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25)

학생회실에 들르니 미쿠리야가 자기 전용의 책상에 앉아 뭔가 업무를 보고 있었다.

약간 떨어진 위치에서 PC를 보면서 일하고 있는 부회장과 회계도 있다.

회계는 동급생이므로 잘 아는 사이인지라 일단 인사 정도는 해 뒀다.

「무슨 일이야? 후에후키군.」

고개를 든 미쿠리야가 내게 말을 걸었다.

「묻고 싶은 게 좀 있는데 잠깐 시간 돼?」

「별로 상관없지만. 서서 이야기하는 것도 뭣하니까 여기 앉아.」

손님용인 것으로 보이는 파이프 의자를 권해 오길래 그 친절을 받아들인다.

미쿠리야의 옆, 학생회실의 비치 금고 앞에 자리잡았다.

「금고 엄청 큰데. 얼마 정도 들어있어?」

「현금은 활동비가 약간 들어있을 뿐이야. 대부분은 대외비의 서류라던가 학교 열쇠라던가, 인감 정도?」

「학생회실 비품 치고는 너무 좋은 거 아냐?」

「그만큼 엄중한 거야?. 열쇠를 갖고 있는 것도 서기장과 부회장 둘 뿐이고, 선생님들도 예비를 갖고 있지 않으니까. 엣헴.」

「너한테 예비키를 맡기고 있다는 게 제일 걱정된다만.」

나는 요전의 사건을 빗대어 빈정댔다.

이 녀석이 로커 키를 잃어버리면서 사건이 시작되었으니

내가 미쿠리야의 열쇠 관리능력에 의문을 품는 건 어쩔 수 없다.

과연 그걸 생각하면 겸연쩍은지 눈을 돌리는 미쿠리야.

「…… 아참, 묻고 싶은 건 뭘까나.」

「얼버무리는군. … 뭐 좋아. …… 체육관 근처에서 뭔가 트러블이 있었던 적 있어? 예를 들어 이지메라던가.」

「…… 그건 또 묘한 걸 묻네? 내가 여기 들어온 이후로 심한 이지메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가벼운 무시 정도라면 있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내가 문제로 인식할 정도의 이지메는 없어.」

「아무 거라도 좋아. 유령이 나왔다던가, 학생이 갇혔다던가……」

스스로도 뭘 하고 싶은 건지 영 아리송한 상황이라 적당히 예시를 들고 있었더니,

의외로 낚인 건 다른 인간이었다.

「저기, 서기장과 후에후키는 언제부터 그렇게 사이가 좋아진 거야?」

PC 앞에 있던 회계남이었다.

이 쪽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 옆의 부회장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고 있지만 이 쪽을 살피고 있다.

이건 혹시 나와 미쿠리야의 사이를 의심하고 있는 건가?

이 녀석들, 아까부터 계속 귀를 기울이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 어라, 후지타군, 나랑 후에후키군 사이가 신경쓰여?」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하는 미쿠리야.

후지타는 우리 옆반이며, 나보다 머리가 두 배는 좋다.

그러면서도 의외로 산뜻한 성격인 모양이라 나와는 달리 친구가 많다.

그러니 역으로 나와 미쿠리야가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고 호기심이 자극된 거겠지.

접점이랄 게 거의 없어보이는 두 사람이 친해보이니까.

덧붙여서 이 녀석은 10월의 문화제가 끝나고 집행부가 세대교체하기 전까지는 서무였다.

미쿠리야는 부회장이었고. 저쪽에 있는 부회장은 내년에 서기장으로 격상되기로 정해져 있다.

형식적인 선거가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우리 학생회는 세습제나 마찬가지다.

「물론. 서기장의 하반신 스캔들이 터지기라도 하면 취재하지 않을 수 없지.」

「안됐네요?. 후에후키군과는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학교에서 자위하다 목격당했다고 하는 웬만한 육체관계보다 진득한 사이입니다만.

「…… 미안, 후지타. 아까 그걸 좀 물어보고 싶었을 뿐이야. 일 하는 거 방해해버렸나?」

「신경쓰지 마. 근데 체육관이라고?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었어?」

「으음, 풋살부 일로 좀. 모리가 부탁해서 말이지.」

「그러고 보면 너도 풋살부 들어갔다고 했지. 시합중에는 자지 말라고.」

「아직 가입부지만. 그리고 내가 아무데서나 드러누워 자는 듯한 표현은 그만 둬. 하급생이 오해하잖아.」

「너 말아, 자기가 꾸벅꾸벅 대왕이라고 불리고 있는 거 알고 있잖아?」

「대왕에까지 출세하고 있다는 건 몰랐는데. …… 그럼 난 이만.」

용무를 마친 나는 학생회실을 뒤로 했다.

정말이지 내가 뭘 하고 싶었던 건지 나도 잘 모르겠군.다음날도 체육용구실로 향했다.

