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까지의 스토리 요약
(데이트 첫 날, 다시 데이트 첫 날, Route B와 Route D, Route E, Route H, Route K를 거쳐서 현재까지)
- 전략 -
한석은 새벽에 선영의 전화를 받는다. 갑작스럽게 어딘가 같이 가달라는 선영에게 한석은 좀 어렵다는 대답을 한다. 선영은 잘 지내라는 말로 전화를 끊고 한석은 그녀를 걱정한다.
새벽에 돌아온 마리를 만나 마리와 리사, 두 자매가 가지고 있는 비밀에 대해 듣는다. 두 사람은 어떤 알지 못하는 현상에 의해 서로의 감각과 감정을 일정 부분 공유하고 있다는 것.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지난 리사와의 관계가 마리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걸 알고 한석과 마리는 거의 할 뻔 한다. 그러나 예정보다 일찍 나타난 유진이 때문에 영화 보러 나가게 된다. 유진이와 다니면서 이상한 교회에 들어가는 소란과 철판 볶음밥집에서 일하는 택용을 본다. 같은 실습을 하는 현아와 친해지는 와중에 빅토리아(비키)라는 외국인 교사와도 얽히게 되는데 한국말에 능숙한 비키에게 여러번 골탕을 먹는다. 나중에 그녀가 가진 실연의 아픔을 알게되고 위로해준다. 난데없이 나타난 효진과 주말에 지혜를 만나러 갈 약속을 한다. 서울로 올라온 리사의 의외의 면을 보고 좀 어려워하자 리사는 마리를 부탁한다며 부산으로 도로 내려간다. 소란이네 어머니가 이상한 종교에 빠져있다는 상황을 듣는다. 마리와는 오해를 풀고 한 걸음 더 다가서지만 마리가 마음에 걸려하는 문제 때문에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진 못한다. 학교에서 유진이에게서 선영의 부재를 전해듣고 그녀가 걱정되어 그 날 바로 찾아가기로 마음 먹는다.
그러나 선영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한석은 선영은 만나지 못하고 세탁물 배달중인 소란을 만난다. 집에서 하는 세탁소 일을 돕고 있는 중인 그녀를 돕다가 소란을 잡으러 온 종교단체에게 같이 끌려간다. 교회의 집회에서 원종서 목사에게 저항하다가 독침을 맞아 마귀 들린 자로 몰리게 되고 소란, 미애와 함께 징벌실에 갇힌다. 갖은 회유와 협박에도 저항하던 한석은 바텐더라 불리우는 한 남자가 강제로 마시게 한 약에 취해 소란과 미애를 범하게 된다.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만 소란은 원래부터 한석을 좋아하고 있었다며 그를 위로하고 몸을 다시 허락한다. 미애는 사실 바텐더를 잡기 위해 잡입한 채송화라는 검사였고 그녀 역시 한석에게 자신의 몸을 내준다. 다음 날, 다시 원목사와 바텐더가 나타난다.
그러면 이제, 더블 데이트 Route M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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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님 실력이야 워낙 출중하시니 의심은 않습니다만... 이게 한두푼 들어가는 사업이 아니다 보니....
원 목사가 거드름을 피우며 바텐더에게 은밀한 표정을 보낸다. 그러자 바텐더는 씨익 웃었다. 어째 저 웃음이 불안하기 짝이 없다.
가장 확실한 건 품질 아니겠습니까? 좋습니다. 확인시켜 드리죠. 어차피 그래서 모신 거니까요.
바텐더가 한 손을 들자 뒤에 서 있던 두 남자가 철창 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왔다. 좁은 징벌실이 꽉 차는 느낌이다. 아까부터 내 품에 안겨 있던 소란이의 몸이 딱딱하게 굳는 게 느껴졌다. 송화가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서더니 내 팔을 붙든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팔을 뻗는다. 나는 내 품 안에 있는 여자들을 뒤로 확 끌어당겼다. 그러나 늦었다. 이미 송화에게 놈의 커다란 손이 닿더니 그녀를 확 끌어당기고 만다.
송화 씨!
내 품 안에 안겨있는 소란이 때문에 동작이 자유롭지 못했다. 한 남자가 송화를 끌고 가는 동안 다른 남자가 몸으로 나를 막아 선다. 그러나 송화는 자신을 끌고 가는 남자의 손을 뿌리치더니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말했다.
이거 놔. 내 발로 가겠다.
그녀의 기세에 눌린 남자가 원 목사 쪽을 쳐다보자 그는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송화는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최한석. 너한테는 내가 말한 게 있을 거야. 누나 말 잘 듣고 있어. 다녀올테니까.
어젯밤, 무슨 일이 있어도 나서지 말라고 당부하던 그녀의 말이 떠올라 간신히 뛰쳐나가려는 마음을 억눌렀다. 마음 같아서야 당장 뛰쳐나가 그녀를 되찾아오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지금의 내가 저 덩치들을 둘이나 제압할 수 있을 것인가. 설령 잘 먹고 잘 지내던 평야설넷도 될까말까 한데 지금은 쫄쫄 굶고 혹사당한 몸을 하고 부젓가락 하나도 제대로 못 들 상태였다. 더군다가 나를 붙드는 작은 손이 있었다.
내려다 보니 품 안의 소란이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아랫입술을 꽉 깨문 나는 녀석을 꼭 끌어안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철저하게 무기력한 내 자신이 이토록 한심하게 느껴진 적이 없다. 송화가 철창 밖으로 나오자 바텐더는 품 안에서 작은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젠장. 저 무색무취, 그러면서 뭔가 이상한 맛의 약이 분명하다. 나를 짐승의 상태로 몰아넣었던 이상한 약물. 저걸 다시 꺼낸다는 건.... 그리고 저걸 마실 사람은 분명.....
근데 목사님 취향은 좀 더 어린 쪽 아니셨습니까?
그러자 원 목사가 껄껄 웃으며 답했다.
신의 은총을 전하는 데 구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그는 철창 안의 나를, 아니, 엄밀히 말하면 소란을 위아래로 쫘악 훑어본다. 소란의 살갗에 돋아난 소름에 나까지 닭살이 돋을 지경이다.
하긴... 뭐, 일단 계집이라면 다들 똑같은 건 가지고 있으니까요.
바텐더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송화 뒤에 있는 남자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남자 한 명이 송화를 붙들고 턱을 강제로 벌렸다. 송화는 이를 악물고 바락바락 대들었지만 복부를 강타 당하고 뺨을 몇 번 얻어 맞고 나서 빈사 상태가 되었다. 억지로 벌린 입 사이로 유리병 주둥이를 비집고 넣는다. 바텐더가 들고 있는 유리병의 액체가 고스란히 그녀의 안으로 흘러들어간다. 송화의 코를 잡고 액체가 충분히 넘어간 것을 확인한 바텐더는 꽤 자랑스럽다는 듯이 원 목사에게 말했다.
