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대체 무엇을 위한 사인일까 고민했다. 그러나 내 고민과는 별로 상관없이 내부의 상황은 그저 흔한 술자리처럼 흘러갔다. 아까까지만 해도 불편한 기색이었던 은애도 이제는 표정이 한결 여유있어 지더니 곧잘 대화에 참여한다. 일단 여섯 명이나 되다보니 왁자지껄한 것은 기본이요, 여자만 다섯이다 보니 목소리들이 하나 같이 높고 날카롭다. 이쪽 방에 있는 스피커 볼륨 조절 스위치라도 찾아 좀 줄이고 싶을 정도다. 옆에 있는 유진이에게 아까 소희라는 애가 술에 탄 캡슐이 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유진이는 몹시 황홀한 표정으로 답했다.
저거 진짜 비싼 건데요, 한번 하면 정말 죽음이에요.
죽음이라니? 먹으면 죽어?
오빠도, 차암. 독약이 아니라요, 기분이 정말 캡이라구요. 음... 뭐라더라. 최.... 뭐라고 하던데? 수희야, 뭐였더라?
그러자 내 왼편에 앉아 바나나 껍질을 까고 있던 수희가 대답했다.
최음제. 기집애, 넌 그런 말도 기억 못 하니?
그러는 지는...
둘 사이의 알력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최음제? 헐... 그런게 정말로 존재한단 말인가? 그런 거는 무협만화에서 여자에게 통 관심이 없는 남자주인공이 빠굴을 꼭 떠야 하는 상황 쯤 되면 나쁜 놈이 우리 편 여자에게 뿌리고 도망 가는.... 뭐, 그런 거 아니었던가? 저런 게 현실에 정말 있단 말이야? 몹시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저걸 하고 섹스를 했을 때의 황홀한 기분을 잔뜩 이야기하는 유진의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사실인 모양이다. 여전히 씁쓸했지만 이 아이들의 나이에 대해서는 굳이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최음제가 사실이라고 생각해도.... 더욱더 이상할 따름이다. 은애 저 년의 여태까지 행동을 보건데 형이 모텔에 데려가기만 해도, 아니, 형이라면 모텔이 아니라 호텔을 가겠구나. 암튼 그렇게만 하면 군말없이 가랑이를 바로 벌릴 년이다. 굳이 이런 술집에 데려와서 여자까지 불러놓고 최음제를 먹이는 이유가 뭐지? 대체 무슨 이유로? ... 형은 재미있는 걸 보여주겠노라며 나를 이리로 데려왔는데 재미있기 보다는 궁금해서 미칠 것 같다.
우리 게임해요. 게임!
안쪽 방에서 누군가의 제안에 의해 게임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007빵을 하면서 골고루 벌주를 마시더니 이내 제로게임으로 바뀌어 서로 손목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태근이 형은 게임을 무척 잘 했다. 거의 걸리지 않고 주로 때리는 쪽에 있다보니 다들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형은 씨익 웃으며 조건을 걸었다.
그럼 나한테는 안 맞는 대신 옷을 하나씩 벗기로 하자. 어때?
꺄아, 완전 변태야. 어떻게 해~
그래서, 안 하려고?
누가 안 한데요?
형의 파격적인 제안에 접대부 애들은 몰라도 은애는 반대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녀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그녀의 눈빛이 흐려지면서 표정이 이완되고 있었다. 다들 집중력을 발휘하며 게임에 임하기는 했지만 역시 취한 사람들의 게임은 길게 가질 못 한다. 한 아이가 걸리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슬기! 벗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마치 대단한 발표라도 하는 것처럼 테이블 위에 올라서더니 안으로 손을 집어 넣어 팬티를 벗어 내렸다. 안 그래도 그들이 입고 있는 망사 비슷한 겉옷은 속을 전혀 가릴 수 없었기에 그녀의 덜 자란 보지 털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보며 방 안의 사람들은 박장대소 하고 좋아했다. 곧 이어 줄줄이 팬티와 브래지어 등이 벗겨져 테이블 위에 쌓인다. 은애도 삽시간에 속옷 차림이 되었고 태근이 형은 한 번 걸렸는데 이 인간은 웃통이 아니라 바지를 벗는다. 방 안의 이상 열기는 점점 더해지고 후끈 달아올랐다.
거기에 호응하듯 이쪽 방의 분위기도 야릇해지고 있었다. 내 좌우에 앉아있는 아이들은 그들의 야시시한 옷을 내게 바싹 들이대며 그러는 동시에 내 허벅지를 슬금슬금 어루만지고 있었다. 눈에 비친 모습에서는 제정신이 아닌 파티가 벌어지고 있고 이쪽에서는 몸에 대한 터치가 벌어지고 있다. 내가 어쩌기도 전에 다리 사이의 세 번째 다리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서고 있었다.
더 벗을 게 없는 애는 어떻게 해요?
저쪽 방에서 이제 알몸이 되어버린 애도 등장했다. 그러자 태근이 형은 전혀 주저하는 기색없이 바로 말했다.