그 시건방진 후배를 배웅한 뒤로 대충 낮잠잘 만한 침대가 있나 조사해본 결과

다소 땀내 나는 걸 제외하면 꽤 유망주라는 게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번쯤 시험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체육용구실의 문에 손을 대는 순간,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등렀다.

문을 열지 않고 그대로 둔 채 조금 떨어져 있는 환기창으로 안을 들여다 본다.

환기창은 가로세로 50cm의 스텐레스제 창틀이며, 앞뒤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고 개폐 가능한 유리창이 붙어 있다.

사람이 지나가기엔 비좁지만 안을 들여다보는 정도는 문제없다.

조립식 건물의 즉석창문처럼 참으로 싸구려삘 나는 것이, 힘 좀 쓰면 뽑혀나올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런 창을 통해 안을 바라보니 체육용구실의 중앙부, 뜀틀 위에 면식 있는 인물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일부만 묶어내린 세미롱의 헤어스타일, 험악한 눈매, 말할 것도 없이 어제의 그 1학년이다.

저 녀석, 어째서 오늘도 갇혀있는 거지?

게다가 침착해 보이는 것이 감금된 상태로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사냥감을 기다리는 육식동물 같다.

내가 생각한다고 해서 답이 나올 리도 없으므로 어제처럼 문 밖에서 말을 걸어 봤다.

「어이?, 어제의 1학년. 오늘도 갇혀 있는 거야?」

대답이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뭔가 망설이고 있는 듯한 분위기.

「혹시…… 어제의 그 선배님인가요?」

「오우, 정답. 창으로 보니 또 네가 있어서 걱정이라 말이지. 열어줄까?」

「…… 부탁한 적 없습니다만.」

「그러지 말고. 자자, 지금 연다.」

나는 어제와 같은 순서로 문을 열었다.

어제처럼 불만 가득한 부루퉁한 얼굴의 여자아이가 마지못한 듯 밖으로 나온다.

「감사합니다아…….」

불만이 철철 넘치는 모양이다.

약간이지만 유쾌해졌다.

「너 말이지, 왜 또 그 안에 갇혀 있는 건데? 이상한 취미라도 있는 건가? 게다가 그 성난 얼굴은 뭐야.」

「갇힌 거 아닙니다! 이상한 취미도 없고, 저는 선배님의 공연한 참견에 화가 난 것 뿐이에요!」

「불가해한 녀석이군. 친구 별로 없지?」

「있습니다! 후에후키 선배님과는 달리!」

어라, 놀랐다.

내 이름을 알고 있었나?

자랑은 아니지만 저학년이 내 이름을 기억할 정도의 유명인은 아닌데.

그렇다면…….

「너, 나와 같은 중학교 출신이군.」

「맞아요. 5중 출신이죠.」

「5중생 치고는 상하관계가 제대로 배어있지 않은걸. 우리 교풍은 좀 더 ‘선배를 존경하자’에 가까울 텐데.」

「죄송하지만 모리 선배님과는 달리, 후에후키 선배님을 존경할 필요성은 느껴지지 않아서. 이쯤에서 실례하겠습니다.」

말버릇 나쁜 후배는 한층 더 나를 내려다보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우향우 해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나를 의식한 탓인지 몰라도,

턴 한 발이 축이 되는 발에 걸려 화려하게 앞으로 굴러버렸다.

넘어질 때도 앞으로 자빠지다니, 가드 다이버 같은 녀석이다.

「꺗!!」

멋지게 자빠진 탓인지 스커트가 단숨에 훌렁 말려올라가면서 허리까지 드러났다.

덕분에 하얀 팬티와 그 천조각에 감싸인 큼직한 엉덩이가 시야에 쏙 들어온다.

이 시대, 아동용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문까지 있는

순백색 팬티의 선명하고 강렬한 충격이 내 영혼을 강타했다.

미쿠리야의 파랑, 모리의 끈팬티(나중에 확인해보니 실크제의 수수한 베이지색이었다)와 비교하니

소녀다운 게 꽤나 좋은 느낌이다.

이것만으로도 이 녀석에 대한 내 평가는 살짝 올라갔다.

「괜찮아?」

손을 빌려주려 했지만 후배가 밀어내 버렸다.

팬티를 보인 게 분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미쿠리야도 팬티를 보인 것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었는데

여자라는 존재는 팬티를 보이면 묘한 스위치라도 켜지는 걸까.

그럴 거면 처음부터 미니스커트 같은 걸 입지 말라고.

단, 나는 미니스커트 찬성파이긴 하다만.

흥, 하고 내뱉듯 한 소리를 남기고 건방진 후배는 다시 떠나갔다.

「뭐냐, 저건?」

나는 연하의 여자아이의 기행에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체육용구실에 기어들어 매트리스를 이불 삼아 한잠 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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