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하루가 크리스틴을 데리고 탈의실을 빠져나간후에도..
난 한동안을 멍하니 옷장안에서 나오질 못했다.
그저 멍한 표정으로 바지속에 아무렇게나 찔러 두었던,
하루가 내게 건낸 팬댄트를 꺼내 바라볼뿐.
뭐니..이하루.
이안에 저 여자 이름이 있는거니?
너희 둘이 사랑했던거야?
나한테 했던것처럼......
저 여자하고도.... 잔거야?
키스하고, 안고, 사랑하고.... 그런거야?
내가 너희들사이에 끼여든거니?
그런거니?
"수고하셨습니다."
"낼부터 필름 작업할거니깐, 늦게오면 알아서해!"
"옛썰!!"
탈의실문을 힘겹게 열자,
이미 불이 다 꺼진 어두운 스튜디오안.
막 스튜디오를 나서는 하균씨 조수들의 인사소리와
내일 일을 당부하는 하균씨의 목소리가 어둠속에 부서져내렸다.
[꽝!]
[끼이이익-]
밝은빛속.
막 그빛으로 사라지는 하균씨 조수들의 어렴풋한 뒷모습뒤로
굳게 닫쳐버리는 스튜디오 문소리....
그리고 뒷이어 울리는 힘없는 탈의실 문소리가 스튜디오 안으로 흩어져선,
카메라를 정리하던 하균씨의 시선을 내게 붙잡아버렸다.
"어?! 아직 안갔나?"
"...."
고개를 푹 숙인채....
하균씨의 물음에도 아무런 대꾸가 없자,
물그머니 날 바라보던 하균씨가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온다.
"뭐야?! ... 애송이는 어디가고 혼자야?
아까 내앞에서 둘이 생쑈를 벌리길래....
쿡..난 지금쯤 둘이 화끈한 밤을 보낼줄 알았는데.....
왜, 그자식 다른 여자하고 나간건가??"
하균씨가 내앞에 우뚝- 서선...
날 지긋이 응시한채 옅은 조소를 그은 그의 입에 빈담배를 문다.
"...나도 줘요, 담배."
멍한 시선으로 하균씨를 바라본다.
그러자 내시선과 마주한 하균씨의 시선이 일순간 놀란듯- 일렁이더니,
내가 원하는대로 품에서 담배 한개비를 꺼내
선뜩 내게 내비는 하균씨.
[스윽-]
하균씨에게 담배를 받아 조심스레 입에 물었다.
그러자.....
[챙-]
[찰칵-]
연이어 터지는 맑은 지퍼라이터 소리와 함께...
하균씨가 내미는 라이터 불이 내 담배끝을 태우기 시작했다.
"만약 울고 싶은거라면.......
힘껏 들이켜마셔!"
뭐야...저남자.
어떻게 매번 저렇게 내맘을 잘 아는거야!!!
내맘을 꿰뚫은듯 잔잔히 퍼지는 하균씨의 목소리에
울컥- 짜증이 밀려왔지만,
난 하균씨가 하란대로 그대로 불이 붙은 담배를
질끈- 깨문채...힘껏 들이켜마셨다.
일순간 매쾌한 담배연기가 내 안으로 물밑듯이 밀려들어오더니,
머리끝까지 짜릿한 묘한 쾌감을 뒤로한채...
순식간에 가슴속에서부터 울컥- 연기가 빠져나오며
지독히 매워지는 눈과 코끝.
"켁..켁..콜록콜록...켁...."
처음 느껴보는 희얀한 느낌.
눈물이 핑 돌며 정신없이 기침을 토해내자,
하균씨가 날 바라보며 피식- 웃는다.
"독하지?
근데 말야...그거 중독된다.
사랑처럼 말야.....
지독하게 독한걸 알면서도... 나에게 해로운걸 알면서도....
일순간 느끼는 그 쾌감때문에 절대 끊을수가 없거든.
쿡......"
기침을 토하는 내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하균씨의 손길.
부드럽게 흩어지는 하균씨의 목소리.
난 끝내........
"흑..흑.....으....으아아아아아아앙!!!!!"
하균씨의 앞에서 바보처럼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하루때문이 아니라고...
담배가 너무 독해서 그런거라고..
내 자신에게 변명해보지만.
한번 터진 눈물은 멈출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하루!!
너 정말 싫어!!!! 싫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