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65)

그거 알아요?

손목의 스냅을 십분 활용하여 위아래로 부드럽게 움직이면서 마찬가지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선영이 물어온다.

네? 뭘요?

 남자들 급소가 여기라는 거?

여전히 목소리는 나긋나긋했지만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부드러운 손놀림에 이끌려 바지를 까 내리고 물건을 꺼내놓기는 했지만 내 귓가에 와 닿는 이야기는 그렇게 행복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물론 자지 자체가 민감한 부위니까 충격에 약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바로 여기, 이거죠.

육봉을 쓰다듬던 손가락은 점점 아래로 내려가 바짝 쫄아 붙어 있는 고환을 쓰다듬기 시작한다. 음모의 까칠함을 헤집으며 고환의 주름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쓰다듬는다.

이걸 말이에요. 손 안에 쥐고 팍! 그렇게 하면 남자들이 기절을 하더라구요.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예에?

이오공감이 부릅니다.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제가 직접 한 건 아니지만 들어본 적이 있죠. 심하게 하면 아예 못쓰게 될 수도 있는 방법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이야기를 듣고 정말 그럴까 몹시 궁금하긴 했지만, 딱히 시험해볼 일도 없고 해서 그러고 있었는데......

나에게 바짝 안기다시피 하여 붙어 있던 선영은 잠시 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항상 무표정하거나 퉁명스러운 표정의 그녀가 모처럼 웃는다. 아아. 이게 말로만 듣던 살인미소구나. 그녀의 손안에서 내 자지와 불알은 열심히 주물러지고 있었고 그 손길은 부드럽고 나긋나긋하기가 마치 천국 같았다. 그러나 천국의 바로 아래에는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모르고 있다.

그냥 문득 지금 생각이 나네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후후.

 .....마....말씀드리겠습니다.

 어머, 뭘요?

 전부 다요.

 딱히 궁금하지도 않은데.... 지금은 다른 게 궁금한데 말이에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어요. 꼭 들어주세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뭐....

너무도 소중하고 연약한 인질(?)을 잡힌 채, 나는 명희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만나지도 못했던 그녀와의 첫 소개팅과 그녀의 노예가 되었던 일, 그리고 그 후에 있었던 일 들..... 아무래도 지혜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어서 함께 하게 되었다. 선영은 가만히 듣고 있으면서 중간 중간 보충질문을 한다. 지난 나의 행적들을 거의 모두 말하고 얼마 전에 있었던 모텔 이야기까지 털어놓았다. 

비록 협박에 못 이겨 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나니 의외로 나쁘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오히려 좋았다. 후련했다. 아까 선영이 말했던 독의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알겠다. 

그래서, 그 명희라는 분과는 여전히 연락이 안 되고?

 네.

 그 후에 직접 찾아간 적 있어요?

 아뇨... 아직 그렇게까지는.....

 그러니까 당신이 아직 그 숙제라는 걸 못 풀고 있는 거예요.

 예에?

그나저나 기분이 좀 묘했다. 처음에는 인질이 잡혀서 줄줄이 실토했다고는 하나 그녀의 손길은 여전히 부드럽게 육봉을 쓰다듬고 있었고 가끔 손가락으로 귀두 아래쪽을 훑어주고 있었다. 딱히 공격적이라든가 위협적이라거나 하지 않았다. 또 그렇다고 막 심하게 비비고 이런 것도 아니라서 자지의 상태는 한결같이 유지되었다.

명희라는 분이.... 원한 건 딱 하나였을 거예요.

 그게 뭔데요?

 당신의 말.

 네?

 확신을 주고 믿음을 주는 이야기 말입니다. 당신은 그런 말을 그녀에게 해준 적이 있나요?

 아.....

뭔가 알 것도 같다. 내가 명희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 건 내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마음속에 차올라서 한 말이긴 했지만 어쩌면 그녀가 받아들일 때는 자지 꽂아놓은 김에 엉겁결에 내뱉은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른 여자들을 만나지 않겠다는 이야기도 그녀가 물어보니 답했을 뿐이다. 

이제 알겠어요?

 알 것 같아요.

 훗. 그럼 뭐해요. 지금 이러고 있는데....

 에에.. 그건... 그러니까......

이야기도 다 했겠다, 이제 그만 인질을 놓아주셔도 될 것 같은데 어찌 된 일인지 선영은 아직도 붙들고 있다. 

이러니 자지 달린 놈들은 어쩔 수 없어요. 사랑한다는 여자가 있어도 지 자지 빨아주는 년이 또 따로 있다면 거기에 아랫도리를 내맡기죠. 사랑하지 않는 여자가 해주는 서비스라도 자지가 서다니... 이러니 믿을 수가 없는 놈들이에요.

 으음... 그건 어쩔 수 없는 생리현상 아닙니까.

기껏 변명을 해보지만,

남자도 생리해요? 여자만 하는 거 아닌가?

.....조크인가? 근데 조크치고는 말투가 진지한데?

아무튼 이러고 나가면 불편할 테니, 좀 도와드리죠.

 에?

미처 말릴 새도 없이 그녀는 내 앞에 쭈그리고 앉는다. 여태껏 손에서 주물럭거리던 것을 입에 넣는다. 세상에...

