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황당한 말을 한채 병원에서부터 정말 무서울정도로
빠른 속도로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하균씨의 차가 멈춘곳은,
인적이 드문 어느 바닷가였다.
언제부턴가 내리는 보슬비.
안개속 너머 잔잔하게 시야로 흩어지는 파도.
비 내음속으로 옅게 뭍어나는 바닷내음.
귓가를 조용히 파고드는 파도 소리.
차에서 내리자말자 물밀듯이 나에게로 밀려드는 주위 환경에
나도 모르게 가슴 한편이 시원함을 느낄 무렵,
여전히 입에 담배를 물고서 나처럼 물그머니 바다를 바라보던 하균씨가
저벅저벅 몇발자국 모래사장으로 걸어나가더니.....
"큭큭큭...풋하하하하하......"
자리에 우뚝 서선 서서히 어깨를 들썩이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곤 힐끔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본다.
"......정말 왔네! 정말 왔어!.....
실은 여기 오면서 기름 떨어져 중간에 멈출까봐 엄청 걱정했거든."
어린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지어보인채
살짝 윙크를 해보이며 피식 웃던 하균씨.
갑자기 바지 끝을 접어서는 신발을 벗어 던진채 모래사장에 맨발로 내딛는다.
"....해봐. 느낌이 달라."
하균씨의 말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던 난,
힐끔 발을 내려다봤다.
모래사장에 반쯤 파뭍힌 내 발.
하지만 발끝으로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모래의 느낌.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한발을 모래사장위로 내딛었다.
보슬비로 표면이 촉촉히 적은 모래사장의 느낌이 발끝으로 스며서는
서서히 따뜻하고 깔깔한 모래의 느낌이
내 발을 감싸기 시작했다.
너무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생소한 느낌.
내 발을 간질거리는 모래의 느낌에 나도 모르게 옅은 미소가
입가로 번질 무렵........
아까부터 날 바라보던 하균씨의 나직한 목소리가
파도 소리에 뭍혀 내 귓가를 잔잔히 스쳤다.
".......사람 마음 같지!?
발로 서서히 파고 들어오는 이 모래처럼.......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다른 사람 마음속으로 천천히 파고 들어와 잠식해버리거든.
.....따뜻하지만........따갑게 할퀴고 스쳐가...........
..............
쿡..... 다른게 있다면...........
모래 사장은 내가 싫으면 금방 빠져나갈수있지만........
.........사람 마음은 그럴수가 없어.........
내 마음대로 안돼..........
...빠져나가고 싶어하면 할수록.........질퍽거려서.......
자꾸만 질퍽 거리게 되서 나중엔 더러워........
.......더러워진다구.............."
옅게 흩어지는 보슬비안으로 ......
날 바라보는 하균씨의 슬픈 눈이 흩어져선,
내 온몸을 묶어버린다.
[챙]
어느새 새 담배를 입에 물은 하균씨.
경쾌한 지퍼 라이터 음이 터져선 피여오르는 불꽃이
잔잔하게 스쳐가는 바닷 바람에 몸을 흔들어댔다.
"....담배 너무 많이 피는거 아니에요?"
아무생각없이 내뱉은 내말에 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하균씨가
행동을 멈춘채 날 응시한다.
"....담배 피는 모습이 멋있다고 했던 사람이 있어서......"
일순간 과거로 빠져들어가는듯한 하균씨의 초첨없는 시선.
매마른 미소가 그의 입가에 머무는가 싶더니.....
그만 모래사장에 그대로 누워버린다.
"하아~ 너하고는 정말 시작도 안해서....쉽게 끝낼수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힘드네.
그 빌어먹을..... 사랑한다는 말.
한번 입밖으로 내뱉어 버리면.... 그 말이 자꾸 날 옭아매거든.
제길!!
근데 버려야 할 추억이 많지 않아서.......
....그건 좋다............"
누워서 자리에 서있는 날 바라보던 하균씨.
갑자기 내 손목을 무섭게 낚아채서는 끌어당겨버리자,
그만 모래 사장위로 덜썩 주저 앉아버리는 난........
자리에 일어날 겨늘도 없이........
날 무섭게 바라보는 하균씨의 시선에 그만 그 자리에 얼어버렸다.
"..난 말야.....나 싫다는 여자한테.....
행복해라, 힘들면 언제든지 나한테 와라.
이런 말 따위 안해. 아니 못해.
내 성격이 워낙 더러워서. 그리고 미쳤냐? 나 싫다고 다른 놈한테 간 여자를."
".........."
".........난 오히려 복수를 하지, 쿡."
하균씨의 입가로 옅게 스쳐가는 조소와 함게
입술을 비집고 흐르는 담배연기 속 하균씨의 목소리가 계속 울린다.
"...애송이 앞으로 꽤 유명한 스타가 될거다.
그 자식이 싫다고 해도 내가 그렇게 할거니깐.
문득 그 자식이 과연 그런 스타가 되어서도 널 놓지 않을지........
....너무 궁금해져서 말이야.
물론 너도 마음 고생 좀 하겠지....녀석이 스타가 되면 될수록......."
[스윽]
천천히 내게 몸을 가져오는 하균씨.
내 입술로 하균씨의 입술이 살짝 스쳐가며
옅은 그의 목소리가 내 귓가로 머문다.
".....그때까지는 지켜볼께.........
.........내 작은 복수니깐.........."
악마의 속삭임처럼 잔잔히 귓가를 맴돌던 하균씨의 목소리 끝으로...
갑자기 하균씨의 숨이 한순간 멈는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순간부턴가 다시 내 귓가를 스미는
하균씨의 뜨거운 숨결속......
다시 귓가를 흐르는 하균씨의 목소리엔.......
아까와는 전혀 다른..........메마른 눈물이 스며 들었다.
"....마지막으로........키스 해도 돼?.........."
천천히 날 응시하는..........
간절함이 젖어있는 하균씨의 눈빛이 서서히 내 시야를 삼킨다.
보슬비 때문인지 촉촉하게 젖은 그의 입술이
천천히 내 입술을 젖셔 나간다.
조심스레 내 입술을 쓸어내리는 하균씨의 뜨거운 숨결.
그리고 촉촉한 그의 혀.
천천히 내 윗입술을 적신다.
조심스레 내 아랫입술을 적신다.
마치 뜨거운 자신의 숨결을 내 입술에 새겨넣으려는듯.....
조심스럽게 내 입술을 어뤄만지는 그의 입술이...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그의 매끄러운 혀가....
서서히 내 입술을 비집고 들어온다.
"...아.....///"
내 입술을 조심스레 간지럽히며 날 애태우던 하균씨의 숨결이
내 치아를 부드럽게 쓸어내려선.......
자연스레 입안으로 밀려든 하균씨의 매끄럽고 촉촉한 혀.
입천장을 부드럽게 스쳐서는 내 혀를 간지럽게 스치더니...
일순간 내 몸을 꽉 끌어당기는 하균씨.
격렬하게 내 혀를 삼키며.......
내 숨결을 삼키며......
격하게 내 안으로 밀려들었다.
힘겹게 내 입술로 토해지는 그의 뜨거운 숨결.
내 입술에 새겨진 그의 뜨거운 입술.
내 혀를 삼키는 그의 혀.
정신없이 내 안으로 밀려드는 그의 타액.
날 끌어안은채 온몸으로 스며드는 그의 뜨거운 체온.
그 모든게 마지막이었다.
처음으로 내 의지로 하균씨를 받아들인,
........마지막 키스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