그러면 저 언니랑 찐하게 키스하기. 1분씩.
꺄아. 아, 몰라아.
까르르 웃고 넘어가는 아이들의 표정에는 형의 지시를 불쾌하게 여기거나 거부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은애도 마찬가지 였다. 이미 그녀의 얼굴은 만취한 사람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윽고 지유라는 애가 걸리자 실제로 은애와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벌칙이라고 입술만 쪽하고 마는 그런 키스가 아니라 실제로 설왕설래가 벌어지는 그런 키스였다. 여자끼리의 키스라.... 보고 있는 내가 다 기분이 센치해 진다.
으음.... 하아....하아아악.....
키스를 마치고 난 은애의 표정은 더욱더 풀렸다. 눈빛도 풀렸다. 태근이 형이 근처에 있는 아이들에게 뭐라고 숙덕이자 한 아이씩 번갈아 가며 은애와 혀를 섞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은애의 남은 옷가지를 모두 벗겼다. 한 아이는 문을 열고 나가더니 신발상자 정도 크기의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그걸 본 유진이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이제 쇼하려나 보네요.
쇼? 아까도 이 녀석이 말했다. 이곳에서 종종 '쇼'가 펼쳐진다고..... Show 라... 대체 뭘 보여주는 Show일까. 아까와는 다르게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여태까지 보여진 은애의 행각에 열을 받았고 이해할 수 없는 태근이 형의 태도에 의아하고 짜증도 났지만 아까부터 펼쳐지는 주지육림의 향연은 내 생각을 점점 바꾸고 있었다. 이 좁은 공간에서 두 여자 - 아아, 나도 이제 이 녀석들을 점점 여자로 보고 있는 모양이다.... - 와 밀착한 채로 감상 중인 저 광경은.... 일찌감치 한국 성인비디오 수준을 뛰어넘었고... 조만간 불법 비디오로 변해갈 예정이다. 못해도 미국 비디오나 일본 비디오 쯤이 되어간다.
은애야.
네에.... 오빠....아...하악....학.....
태근이 형의 말에 은애는 제대로 대답을 못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아이가 그녀의 가슴 양쪽에 매달려 쪽쪽 빨고 있었고 그녀의 다리 사이에는 한 아이가 머리를 파묻고 있었다. 그 아이가 대체 그곳에 얼굴을 대고 뭘 하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으니 알 수 없지만 충분히 짐작은 간달까....
기분 어때?
하악..... 그게.... 모르겠어요..... 하윽.... 오빠... 저 좀... 어떻게.....
어떻게라니. 뭘 어떻게 해달라는 건지 모르겠는데?
오빠아... 하악... 제발.....
은애의 몸이 테이블 위로 밀려 올라간다. 그녀의 몸에는 여전히 세 아이가 달라붙어 있었고 그녀는 태근이 형 쪽으로 팔을 뻗으며 뭔가를 갈구했다. 그러나 아까부터 점잖게 말을 하고 있는 형의 태도는 싸늘했다.
내가 말했지? 오늘부터 우리 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시작이라고?
네에... 하윽...흐.....
그런데 새로운 시작에 걸림돌 같은 게 있어서야 되겠어?
그게 무슨.....
그러자 형이 은애의 면전에 자기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네가 내 뒤통수를 쳤잖아. 안 그러니?
은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몸에는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신은 그렇지 못할테니 그 간극이 지금 참담하게 드러나고 있다.
무...무슨 말씀이신지....
끝까지 모른 척 할거야? 정말로?
은애는 말이 없었다. 입술을 이죽거리며 몸에 쏟아지는 자극을 참아내고 있지만 그것은 신음이 되어 그녀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형의 경고는 그리 크지도 않은 목소리에 실려있었지만 거기에는 정말 무시무시한 경고가 담겨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당사자가 아닌 내가 들어도 쫄 지경인데 본인 기분이야 대체 어떻겠는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그래? 정말 끝까지 잡아떼겠다 이 말이지? 지금이라면 여기서 더 나가지 않게 해줄게.
그러나 은애는 형의 마지막 배려를 발로 차버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오빠, 저는.....
그러면서 은애가 손을 뻗어 형의 팬티를 잡아당겼다. 덩치에 어울리는 사이즈가 덜렁거리며 튀어나왔다. 은애는 황홀한 표정으로 그것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러나 형은 은애에게서 몸을 ?燦爭쨈? 뒤로 한 발 물러난다. 형의 표정은 기묘했다.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그 표정. 형은 고개를 좌우로 젓더니 한 아이에게 눈짓을 했다. 은애의 몸에 매달려 애무를 하고 있던 셋과 달리 그 아이는 다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은애와 형의 대화를 신경쓰고 있느라 녀석을 미처 보지 못한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세상에.... 저게.... 저게.....
저게 쇼에요.
옆에 있는 수희가 웃으면서 말했다. 어이가 없어진 내가 녀석을 돌아보자 녀석은 눈을 껌뻑이며 말했다.
재미있어 하시던데요, 다들?