깨물지 않을 테니 괜히 쫄지 마요.

 예에....

지금 깨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아.... 흐으.... 아.....으아...... 으읍......

정말 프로의 테크닉은 다르구나 싶었다. 지난번에 지나 때도 느낀 거지만 단순히 입에 물고 빠는 게 아니라 뭐랄까. 그냥 빠는 게 아니라 살짝 물고 빠는 것도 아닌 묘한 울림이 입안에서 일어나 내 자지를 감싸고 돈다. 숫제 진동마사지기로 훑는 것 같다. 전체적으로 넣고 빠는 건 기본.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목 깊이까지도 들락날락하고 귀두 아래쪽의 파인 부분을 입술로 가볍게 물고 혀끝으로 오줌구멍을 살살살 문지른다. 손가락으로 육봉의 아랫부분에서 중간 부분까지 가볍게 쥐고는 잔뜩 발린 침을 윤활유 삼아 부드럽고도 힘차게 문지른다. 

감촉도 감촉이거니와 평상시에 나를 그렇게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던 그녀가 내 다리 사이에 그렇게 앉아 머리를 앞뒤로 흔들고 있는 광경은 그 자체로도 언빌리버블 꼴릿함 충만이다. 한데 틀어올렸던 머리는 군데군데 풀어져 내려 지금 앞뒤로 흔들리며 묘하게 섹시하다. 

서...선영 씨.... 지금은......

아래로부터 치밀어져 올라오는 사정감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선영에게 경고를 했지만 그녀는 입을 떼지 않았다. 귀두를 입술로 살짝 물고 엄지와 검지로 만든 링으로 내 자지를 더욱 빠르게 스트로크 한다.

서...선영 씨... 으음...

뿜어진다. 나아간다. 선영의 입안으로 사정하고 말았다. 꿀럭이며 제2파와 3파를 쏘아내는 동안에도 선영은 자지를 살짝 물고 있었다. 손으로 아래로부터 쭈욱 훑어 올리더니 마치 남은 치약 짜내듯이 중간부분을 힘주어 쥐고는 입으로 쪼옥 빨아낸다. 그제야 입을 뗀다. 내 자지의 끝 부분과 그녀의 입 사이에 여릿한 현수교가 생겨난다. 

하아...하아.....

티슈를 몇 장 뽑아내 물고 있던 것을 살짝 뱉어내는 선영을 보면서 나는 탈진 아닌 탈진을 느끼고 만다.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머리에 꽂았던 비녀를 뽑아 다시 틀어 올리고 있는 선영을 향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선영 씨는.... 절 싫어하던 거 아니었나요?

 맞아요.

 근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

그녀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내게 등을 보이고 있어서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 만에 머리 정돈을 마치고 옷매무시를 바로 한 그녀는 원래의 자리, 그러니까 나와 대각선 되는 자리에 앉는다.

변덕이라고 해두죠.

 변덕이요?

 흥미가 생기더군요. 언니가 말 한 당신 이야기를 들으니....

그러고 보니 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선영이 말하는 언니라는 사람은 아마도 유진의 엄마, 유미를 말하는 거겠지.

유미 씨가 저에 대해서 대체 뭐라고 하시기에.....

 궁금해요?

 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 것 같아서요.

 흐음....

그녀는 비어 있는 내 맥주잔을 채웠다. 설마 또 이거 원샷 하면 이야기해주겠다, 그런 거려나. 하고 걱정하는데 다행히도 그녀는 잔을 채우고 말을 이어나갔다.

언니는 자타가 공인하는 사람 볼 줄 아는 여자랍니다.. 이 바닥에선 유명하죠.

 사람을 볼 줄 안다니...?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그 사람의 기운이라고 해야 하나... 암튼 그런 걸 느낀 다나 봐요.

 아니, 무슨 길바닥에서 도를 아십니까 하는 분도 아니고....

 후후, 그러게요. 나도 처음에는 농담이거나 아니면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정말 언니가 말한 사람 중에 잘 된다고 하는 사람은 정말정말 잘 되었고, 언니가 안 된다고 말한 사람들이 안 되는 걸 보고 있으니 저절로 믿게 되더군요.

지난번에 한 번 봤던 유미의 분위기로 보면 전혀 안 그럴 것 같은데... 의외로 무속인 타입인가?

그럼 유미 씨가 저에 대해서도 무슨 말씀 하셨나요?

 ......그랬죠.

 뭐라 그러셨는데요? 잘 된다고 하던가요? 아니면?

평상시에 점이라든가 운명이라든가 그런 거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막상 나에 관한 일이라고 생각하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몹시도 궁금하여 바짝 그녀에게 다가가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막상 그녀 입에서 나온 소리는....

휘둘리는 타입이라고 하더군요.

란다. 나도 모르게 김새는 소리를 내지를 수밖에.

.......에엑?

좋은 거냐, 나쁜 거냐.. 그게.

정확히 말하면 휘두르고 싶은 타입. 당신이 곤란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걸 더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많을 타입이라고 하더군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슬프네요....

지혜, 명희, 효진... 그리고 유진이나 마리, 그리고 여기 지금 앞에 앉아 있는 선영까지도 그 사실을 충분히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고 만다. 정확하기는 더럽게 정확하네. 진짜 자리 까셔도 될 듯.

