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4 (55/72)

# 54 

하루가 크리스틴을 데리고 탈의실을 빠져나간후에도..

난 한동안을 멍하니 옷장안에서 나오질 못했다.

그저 멍한 표정으로 바지속에 아무렇게나 찔러 두었던, 

하루가 내게 건낸 팬댄트를 꺼내 바라볼뿐.

뭐니..이하루.

이안에 저 여자 이름이 있는거니?

너희 둘이 사랑했던거야?

나한테 했던것처럼......

저 여자하고도.... 잔거야?

키스하고, 안고, 사랑하고.... 그런거야?

내가 너희들사이에 끼여든거니?

그런거니?

"수고하셨습니다."

"낼부터 필름 작업할거니깐, 늦게오면 알아서해!"

"옛썰!!"

탈의실문을 힘겹게 열자,

이미 불이 다 꺼진 어두운 스튜디오안.

막 스튜디오를 나서는 하균씨 조수들의 인사소리와

내일 일을 당부하는 하균씨의 목소리가 어둠속에 부서져내렸다.

[꽝!]

[끼이이익-]

밝은빛속.

막 그빛으로 사라지는 하균씨 조수들의 어렴풋한 뒷모습뒤로

굳게 닫쳐버리는 스튜디오 문소리....

그리고 뒷이어 울리는 힘없는 탈의실 문소리가 스튜디오 안으로 흩어져선,

카메라를 정리하던 하균씨의 시선을 내게 붙잡아버렸다.

"어?! 아직 안갔나?"

"...."

고개를 푹 숙인채....

하균씨의 물음에도 아무런 대꾸가 없자,

물그머니 날 바라보던 하균씨가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온다.

"뭐야?! ... 애송이는 어디가고 혼자야?

아까 내앞에서 둘이 생쑈를 벌리길래....

쿡..난 지금쯤 둘이 화끈한 밤을 보낼줄 알았는데.....

왜, 그자식 다른 여자하고 나간건가??"

하균씨가 내앞에 우뚝- 서선...

날 지긋이 응시한채 옅은 조소를 그은 그의 입에 빈담배를 문다.

"...나도 줘요, 담배."

멍한 시선으로 하균씨를 바라본다.

그러자 내시선과 마주한 하균씨의 시선이 일순간 놀란듯- 일렁이더니,

내가 원하는대로 품에서 담배 한개비를 꺼내 

선뜩 내게 내비는 하균씨.

[스윽-]

하균씨에게 담배를 받아 조심스레 입에 물었다.

그러자.....

[챙-]

[찰칵-]

연이어 터지는 맑은 지퍼라이터 소리와 함께...

하균씨가 내미는 라이터 불이 내 담배끝을 태우기 시작했다.

"만약 울고 싶은거라면.......

 힘껏 들이켜마셔!"

뭐야...저남자.

어떻게 매번 저렇게 내맘을 잘 아는거야!!!

내맘을 꿰뚫은듯 잔잔히 퍼지는 하균씨의 목소리에 

울컥- 짜증이 밀려왔지만,

난 하균씨가 하란대로 그대로 불이 붙은 담배를 

질끈- 깨문채...힘껏 들이켜마셨다.

  

일순간 매쾌한 담배연기가 내 안으로 물밑듯이 밀려들어오더니,

머리끝까지 짜릿한 묘한 쾌감을 뒤로한채...

순식간에 가슴속에서부터 울컥- 연기가 빠져나오며

지독히 매워지는 눈과 코끝.

"켁..켁..콜록콜록...켁...."

처음 느껴보는 희얀한 느낌.

눈물이 핑 돌며 정신없이 기침을 토해내자,

하균씨가 날 바라보며 피식- 웃는다.

"독하지?

 근데 말야...그거 중독된다.

 사랑처럼 말야.....

 지독하게 독한걸 알면서도... 나에게 해로운걸 알면서도....

 일순간 느끼는 그 쾌감때문에 절대 끊을수가 없거든.

 쿡......"

기침을 토하는 내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하균씨의 손길.

부드럽게 흩어지는 하균씨의 목소리.

난 끝내........

"흑..흑.....으....으아아아아아아앙!!!!!"

하균씨의 앞에서 바보처럼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하루때문이 아니라고...

담배가 너무 독해서 그런거라고..

내 자신에게 변명해보지만.

한번 터진 눈물은 멈출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하루!!

너 정말 싫어!!!! 싫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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