쇼의 모습은.... 여태껏 단 한번도 보지도, 상상도 못 했던 모습이었다. 아까 가져온 상자에서 꺼낸 물건이 저런 용도였다니...
테이블 위로 올라선 아이의 고간에는 흉악한 물건이 달려 꺼덕거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아이가 남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여자아이가 맞다. 그런데 남자 성기와 똑같이 닮은 물건을 다리 사이에 매달고 있었다. 자세히 바라보니 그것은 일종의 팬티처럼 생긴 거였는데 앞섬에 거무튀튀한 물건이 매달려 있었다. 마치 발기한 물건을 본따 만든 것처럼.... 게다가 크기도 지나치게 크고 울퉁불퉁한 모양새가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은애의 뒤로 다가가는 아이의 움직임을 보면서 수희가 말했다.
칵테일 한 잔 빨면요... 온 몸이 막 근질근질하고 미칠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렇게 온 몸을 빨아주고 만져주면 정말 미칠 것 같이 좋아요. 게다가 안쪽도 느낌이 이상해져서... 쑤시면 쑤실수록 기분 정말 캡이에요.
너도.... 해봤니?
많이는 못 해보고요. 조금요.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가슴이 턱턱 막혔다. 수희의 설명을 듣는 동안 모조 성기를 착용한 애는 이미 은애에게 들러붙고 있었다. 자신의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은애는 갑작스럽게 시작된 침투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뭐... 뭐야! 꺄악!
언니. 가만 있어요. 이거 정말 재미있다니까요?
하...하지마.... 하....하악!!!
은애는 버둥거리며 벗어나려고 하였지만 세 명이 그녀의 몸을 붙들고 있는데다가 치부가 이미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던 터라 저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대로 꿰뚫리고 말았다. 은애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빼내려고 꿈틀거렸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쾌락을 위한 몸짓이 되고 만다.
하악...하악......하앙.......
비명. 쾌락. 신음. 절규. 은애의 복잡미묘한 외침이 스피커를 통해 내 귀에 꽂히고 있다. 아이들이 츄웁거리며 몸의 구석구석을 빨아대고 있다. 태근이 형 쪽을 보자 형은 다시 옷을 입고 천천히 혼자 술을 따라 마시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내 쪽을 보더니 잔을 들어올려 건배 자세를 취한다. 형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슬퍼 보였다.
하악...오빠...하윽...오빠...제발...하악....
제발 뭐?
흐윽.....그만....하악아아악!!.......
은애의 뒤에서 쑤셔대는 아이의 움직임은 거칠기 짝이 없었다. 재질이 대체 뭔지 궁금해지는 그 거무튀튀한 모조 자지는 그녀의 보짓살을 사정없이 유린하고 있었고 은애는 전신에서 느껴지는 쾌감과 고통을 구별하지 못하고 신음과 비명을 동시에 내지르고 있었다. 그런 은애를 보며 형은 천천히 말하고 있었다.
왜 그러지? 너도 나랑 잘 되면 이렇게 가랑이 벌리고 보지를 쑤셔달라고 내밀 것 아니었니?
아...아니에요...흑...하악...하악.....
왜에? 원래 다들 그래. 그래서 나도 너한테 화대를 미리 냈는 걸?
화대.......하악??
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쑤셔지고 있는 와중에도 은애의 정신은 형에게 농락당하고 있었다. 형은 손을 뻗어 자신이 미리 지불한 화대, 그러니까 그 까르띠에 목걸이인가 뭔가 하는 것을 손가락으로 잡았다.
마음에 들어하길래 이젠 박아주기만 하면 되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잘못 생각했나?
하윽....그런게... 흐악....
그렇지만 난 너처럼 싸구려 년에게 박아주고 싶지가 않아. 차라리 시원하게 안마도 해주고 말 상대도 잘 해주는 언니들이 낫지, 너처럼 뒷구멍에서 호박씨를 까는 년에게는 내 자지가 아까워.
하악.....하으.....
은애는 형의 추궁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아니라고 연방 소리쳤지만 보지를 따먹히고 있는 와중에 나오는 신음과 섞여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고 주무르며 빨아대는 움직임도 여전했다. 형은 들고 있던 잔을 은애의 입에 갖다대며 말했다.
네가 몸이나 파는 여자들이라 경멸하던, 그런 하찮은 여자에게 쑤셔지니까 기분이 더럽니? 나한테 쑤셔지는 건 괜찮고?
그게 무슨..... 하윽....흑.....흑...흑...흑....
형은 굉장히 무심한 어조로 말했지만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뒤통수를 누군가 후려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우리의 첫 회식날이 생각났다. 술을 먹고 전부 뻗어서 실려간 ROSE에서 아가씨들과 대립각을 세우던 은애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때 은애가 그랬다. 하찮은 여자들이라고, 몸 파는 여자들이라고.... 내가 기억하기로 그 때 형은 자고 있었다. 아니, 이제 보니 자고 있는 척을 하고 있었다. 저런 능구렁이 같은 형이라니... 늘 허허 웃고 실없는 농담이나 흘리는, 그런 아무 생각 없는 형이 아니었다. 아마도 우리를 관찰하고 있었겠지. 하아. 어쩐지 형이 조금 무서워진다. 형은 은애의 귀에 입을 바짝 대고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현아한테 시킨 짓을 자백하면 지금이라도 내가 쑤셔주지. 어때?