좋은 사람에게 휘둘리면 당신은 잘될 거예요. 나쁜 사람에게 휘둘리면 당신은 망할 거예요.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다른 사람들이라고 안 그러겠어요?

 당신은 그 정도가 좀 심한 거죠.

 끄응.....

 그리고 또....

 또 있어요?

또 얼마나 안 좋은 소리가 나오려고 그러나 싶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선영을 바라보니 나를 보고 있던 그녀와 눈이 딱 마주쳤다. 어쩌다 보니 눈싸움이 된다. 잠시 후 선영은 시선을 거두더니 맥주를 들이켠다. 빈 맥주잔을 내려놓고는 딱 잘라 말한다.

말하지 않겠어요.

 에엑?

 정 궁금하면 열심히 궁리해봐요. 숙제라고 해두죠.

 숙제인가요.....

하나의 숙제가 풀리더니 또 하나의 숙제가 생겨나 버렸다. 이런 젠장. 속으로 투덜거리며 다시 과일 안주를 집어먹기 시작했다. 선영은 다시 또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더니 이번에는 포크로 파인애플 조각을 집어 올려 내 입에 넣어주기 시작한다. 이제는 더 이상 당황하지도 않고 독을 발랐나 의심하지도 않고 주저 없이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맛있다.

따르르릉-

나름의 채비를 마치고 집에서 나가려는데 전화가 울린다. 원래는 아침에 학교에 갔다가 거기서 바로 출발 하려고 했는데 책이 좀 많아서 집에 한 번 들렸다가 나가는 길이었다. 전화기를 잽싸게 들어올리고 보고 싶은 이의 이름을 부른다.

여보세요? 혹시 명희야?

 에미다.

 아, 난 또.... 엄마였어?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마음이 풀어진다. 그러나 이미 내 입에서 흘러 나온 이름을 캣치한 어마마마께서는 추궁을 시작한다.

누구냐? 너 아가씨 있냐?

 아니, 뭐 딱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친구야.

과연 그냥 친구일까, 싶긴 하지만....

허이구. 공부하러 간 놈이 그러고 나자빠져 있어? 응?

 아, 진짜 아니라니깐.

나도 모르게 성질을 부린다. 엄마는 왜 설날에 안 내려왔냐부터 해서 밥은 먹고 다니냐, 옷은 제대로 입고 다니냐, 차 조심 해라, 너 아직도 자전거 타냐 등등의 잔소리 십계명을 줄줄이 이어가기 시작했다. 건성건성 대답하며 다음에 시간 내어 내려가겠노라 이야기했다.

차비 아깝게 괜히 왔다갔다 하지는 말고....

 아, 그러는 엄마는 왜 전화비 아깝게 전화해서 잔소리야. 잔소리는.

 그래, 알았다. 나는 걱정이 되서 말이지.....

나도 모르게 짜증을 버럭 내며 말하고 말았다. 내 말을 듣고 말꼬리를 흐리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아차 싶었다. 

아냐. 알았어. 내가 나중에 또 전화할게.

 그래라.

 봄 되었다고 너무 밭일 많이 나가지 말고, 나 과외 하니까 용돈 조금만 보내도 돼.

 하이고, 알았다, 알았어. 내 끊으마.

 응.

통화가 끊겼다. 명희 이름을 괜히 말했다. 걱정하는 게 소일거리인 우리 엄마는 이제 내 걱정에다가 한 가지 항목을 더하겠지. 지 아버지처럼 여자 문제로 인생 꼬이는 거 아닌가 하고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걱정말아요, 엄마. 절대 아버지처럼은 안 그럴테니까.... 수화기를 내려놓고도 한참이나 전화를 바라보고 있다가 집을 나선다. 괜히 엄마 전화 받고 머리 속에 상념이 복잡하게 차오른다. 그래도 지금은 꼭 가야할 때다. 발걸음을 서두른다. 

여기였던가?

예전에 노예생활 중에 주인님 모셔다 드린다고 종종 오던 동네였다. 그런데 하도 동네가 요상하게 생겨셔 길을 잃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으으... 저쪽에 삼화슈퍼인가 있었는데.... 이 길이 아닌가?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아까 내린 버스정류장을 기준으로 해서 다시 출발한다. 내가 길치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 아무래도 이 동네는 미로가 틀림없다. 그나마 드문드문 기억에 남아있는 쪽을 짚어가며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데 저쪽 앞에 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어딘가 낯이 익다. 

명희 씨? 아니, 명희야!

내가 부르는 외침을 듣고 앞서 가던 사람이 고개를 돌린다. 반가운 얼굴이다. 기쁜 마음에 손을 흔들고 있는데 그쪽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나를 보자마자 몸을 돌려 맹렬히 달려나가기 시작한다.

어? 어라?

나를 보고 도망가다니... 내가 무슨 빚쟁이도 아니고. 나 역시 달리기 시작한다. 시장쪽으로 접어들어가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해서 빠르게 달리기는 어려웠지만 그건 도망가는 쪽도 마찬가지였다. 간격이 점점 좁아진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손에 닿을 듯 말 듯 한데......

꺄아! 살려주세요!