이번 칵테일의 특징은 지난 번 칵테일 보다 훨씬 더 빠르다는 점입니다. 여운도 오래 가구요. 아마 쓰시기에 최고일겁니다.
그렇습니까? 허허. 기대되는 군요.
원 목사의 비릿한 표정을 보며 불안해졌다. 그가 지금부터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짐작이 가기 때문에 마음이 더 무겁고 처참해졌다. 품에 안고 있는 소란이를 끌어다가 얼굴을 내 가슴팍에 묻게 했다. 팔을 들어 소란의 귀를 틀어막는다.
흐윽.....!
가만히 서 있던 송화의 다리가 풀렸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눈이 풀리고 입가에는 침을 흘리기 시작하더니 내 쪽을 돌아보고 외쳤다.
보지마.... 한석... 보지마.....
송화 씨.....
보지 말라구.... 흐으윽...... 끄으윽......
그게 그녀가 제정신을 가진 상태에서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바로 그 다음 순간, 그녀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만다. 저토록 즉효였나, 저게? 나도 한번 당해보긴 했지만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라서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멀쩡한 상태에서 바라본 그 약물의 효능은 공포스러울 지경이다.
흐끄윽....흐윽....흐아......
못내 괴롭다는 듯이 그녀는 자신의 가운을 벗어제끼며 바닥을 굴렀다. 그 모습을 보며 바텐더가 껄껄 웃으며 원 목사에게 말했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정말 즉효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군요. 지난번 물건은 워낙 오래 걸려서 기도를 한참 하고 시작했어야 하는데 말이죠.
저 년 다리 사이를 보십시요. 아주 흥건하지요?
송화는 새우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한 손으로는 자기 가슴을, 다른 한 손으로는 다리 사이를 만지며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저 약을 마셔본 사람으로서.... 저 기분이 어떤 기분인지 알 수 있다. 몸 전체에서 이상한 느낌이 피어오르고 그걸 어쩌지 못하는 괴로움이 마구 넘쳐나게 된다. 외부의 자극을 향해 눈을 돌리게 되고 그 결과.....
허허. 이 년 보십시요. 이제 완전히 개가 되었습니다.
하하하. 정말이군요. 어떻게, 뭐라도 좀 줘야지 않을까요?
송화는 네 발로 기다시피 하여 원 목사의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괴로워 하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그들은 무척이나 즐거워하고 있었다. 바텐더는 자신의 약이 성공적으로 작용했음을 자랑할 수 있어 좋았고 원 목사는 또 다른 욕망을 위해 기뻐하고 있었다. 그는 바지춤을 풀며 말했다.
제가 늘 말했지요. 우리 교회 신도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방법은 딱 하나라고.
뭡니까, 그게.
제 앞에서 가랭이를 벌리는 년은 내 신도요, 아닌 년은 나가리라고 말입니다. 이제 박사님 약만 있으면 천하가 다 제 신도겠군요.
하하하. 저야 금액만 맞게 쳐주신다면야 전 국민이 목사님 신도 되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원 목사는 허리띠를 풀고 바지를 내렸다. 젠장.... 임마! 그런 짓을 할거면 경고라도 좀 해주고 시작하란 말이야! 어디다 그런 좆도 아닌 물건을... 아니, 좆이 맞나? 암튼 초라한 물건을 꺼내드는 거냐!! ..... 크윽..... 다른 남자의 자지를 본다는 건 참 불유쾌한 일이다. 송화가 원 목사의 자지를 향해 얼굴을 가까이 대는 것만 보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쭈웁-쭈웁-
소리만 들어도 뭐하는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있다. 내 귀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한 팔은 소란이를 끌어안고 다른 한 팔은 소란의 머리를 감싸고 있느라 그럴 수 없었다. 괴로웠다. 그러나 나의 괴로움에는 아랑곳 하지 않는 두 인간.... 아니, 저것들을 인간이라 해도 좋을까..... 두 괴물을 대화는 이어지고 있었다.
쭈웁-쭈웁-추아-
오호라~ 허어, 이 년. 아주 믿음이 깊습니다~
목사님 천국 보내드리는 일인데 아무렴 열심히 해야겠지요.
원래 대단히 앙칼진 년이었는데 이 정도까지 하다니... 박사님 정말 대단하시군요.
이게 다 목사님의 지원 덕분입니다.
어디, 아래 입도 윗 입만큼 잘 하는지 확인해볼까요?
그러시죠.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윽고 들려오는 송화의 교성...... 어젯밤 나랑 할 때만 해도 입을 꾹 다물고 끝끝내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던 그녀였는데..... 지금은 마치 짐승이 울부짖듯이 비명을 질러가며 쾌감의 소리를 외쳐대고 있었다. 쩔컥거리는 마찰소리. 살끼리의 충돌. 그것들이 무엇을 할 때 일어나는 소리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나는 몸을 돌리고 부들부들 떨었다. 애써 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소란의 귀를 틀어막고 있느라 내 귀를 틀어막을 수가 없었다. 젠장할!! 게다가 소란이는 어찌된 일인지 자꾸 고개를 들려고 해서 그걸 내리 누르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흐어....흐엉.....헝.......
퍼억- 퍼억- 퍼억-
어이쿠, 이 년 조이는 거 보게!
하하. 목사님 표정이 아주 천국이십니다.
하아. 박사님, 아주 할렐루야입니다. 흐으...
퍼억- 퍼억- 퍼억-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 악마의 시간은, 원 목사의 끄윽거리는 소리로 끝이 났다.
으음... 역시 박사님입니다. 품질 확인이 끝났으니 곧바로 납품 해주십시요.
하하. 감사합니다. 조만간 준비되는 대로 알려드리죠.
근데 이 년의 상태가....?
아아.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 약은 즉효인 동시에 여운도 오래갑니다. 앞으로 서너 시간은 이런 상태랍니다.
허허. 그래요? 그럼 일단 기도원으로 데려가도록 하죠. 굶주린 형제들이 제법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시겠습니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문소리가 났다. 주변이 조용해질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그러고 있었다. 잠시 후 완전한 고요가 돌아오고 나서,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뒤를 돌아본다. 빌어먹을. 송화의 가운이 바닥에 흐트러진 채 놓여 있었다. 바닥에 흥건한 저 액체는 그녀가 흘린 애액이리라.
너무도 비참한 기분에 나도 모르게 울컥해 졌다. 물론 그녀와 내가.... 어떤 백년가약을 맺은 사이는 아니다. 정말 뜻하지 않게 강제적으로 범하다시피 관계를 가졌고 그 이후에도 그 여파로 인해 잠시 몸을 섞었을 뿐이다. 그러나 불과 어젯밤까지만 해도 내 품안에 안겨 있던 그녀가 지금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짐승처럼 유린당하는 데도 난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그만두라고 소리치는 것 조차 하지 못 했다. 내리 나흘 가까이 굶었고 미친듯이 섹스를 탐닉한 끝에 몸이 혹사한 탓도 있을 것이다. 전신에 힘이 하나도 없다. 나도 모르게 바닥에 주저 앉았다. 도무지 서 있을 힘이 없다.