그러자 은애가 눈물을 왈칵 쏟아내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하악...하악....흑...그....래요....흐윽.....제가.....제가....제가 그랬어요.....
땀, 눈물, 콧물, 애액... 인간이 흘릴 수 있는 물은 다 흘리고 있는 그녀는 뒤에서 가해지는 공격과 형의 목소리 양쪽에서 몰리고 있었다. 피치를 올리는 아이의 허리 동작이 은애를 점점 더 몰아세운다.
오빠는, 지금 안 해요?
무슨 소리인가 싶어 옆에 있는 아이들을 돌아보았더니 걔네들의 표정이 묘했다.
무슨 소리야, 그게?
저기서 쇼를 하면요. 여기서 보면서 많이들 하시는데.... 생각 없으세요?
그러면서 은근슬쩍 내 자지에 손을 가져다 댄다. 물론 내 자지야 아까부터 준비되어 있었지만... 나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아이가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침착하게 거절했다. 그러는 동안 방 안에서는 어느 순간, 은애는 눈을 까뒤집으며 혼절해버렸다. 형은 그 모습을 꼼짝도 않고 지켜보고 있다가 내 쪽을 쳐다보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옆에 있는 아이들을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자 형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떠냐. 재미있지?
........재미없어요.
츄리닝 겉옷을 벗어 은애의 하반신을 덮어주었다. 거대하고 결코 수그러 들지 않는 자지에 꽤 오래 쑤셔진 탓인지 녀석의 비부는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애액이 어찌나 흘렀던지 테이블을 가득 적시고도 바닥에 흐른 게 제법 될 정도였다. 형은 술을 마저 마시고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님 너한테 쑤시라고 할 걸 그랬나?
형!
알아. 나도 알아. 휴우..... 정말 못할 짓이구나. 이런 짓.
형은 얼굴을 감싸쥐고 테이블에 팔꿈치를 댄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난 은애의 처참한 몰골을 보며 아이들에게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아이들이 나가지 않고 주저하고 있으려니 형은 지갑을 열어 십만원 짜리를 하나씩 건넨다. 모조 자지를 달고 하던 아이에게는 한 장을 더 얹어준다. 다들 함박웃음을 지으며 돈을 받더니 자신들의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인사를 한 다음 밖으로 나갔다.
한석아... 이제야 이야기 하지만 나 이런 데 자주 온다고 오해는 하지 마라.
오해하면 안되나요?
난 좀 더 정상적인 업소를 좋아한단 말야. 언니들이랑 대화도 좀 되는 곳으로.
예예. 그러시겠죠.
형은 은애 쪽을 쳐다보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형은 핸드폰을 꺼내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방에 들어왔다. 아는 얼굴이었다.
하...하영 씨?
효진이 구출 작전에 나를 강제로 동원했던 변호사 아가씨였다. 그녀는 날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대신 들어오자마자 방 안의 사정을 둘러보고 은애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 형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몹시 힐난하는 어조로 말했다.
아주 거하게 하셨군요. 도련님. 직접 하지는 않으셨으니 강간죄는 성립이 안 될 테고 강제추행 정도 되겠지요. 합의를 보면 무마도 간편하겠고 아가씨 본인도 찔리는 구석이 있을테니 합의도 쉽게 해주겠지요. 아주 훌륭하시네요.
그녀 특유의 존중하는 듯 하면서 비꼬는 말투가 작렬한다. 그러자 형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영아. 도련님 소리는 하지 말라고 했잖아. 비꼬는 거 같다고.
맞아. 비꼬는 거야.
서로에게 반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원래부터 잘 알던 사이인 모양이다. 하긴 효진과도 꽤 친해보였으니 형이랑 친한 것도 무리는 아니지 싶었다. 하영은 안경을 고쳐 쓰며 방 안을 둘러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회장님 방식을 흉내 내려면 좀 더 스마트하게 하도록 해. 끝이 이렇게 지저분해서야....
아, 알았다니깐.
뭐야. 너 지금 나한테 짜증 내는 거야? 네 놈이 저지른 일 설거지 하러 온 사람에게?
하영의 잔소리에 울컥하던 형이 다시 깨갱거리며 꼬리를 만다. 아무래도 둘이 굉장히 친하다기 보단 형이 이 사람에게 꼼짝 못하는 사이인 모양이다. 그녀는 형에게 몇 마디 잔소리를 더 하고 나서 나를 돌아보았다.
최한석 씨?
네?
갑자기 나를 부를지 몰랐기에 대답이 좀 늦었다. 그녀는 은애를 가리키며 말했다.
좋은 구경 하셨을 테니... 구경 값 좀 하시죠?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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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하드하게 나가려다가 적당한 곳에서 끊습니다.
