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25/65)

그 큰집에 녀석 혼자 두고 가는 게 내심 내키지 않기도 하고 이 늦은 시각에 여자랑 단둘이 있는게 설레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평야설넷면 선영의 호출이 오고도 남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없었다. 마지막 통화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아버지의 상태가 많이 안 좋다는 이야기만 반복할 따름이었다. 설마... 하는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하다.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워서도 계속 선영을 생각했다. 그녀가 곁에 없는 동안 다른 여자에게 휘말리고 다니는 주제에 이제서야 선영에 대해 생각하는 게 조금 찔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 머리 속에서는 늘 그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침대에 모로 누워 전화기를 바라본다. 어쩐지.... 어쩐지..... 저 전화가 울릴 것 같다.

까무룩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곳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전화벨 소리. 날 부르고 있다. 아직 받지도 않았지만 난 직감했다. 저건 선영의 전화였다. 그녀가 날 부르고 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구르듯 전화로 다가갔다. 받아들었지만 선영의 목소리를 들리지 않았다. 대신 울음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날 부르는 울음소리에 나는 주저없이 전화를 끊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차에 시동을 걸고 새벽의 도로를 달린다. 

서울에서 충남까지.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단숨에 달려간다. 새벽 어스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돌봄의 집에 도착했다. 수녀 한 분이 나오시더니 시내의 병원 한 곳의 이름을 이야기해 주었다. 다시 차를 돌려 시내로 들어선다.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해 한참을 헤매다가 결국 찾던 곳을 발견하여 들어간다. 차를 세워두고 장례식장의 장소를 물어 한달음에 달려갔다. 

자기야....

 선영아.

텅 빈 빈소에 혼자 앉아있던 선영이 나에게 안겨왔다. 울고 있지는 않았으나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를 안고 토닥여 준다. 그런 후에 향을 올리고 절을 드린다. 선영과 맞절을 마치고 그녀의 곁에 앉았다. 파르르 떨리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어떻게.... 

그냥 뭐. 항상 그렇듯이 골골하다가... 잠들었어.

 그러셨구나. 다시 한번 뵙고 싶었는데...

젊었을 적 찍은 사진임이 분명한 그 분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았다. 삼십대 정도에 찍은 사진이었는데 꽤나 미남이었다.

그러게. 그 사람도 자기 보고 싶다고 했었어.

 부르지 그랬어.

 주말이면 온다고 했는데 일하는 사람을 뭐 하러 따로 불러.

선영의 표정은 담담했다. 검은 상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그녀의 얼굴에서는 예전의 표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자기, 오늘 출근 해야 되는 거 아니었어?

 그렇긴 한데.... 연락만 하면 돼.

 얼른 연락해 봐. 정말 미안해.

 미안해 하지 마. 괜찮으니까.

선영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공중전화로 찾으러 나왔다. 우선 학교에 전화를 걸어 지애에게 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이야기하자 그녀는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며 알았노라고 대답했다. 전화를 끊고 다시 동전을 넣었다. 유진의 집 전화번호를 누른다. 예상대로 유미가 받았다. 

접니다, 한석.

 하암... 한석 씨. 이렇게 이른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다들 하루의 일과를 시작할 시각이지만 그녀에게는 이제 막 잠든 시각이겠지. 난 조심스럽게 서두를 꺼냈다.

저 사실은 선영이가....

어떻게 설명해야 되나 싶었는데 유미는 대번에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그녀가 묻는다.

그래서 지금 어디죠?

도시와 병원 이름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알았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빈소로 돌아갔다. 장례식장은 두어 개의 빈소가 더 있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그곳들을 보고 있노라니 선영의 빈소가 더욱더 초라해 보였다. 바닥에 앉아 한쪽 무릎을 세워 거기에 턱을 얹은 채 영정사진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선영의 곁에 앉았다.

수녀님들은... 안 오셔?

 맨 처음에 여기 올 때.... 그 때 다같이 오셔서 기도해주고 돌아가셨어. 돌봐야 할 분은 아직 산 위에 많이 계시니까.

 그런가.

유미에게 연락했다고 했더니 선영은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혹시 더 연락할 곳은 없어? 친척이라든가.....

 없어. 그런 건.

 그래...?

대화는 길어지지 않았다. 예전에 얼핏 듣기로 그녀의 부모님들도 천애고아였다고 했다. 원래 형제, 자매도 없는 선영도 이제 천애고아가 된 셈이다. 그녀는 다시 영정사진만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식장 직원이 와서 발인을 언제 할 거냐고 물었다. 토요일 새벽에 졸 하셨으니 삼일장이면 월요일 아침에 해야 되나 생각하고 있었다. 선영에게 묻자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답했다.