선생님.....
내 품 안에 안긴 소란이가 꿈틀거린다. 녀석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너만은 지켜내리라. 그렇게 다짐하며 눈물을 삼켰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내 품안에서 들려온 소리에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선생님..... 절 안아주세요.....
뭐라고?
기겁하며 고개를 숙여 소란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녀석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눈빛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송화가 그렇게 당하는 걸 지척에서 보고 있느라 무섭고 두려워서 불안에 떨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녀석은 마치 방금 전의 송화처럼, 그러니까 약을 한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제 몸을.... 가져주세요.....
소란아,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니?
어서... 빨리....
소란아!
말릴 틈도 없이 녀석이 내 가운의 아랫도리를 제치고 내 자지를 찾아 물었다. 작은 입을 벌려 귀두를 덥석 물어오는데 말릴 틈도 없었다. 촉촉하면서도 흡입력 있는 소란의 입 안에 담긴 내 자지를 내려다 본다. 이럴 수 없다는 생각에 몸을 뒤로 빼냈다. 발이 엉켜 뒤로 벌러덩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소란이 내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자지를 붙든다.
저한테... 이걸.....
소란아! 정신 차려!
그러나 슬프게도, 자극을 받기 시작한 자지는 단단해지기 시작했고 소란은 그걸 황홀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움켜쥐었다.
뜨거워요.... 선생님.....
소란아, 너 지금 상태가....
제 몸도 뜨겁고.... 이게 필요하고....
소란은 다시 입을 벌려 내 자지를 입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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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빼내거나 소란을 밀쳐서 떼어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행여나 소란을 다치게 하거나 소란의 이빨에 내 자지가 상하게 될까봐.... 아니다. 젠장. 이 빌어먹을 남자라는 짐승. 어처구니없게도 이런 상황에서 나 역시 흥분하고 있었다. 방금 전 송화의 능욕을 들으면서 저들의 비열한 작태에 분노하긴 했지만 그런 감정과는 별개로 육체의 흥분은 막을 수가 없었다. 품 안에는 작고 부드러운 여체가 안겨있고 뒤로는 섹스의 소리가 들려온다. 게다가 어찌된 일인지 소란의 눈이 풀리며 나를 덮쳐온 지금, 적극적인 저항을 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내 안에서 무언가 스멀스멀 기어나와 내게 말한다. 가져.
쭈웁- 쭈웁- 하는 음란한 소리를 내며 자지를 빨고 있는 소란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난 처참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이 아이와 이런 관계가 처음은 아니다. 약에 취해 짐승같이 범하기도 했고 후에 이 아이의 마음을 알고 다시 한번 몸을 섞기도 했다. 전자가 자의가 아니었다고 항변할 수 있더라도 후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 분명 이 아이와 난 합의 하에 몸을 섞었다.
그래.. 그랬다. 그러니 지금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여기 지금 달아오른 남과 여. 두 개의 육체가 존재할 뿐이고 둘이 원하는 것은 명확히 하나로 정합되고 있다. 나 혼자 꺼리거나 부정할 필요는 없다. 욕망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아....
작은 입으로 밑둥부터 자지를 한번 쑤욱 훑어올린 소란은 부스럭거리며 자신의 가운을 벗어내더니 내 자지 위에 올라탔다. 자세를 제대로 잡지 못해 조금 애를 먹었지만 이 빌어먹을 나라는 짐승은 그런 녀석의 행위를 도왔다. 자지를 잡고 녀석의 다리 사이를 맞춘다. 상체를 일으켜 녀석을 끌어안고 엉덩이를 들어 내 것에 맞춘다. 그렇게 우리는 연결되었다. 비좁고 빡빡한 그 틈으로 내 자지가 비집고 들어간다.
흐읍.... 서...선생님... 흐으....
우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모를 소란의 흐느낌이 전해져온다. 녀석은 내 가슴에 이마를 대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스스로의 쾌감을 위해 노력했다. 별다른 애무를 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흥건하게 젖은 소란의 좁은 구멍이 내 자지로 꽉 들어찼다. 뻑뻑하면서 동시에 부드럽게 움직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난데없이 흥분해버린 소란과 마찬가지로 내 몸도 격하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두운 욕망이 마구잡이로 속에서 분출하고 있다. 내게 매달린 이 작고 가녀린 몸을 산산히 부수어버리고 싶다. 꽂아놓은 막대를 마구 터트리고 싶다. 저 가느다란 목을 물어뜯는다면 대체 어떤 기분일까.....
하악...하아...선생님...하아...선생님.... 저....하악.....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던 내가 그나마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건 헐떡이며 내뱉는 소란의 목소리. 이 아이가 불러주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나로 하여금 더 이상 짐승이 되지 않게 해주고 있다. 고맙다. 너무 고맙다. 그래서 퍽퍽 박아대는 자지로 내 고마움을 맘껏 표현하고 싶다.
하악!! 하악!! 흐.....으.....
소란을 엎드리게 해놓고 엉덩이 사이로 마구 쑤셔본다. 몸을 뒤로 당길때마다 벌겋게 달아오른 보짓살이 자지를 물고 딸려 나오는 광경이 마음에 든다. 털이 별로 없어 매끄럽기 짝이 없는 보짓살이 먹음직스럽다. 하얗고 동글동글한 엉덩이가 맛있어 보인다. 아아.... 내가 너를....
흐음. 열심히 하고 있군 그래.
난데없이 들려오는 칼칼한 목소리에 고개를 홱 돌린다. 그러나 허리는 쉬지 않는다. 소란의 신음소리도 그치지 않는다. 언제 들어왔는지 바텐더가 팔짱을 끼고 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서 돌아와보았는데... 하아. 역시 계산대로인가?
무슨 소리를...으윽....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던 터라 제대로 멈출 수가 없었다. 소란의 보지에 꽂힌 자지에서 역동적인 분출이 일어난다. 눈으로 보이진 않지만 자지로 느낄 수 있다. 꿈틀거리며 정액을 쏘아내는 내 자지에 꿰뚫린 소란의 반응이 이채롭다. 보지가 경련을 일으키듯 파닥거리며 자지를 쥐어짜낸다..... 처음에는 단지 입구가 좁은 녀석이라 꼭 끼는듯한 느낌이 드는 건가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녀석의 보지는 마치 능숙한 여인의 그것처럼 꼼지락거리며 자지를 훑어내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하하하. 싼 거냐?
미친...... 이 짐승만도 못한.....
그러자 바텐더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내가 원래 흔히 듣는 욕이니 별로 새삼스럽지는 않은데 말야.... 남 보는 앞에서 짐승처럼 붙어먹는 네 놈에게 들을 소리는 아닌 것 같군. 자세도 지금 딱 도기 스타일인걸?
닥쳐!!
어이, 어이. 자지나 빨리 가리고 그런 말을 하라고.