다음 화도 곧 올려요.
그녀가 말한 구경 값은 다름 아닌 육체노동이었다. 기절한 은애를 업어다가 하영의 차 뒤에 태우는 일을 내가 맡게 되었다. 형도 일어나서 거들었다. 은애를 태운 하영의 차가 출발하고 나자 형은 내게 물었다.
내가.. 너무 심했냐?
글쎄요. 저는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뭐라고 말 좀 해봐, 임마. 한 순간 머리통에 열이 확 받아서 어디서 본대로 해보기는 했는데.... 하아. 이거 사람이 못 할 짓이구나 싶기도 하고.
지금에 와서는 이미 늦은 후회였지만 그렇다고 형을 탓하고만 싶지는 않았다. 조금 심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은애 고것이 여태까지 하던 짓에 비하면 일견 후련한 부분도 없잖아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게 걱정되었다.
은애가 더 난리치지 않을까요?
일단 하영이가 알아서 잘 처리 해주길 바라고.... 그 다음에는....
다음에는요?
그러면 정말 선생이고 뭐고 그만두고 말란다. 내년에 다시 신청해봐야지. 은애 같은 애가 없길 바라면서.... 그래도 은애 저 년이 이제 현아에게 껄떡거리지는 못 하겠지. 날 상대로 화를 내기도 바쁠테니까.
남에 대해서는 생각을 잘 하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쿨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어차피 집에 들어갔다가 다시 학교를 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형과 함께 학교 앞 찜질방에 가서 씻고 잠깐 잠을 청했다. 거기서 바로 출근 했다. 잠깐 잔 정도로는 피로가 풀리지 않아 학교에서 오전 내내 멍하게 있었다. 지애에게 몇 번이나 주의를 받았다. 어떻게 지나났는지도 모를 시간이 지나고 집으로 간신히 돌아왔다. 오자마자 침대에 뻗어 그대로 잠이 들었다. 까무룩 정신을 잃고 있던 내가 잠에서 깬 건 저녁 시간, 허기를 느껴서 였다.
하아....
낮잠을 지나치게 많이 자서 그런지 머리가 아프고 무거웠다. 밥이나 먹으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문을 열고 나서려는데 맞은 편 집 문이 열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달려가 문을 열고 소리쳤다.
마리야!
그러나 나타난 사람은 전혀 예상 밖의 사람이었다. 검은 정장의 검은 선글라스... 다름 아닌 예린이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녀의 검은 분위기에 일순 쫄고 말았다.
어, 예린 씨. 오랜만이야. 리사는?
안에 계십니다. 들어오시죠.
안으로 들어간다. 지난 번 그렇게 아쉬움을 남기고 헤어졌던 리사였다. 다시 볼 때는 어떤 표정으로 봐야 하는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반가움의 포옹이라도 해야 하나. 아니면 오랜만의 입맞춤이라도? 그것도 아니면 더한 것도.....? 아아. 예린이 있으니 좀 참아야 할런지도. 그러나 나의 이런 기대는 리사의 딱딱한 표정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식탁에 앉아있는 리사는 여태 내가 보지 못했던, 그런 종류의 표정을 지은 채로 있었다.
리사야....
오셨군요. 오빠. 낮에 들어오신 줄은 알았지만 피곤해 보여서 굳이 깨우지 않았어요.
어? 어.....
그녀의 맞은 편에 앉았다. 내가 앉기를 기다린 리사는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어쩜 그럴 수 있죠?
뭐...뭐가.
마리 말이에요.
마리?
속으로 뜨끔했다. 리사가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지난 번, 효진과 그러고 있는 것을 녀석에게 들키고 난 후 녀석을 전혀 보질 못 했다. 더군다나 학교 일과 투서 문제로 머리 속이 꽉 차 있느라 마리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못 했다. 어쩌면 내 무의식 속에서 일부러 녀석에 대해서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대답을 못하고 있자니 리사의 목소리가 점점 올라간다.
요 며칠, 마리가 어디 있는지 아세요?
학교.... 다니고 있던 거 아니었어?
아니에요!
소리를 버럭 지르는 리사라니. 나도 모르게 움찔한다.
지금 며칠째 연락도 안 되고 그러고 있다구요. 서울 와봤더니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혹시 자전거를...?
이제서야 생각이 난다. 빌라 입구에서 녀석의 자전거가 보이지 않은 지 꽤 되었다. 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마음 가득히 두려움과 슬픔... 외로움....을 담고 있으면서 아아. 대체 이 녀석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구요.
그 연결되었다는 감각으로는, 어디 있는지 못 찾는거야?
너무 태평한 소리를 한 걸까. 리사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소리쳤다.