 에에에엑?

달려가고 있던 명희가 냅다 지른 소리에 사람들의 이목이 우리쪽을 향한다. 

변태가 쫓아와요! 살려주세요!

 에엑? 며..명희야!!! 왜 그래, 나야, 나!!!

해가 막 저물 무렵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잘못 볼 정도의 어둠은 아니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명희에게 필사적으로 나를 어필해보지만 그런 나의 외침은 그녀의 비명 앞에 무의미해진다. 비명 지르며 도망가는 아가씨와 무어라 외치며 뒤를 쫓는 사내의 모습을 보다 못한 정의로운 시민들이 등장하여 나를 막는다.

이봐, 이봐, 멀쩡한 사람이 왜 그래?

 그러게, 말쑥하게 생겨가지고 쯧쯧쯧....

시장통에 있던 아저씨 몇 분이 길을 막고 선다. 아주머니들도 나를 힐끔거리며 수근거린다. 나는 필사적으로 변명을 한다. 사람들 너머로 명희가 사라지고 있다. 

그런게 아니라요. 저 아가씨랑 저는 아는 사이에요. 지금 뭔가 오해가 있어서...

 아는 사람인데 저렇게 도망을 가?

 스토커인가, 뭔가 하는 그런 거아냐? 이거?

 그런가 보네.

내 변명 한 마디는 수 많은 사람들의 의심 한 마디씩을 낳았다.

하이고, 미치겠네. 진짜 아는 사이라니깐요! 정말이에요.

그러나 이미 의심의 벽을 단단히 쌓아올린 이들은 방어벽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여기서 더 어물쩡거리다가는 멍석말이도 당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발걸음을 돌려 시장을 빠져나왔다. 한참 뛰고 보니 여기는 또 어딘가 싶다. 눈에 익은 길이 나올 때까지 다시 되돌아 간다. 으아... 미치겠다.

저, 죄송한데 길 좀 물어볼게요.

 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지나가는 사람 중에서 가장 친절하게 생겨 보이는 아가씨 한 명을 붙잡고 삼화슈퍼 위치를 묻는다. 선하게 생긴 아가씨는 생긴대로 친절하게 위치를 알려주었다. 자기도 그쪽으로 가는 중이라나. 그래서 쭐래쭐래 아가씨의 뒤를 따라간다. 한참 따라가다보니 이제서야 내가 어딘지 그리고 목표한 지점이 어디인지 정확히 기억이 난다. 삼화슈퍼에 도달했다. 방금 길을 알려준 아가씨와는 눈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참 선한 인상이다. 

그래, 삼화슈퍼를 지나서 저 쪽 골목에서 두 번째로 빠지면.... 어라?

내 기억대로 길을 쭈욱 걸어가고 있는데 아까 길을 알려준 아가씨가 명희네 집 앞에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살짝 불만이 있는 표정이다.

저기요.

 예?

 왜 자꾸 따라오죠? 삼화슈퍼는 저쪽이잖아요.

 아, 그게요... 제가 이쪽 집에 볼일이 있는데 가는 길이 잘 기억이 안 나서 생각이 난 곳이 삼화슈퍼였던 거 거든요.

 이쪽 집?

 예. 정확히는 그 쪽이 서 있는 바로 그 집이요.

그러자 아가씨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되묻는다.

우리 집에 무슨 일로요?

 우리 집....?

그제서야 뭔가 알 거 같다. 그러고 보니 얼핏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이 사람이 혹시....

혹시 명희 언니 분...?

짐작대로다. 그녀는 자신에게 익숙한 이름이 나오자 의심하던 표정을 풀었다.

어머나. 명희 친구분이구나.

간략하게 인사를 나눈다. 명희 언니는 호호 웃으며 문을 열어주고는 나를 들인다.

명희한테 남자친구 있다는 소리를 못 들었는데 이렇게 키크고 잘 생긴 분으로 숨겨놨을 줄이야.

 아하하... 남자친구까지는....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까지 도달한다. 그러고보니 집안까지 들어가는 건 처음이다. 항상 집 앞까지만 바래다 주었는데...

들어오세요.

 예. 실례 좀 하겠습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려는데 집 안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언니! 대체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거야! 오늘 식사 당번은 언니가.....

부엌에서 나오던 명희가 나와 딱 마주친다. 앞치마를 두르고 손에는 국자까지 들고 있는 모습이 몹시도 인상적이다. 그대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있던 명희는 이내 국자를 가지고 나를 가리키며 외친다.

니가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잘 어울리네. 명희.

 딴 소리할래?

날카로운 눈매가 되어 발을 탕탕 굴리는 게,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운 모습이다. 그래, 이래야 내 명희지. 암, 그렇고 말고.

명희, 너 친구 아냐? 요 앞에서 만나서 같이 들어온건데?

뒤늦게 거실로 들어선 명희 언니가 방방 뛰고 있는 명희의 태도에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여상스럽게 묻는다. 

친구 아냐! 이 딴 녀석이랑은! 야이, 변태새끼야! 너 얼른 안 꺼져?

명희가 꽤나 격한 반응을 보이는데도 명희 언니는 상당히 느긋하다. 나를 올려다보며 묻는다.