방금 사정을 마친 터라 쭈그러진 자지가 소란의 보지에서 밀려나오고 있었다. 쌕쌕거리며 눈을 감고 있는 소란을 자리에 눕히고 가운을 덮어주었다. 내 가운도 대충 둘러 민망한 부위를 가린다. 철창으로 다가가 바텐더와 마주한다.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일단은 사과하지. 난 네 놈은 물론 그 두 여자도 계속 샘플로 쓰고 싶었는데 말야, 우리 스폰서께서 낙원에 결원이 생긴 걸 빨리 채워야 한다고 하도 성화를 해서... 그래서 일단 한 년은 보내드렸네.
스폰서라 하면 원 목사를 이야기하는 걸테고.... 낙원에 결원이라니. 설마 이 자는 기도원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걸까.
그녀는 어떻게 되는 거야....?
그야 나야 모르지만... 아까 상태를 보면 뻔하지 않아? 최대한 돌려먹을 수 있을만큼 돌려먹겠지.
크윽....
바텐더의 약에 취하게 되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 아니,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강력하게 흘러넘치는 음란한 마음에 정신이 굴복하게 된다. 다른 사람 이야기도 아니고 직접 스스로 경험한 것이기에 바텐더의 약의 효능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방금 전만 해도 송화 역시 의연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가 약 한 번 강제로 마시고 섹스의 화신이 되지 않았던가. 그녀의 뒷일을 차마 상상하지 않기 위해 고개를 흔들어 떨쳐낸다. 비참한... 너무도 비참한 짓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게다. 괴로워하는 내 모습을 보며 바텐더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 모양이다.
보지가 하나 줄었다고 너무 아쉬워말고 협력 좀 해줘봐. 실험은 계속 할테니까 말야.
실험이라니?
이미 경험한 투약이 다가 아닌 모양이었다. 바텐더는 턱으로 소란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아이가 너를 원했지? 그렇지?
그걸 어떻게.....
투약 직후 행한 반응성 검사에서 저 아이의 항목이 가장 우수하게 나왔다. 방금 끌려간 여자도 꽤 좋은 수치였지만 저 아이만큼은 아니었어.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저 아이랑 원래 아는 사이였나?
그렇다.
흐음... 그게 이유였나....?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한참 무어라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는 이내 고개를 들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한국말로 뭐라더라. 그래. 네 녀석이랑 저 아이는 궁합도 잘 맞는 것 같군. 약에 대한 적응력도 제대로 보여주고 있고.
적응력이라니.... 대체 네가 먹인 약은 뭐지? 최음제나 뭐 그런 거야?
그러자 바텐더가 피식 웃었다.
최음제? 차라리 발정제라고 하는 게 더 맞지 않나? 일단 내가 여태까지 만들고 팔아온 칵테일은 주로 그런 쪽이긴 한데 이번부터는 좀 방향을 달리하고 있어서 말야, 그런 저급한 표현으로 불러주지 않았으면 싶네. 일단 원 목사의 요구조건이 많이 까다로운 편이긴 한데 그런 만큼 도전 욕구가 물씬물씬 들거든. 나야 잘 되었지. 뭐.
그는 의자 하나를 끌어다가 거기에 털썩 주저 앉아 설명을 시작했다.
원 목사가 바라는 건 단순한 발정제가 아니라 좀 더 인간의 근원적인 면을 두드릴 수 있는 약물이야. 자신이 말빨로 커버할 수 있는 종교적 가치, 그만큼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약물. 어떻게 들으면 허황된 소리같기도 하지만 그 사람이 추구하는 바에 비하면 세발의 피지, 뭐.
원 목사가 바라는 거.....?
원 목사는 그저 단순히 사람들을 끌어모아 돈이나 긁어내는 사이비 목회자 아니었던가? 그 사람이 추구하는 바라니. 도무지 알 수 없는 소리뿐이다. 바텐더는 뭔가 곰곰히 생각하더니 엉뚱한 소리를 꺼냈다.
막스가 그랬나? 종교는 아편이라고. 혹시 알아, 이 이야기?
어안이 벙벙하다. 갑자기 웬 공산주의 타령이지?
그게 어떤 사람들은 그저 종교는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고 종국에는 몸에 해로운, 뭐 그 정도의 비유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원 목사는 좀 다르게 생각하고 있지. 그는 정말 아편 같은 종교를 만들고 싶어해. 사람들이 맞고 싶어하고 한번 맞으면 끊을 수 없고... 그리고 그걸 구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아편쟁이들의 속성을 고스란히 가진, 그런 종교. 그게 바로 이 말세교의 핵심교리이자 원 목사의 최종 목표야.
내가 오래 살긴 확실히 오래 살아온 모양이다. 이런 헛소리까지 듣게 되다니.... 철창을 붙들고 소리친다.
결국 사이비란 이야기잖아!!
노노노. 테이크 잇 이지. 진정하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나와 달리 바텐더는 몹시 태평한 표정이었다.
자, 봐봐. 사이비라는 건 대체 누가 정하는 건데? 예수가 처음 태어나서 사람들 끌고 다니며 선포할 때는 뭐 정교로 인정받아서 그러고 다닌 거냐? 신교도들이 처음 들고 일어나 구교에서 독립할 때는 무슨 사이좋게 신사협정이라도 맺어서 차분하게 나온 거냐? 네 놈도 머리가 있다면 생각을 해 봐. 아편이 이 세상에서 탄압받고 없어져야할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이 마당에 자기 종교를 아편처럼 만들고 싶어하는 목사가 꾸는 꿈은 뭐일 거 같나. 그게 단순한 생각일 것 같아? 예수를 전염시켜라! 수단과 방법은 부차적인 거고. 중요한 건 그게 그 사람의 모토고 진심이라는 거야. 거기다 졸라 웃긴 건 그게 엄청 진지하다는 거지.
기가 막혔다.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종교가 없는 나는 그저 막연하게 사이비 목회자들은 자신의 양심을 숨기고 사람들을 등쳐먹고 속여서 이득을 취하려는 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바텐더의 이야기에 따르면 원 목사는 사람들이 아편에 중독된 것처럼 말세교에 심취하는 것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그의 지상 목표라니, 어처구니가 없어도 보통 없는 게 아니었다.
아편에 중독된 사람은 육체에 가해지는 말초적 자극에 엄청 예민해지지. 종교에 심취한 사람은 자신이 받는 모든 경험이 영적인 경험이라 착각하지. 원 목사는 그 경계..... 그러니까 육체와 정신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약물을 원했고 나는 개발을 했다. 여러 차례 실험을 해보았지만 여태까지 실패를 좀 많이 해서 말야. 자네도 어찌보면 실패작이고.
뭐라고?
그렇지만 이제야 찾았네. 저기 저 아이처럼 제대로 먹힌 건 정말 처음이야. 저 아이야 말로 진정한 내 역작이라고 할 수 있지. 너희들에게 투약한 약물은 최종 단계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조정된 것들이야. 저 아이에게 투약된 약과 저 아이의 몸에 대한 모든 것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어.
