하게 남아있던 그 입술이다.
그렇게 십 여년 전 그녀의 모습과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그녀의 모습이 겹쳐진다.
??아닙니다. 겨우 십분 늦으셨는걸요 멀..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앞으로 사위가....??
문뜩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말에 대답을 하면서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게 횡설수설해댄다.
??됐어...두 사람 용건만 얼른 말하고 가자..나 세시까지 들어가 봐야 되..??
옆자리의 지윤이 신경질 적으로 내뱉는다.
일부러 표독스럽게 보이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하다.
??지윤아 모처럼 이렇게 만났는데 차도 좀 마시면서 천천히 이야기 좀 하자. 다른 자리도 아니구 그래도 네 신랑감과의 첫 만남이잔니..엄마는...??
??됐다니까요..엄마는 무슨....??
너무나 어색한 분위기...나는 이런 분위기를 어케 해야 할 지 잠시 생각해보지만 딱히 말주변이 있는 것도 아니구 이런 분위기를 일거에 깨어버릴 유머나 아이디어도 가진 게 없다.
앞에 있는 찻잔만 만지작거리며 두 모녀의 분위기만을 살필 뿐이다.
그때 갑자기 헐레벌떡 우리자리로 뛰어오는 동철이 보인다.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우리 셋 모두 동시에 일어서면서 동철을 반긴다.
이 분위기를 일시에 반전시킬 구세주의 등장.
??헥..헥..엄마!! 같이 오자니까...먼저 가버리냐 씨.. 혼자 버스타고 오느라 생고생 했자너...누나 오랜만이네..누난 옷이 그게 머냐?...좀 이쁘게 좀 하고 오지... 오~~형.. 오늘 멋지시네. 역시 매형은 어케 입어도 멋지단 말야...우리 누난 좋겠어..헤..??
엄마, 누나, 예비매형 순서대로 반갑고 쾌활하게 인사를 건네며 물 컵에 있는 물을 벌컥거리며 들이킨다.
예비 처남 동철이다.
대학에 갓 입학해 한껏 자유를 즐기며 1년 전부터 나에게 뜯어오던 찬조금을 올려줄 것을 요구하는 하나뿐인 처남.
그렇게 처남의 등장으로 인해 어색했던 자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급반전된다.
날 만날 때보다 더 들떠 보이며 동생을 반기는 지윤은 좀 전의 쌀쌀한 분위기는 어디 갔는지 동생을 보며 연신 떠들어댄다.
대학 생활은 어떤지 여자 친구는 생겼는지 별별 수다를 떨어대는 오누이를 그저 바라만 보는 장모, 그런 장모의 얼굴을 힐끔거리며 쳐다보며 옛 추억으로 잠겨드는 나..
그렇게 장모, 12년 전 잠 못 이루며 짝사랑했던 그리고 아직도 잊지 못하는 나의 첫사랑과의 재회가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