내일 아침에 할 거에요.

 내일? 삼일장도 안 치르고?

 본인이 그렇게 해달라고 했어. 세상에 민폐를 하도 많이 끼쳐서 오래 머무를 생각도 없다고.

세상에 민폐라....

선영아, 그래도....

 엄마 옆에 빨리 가고 싶데. 본인이 그러고 싶다는데 해줘야지.

2일장이라니. 장례를 많이 겪어 본 것은 아니지만 이런 건 처음 본다. 직원에게 가능하냐고 묻자 그런 경우도 아예 없는 건 아니란다. 절차 같은 것을 의논한 다음 선영에게 다시 돌아왔다. 아침 식사를 권했더니 생각이 없단다. 

자기라도 먹어. 여기 말하면 음식 가져다 줄거야.

 같이 먹자. 조금이라도 들어.

 몰라. 그냥 입맛이 없어.

 너 안 먹으면 나도 별로 생각 없어.

선영은 한숨을 내쉬더니 음식 하는 아줌마한테 국 두 그릇과 밥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일회용 접시에 담긴 반찬과 떡, 머릿고기 등의 상이 한 상 차려졌다. 선영은 국을 몇 숟갈 뜨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이내 내려놓는다. 그러면서 나보고는 꼭 다 먹으라고 권하면서 다시 영정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억지로 상을 물리고 그녀 곁에 가서 앉았다. 곡도 하는 사람도 없고 찾아오는 이도 없이 적막함 그 자체의 빈소에서 우리 둘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렇게 꼭 붙어 앉아있었다. 어느새 그녀가 손을 뻗어와 내 손을 쥔다. 나 역시 그 손을 놓지 않았다.

저녁이 다 되었을 무렵, 한 무리의 아가씨들이 우루루 나타났다. 다들 검은 옷을 입고 오긴 했지만 어쩐지 몸매가 너무 드러나는 차림새가 이 곳과는 살짝 안 어울리기도 했다. 그래도 와주었다는 사실 자체가 반가웠다. 요 근래 ROSE에 다니면서 눈에 익은 얼굴들이 많이 있었다. 그녀들은 선영을 위로하고 차례로 향을 올렸다. 

그 중에는 유미와 유진 모녀도 끼어있었다. 유미는 선영을 안아주었고 선영은 유진이를 안아주었다. 산 속 절간 분위기였던 빈소는 단숨에 시끌벅적하게 바뀌어 버렸다. 예전에는 장례식장에서 어른들이 왜 그렇게 떠들썩하게 있는지 이해를 못 했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직원을 불러 음식을 준비하고 화투짝을 가져오고 술을 추가하는 일들을 하다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슬픔에 젖을 시간이 없도록 만드는 것. 그게 문상객의 일인 듯 싶다.

밤이 늦어서 유미와 선영, 나 이렇게 셋이 한 상을 두고 둘러앉았다. 유진이는 안쪽에 있는 쪽방에 들어가 내가 덮어준 담요를 두른 채 자고 있었다. 대부분의 아가씨들은 자고 있었고 몇몇 아가씨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고 있거나 화투를 치고 있었다. 유미가 한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나! 너무 판돈 올려서 치지 마. 너 지난 번처럼 희지한테 또 월급 통째로 압류되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해!

 알았어요, 언니. 왕언니는 안 쳐요?

선영이 메마른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 앞에 놓인 잔을 유미가 채워주었다. 병을 내려놓은 유미가 묻는다.

내일 발인한다고?

 응. 이제 더 올 사람도 없어.

 그래도 삼일장은 하지 않아?

 뭐하러.

선영은 잔을 단숨에 비웠다. 유미가 계속 물었다.

장지는 어디야?

 엄마 있는 데. 가기 전에 그 사람이 그런 이야기는 다 해놓고 갔어. 삼일장 안하는 것도 그 때문이야.

 그럴 거면 빈소를 서울 쪽에 잡지 그랬어.

 경황이 없어서... 한석이한테도 연락 겨우 했어. 그것도 병원도 못 알려주고 그랬는 걸?

내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유미가 빙긋 웃는다. 

둘이 사이 좋네?

 왜, 좋으면 안 돼?

 아니, 부러워서.

기분 탓이려나. 선영과 유미 사이에 묘한 견제와 알력이 있는 것 같다. 내가 괜히 입을 열었다간 분란이 생길 것 같아 잔을 들어 입을 가렸다.

나 없는 동안 한석이가 가게 잘 봐줬다면서?

 응. 그래서 나도 한석 씨 좀 잘 보살펴 줬어. 그쵸, 한석 씨?

유미의 손이 내 허벅지 위에 얹힌 걸 본 선영이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난 유미의 손을 조심스럽게 밀어내고는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전 눈 좀... 붙이겠습니다.