나도 모르게 경악으로 온 몸이 떨렸다. 이젠 한결 부드러워진 숨소리로 잠들어 있는 소란을 내려다보았다. 바텐더의 눈빛이 소란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그것은 딱히 음심을 담고 있는 눈이라기 보단 자신의 성과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는 과학자의 눈이었다. 소름끼치게도... 그는 정말로 뼛속까지 과학자였다. 그는 내게 자신의 연구 성과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떨리는 목소리가 내 입술을 비집고 나온다. 그에게 묻는다. 확인을 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그런 이야기를 나한테 늘어놓는 이유가 뭐지? 당신은 대체....
전에도 말했잖아. 난 바텐더고 칵테일을 만드는 사람이지. 내가 만든 술을 먹고 기분 좋게 취한 손님이 있다면 한결 기분이 좋아지는, 직업 정신에 아주 투철한 사람이라고.
직업 정신? 그런 헛소리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봐.
그러자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 이유가 어디 있냐.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 아주 재미있는 일을 한다는데...
기가 막혀 말이 제대로 안 나왔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나온다.
사람을 가지고 놀고.... 사람을 상대로 실험하고.... 그런 게 재미있다고?! 그러고도 네 놈이 사람이냐!
적어도 난 내 눈 앞에 보이는 사람만 가지고 놀지만, 저기 위에 높은 분들은 모든 사람을 상대로 가지고 놀지 않나? 응? 나 정도면 충분히 양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익!! 이 미친 놈!!!!
차라리 욕을 하고 날 때린다면 내가 이렇게 화가 나지 않으리라. 그러나 그의 표정을 정말 태연하기 그지 없었고 진심이었다.
워워워.... 내가 아무리 욕듣는 거에 둔감하다 하더라도 지금 좋은 제안을 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막 나오면 좀 그렇지 않아? 안 그러면 당장 낙원에 끌려갈 네 놈이란 말야.
낙원?!
그래, 낙원. 원 목사는 네 놈들 전부를 끌고 가고 싶어 했어. 그나마 한 명으로 쇼부를 친 게 내 덕분이라는 거 잊지 마.
크윽.....
분하게도... 바텐더의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저들이 말하는 낙원, 그러니까 송화가 이야기하던 기도원은 대체 어떤 구조이고 뭐하는 곳인지 알 수 없지만 여태까지의 정보를 조합해볼 때 결코 좋은 장소가 아니다. 이름만 낙원이고 거기서 행해지는 일은 지옥에 가까울 것이다. 아직 가보지도 않은 곳인데도 저절로 알게 되고 저절로 몸이 떨려온다. 숨을 가다듬고 되도록 차분하게 말한다.
그래서... 당신 제안이 뭔데?
그는 손가락을 딱 튕겼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 군. 간단해. 저 아이를 설득해서 내게 협력하게 만들어줘. 난 저 아이의 데이터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강제로 추출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어디까지나 협조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원해.
왜 약을 쓰지 않지?
이봐. 하아. 이래서 비전문가들이란....
바텐더는 이마를 쥐고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저 아이에게 원하는 건 기본 바이탈 및 멘탈에 대한 대한 데이터야. 약에 취한 상태에서 정상적인 데이터가 추출이 될 것 같아? 물론 반응성과 적응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어느 정도 약한 약을 주입하긴 하지만 지금처럼 강력한 약은 넣지 않는다고.
그럴려면 내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 잘 아는군. 내가 이틀간 관찰해보니 저 아이는 자네에게 상당히 많이 기대고 있어. 자네 말이라면 잘 듣겠지.
그러면.... 당신 말을 들어주면... 우리는 뭘 얻게 되지? 여기서 자유롭게 나갈 수 있는 건가?
뭐? 자유? 푸하하하하하하.
그는 허리를 잡고 웃어댔다.
이봐, 이봐. 자네 처지를 아직도 이해 못 하나 본데... 이 교회에 들어와서 제 발로 나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심지어 관에 담겨 나간 이도 없어. 땅에 조용히 묻힌 이는 있어도.
뭐라고?'
3분을 주지. 내 제안에 대해 고려해 볼 시간으로. 만약 거절한다면 난 자네와 저 아이를 원 목사에게 넘기고 다른 샘플이나 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어.
크윽....
그럼 난 물 좀 버리고 올테니까 말야. 잘 생각해봐.
바텐더는 의자에서 일어나 문 밖으로 나갔다. 철창을 부여잡고 있던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진퇴양난. 사면초가. 어떤 말로 내 상황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끝도 없는 절망감이 나를 사로잡는다. 살아서 바텐더에게 협력하자니 소란을 실험용 흰 쥐로 팔아먹는 행위고 끝까지 원 목사나 김 권사에게 저항하자니 그건 목숨을 거는 일이다.
끄으으윽.....
신이여. 한 번도 당신을 찾은 일이 없지만... 그래도 여기가 명색이 교회인데, 당신은 한 자락도 여기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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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텐더가 돌아올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 하고 주저 앉아 울고만 있었다. 이렇게 무기력한 나 자신을 저주하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문이 열리고, 지옥의 사자. 아니, 바텐더가 다시 나타난다. 그는 철창으로 다가와 나를 내려다 보며 물었다.
결정했나?
차라리 내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말이 더 듣기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답은 피할 수 없고 어떻게든 결론은 나야한다.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내 안에서 모든 것의 결론은 이미 내려졌다. 소란이가 약의 여파로 인하여 이상한 행동을 했듯이.. 나도 그런 것일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스스로 판단컨대 나는 지극히 정상적이다.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 먹었기에 가까스로 입을 열어 대답했다.
.......그래.
어쩌겠어? 내게 협력할텐가?
바텐더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쪼개지 마, 새끼야.... 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당신은 실패를 많이 했다고 했지? 소란이는 간만에 찾은 성공작이고....?
그렇지.
그렇군. 그렇다면 내 선택은 하나다. 바닥을 쳐다본 채로 조용히 뇌까렸다.
당신의 실패 목록에... 하나를 더 추가하지 그래?
뭐라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텐더와 눈을 마주쳤다. 얼굴은 쭈글쭈글하지만 눈빛만은 형형한 그의 얼굴은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러웠다. 아무리 봐도 노인네는 아닌데 어떻게 피부가 저렇지? 몹시 궁금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 그리고 나의 결심을 이야기 한다.
결정했다. 네 놈들 어떤 누구에게도 저 아이를 넘겨주지 않겠다고.
뭐라고?
여지껏 태연하던 바텐더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를 향해 비웃음을 던진다. 나 자신을 향해, 이 교회를 향해, 그리고 이 세상을 향해 비웃음을 던질 시간이다. 무언가 감지한 걸까. 바텐더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친다.
네 놈!! 무슨 짓을.....!!!