명희가 이런 반응 보이는 걸 봐서 둘이 꽤 친한 모양이네?

 예?

 명희, 쟤는 밖에 나가면 완전 내숭에다가 가식으로만 다니잖아. 저렇게 자기 본모습 보여주는 건 가족이나 정말 친한 친구 아니면 안 보여주거든요.

왠지 모르게 납득이 된다. 몹시도 분한 표정을 마구마구 방출하고 있는 명희를 두고 언니는 손을 흔들며 방쪽으로 사라진다.

나 씻고 옷 좀 갈아입을 테니 마저 준비 좀 해줘. 부탁해~

 몰라! 언니가 알아서 해 먹든가 말든가!

 땡큐~

 이익!!!

언니가 사라지자 그 분노의 화살은 다시 나로 향한다.

너어! 너 말야, 너! 당장 안 나가면 경찰 부를 줄 알아!

 무슨 이유로?

 뭐긴! 무단침입에, 어, 그래! 여자들 밖에 안 사는 집에 쳐들어온 강간범으로 신고할꺼야!

 언니랑 둘이서만 사는 거야?

 그거야 부모님이 외국에..... 으아! 정말 안 나가? 당장?!

그러나 나는 오히려 한 발 더 다가선다. 이런 모습인데도 나는 왜 이리도 반갑고 좋은 걸까.

아까도 변태 스토커로 몰더니 정말 날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그래!

 정말?

 .........

한 발 더 다가선다. 이제 손만 뻗으면 그녀를 품 안에 안을 수 있는 거리다. 몹시 망설이고 있는 저 표정을 쓰다듬고 안아주고 싶다. 말에 힘을 주어 묻는다.

정말이야?

진심을 담아 묻는다.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우물쭈물해하는 그녀를 관찰한다. 집에서는 밖에서처럼 뽕을 넣은 브라를 하지 않는 셈인지 가슴 부분이 평소와 다르다. 어쩐지 귀엽다. 이런 모습이.

.........몰라.

 응? 뭘 몰라?

 ........모르겠다구! 진짜!

고개를 떨구고 내뱉듯이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도 애처롭다. 이런 그녀를 혼자서 너무 오래 두었다. 가슴이 아팠다. 손을 뻗어 그녀를 안으려고 드는데 등 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난다. 명희는 황급히 몸을 ?壺?부엌으로 돌아간다. 뒤를 돌아보니 몸에 붙는 티셔츠로 갈아입은 명희 언니가 나오고 있었다.

기왕 이런게 온 거 같이 밥 먹을래요?

 예? 그래도 될까요?

 뭐, 차린 건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먹으면 즐겁지 않겠어요?

몹시 설득력 있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언니를 따라들어간다. 부엌에서는 명희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차린게 없기는! 그 소리를 듣고 언니와 내가 마주 보고 웃었다. 부엌 테이블에 세 사람이 앉는다. 나와 명희가 마주 앉고 내 왼편에 명희 언니가 앉았다.

맨날 둘이만 먹다가 한 사람 더 있으니까 북적거리고 좋네. 남자라서 든든하기도 하고 말야. 응?

 퍽이나....

 기집애. 좀만 덜 까칠해라. 내가 항상 이야기하잖아.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 되는거야.

 아, 몰라! 밥이나 먹어!

명희가 쏟아내는 따가운 말에도 언니는 전혀 질리는 기색이 없다. 그러고보니 두 사람은 참 안 닮았다. 귀여우면서도 요염한 눈매를 가진 명희와는 달리 언니는 정말 수더분하게 생겼다. 약간 고양이 같은 눈매를 가지고 가냘픈 느낌의 명희와는 달리 언니는 선한 인상에..... 뭐랄까. 정말 평범한 얼굴? 다만 그저 한 부위가....

아얏!

테이블 아래에서 내 발에 어떤 공격이 가해진다. 맞은 편에 계신 어느 분이 발로 냅다 후려 찬 거다. 고개를 들어 맞은 편을 보니 명희가 입모양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언.니.가.슴.그.만.봐.이.변.태.새.끼.야.'

억울하다. 나는 정말 억울하다. 남자는 말이다, 남자의 시선 내에서 출렁이는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면 머나먼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사냥본능에 따라 자기도 모르게 쳐다보게끔 되어있다. 지금 거의 테이블에 얹어놓다시피한 저걸 그냥 보고도 못 본 척 하다니! 그건 불가능에 가까워! 

아까는 풍성한 핏의 점퍼를 입고 계셔서 미처 못 알아봤습니다만 지금의 옷차림에서는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저걸 외면하는 건 가슴의 신에 대한 모독이야!

..........라고 주장하고 싶었지만 조용히 고개만 쳐박고 밥을 먹는다. 반찬은 정갈했고, 밥도 맛이 있었다. 그렇게 조용한 식사시간이 끝나고 언니가 먼저 일어난다. 일어날 때도 다시 한 번 출렁.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나를 향해 명희의 언더테이블킥이 다시 한번 작렬! 아프다는 표시도 못 하고 나지막한 신음만 흘린다.

으윽.....

 왜요? 어디 안 좋아요?