웃기는 말씀 마세요. 그건 그렇게 편리한 게 아니라 저희들 몸에 내려진 저주 같은 거라구요! 사람이 자기 한 사람의 감정도 추스리기 힘든 법인데.... 다른 사람의 감정까지 함께 끌어안아야 한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모르시죠? 알 리가 없죠! 오빠! 오빠한테는 정말 기대를 했는데.....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하던 리사가 고개를 들고 날 쳐다본다. 여자의 표정에 둔한 나같은 놈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눈빛에는 나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하다. 눈가가 젖어있다. 그러나 리사의 성격상 눈물을 흘리진 않을 것이다.
오빠에게 정말 실망이에요. 적어도 마리에게 저처럼만 대해주셨어도.....
그녀의 말에 좀 놀랐다. 나에 대해 실망이라는 건 그렇다 치고 그 이유가 대체...
너처럼이라니. 그럼 내가 마리랑 .....라도 했었어야 했다는 말이야?
섹!....이라는 글자로 시작하는 단어를 말할 뻔했다. 가까운 곳에 서 있는 예린을 의식하고 그 단어를 얼버무렸다. 그러나 리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래요! 오빠라면 적어도 실망은 시켜주지 않을 거라고 믿었어요. 제게 그랬듯이 마리도 애정으로 품어주리라 믿었다구요!
하아. 난 대체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그...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저도 오빠를 모르겠어요.
끝없는 한숨이 흘러나온다. 우리 둘은 그렇게 서로에게 실망하고 이해하지 못한 채로 마주 앉아있었다. 더 할 말이 없다면 일어나겠다고 했더니 리사가 마지막으로 묻는다.
어젯밤.... 어디 다녀오신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건 왜.
혹시 마리를 찾아다니신 건가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묻는 리사의 질문에, 나는 그 기대를 저버리는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다른 곳에 다녀왔어.
그러자 리사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알았어요.
그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보였다. 나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는지라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돌아온다. 굳이 변명을 하라면 할 수도 있다. 마리랑은 제법 잘 해보려고 했었고 나름 진도도 나갈까 싶었지만 다른 여자랑 있는 모습을 들키는 바람에 틀어졌노라고. 어제도 다른 여자를 만나러 가거나 그런 게 아니라 친구의 일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그러나 나는 다른 일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하기 그지 없는데 거기에 마리와 리사의 일까지 겹쳐지는 걸 원치 않았다. 리사가 말하는 의도를 어느 정도 짐작은 하지만 그걸 도저히 따를 수가 없다. 분명 내가 마리를 대하기 어려웠던 건 그 녀석의 언니인 리사와 잤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효진이와의 모습을 들키기 까지 하고 나니 아무래도 마리를 편한 마음으로 대하기는 곤란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잠시 후, 앞집에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차에 시동 거는 소리가 들리는 걸로 보아 예린과 리사가 어딘가 나가는 모양이었다. 굳이 나가보지 않았다.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리사의 얼굴이 생각나서 좀 우울해졌다.
복잡한 생각을 지워버리기 위해 일요일 내내 교안 만들고 혼자 연습하는 데만 시간을 보냈다. 집에서 나가지도 않고 하루 종일 그러고 있었다. 점심은 짜장면을 시켜 먹었지만 저녁이 되자 따뜻한 밥이 먹고 싶었다. 늘 가던 기사식당을 갔다. 순두부 백반 하나를 시켜놓고 가게 한편에 놓인 텔레비젼을 보았다.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별 생각없이 뉴스를 보던 나는 어느 순간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경찰은 달아난 원 목사를 수배하고 부목사 김 모씨를 구속하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죄를 적용하여 특정 약물을 지속적으로 투여한 교회 신도 수십명을 불구속 기소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재림예수대비말세찬양교회에서는 정당한 종교활동을 핍박한 정부를 사탄으로 규정하고 적극 항거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체포된 목사와 신도들을 돌려달라는 시위를 종로경찰서 앞에서 하고 있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정부는.....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대체 어떻게 알아보았나 나 자신도 모를 정도로 짧은 순간이었다. 화면에 언뜻 비쳐 지나간 그 아이는 분명 내가 아는 얼굴이였다. 하얀 옷을 입고 머리는 풀어헤친 채로 닭장차에 오르는 그 짧은 장면에서 녀석을 분명히 알아보았다. 게다가 그 교회의 이름이 낯설지 않다....... 유진과 종로에서 저 교회 이름을 보고 내가 이렇게 생각했었다. 말세를 찬양해서 어쩌라는 거지.
젠장.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식사를 내오려던 아주머니에게 나중에 다시 와서 먹겠다며 가게를 뛰쳐나왔다. 택시를 잡아타고 종로경찰서로 갔다. 경찰서 가까이 가기도 전에 차가 막혀서 택시가 나아가질 않는다. 하도 급하게 나오느라 주머니에는 밥값만 달랑 넣고 나왔을 뿐이다. 가지고 있는 돈을 초과하기 전에 얼른 요금을 내고 중간에 내려서 뛰어갔다.
