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하균씨와의 짧은 인연의 끝으로...
여름은 끝이 났다.
무더운 여름 내내 병원안에 갇혀있던 하루의 뒷바라지와
하루가 광고를 했던, 내가 디자인한 속옷 상품이 히트를 치면서.....
점점 바빠진 일 때문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간지도 모르게.....
무더운 여름은 섬광처럼 그렇게 날 스쳐 어느새 12월이 다가왔다.
"...애송이 앞으로 꽤 유명한 스타가 될거다.
그 자식이 싫다고 해도 내가 그렇게 할거니깐."
하균씨의 의미심장했던 말.
그말이 사실이라는 입증을 하듯 하루의 포스터가 뜻밖에 히트를 친뒤,
광고와 모델쪽에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하루.
처음에 거리에서 사람들이 하루를 알아보면
왠지모르게 우쭐한 마음이 있었지만....
날이 지날수록.....
거리에서 하루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난 서서히 녀석의 얼굴 조차 보기 힘들어져만 갔고,
급기야 하루를 담당하고 있는 에이전시에서 그동안
하루와 나의 동거(?)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는지
하루의 방을 따로 구해준다며,하루에게 덥석 오피스텔 열쇠를 안겼다.
"...문득 그 자식이 과연 그런 스타가 되어서도 널 놓지 않을지........
.........너무 궁금해져서 말이야........."
하균씨가 내게 던진 한마디의 말이 서서히 현실로 부각되어
마치 씻으려해도 잘 씻겨 내려가지 않는 끈끈한 액체 마냥....
자꾸 잊으려 하는 내게로 밀려 드는 불안감에
점점 초조해져만 가는 나.
하균씨가 마지막으로 내게 걸은 주문에...
난 이미 옳아 매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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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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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텔.
오랜만에 촬영이 없어서 집에 일찍 들어온 하루는,
비디오를 빌려왔는지 아까부터 혼자 영화를 본다고 정신이 없었다.
올만에 들어와서 영화만 보냐! 쳇!
혼자 화장실에 들어와 빼꼼히 문을 열어 하루를 훔쳐보던 나.
조심스레 문을 닫고는 급히 화장실 캐비넷을 뒤진 난,
하루가 미리 준비해둔 콘돔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언니! 방법은 딱 한개야!! 한방에 해결할수있는 방법!!
인기 많은 하루를 영원히 꽉 잡는 방법~~~~ 호호호호~~~
아기!
애를 갖으면 바로 해결된다니깐!
아기로 도장을 꽉 찍어버리면...호호호호....하루는 바로 언니꺼라우~~"
[꼴깍!]
박스안에 한 열개정도 남아있는 콘돔을 바라보며
귓가로 스쳐가는 영은의 말에 마른침을 꼴깍 삼킨 나.
콘돔 하나를 덥석! 손에 움켜 쥐고 허공에 들어올려서는
도끼눈을 치켜 세운 두눈으로 무섭게 콘돔을 꼴아봤다.
그려, 이 방법밖에 없으.
요새들어 바쁜 하루 덕분에(?) 하루와 함침을 오랫동안 하지 못했지만....
언제나 날 생각해 콘돔을 끼는 녀석의 버릇을 역이용하면.
호호호호호호~~~~
[스윽]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둔 바늘을 꺼내어 허공으로 치켜 들었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바늘 끝을 바라보며 눈에 불이 킨 나.
일제히 바늘을 허공에 치켜세우고는 정신없이 콘돔에다 찔러대기 시작했다.
[픽! 픽! 픽! 픽!...]
그래. 이놈들아!! (정자를 칭함;;;) 내가 만든 구멍이 더 크나...
네놈들의(정자;;) 몸뚱이가 더 크나 해보자.우씨!!
"헥헥헥..."
박스에 남아있는 콘돔에 하루녀석이 알게모르게 구멍을 송송 뚫은 난,
가픈 숨을 몰아쉬며 승리의 옅은 미소를 흔날렸다.
그리고는 유유히 화장실 문을 나섰다.
[끼이익-]
"누나! 냉장고에서 콜라 하나만 가져다 줘."
내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거실 바닥에 누운채로 소리치는 하루 놈.
"......언니, 분위기를 타야하는거 알죠!
하루군이 콘돔이 이상하다는 눈치 채지 못하도록....
분위기를 띄워서는 정신 못차리게, 그렇게 해야해요! 꼭이요!......"
영은의 또다른 충고에 나혼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약간은 아양섞인 목소리로 하루에게 외쳤다.
"하루양~~ 맥주 있는데~~ 콜라보다는 맥주가 더 낫지 않을까!?~~~
나 오랜만에 너하고 맥주 마시고 싶은뎅~~~~"
"그래?, 그럼 맥주 갖고 와."
나의 피땀어린(?)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텔레비에 열중하며 내말에 무뚝뚝하게 말하는 하루 자식.
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맥주를 꺼내어 들어선 하루에게 다가갔다.
"자~~ 맥주~~~"
"어. 고마워."
하루에게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하며
하루의 곁에 슬쩍 몸을 맞대서는 녀석에게 맥주를 건내는데...
이놈의 자식, 날 쳐다보지도 않고 맥주만 날름 낚아채고는
정신없이 텔레비만 쳐다본다.
우씨, 뭐여!! 씨방, 뭐하지는 플레이여!!
"..뭐 보냐?!"
"어? 아. [스캔들] 모델 촬영때문에 극장에서 못봤거든."
스캔들?!
배용준하고 전도연 나오는거였던가?
"스캔들...? 배용준하고 전도연 나오는거?...재밌냐?"
기분 나쁜 표정으로 텔레비를 꼴아보며 무심코 물어봤는데...
"어! 누나, 봤어!? 죽이지? 진짜 죽인다, 이 영화!
전도연 한복 입은 모습...캬아~ 정말 죽인다니깐.
넘 아름다운거 있지!! 한복하고 전도연하고 저렇게 매치가 잘 되다니!
한폭의 그림이다~ 그림이야~"
갑자기 기다렸다는듯 열변을 토하는 이놈의 자식!!
녀석의 말에 눈쌀을 찡그린 나는 마침 전도연이 테레비에 나오자
무섭게 그녀를 꼴아봤다.
뭐야? 저게 아름답냐!!!
"허, 저게 뭐가 예쁘냐!! 나도 한복 입으면 한 맷시 한다. 왜이러셔~!"
"정말??!! 우와~~!! 누나, 지금 한복 있어?!! 있으면 입어봐라!!! 응???"
녀석의 말에 화가 나 버럭 소리쳤는데 갑자기 두눈을 반짝이며
날 바라보는 하루 자식.
다짜고짜 한복을 입어보란다. 하아~ 정말 못살어.
"누나~~ 응~~ 입어봐~~~ 응~~~~"
자꾸만 보채는 하루녀석의 성화에 어쩔수없이 옷장을 뒤져
한복을 꺼내어 들은 난....
하루 녀석보고 화장실에 들어가 있으라고 한뒤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화장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을수도 있었지만...
내가 특별 제작한 콘돔을 하루가 자연스레 들고 나올 시간을
마련해 주기 위한 나의 특별한 배려.
호호호호호호~
자~자~ 분위기를 타라...ㅋㅋㅋㅋ
오늘 이 한복과 특별 제작 콘돔으로 이 하루, 넌 죽었으!
크크크크크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