 아뇨.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애써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고는 정자세로 앉는다. 그릇을 치우던 명희가 나를 한 번 흘겨보고는 이내 커피를 끓일 채비를 갖춘다. 그 사이에 큰 가슴께서는, 아니, 명희 언니는 내게 몇 가지 묻는다.

명희랑 알고 지낸지는 좀 되었나 봐요?

 예, 몇 달전부터요.

 어떻게 만났는데요?

 아, 진호 선배 소개로요.

 진호?

진호라는 이름을 입에 되뇌이며 고개를 갸웃하는 명희 언니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아차 싶었다. 명희 쪽을 보니 그녀도 입 모양으로 죽을래?라고 말하며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명희 언니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지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럼 둘이서 이야기라도 하고 있어. 난 잠깐 밖에 좀 다녀올게.

 어디 가! 설겆이 안 해?

 기왕 니가 밥 했으면 설겆이 까지도 해 줘. 나중에 니 차례 한 번 빼줄게.

 아, 진짜! 쫌!

명희는 언니에게 투정을 부려보지만 언니는 막무가내로 밖으로 나간다.

나, 간다~

언니는 그렇게 상큼하게 웃고는 가슴을 흔들며.... 아니, 손을 흔들며 집을 나섰다. 명희는 언니가 나가는 걸 확인하고는 이내 내게 고개를 돌려 나무란다.

넌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거기서 진호 오빠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해?

 그....그게....그러니까.

그러고보니 명희 언니랑 진호 선배랑 사귀다가 깨진 사이라고 했었지? 그게 별로 좋게 끝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름만 나와도 대번에 표정이 급변하는 걸 보니 말이다.

에휴.... 내가 못 살아. 또 이제 며칠간은 저 인간 우울한 꼴 보게 생겼네.

 이름만 들었다고 그 정도까지야....

 아, 몰라! 다 너 때문이야. 니가 알아서 해!

 내가 뭘 어떻게.....

뒤통수를 긁적여 보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다. 그러고보니 명희가 가슴에 뽕을 넣어 다니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진호 선배와 사귀었던 언니에게 밀린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러고 보니 과순이, 아니, 혜진이는 저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기도 한데...

머리 속에서 엉키는 복잡한 생각을 떨쳐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명희에게 다가간다. 투덜거리며 빈 그릇을 챙기는 명희를 돕는다. 싱크대에서 물을 틀고 그릇을 집어드려는데 뒤에서 명희가 만류한다.

됐어. 손님한테까지 이런 거 안 시켜.

 아까는 무단침입이라더니 이제는 손님이라고 해주는 거야?

 웃기지 좀 마. 넉살좋게 밥까지 잘 쳐먹어 놓고는.

 맛있었어. 명희 음식 잘 하네?

 아, 쫌...

나를 밀치고 싱크대에 서려는 그녀를 붙잡는다. 눈을 마주치자 살짝 고개를 돌리는 그녀의 얼굴을 붙잡고 입술을 맞댄다. 턱을 당기며 피하려고 하지만 그 방어가 너무도 소극적이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그대로 얼굴 마주하며 입을 겹친다.

하아.....

살짝 엇갈려 겹친 입술의 틈새로 부드럽고 달콤한 혀가 흘러나와 서로에게 달려간다. 뜨겁게 달구어진 입술의 온도만큼이나 몸 전체가 달아오른다. 

명희야.... 보고 싶었어.... 이젠 도망가지 마.

 아아....

키스를 마치고 그녀를 품에 안으며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명희는 대답을 채 하지 못하고 그저 뜻모를 탄성만 흘린다. 이렇게 그녀를 끌어다 내 안에 안고 나니 새삼 한 마리 작은 새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그녀를 끌어안은 채 아까부터 준비했던 말, 그녀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말을 천천히 꺼내놓는다.

네가 여태껏 누구를 좋아했고.... 여태껏 누구와 잤고.....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냥 지금 이 순간부터는 나만 바라보고 나만 좋아해줬으면 좋겠어. 나도 그럴테니까.....

이게 내 진심이다. 사실 여태껏 그녀가 어떻게 하고 살아왔는지 뭐 그리 대단한가. 나라고 뭐 깨끗한가. 그러나 지금부터는, 적어도 사랑을 고백한 이후부터는 그녀에게만 충실한 내가 되고 싶다. 나에게만 충실한 그녀를 믿고 싶다.

흑......

한참동안 아무 말도 없던 갑자기 명희가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린다. 내가 울린 건가? 아니, 그렇게 심한 소리 까지는 안 했는데? 당황한 내가 그녀의 얼굴을 보고 눈물을 닦아주려고 하자 그녀는 목이 메어 잘 들리지도 않을 소리로 드문드문 말한다.

미....미안해... 나도 그 순간에는 정말 정신이 없어서.... 그대로 뛰쳐나왔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너한테 너무 미안했어..... 너를 볼 자신이 없었어....너한테.... 미안하고.....미안해서......

아아... 마음이 아팠다. 항상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타인의 기준을 우선시하며 살아온 그녀인데도 자신의 마음을 속이는 짓을 하고 나니 견딜 수 없던 모양이다. 왜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나 후회된다. 나는 다시 한번 그녀를 끌어안고 속삭인다.

괜찮아... 이제는 다 괜찮아.... 괜찮아.....