그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그대로 몸을 돌린다. 소란에게 다가간다. 바닥에 누워있는 아이의 허리 위로 올라탔다. 너무 무겁지 않도록 무릎에 힘을 주고 걸터앉는다. 최대한 조심한다. 그러나 엉덩이로 녀석의 배를 지긋이 누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제 곧 발버둥을 칠테니까 그걸 막기 위해서도 어쩔 수 없다. 솔직히 좀 우습기도 하다. 지금부터 내가 이 녀석에게 저지를 일을 생각한다면 지금 안 아프게 하는 걸 신경쓰는 것도 참 웃긴 일이다. 손을 뻗어 녀석의 가느다랗고 하얀 목을 쥔다. 사람의 목을 조르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더라. 엄지가 서로 엉키는 게 맞나? 네 손가락 전체로 목 옆을 감싸는 게 ... 맞을까? 처음 해보는 거라 잘 되려나 모르겠다. 아무튼 두 손으로 소란의 목을 움켜쥔다.
그만둬!! 너 이 새끼 지금 무슨 짓을!!!!
철창을 붙들고 흔들어대며 안달복달하는 바텐더와 달리 내 마음은 평온했다. 아직 힘을 주진 않았다. 그저 사람의 목덜미에도 맥박이 느껴진다는 것을 처음 깨닫고 신기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고 보니 외국 영화 같은 데서 보면 목 어딘가에 손가락을 대고 생사를 체크하는 게 있었지. 하아. 그게 이런 이유였군. 가만히 시선을 던져 소란의 얼굴을 바라본다.
나는, 지금부터 이 아이를 잠들게 한다.
그만두지 못 해?! 네가 지금 하려는 짓은 살인이야!!
상당히 시끄럽다. 네 놈이 하려는 짓이나 원 목사가 하려는 짓이나... 시간과 방법의 차이가 있다 뿐이지 그게 어디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나 하냐. 바텐더는 약을 써서 사람의 몸을 축나게 하는 놈이고 원 목사는 정신을 오염시켜 죽음의 길로 이끄는 거짓 선지자일 따름이다. 그런데, 뭐? 내가 하는 짓이 살인이라고?
하하하하핫-
웃음이 나오지만 막 웃기지는 않는다. 하아.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해줘. 좆까라고 해줘. 이거야 말로 진정한 구원이야. 육신의 무겁고 거친 수레에서 이 아이를 구원해주는 길. 그게 구원이지, 뭐겠어? 아이를 감싸고 있는 단단한 철창에서 꺼내주고 싶다.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이거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힘을 준다. 처음에는 다소 주저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주저할 일이 아니다. 힘이 들어갈 수록 원래는 건강하게 붉고 선명한 입술이었는데 이제는 파리하고 창백해진 입술이 달싹여 나를 부른다.
선생님....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녀석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소란아..... 미안하다.....
녀석은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는 나를 밀쳐내지 않았다. 그저 빤히 날 바라보며 손을 뻗어 내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줄 뿐이다.
우리... 너무.... 힘들었죠?.....
그래... 이제 좀 쉬자.... 너 가고, 나도 금방.... 따라갈게.
유진이한테 미안해서 어떡해요....
이 상황에서도 유진이 타령이니?
우리 둘은 마주 보고 웃었다. 신기하게도 웃음이 나온다. 바깥 문을 열고 밖에다 무어라 고함치는 바텐더의 외침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가쁘게 말하는 소란의 작은 목소리는 너무도 생생하게 내 귀에 날아와 꽂힌다. 이 아이의 마지막 숨소리를, 목소리를 내 귀는 들어야 한다. 귀에 담아야만 한다. 그게 내 마지막 남은 의무겠지.
소희... 수혁이... 수민이.....보고 싶어요....
동생들 이름이었던가.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미안하다... 미안해.....
아빠도.. 맨날 일만 하지 말고... 애들이랑도....
그 말을 전해주어야 할텐데 나는 그러지 못 할 것 같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거듭 사과하지만 손은 멈추지 않는다. 미안하니까 더 빨리 끝내야 할거야.
미안해.....
흐르고 있는 눈물이 자꾸만 차올라 눈 앞이 뿌옇게 변한다. 소란의 작은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녀석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눈물을 훔칠 순 없었다. 내 두 손은 온전히 녀석의 목을 짓눌러야 하니까. 녀석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하니까. 최대한 오래 걸리지 않고 신속하게 도와주어야 하니까. 그래서 더 힘을 준다.
커....업... 엄...마...도...커.....보.....
혀를 길게 뺀 녀석의 숨소리가 이제 거의 들리지 않는다. 버둥거리는 발과 몸을 내 체중으로 내리 누른다. 작고 가녀린 손이 내 팔을 붙들긴 하지만 너무도 미약한 힘이라 결코 떼어내지 못한다.
끄....으......아......
목이 졸린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라는 게, 이런 소리였구나. 이미 눈물로 가득 찬 내 시야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 이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강렬한 충격이 내 머리에 작렬할 때까지, 나는 최선을 다해 소란을 죽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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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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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되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색 일색. 착 달라붙은 슈트가 예린의 잘 빠진 몸매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몸매 과시용이 아니라 침투에 가장 적합하고 어둠에 녹아들기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예린이 리사를 돌아보았다. 어쩐지 리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왜 그러시죠?
아뇨. 뭐... 그냥 기분 탓이겠죠.
둘 사이에 무거운 공기가 흐른다. 리사가 말하는 '기분 탓'이라는 말이 참 낯설다. 그녀는 언제나 명확한 자기 주장을 가지고 그에 따른 계획을 세우며 한 번 내린 결단에 대해 후회하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의사결정에 이용하는 건 언제나 빠른 상황 판단과 자신의 '감'이었다. 그것은 여지껏 단 한 번도 어긋난 적도 없고 그녀는 물론 그녀가 속한 조직을 위태롭게 만들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기분 탓이라는 소릴 하고 있다. 리사를 향한 예린의 시선은 그나마 선글라스가 가려주고 있었지만 분명 날카로운 날을 세우고 있다.
하아. 언니. 그렇게 쳐다보지 마요. 다 알고 있으니까.
아무리 다른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다고는 하나 곁에 있는 예린의 시선 하나 눈치 채지 못 할 리사가 아니었다. 사실 이번 서울행부터, 그리고 그 이전에 한석과 리사의 사이를 반대해오던 예린이다. 부산에서 단 둘이 있으면서 예린은 그렇게 말했다.
솔직히 저도 그 분이 싫은 건 아닙니다만... 지금 리사 아가씨를 보면 우선 순위를 놓치고 있는 분 같습니다.
자신을 항상 지켜보고 있기에 어느 누구보다도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예린의 충고가, 리사로서는 뼈 아팠다.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녀의 안에서 외치고 있는 소리는 지금 바로 한석을 찾으라고 말하고 있다. 어쩐지 서늘한 기분. 또 어쩐지 두려운 기분. 그리고 약간씩 느껴지는 불쾌한 예감이 그녀로 하여금 조금씩 낭떠러지로 밀어넣고 있는 걸 느끼고 있다. 그런데도 그녀는 멈출 수 없다. 한석을 놓칠 수 없다. 리사는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고 바로 떴다. 붉은 색 십자가가 하늘을 찌를 것처럼 솟아올라 있고 그 아래로는 푸른 색의 네온사인으로 표시된 큼지막한 글씨가 보인다. 재림예수대비말세찬양교회
가 보세요. 저는 태호 씨랑 전화 좀 하고 있을테니까요.