아니나다를까. 수백 명의 사람이 경찰서 입구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고성과 악다구니, 비명과 한숨이 가득한 혼돈의 장소였다. 도로까지 밀고 내려온 인파로 인해 차들이 나아가질 못해 경적만 울리고 있다. 피켓과 죽창을 들고 있는 시위대는 목사님을 돌려줘라!, 우리의 구원을 방해하지 마라.라고 외치며 경찰서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었고 경찰 쪽에서는 헬맷과 진압복을 입은 전경들이 방패로 그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세상에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아우성을 구경하느라 커다란 인간 벽을 만들고 있었기에 그걸 지나는 것도 꽤 고역이었다. 간신히 사람들을 뚫고 경찰서로 가까이 갈 수 있나 했더니만 또 다른 경찰들이 진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물러나세요! 물러나세요!!
구경꾼들을 밀어 내는 경찰 한 명을 붙들고 사정을 이야기했다. 하도 시끄러워서 소리 지르듯이 말해야만 했다.
저기! 오늘 잡혀온 사람들! 교회 사람들 말이에요! 면회 가능해요?
안됩니다! 물러나세요!
저기요! 지금 조사받고 있을 거 아니에요?
암튼 안됩니다! 얼른 물러나세요!!
한사코 안된다고 말하며 거칠게 밀어 내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밀려나 버리고 말았다. 경찰서 입구 쪽의 혼란은 더욱더 커지고 있었다. 시위하는 신도들은 경찰을 성토하는 구호를 목청껏 외치며 인간띠를 형성하여 진입을 시도하고 있었고 전경들은 그걸 방패로 막아내며 밀어내기만 하고 있었다. 병력이 모자라 그들을 해산시킬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잠시 후, 한 무리의 전경이 추가되더니 시위대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실어 내기 시작했다.
사탄의 무리야! 이걸 놔라!
집사님!!
너희를 심판할 것이다!!!!!!
악다구니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자니 갑자기 어떤 여자 하나가 옷을 훌훌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그걸 바라보는데 여자가 쨍쨍한 목소리로 외쳤다.
잡아 갈테면 잡아가라! 이 고난을 우리는 반드시 극복해 보이고 말세의 그 때에 오히려 불쌍한 너희들의 구원을 기도하겠다!!
그러자 신도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 여자의 행동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즉, 단체로 옷을 벗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시위는 요상한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고 구경꾼은 점점 불어났다.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구주와 함께 나 살았도다~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 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옷을 벗어 제낀 그들은 눈물까지 흘려가며 비장한 표정으로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옷을 벗어던진 이들에게 차마 손을 대지 못 하는 경찰들이 당황하고 있었고 구경꾼들은 야유를 보내고 있었다. 이런 주변 상황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큰 고난을 극복하는 위대한 사람이라는 표정으로 찬송을 이어 나갔다. 아까 맨 처음 옷을 벗은 여자가 선두에 서서 부르짖는다.
뼈 아픈 눈물을 흘릴 때와 쓰라린 맘으로 탄식할 때~
주께서 그 때도 같이 하사 언제나 나를 생각하시네~
종로 길바닥에서 여자의 벗은 몸을 보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딱히 유쾌한 장면이 아니었기에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일단 정문을 나와 도로를 타고 뛰어갔다. 최대한 빙 돌아 뒤쪽을 찾아본다.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소각장 뒤에서 혼자 울고 있던 ... 소란의 얼굴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선생님한테는 이런 이야기가 술술 나오네요. 왜 그럴까요?
- 글쎄... 나야 모르지.
- 저도 모르겠어요.
아직 눈물이 다 닦이지 않은 얼굴로 배시시 웃던 그 아이는, 다음 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빠졌다. 종교에 빠져 집을 나갔다는 엄마에게서 전학을 시키겠다는 전화가 오고 단짝인 유진은 녀석의 행방을 찾아 다녔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저 별일 없겠지 하고 안이하게 생각한 내가 나쁜 놈이다. 멍청한 놈이다.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나는 왜 그 아이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경찰서 담장은 높고도 길었다. 한참을 빙 둘러보아도 넘어갈만한 곳이 보이질 않았다. 가시철망까지 달려있어 함부로 넘다가는 큰일나게 생겼다. 그나마 방법이 있다면 후문 쪽이었는데 여긴 아직 사람들이 별로 없이 한산했다. 그러나 경비를 서고 있는 경찰이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이 다가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안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졸랐다. 보초를 서고 있던 경찰은 지금 외부인 출입은 절대로 안된다며 계속 고개를 저었다. 들어가게 해달라는 나와 한사코 안된다는 그 사이에서 고성이 오고 간다. 좀만 더 했다가는 멱살이라도 잡을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 쯤, 경찰이 갑자기 부동자세를 취하더니 경례를 한다. 이 자식은 나랑 여태껏 싸우다가 뭔 놈의 경례를 하는지 모르겠다....
무슨 일이시죠?
등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와서 돌아보았다. 검은 정장을 입고 서류가방을 들고 있는 여자가 건장한 남자 서너 명을 대동하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여자 목소리치고는 굉장히 선이 굵고 허스키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녀에게 내 사정을 설명했다.
저기, 그게.... 이 안에 제 학생이 있습니다.