내 가슴팍을 눈물로 적시는 그녀를 느끼며 계속 속삭인다. 전에 없이 목놓아 우는 그녀를 꼭 끌어 안고 달래며 끊임없이 속삭인다.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아무런 문제 없다고. 이제부터 우리 서로 사랑하자고 계속 속삭여주었다. 

사랑을 속삭이며 다시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고 입을 맞추자, 이번에는 능동적이고도 적극적인 혀의 움직임이 나를 반긴다. 예전의 뜨거움, 즐거움, 욕망 등이 마구 뒤섞여 내 안에서 휘오리 친다.

그렇게 그 날부터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이명희]의 [노말 엔딩]을 달성하였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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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Route A 트루 엔딩을 향해 갑니다. 

이 경우, Route A 트루 엔딩을 볼 수 있으며 이후 Route B 이후의 스토리에서 이명희가 빠집니다. 호감도 수치는 16화 때로 리셋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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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Route A의 이전으로 돌아갑니다.

 현재의 호감도 수치를 계승한 채로 Route B를 수행합니다. 이명희는 계속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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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선택지입니다. 내용은 별로 있지도 않으면서 늘 독자에게 선택을 미루는 불량 작가 카라차 이올시다. 지금 던지려도 들어올린 짱돌은 부디 내려놓아주세요. 살려주세요.

참고로 Route B는 지금도 조금씩 적어놓고는 있습니다만 Route A 트루 엔딩은 생각만 해놓고 적지는 않았습니다. 이번의 선택지는 선택한 대로만 가고 반대편 길은 아예 가지 도 않습니다.

고냐, 스톱이냐. 현명한 한표 부탁드립니다.

 앞서 말한 편을 아직 읽지 않은 분은 집필실에 있는 내용을 먼저 읽고 와주셔야 전개가 이해됩니다. 그럼, 이제 더블 데이트 Route B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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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나 가봐야겠다. 명희보고 기다리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녀 성격상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까의 상황과 그녀의 성격을 종합해 볼 때, 괜히 그녀의 눈에 걸려 한 대 더 맞으면 맞았지 좋을 일은 없을 것 같다. 과사로 돌아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올 때는 그 시끄러운 마리랑 같이 걸어오느라 귀는 좀 괴로웠지만 그래도 심심하지는 않았는데 혼자 돌아가려니 조금 쓸쓸하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지혜네 집에 먼저 들렸다. 마리가 가버렸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지혜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그나저나 걔 옷이랑 자전거같은 건 어쩌지?

 뭐... 좀 있다가 개강하면 볼 테니까 그때 전해주지 뭐.

 그래, 그럼.

지혜는 마리 옷을 찾아다 종이가방에 담아주었다. 그걸 받아들면서 별 생각없이 물어보았다.

근데 효진이는? 어디 갔어?

그러자 가방을 건내던 동작이 딱 멈춘다. 지혜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건 왜에?

 아니, 왜냐니... 맨날 이 집에 붙어살다시피 하는데 오늘따라 안 보여서.

 흐음.... 글쎄. 아마 선보러 가거나 면접보러 갔거나 둘 중 하나겠지.

 아, 그래?

효진이가 선보러 갔다라... 으음.... 그 괄괄한 녀석이 선자리에서 어떤 모양새를 하고 앉아있을런지 상상이 안 간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노라니 지혜가 내게 바짝 다가와 묻는다.

그게 왜. 궁. 금. 해?

 어? 어.... 그게....

지혜의 말투가 묘했다. 나도 말을 꺼내놓고... 지금 상황을 둘러보고 나니 내가 꺼낸 말이 더할나위 없이 묘한 말이 되어버렸음을 깨달았다. 그건 마치 며칠전부터 속궁합을 맞춰보려고 하는 부부가 애들 때문에 그러질 못 하고 있다가 어느 날 조용한 집 안에서 애들은 재웠어?라고 묻는 것과 진배 없는 뉘앙스였다. 들고 있던 종이가방이 바닥에 떨어졌다. 둘 중 아무도 그걸 잡고 있지 않았기에. 두 사람의 손이 상대의 몸을 향해 갔기에 그러하다.

입술을 겹친다. 혀를 섞는다. 문득 아까 낮에 맛보았던 명희와의 키스가 떠오른다. 명희는 잘 돌아갔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내 허리띠를 풀고 있는 지혜의 손길을 느끼곤 대번에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아니, 지워져버렸다. 키스를 유지한 채로 지혜의 안경을 벗기고 서로의 옷을 거칠게 벗긴 후 이내 두 사람은 하나로 부둥켜 안은 채 침대 위로 몸을 내던졌다.

하...한석아.... 하아....

 지혜야.....

언제 봐도 지혜의 가슴은 예술적이었다. 정말이지 예술적으로 컸다. 가끔 보았던 빨간 비디오... 그 중에서 거유물이라고 이름 붙은 것들 치고 뚱녀 아닌 여자가 없고 괴물 모양의 젖이 안 나오는 경우가 드물었는데 지혜의 가슴은 뭐랄까. 크기도 크지만 모양이 단정하고 무엇보다 윤기가 있었다. 물론 아무래도 크다보니 탄력은 조금 떨어질지 언정 손으로 움켜 쥐었을 때 그 일그러지는 모양새는 정말 꼴릿하기 이를데 없다. 