예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리사는 한숨을 내쉬며 차로 돌아가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부산에서는 지시를 내려달라고 아우성이지만 머리 속이 엉켜있는 그녀로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뭐야, 진짜.... 하아....
눈을 감고 고개를 젖힌다. 얼마 보지도 않았고 잘 알지도 못 하는데도 자신의 마음을 이리도 휘젓는 남자. 한석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얼빠진 얼굴. 같이 놀이동산에 갔을 때의 얼굴. 자신이 유혹했을 때 어쩔 줄 몰라하던 얼굴.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얼굴은 본의 아니게 리사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고 우물쭈물해하며 전봇대 뒤에서 나오던 표정이다. 거기에서 리사의 가슴은 콱 막힌다.
하아....
목이 메인다. 마리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자신들의 특이체질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은 그런 약속을 했었다. 두 사람이 같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을 함께 사랑하겠노라고. 지금 생각해보니 어쩜 그렇게 치기어린 약속을 할 수 있었을까. 신기하다. 어처구니 없다. 과연 가능이나 할까.
물론 지금의 리사가 그 약속을 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게 그렇게 나누고 자시고 할 수 있는 걸까. 그녀는 확신이 없다. 마리와 한석에게는 비밀이지만 그녀는 사실 서울에 있는 동안 마리가 한석과 가까워지는 걸 은연 중에 방해하기도 했다. 심술도 부려보았다. 떠나기 직전에는 욕심을 부려 한석을 먼저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부산에 몸이 묶일 수 밖에 없고 마리는 그의 곁에 있을 수 있다. 거리의 차이가 마음의 거리를 만들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석이 이런 일에 휘말리게 된 것이 어찌 보면 리사는 고마울 수도 있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리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런 생각은..... 지나쳐.'
그 귀엽고 똘망똘망하게 생긴 유진이라는 아이의 전화를 받으며 그녀는 부산에 산적한 문제를 당장 한쪽으로 밀어버렸다. 전화를 끊자마자 예린을 불러 서울행을 서둘렀다. 부산에 다시 리사의 공백이 발생한다는 사실에 대해 예린은 무척이나 유감스러워 했지만 한석이 잘못 될 수도 있다는 리사의 엄포에 그녀는 말없이 따라왔다. 서울에 올라오고 나니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유진과 마리를 만날 수 있었다. 다른 생각은 아무 것도 나지 않았다. 한석을 찾기 위해 그녀의 모든 감각이 동원되었다. 찾아낸 증거와 그녀의 감을 바탕으로 여기까지 왔다.
'분명 저 교회에 뭔가 있어...'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곳이 아니다. 교회치고 이상하리만큼 경비가 삼엄하다. 어쩐지 주변을 맴돌고 있는 제3의 세력도 감지 된다. 여러 가지 시선이 얽힌 가운데 팽팽한 긴장감이 흘러넘치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 몹시 위태롭게 보인다. 낮에 이곳을 찾아내고도 유진과 마리를 돌려보낸 까닭은 그런 원인 모를 불안감 때문이다. 가능하면 그녀도 안으로 들어가 분위기를 파악하고 싶었지만 저런 경비를 뚫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신체적 능력은 부족하다. 그녀의 수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예린을 들여보낸 것이 그나마 그녀가 내릴 수 있는 유일한 판단이었다.
삐이이이익-!
밤하늘을 날카롭게 찢는 호각소리. 교회건물에서 갑자기 불이 환해진다. 리사는 혀를 차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조수석의 창문을 내린다. 사이드 브레이커를 당긴 상태에서 엑셀레이터를 밟아 엔진을 RPM을 미리 올려둔다. 잠시 후, 교회 담장 한 군데에서 검은 색 그림자가 쑤욱 올라오더니 차의 대각선 앞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 리사는 사이드를 풀고 곧장 차를 출발시킨다. 달리는 차의 조수석 창문을 통해 예린의 몸이 날아들어온다. 리사는 속도를 전혀 떨어뜨리지 않은 상태로 차를 유턴하여 도로를 질주한다. 교회 쪽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리는 소리와 단번에 거리를 벌린다.
찾았어요?!
네. 그런데....
뿌아아아앙-
신호도 아닌 곳에서 좌회전을 급하게 틀어 도로에서 골목으로 빠져나간다. 반대편 차선에서 오던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불만을 표시하지만 리사는 그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예린의 대답 말미에 나온 그런데였다.
그런데라뇨! 찾았으면 데리고 나왔어야죠!
난폭한 운전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예린은 손잡이를 꽉 붙들고 있었다. 등 뒤에서 하이빔을 켜며 쫓아오는 차는 아무래도 방금 전 난폭운전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쫓아오는 일반 시민 같지는 않다. 리사는 골목길과 도로를 무법천지로 질주하며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시끄러운 경적 소리와 행인들의 비명 소리가 한 데 엉켜 시내 한복판에 아수라장을 펼치고 있다.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어떤 단체 녀석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특히 바텐더... 그 자식이 거기에...
이번엔 리사가 놀랄 차례였다. 그녀는 길을 건너려던 사람에게 길게 경적을 울리고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그대로 횡단보도를 지나쳤다. 핸들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악을 쓰듯 소리쳤다.
바텐더?! 그 자식이 어떻게 거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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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루트는 아무래도 리사 활극이 될 듯.... 머엉....
눈을 떴다. 하얀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창 밖에서 흘러들어오는 환한 빛이 천장의 무늬를 비추고 있다. 가장 첫번째로 든 생각은 이 곳이 어디인가 였다. 그리고 그 다음은,
살아 있군요.
듣기 싫은 날카로운 목소리.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보기 싫은 여자가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이 여자가 싫다. 굉장히 꺼림칙하고... 기분 나쁘다. 얼굴이 못 생겨서 그런가? 목소리 때문인가? 처음 보는 사람을 이렇게나 싫어하게 되다니... 내가 이렇게 성격이 나쁜 인간인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도무지 이유는 모르겠다. 싫은 건 싫은 거다. 내게 기회만 허락된다면 저 여자를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아아, 뭐야. 이거 왜 이러지? 내가 이렇게 성격이 더러웠나?
함부로 움직이지 말아요. 전부 고정해두었고 바늘도 꽂혀있으니.
몸이 무거워서 못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팔다리는 가죽끈 같은 것으로 침대에 고정되어 있었고 목도 침대에 묶여 있었다. 왼팔에는 링거도 하나 꽂혀 있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고작해서 목을 가누는 정도가 전부였다. 몸의 상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외국 책에 보면 자다가 외계인에게 납치되는 사람들 이야기도 나오고 그러는데... 뭐, 그런 거랑 비슷한 건가?