두 여자는 서로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어서 내가 뭐라고 하든 신경을 쓰지 않았다. 쪽방으로 가니 남는 담요가 하나 있었다. 그걸 대충 두르고 유진이 옆에 앉았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새벽, 선영이 날 깨웠다. 내 어깨에 기대어 자고 있던 유진이도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장례식장 직원들이 와서 이미 발인준비를 대부분 끝내두었다. 자고 있는 사람들을 깨워 버스에 올라타게 한다. 장의차량에 실리는 관을 선영과 함께 지켜보았다. 선영의 눈은 피곤에 젖어 있었지만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나와 선영도 버스에 올라탔다. 장지까지의 거리는 제법 멀었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아침식사를 한 것을 제하고는 계속 달려서 벽제에 도착했다. 식당 하나를 정해 다 같이 식사를 했다. 다들 식당에 있는 동안 선영과 내가 관리사무소에 가서 절차를 밟았다. 등록이 모두 끝나고 인부들까지 준비되고 나서야 산에 올랐다. 

예전에 저녁에 온 적이 있었지만 이런 대낮에 오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인부들이 파놓은 구덩이에 관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 손을 잡고 서있던 선영이 순간 휘청한다. 깜짝 놀란 내가 그녀를 부축한다.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선영아....

멍한 표정의 그녀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내 손가락이 그녀의 눈가를 훔치자 그제서야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녀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입관이 끝나고 흙으로 채워지는 구덩이를 보면서 그녀는 흐느꼈다.

아빠.... 아빠.......

살아 있을 때는 부르지도 못했던 호칭이 그제서야 터져 나왔다. 슬픔은 전염된다. 나 역시 눈물이 흘렀다. 유진이도 울고 유미는 고개를 돌렸다. 여태 곡 소리 한번 없던 장례가 선영의 울음이 터져 나온 이후로 울음바다가 된다. 인부들은 묵묵히 흙을 덮고 봉분을 만들 뿐이었다.

모든 일을 마무리 짓고 시내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문 후였다. 중간에 운전기사와 인부들 수고비 정산하느라 실랑이가 한 차례 있기는 했지만 유미가 도와줘서 잘 해결되었다. 아가씨들을 데리고 돌아가려는 유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자 그녀는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어때요, 시간 나면 또 ROSE에 놀러오겠어요?

 아뇨. 유미 씨 전....

선영 쪽을 돌아보는 날 향해 유미는 웃음을 던졌다.

토요일 황금 영업일을 공친 건 별로 아깝지 않은데 한석 씨 뺏기는 건 좀 뼈아픈 걸?

 네? 아, 저는...

 됐어요. 선영이나 잘 부탁해요.

그러고는 내 볼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내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서자 그녀는 윙크를 날렸다. 누가 이 모습을 봤을까 싶어 주위를 돌아보다가 유진이와 눈을 딱 마주쳤다. 선영은 다른 이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이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유진은 굳은 표정으로 뚜벅뚜벅 걸어와 팔을 뻗어 내 옷깃을 잡아 당겼다. 

딱 한 대만 때릴테니 고개 좀 숙여봐요.

 거짓말. 한 대가 아니라 두 대....

 아, 진짜. 한 대만 때릴 거라니까요.

기왕 맞을 매라면 빨리 맞는 게 낫겠다 싶어 허리를 굽히자 내 뺨에 강렬한 입술이...... 어라? 

선영이 언니, 잘 해줘요.

한 쪽 볼을 감싸고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동안 유진은 몸을 돌려 제 어미에게 달려갔다. 나를 쫄게 해서 꼼짝도 못하게 하고는 그 사이에 입을 맞춘 유진은 이쪽을 돌아보고는 얼굴을 붉히면서 혀를 낼름 내밀었다. 허, 녀석, 참나.

그렇게 모두 돌아가고 나와 선영만 남았다. 우리는 그녀의 방으로 돌아갔다. 몇 주동안 주인없이 비어 있던 방은 싸늘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나를 찾았다. 정확히는 내 몸을 찾았다. 검은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살색 옷으로 갈아입은 우리 둘은 격렬하게 섹스를 나누었다.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고 산 사람을 맞이하는 의식을 우리는 그렇게 치렀다.

한바탕 정사가 끝난 후, 여전히 알몸인 채로 선영은 내 팔 하나를 베고 누워있었다. 그녀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제서야 실감이 들어.

 어떤 실감?

 이 세상에 오직 나뿐이라는 거 말야.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도 그런 느낌이 들긴 했지만... 내심 그런 꼴 뵈기 싫은 사람이라도 내 혈육 하나가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그런데 이제 그 사람... 아니, 아빠까지 그렇게 가고 나니까 이제 정말 이 세상에는 나 하나뿐이구나 하는 생각뿐이야.