내 학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는 모습을 보았는데도 모른 척 해버린 나지만, 그런 나라도 소란이를 내 학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굉장히 양심에 찔렸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내 말을 들은 여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경찰에게 나를 안으로 들여보내라고 지시했다. 모르긴 몰라도 굉장히 높은 여자인가 보다. 여태 나랑 싸우던 경찰이 찍 소리도 않고 나를 안으로 들여보낸다. 여자를 필두로 남자들이 우루루 안으로 들어가고 나 역시 얼른 여자의 뒤를 따라갔다. 걸어가던 여자가 나를 돌아보고 물어보았다.
선생님이신가보죠? 학생이 무슨 일로 들어왔는데요?
저기, 이번에 무슨 교회인가에서....
아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몹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학생이라고 하면, 어린 나이이겠군요. 안타까우시겠습니다.
네에...
무탈하길 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건물 가까이 도착하자 여자는 나에게 조사실을 알려주고 다른 곳으로 갔다.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시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안은 아주 난리법석이었다.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의 축소판이 여기서도 펼쳐지고 있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유치장과 경찰서 바닥에 드러누워 찬송가를 부르짖고 있었고 경찰들은 그들을 한 명씩 끌어내어 조서를 쓰고 있었다. 빠르게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내가 찾는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남자 한 명을 붙잡고 교회에서 잡혀온 사람은 이게 다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더니 증세가 심한 사람은 병원으로 후송되었다고 말했다.
증세가 심하다뇨?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그러자 남자는 나에게 되물었다.
잠깐, 당신 누구야?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어디 소속이야?
아니, 전 그게.....
그러자 남자가 다른 사람을 쳐다보며 외쳤다.
윤태! 조사실 인원 똑바로 체크 안 하지? 여기 외부인 들어온 것도 몰랐어?
네? 넷!!
젊은 남자 한 명이 벌떡 일어나 내게 오더니 팔을 붙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 조금이라도 더 남아 소란을 찾아보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윤태라 불린 경찰은 나를 정문까지 데리고 가더니 돌아가라고 했다. 그에게 통사정을 했다.
제 학생이 여기 잡혀왔습니다! 상태라도 알게 해주세요!
학생...이라구요? 혹시 여학생?
그런데요.
그러자 윤태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걸 보고 있자니 겁이 덜컥 났다.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민하다가 좌우를 살피더니 내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이런 이야기는 원래 하면 안되니까 선생님이라고 하시니 알려드리겠습니다. 교회에서 데려온 여자들은 거의 다 중독증상을 보여... 경찰병원으로 후송되었습니다.
중독이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윤태가 황급히 내 입을 틀어막았다.
아직 언론에도 발표되지 않은 겁니다. 경찰병원에 가도 들여보내주지 않을 거구요. 어지간한 ?活繭捉?있으면 모를까... 아무튼, 일단은 댁으로 돌아가 연락을 기다리고 계세요. 조만간 발표가 있을 겁니다.
그는 내게 비밀을 엄수하라고 주의를 주곤 건물 안으로 돌아갔다. 그나마 여기까지 알려준 것 만해도 어디냐 싶었다. 터덜거리는 발걸음으로 경찰서를 벗어났다. 닭장차가 오더니 시위 중인 사람들을 하나씩 담요로 싸서 태워가는 광경이 보였다.
휴거...라고 했던가. 저들이 믿는다는 게? 게다가 중독이라니?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아까 화면에 약 2초정도 비쳐졌던 소란의 모습을 떠올린다. 단 일주일 사이에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초췌해진 모습이었다. 그래,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 경찰병원이든 뭐든 가보는 거다. 그러나 이내 또 걱정이 되는 것이.... 지금 경찰서도 천만다행인 요행으로 들어왔는데 병원도 그게 될까 싶었다. 윤태라는 경찰이 말한 걸 떠올려본다. 어지간한 빽. 그런게 나한테 있을 리가 있나.....
패배감과 무기력함에 젖어 힘없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공중전화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되든 안 되든... 도움을 요청해보아야 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박스 안으로 들어간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내가 가진 돈이라고는 50원짜리 동전 하나뿐이었다. 젠장. 아까 택시비도 겨우 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여기서 집까지도 걸어가야 할 판이다. 전화를 걸 수 있는 곳은 딱 한 군데 뿐이지만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곳은 두 군데였다. 하나는 얼마 전부터 신세를 지고 있는 ROSE. 또 다른 하나는 무려 변호사를 대동하고 다니던 효진이였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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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 ROSE에 전화를 걸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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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 효진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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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Route L 이 끝나고... 선택의 순간이군요.
O와 P 둘 다 엔딩 루트입니다. 누구누구 루트인지 너무 뻔하게 보이는 터라 O나 P 둘 중에 하나는 하위 루트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아닐 수도 있고요.
조아라 쪽은 댓글이 좀 덜 달리는 편이라... 만 3일, 그러니까 72시간동안 선택을 받아보고 결정을 내린 이후에 이야기를 적기 시작하겠습니다. 늦어도 일주일 안에는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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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