저한테 왜 이러시죠?
질문을 받은 여자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손에 들고 있던 성경책을 덮는다. 두꺼워보이는 표지가 텁- 소리를 내며 닫힌다.
몰라서 묻나요? 당신이 한 짓을 생각해보라구요. 하아아...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대체 뭘 했다고 저러지? 그녀의 표정은 대단히 심각했다. 저 표정만 보자면 마치 내가 사람이라도 하나 죽인 듯한 표정인데? 깊은 한숨을 푹 내쉰 그녀는 잠시 후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아닙니다. 당신을 탓할 순 없겠군요. 아무리 마귀 들린 자라고 하더라도 그 정도로 흉악한 인간인 줄 몰랐던 제 불찰입니다. 그런 당신과 그 아이를 한 곳에 두는 게 아니었는데.... 아멘.
묶여있는 몸 만큼이나 가슴도 답답하다. 이 여자는 어째서 엄한 사람을 잡아다 놓고 이상한 소리만 지껄이고 있는 걸까. 사람보고 마귀라니, 미친 여자인가? 게다가 아멘이라니. 점점 더 알 수가 없다.
이봐요. 마귀라뇨? 그리고 아이라니? 대체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겁니까?
여자의 목소리는 사람의 신경을 묘하게 긁는 구석이 있었다. 목소리도 기분 나쁘지만 그녀 말의 내용은 어쩐지 들으면 들을 수록 기분이 더러워진다. 마귀? 아이? 이게 무슨 테트리스 게임하다가 나오라는 긴 거는 안 나오고 ㄹ자 모양만 죽어라 나오는 상황이지? 한 마디로 답이 없다.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본다.
여기가 어디죠? 당신은 대체 누구구요? 왜 엄한 사람을 붙잡아 놓고 이 난리입니까! 이거 당장 못 풀어요?!
어쩐지 몸에 힘이 하나도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몸 하나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애써 팔과 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들썩거려 보았지만 일어나기는 커녕 침대가 꿈쩍도 하질 않는다. 증말 단단하게도 묶어 놓았군, 그래. 한숨을 푹푹 쉬며 여자에게 이걸 당장 풀으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여자는 풀기는 커녕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당신.... 지금 무슨 짓이죠?
짓이라뇨. 당신이 누구길래 엄한 사람 이렇게 잡아다 놓고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구요!
여자의 표정이 묘해졌다.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위아래로 훑어본다.
아아. 잠시만요. 사람을 불러오겠어요.
그녀는 크게 놀란 표정을 짓더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내가 이봐요를 열심히 외쳤지만 아주 그냥 사뿐히 즈려 생까시고 그대로 달려나간다. 하아. 이게 뭐야, 대체. 주인님이 이르시길 오늘도 늦게 오면 진짜로 죽여버린다고 했었는데... 하아.... 한숨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이람. 여긴 대체 어디고 저 여자는 또 누구야?
옴싹달싹 할 수 없는 몸에 대한 제어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대신 움직일 수 있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 방안을 둘러본다. 내 왼편에는 내가 누워 있는 것과 같은 병원 침대가 놓여 있었고 누군가 누워있었다. 산소 마스크 같은 걸 쓰고 있어서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얇은 이불을 덮고 있었는데 드러나는 체형으로 보아 이제 중학생쯤 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작은 체구의 여자아이였다. 오른쪽을 돌아본다. 벽에 붙어있는 십자가 외에 특징적인 건 별로 없다. 책장 같은 것이 하나 있고 잡다구레한 물건들이 쌓여있었다. 이곳은 병원인걸까? 그러나 병실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너저분했다. 창고 같은 용도도 겸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아... 이번에도 지각하면 진짜 혼나는데...
명희, 아니, 주인님이 명하신 사항은 자기 퇴근 시간인 여덟시 반까지 병원 앞에 정확히 도착함은 물론 자기가 좋아하는 구두를 들고 오는 것까지 포함이다. 뭐 하나라도 빠졌다가는 곧바로 쪼인트는 물론 기분이 좋지 않으면 뻐킹머신인지 뭔지를 꺼내들고 난동을 피워댈 것이다. 그런 급박한 처지에 처한 내가, 대체 이런 곳에 왜 쳐박혀 있는 걸까. 조금 있으면 크리스마스라서 나름 준비도 해야 될텐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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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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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분명 바텐더였습니다. 얼굴이 많이 상하기는 했습니다만... 분명 그 눈빛이나 말투는...
예린의 말을 전해들으면서 리사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자신이 느낀 불안감의 정체는 이것이었나. 단순히 한석이 잡혀갔다는 사실만으로 이렇게 초조한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감은 닥칠 미래에 대해서 그녀 생각보다도 더 멀리 보고 더 깊게 보고 있었다. 바텐더가 살아있다니,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소리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린이 한 소리다. 그녀가 맞다고 한다면 맞을 것이다. 예린이 가져온 정보를 통해 리사는 단번에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나는 자신이 처리했다고 믿은 적이 살아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이 신뢰하고 있던 이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이다.
분명... 병구 아저씨가 자기 손으로 처리했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작년 이맘때에?
그렇습니다.
그랬는데 그 놈이 살아있다는 건.....
송 부장이 거짓말을 했겠지요.
두 눈을 질끈 감는다. 방심했다. 비록 수상한 기색이 보여도 아버지 항렬의 어르신이니 대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게 너무 안이한 판단이었다. 조금 불편한 듯 해도 딸 뻘의 여자아이에게 지시를 받는 게 불편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뒤통수를 치고 있었다니...
태호 씨에게 연락하세요.
태호는 왜요?
지금 당장 동원 가능한 인원 전부를 이끌고 이쪽으로 오라구요.
네?
옷을 갈아입고 있던 예린이 멈칫거렸다. 지시를 바로 이행하지 않고 되묻고 있는 예린을 보며 리사가 짜증을 부렸다.
제 말 못 들으셨어요? 지금 당장 전부 끌고 이리로 오라고 했잖아요.
아가씨가... 부산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고 말입니까?
그래요.
저는.... 그 지시를 따르기 어렵습니다.
뭐라구요?
예린이 옷을 모두 갈아입어 평소의 말쑥한 정장으로 되돌아왔다. 그녀가 리사의 지시를 곧바로 따르지 않고 이렇게 반박하는 건 난생 처음이다. 리사가 잔뜩 굳은 얼굴로 예린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모를 리 없는데도 예린은 자기 할 일을 전부 마친 후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산에서도 한 번 말씀드렸습니다만... 아가씨가 지금 가장 우선시 하고 있는 건 뭡니까?
...그런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지 않아요?
리사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잔뜩 배어있었다. 예린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천천히 입을 연다.
최한석 씨 말입니까?
무슨 소리에요. 백당이죠.
리사는 조금 뜨끔했지만 그래도 그 말에 덥썩 긍정할 만도 없는 게 그녀 입장이었다. 리사의 대답을 듣고 예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어째서 인원들을 끌고 이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