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
탈의실안에 혼자 남아있는 크리스틴의 모습에 흠짓 놀라선 자리에 멈춰서버리는 하루.
그런 녀석의 모습에 크리스틴이 살포시 미소를 띄우며 하루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인데....계속 그런 표정만 지을거야?
그동안 잘 지냈어?"
뭐야?!!! 역쉬.......
너희 둘, 전부터 아는 사이였던게냐?!!
크리스틴의 말소리에 난 두눈에 불을 켜선....
문창살틈으로 비쳐지는 하루와 크리스틴의 모습을 놓칠새라
저 두놈(?)들을 뚫어지게 쏘아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잠시나마 멍하니 자리에 서있던 하루가....
자신의 등뒤로 비스듬히 열려져 있던 탈의실 문을 조심스레 닫는다.
[달칵-]
".......여기 누나.....아니 정현진씨 없었어?"
".....내말 씹지마!
내 앞에서 다른 여자 얘기 하지말라구!"
[하아...]
하루가 크리스틴의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불빛에 비춰 더 붉어보이는 자신의 머리결을 쓸어올린다.
".....제길, 정말 지독한 우연이군....."
"쿡....지독히 재수없는 병신자식!"
헉...뭐야!!
병신이라니!! 저게 감히 울 하루한테 욕했어!!
아니 근데 저 기지배는 양말을 쳐먹었나...저리 이쁜 얼굴에서 왠 저런 욕설이....;;;;;
"뭐, 우연이든 아니든 잘된거야.
어짜피 한국에 온 이유도 다 너 찾을려고 온거니깐."
"........."
하루가 탈의실 한쪽에 길게 뻗은 테이블에 몸을 기대자....
크리스틴이 내가 있는 벽장안을 힐끔- 흘켜보더니,
옅은 조소와 함께 천천히 하루녀석에게 다가간다.
헉! 저...저 기지배!!!
지금 나보고 보란듯이 하루녀석에게 다..다가가는거지!!!
치사하게 복수하는거냐?!! 제...제길!!!
아까의 촬영으로 입은 앞,뒤가 깊게 파여진 검은 이브닝 드레스,
까만 실크천이 크리스틴의 포복에 나풀거리며.......
치마 밑에 포인트처럼 박혀있던, 불빛에 화려한 빛깔을 뽑내던 나비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어떻하지.....아직도......
니 몸은 날 기억하는데........"
단추가 풀어진 하루의 난방안으로 그녀의 손이 뻗어선....
그녀의 가는 손가락이 하루의 턱밑에서부터 목으로 자연스레 훓어 내려가더니.....
아까까지만해도 팬댄트가 걸려있던 하루의 가슴 자리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내가 보는 앞에서 그 여잘 안아봐도......
목걸이 따윌 건내줘봐도........
....내가 말했잖아...........
널 온전히 갖기못해도 니 몸은 날 기억하게 될거라고.
내 몸에 새겨진 상처가 사라지기전까진,
넌........아니 니 몸은.........
지독하게도 날 기억하게 된다고.
.....쿡........이제 믿겠어, 내말?"
허리에서 출렁이는 갈색 웨이브가 잔잔한 춤을 추며.....
하루의 붉은 머리결로 밀려들어선,
천천히 하루를 끌어안듯..........
그녀의 손이 하루의 등에 아슬아슬하게 맞닿을 정도로 뻗어져선
어깨에서부터 허리밑으로 살포시 내려간다.
그녀의 붉은, 흰색의 피부에 너무나도 도드라지게 붉디 붉은 입술이
하루의 귓가에서 머문채 잔잔히 속삭이며.......
그녀의 옅은 하늘색 눈동자가......
반쯤 감겨진 긴 속눈썹안에서 아른거리며 맑은 빛을 뿌린다.
".....병신....."
하루의 골반쪽 내 이름 이니셜이 새겨진 곳에 그녀의 손이 머물자,
피식- 웃으며 하루의 귀에 저런 이뿐(?) 말을 지껄이는 저놈의 기지배!!!
아..아니!! 저게!!!
걍 확 죽여버릴까!!!
얘기고 뭐고 저 가시나의 머리카락을 확 쥐뜯어버릴려고
벽장문을 막 뛰쳐나가려는 순간,
연이어 잔잔하게 탈의실안으로 울리는 크리스틴의 목소리.
".....아직도 있어?
팬댄트안에 우리가 서로 집어넣었던.......
.........이름....."
순간 갑자기 온몸이 경직되어버렸다.
그리고 어느순간부터인지 멍해져버리는 내 머리속.
[두근...두근....두근.....]
터질것 같은 내 심장고동소리만이 일정한 간격으로 요란스레 울리기 시작한다.
"....난 아직도 니 이름.........
이렇게 내 가슴에 품고 다녀....."
갑자기 잔인스럽게 울리는 크리스틴의 목소리.
[......두근....두근...두근.......]
언제부턴가 미세하게 떨리는 손이
바지주머니에 있는 하루의 팬댄트에 막 닿는순간,
".......응........."
잔인한........
너무도 끔찍한 하루의 짧은 말이 터져버렸다.
탈의실안의 찬공기에 스산함이 감돌았던 내몸이.....
녀석의 그말에 한순간 찬물을 덮어쓴듯....온몸을 내리치는 냉기에 몸서리를 친다.
[...........]
정신없이 울리던 내 심장고동이 더이상 들리지 않는다.
내 심장이 ...........
........끝내............
...........멈추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