 선영아...

팔에 힘을 주어 그녀를 꽉 끌어안는다.

그런 슬픈 말은 하지 마. 너한테는... 너한테는 내가 있잖아.

 자기가?

 그래. 내가 네 곁에 있어줄게. 언제까지나.

선영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나의 진심 어린 말에 감동한 것일까. 한참만에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녀가 꺼낸 말은 내 예상 밖이었다.

웃기는 소리 하지마.

내가 언제 웃겼다고. 난 나름대로 감동 어린 말이라고 생각하고 한 것인데...

웃기다니.

 자긴 지금 날 동정하는 거야. 부모 잃고 아무 것도 없는 여자 하나를 조롱하는 거라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렇잖아. 난 부모형제도 없고 집도 절도 없는 고작 흔한 술집 계집일 뿐이야. 그런데 자기는 아직 앞길이 창창한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이런 여자 옆에 있겠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가 믿을 것 같아?

여태 선영은 나한테 이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다. 굳이 비슷한 경우를 찾으라면 예전에 유진의 과외를 그만두라고 소리 쳤을 때와 비슷했다. 

날 못 믿어? 내가 여태껏 널 위해서 얼마나...

 알아. 내가 자기에게 얼마나 기대왔고 위로를 받았는지를. 그렇지만 남자들은... 자지 달린 것들은 다 똑같아. 결국은 떠나고 말거라고.

 왜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날 생각부터 하는 거야? 

난 이 일을 해오면서 그런 경우를 너무 많이 봤어. 다른 언니들이 몸도 주고 마음도 주고 어떻게 만신창이가 되는지 똑똑히 봤었다고.

 그건 다른 사람 경우지.

선영은 고개를 저었다.

자긴 얼마나 다를 것 같아?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언제까지 날 아끼고 사랑해줄 것 같아? 그럴 일은 아마 없을 테지만... 정말 만약에, 내가 어떤 남자에게 정착을 한다면 그건 내 과거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일거야. 자긴 결코 아니라고.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자긴.... 안 돼. 그럴 수 없어.

 선영아. 난 결코 네가 무슨 일을 하든...

그녀는 손을 뻗어 내 말을 가로 막았다..

그리고 우리 관계가.... 어떤 약속으로 시작했는지 알고는 있어?

알고 있다, 모를 리가 없다. 애정이라고는 끼어들 틈이 없는 몸 대 몸의 계약관계. 그게 그녀와 나의 시작이었다. 

난 두려워. 자기와 나 사이가 유진이에게 들키면... 그러면 어쩔까 늘 두렵다고. 그 아이가 날 어떤 눈으로 볼까 두려워....

그녀는 내 품에 안겨 울기 시작했다. 서럽게 우는 그녀를 달래는 방법을 난 잘 알지 못한다. 유진이가 이미 그녀와 내 사이를 눈치챈 것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하나? 아니면 유미에게도 인정 받았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나?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울고 있는 그녀를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도 전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남자의 몸이란, 그래, 자지 달린 것들이란 똑같다. 알몸의 여자가 몸에 안겨 있다면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 이어질 따름이다. 선영은 울면서 나를 거부했다. 나를 거부하면서 나를 찾았다.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을 찾아 헤매고 그녀의 다리가 내게 감겨진다. 내 몸에 올라타 날 내려다보는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전혀 추하지 않았다.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는 자지를 소중하게 어루만지더니 자신의 다리 사이로 가져갔다. 내 자지를 받아들이며 그녀는 울음 섞인 신음을 토해냈다.

난 단지 자기한테 이것만을 원했어. 정말이야. 자기가 날 소중하게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난 더 비참해진다고. 그거 알아?

 몰라. 하지만 네 생각은 틀렸어. 지금 니가 맘이 많이 괴롭고 어지러워서 그렇게 나쁘게만 생각하는 거야.

그녀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마치 내 몸만을 원한다는 그녀의 말이 진실인양 그녀는 전에 없이 나를 탐했다. 자지를 조이는 보지의 움직임이 처절한 정도였다. 그렇게 내 품에서 울고 웃고 하던 그녀였지만 아침이 되자 그녀는 나를 내보냈다.

난 더 이상 너에게 기대고 싶지 않아.

설득하려 했지만 그녀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내저었다. 침대에서 먼저 나와 옷장 속에 있는 검은 옷을 꺼내 입은 그녀는 내게 찾아오지 말라고 부탁했다. 내가 나서고 문이 닫히고 난 더 이상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울고 있을 것이 분명한 그녀의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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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J 내일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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