한 손에 한 젖을 쥐고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온 유두를 핥는다. 말랑말랑한 마쉬멜로우 같던 유두의 감촉이 점차 젤리같은 탄력을 더해간다. 적당한 탄력을 가지기 시작한 유두를 손가락으로 비비자 지혜가 나지막한 신음을 낸다. 혀와 손가락의 하모니를 통해 유두를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나의 손놀이에 의해 나지막한 한숨을 토해내던 지혜는 손을 뻗어 나를 끌어안고 다른 한 손은 나의 엉덩이를 어루만지다가 앞쪽으로 이동한다.

이쪽으로....

그녀가 이끄는대로 움직이다보니 내가 그녀의 상체에 올라탄 자세가 되었다. 무릎으로 몸을 버티고 서서 그녀를 압박하지 않게 조심하자 그녀는 배게를 끌어다가 세로로 괴어 목을 앞으로 쭉 뺀 자세가 되었다.

앞으로 조금만 와봐. 그래. 그렇게....

거의 그녀의 가슴에 걸터앉은 꼴이 되자 자연스럽게 내 자지가 그녀의 입가로 뻗어간다. 입을 벌려 그것을 한껏 베어물은 그녀는 고개를 앞뒤로 서서히 움직이면서 밑둥부터 훑어내었다. 

하으... 지....지혜야....

 이웅 오아?

아마도 기분 좋냐고 묻는거겠지. 그렇게 자지를 입에 물고 말하다니. 그건 정말 반칙이라 할만큼 꼴릿한 시츄에이션이었다. 나도 모르게 허리를 움직이며 자지를 안으로 들이 말자 지혜가 얼굴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불편한 모양이다. 몸을 빼어 자지를 빼내자 살짝 눈을 흘긴다.

왜 갑자기 움직이고 그래.

 아, 미안. 나도 모르게... 흔들고 싶어져서...

 에휴. 증말.... 그럼 이쪽으로....응, 그렇게.....

뒤로 조금 이동하자 이번에는 그녀의 가슴 골안에 자지가 놓이게 되었다. 그녀는 양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모아올리더니 내게 협력을 구한다. 내가 손을 뻗어 그녀의 가슴을 대신 모아주자 자유로워진 손으로 내 자지를 가슴계곡 깊숙히 안으로 밀어넣는다.

여기서는 움직여도 돼.

 어? 어.....

자세는 꽤나 불편했다. 그러나 침을 잔뜩 바른 자지가 가슴계곡 사이에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흐아....이 감촉은 정말이지 어디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자지가 들락거리며 가슴살에 부벼지는 느낌은 마치 또 다른 보지 속에 담가놓은 것 마냥 황홀했다.

그래도 너무 세게 움직이면 아파.

 아...알았어...하악....

나도 모르게 또 열중해버렸더니 지혜의 가슴팍이 다소 벌개졌다. 피스톤질의 스피드를 낮추어 슬적슬적 움직인다. 또 하나의 보짓살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쫄깃한 감촉이 자지를 감싼다. 뭉글뭉글한 젖의 감촉을 자지의 몸뚱이로 뚫어내고 나아가면 그 끝에선 길게 혀를 내민 지혜의 입이 자지를 핥아준다. 자세가 다소 불편하여 오래 하진 못 했지만 좀 더 빡세게만 한다면 이대로도 싸버릴만큼 죽여주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쑤시다가 물러나자 그녀는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어땠어?

 좋았어....

 자주 해줄까?

 정말?!!!

내가 너무 대놓고 좋아라 하자 그녀는 고개를 젓는다.

싫어. 너 같은 바람둥이는....

 엥? 그럼 뭐하러 이야기를 꺼낸거야....

그녀는 몸을 굽혀 내 자지에 살짝 키스했다.

그래도, 얘는 좋아. 얘는 죄가 없잖아?

 뭐야, 그게.

 이제 들어와도 돼.

콘돔을 찾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은 날이야. 그냥 해.

 그래?

마다할리가 없었다. 생자지의 진입은 처음이었으니까.

몸을 겹치고 허리를 드밀자 이미 준비라면 만땅으로 되어있던 지혜의 동굴이 내 자지를 스무스하게 받아들인다. 미끄러져 들어가는 자지의 느낌이 마치 잃었던 제자리를 찾아들어가는 것 같다. 안쪽까지 들어가자 지혜가 나지막한 숨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자꾸 안아주게 된다. 

입술을 찾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끝없이 달콤하고 끝없이 나를 갈구하는 붉은 입술을 찾아내어 함께 호흡을 섞고 타액을 교환한다. 그녀의 혀가 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내 입 안 구석구석을 탐한다. 내 자지가 그녀의 안에서 마음껏 휘젓고 있듯이, 우리의 몸 일부는 상대의 몸 안으로 들어가 서로가 서로에게 쾌감을 안겨준다. 한참동안이나 엉켜 있던 입이 떨어져나가자 그녀의 입에서는 거친 숨소리와 교성이 흘러나온다.

하앙- 하응....하아....하아....하아....

 헉헉....

푸잡푸잡거리는 살마찰음. 삐걱거리는 침대의 스프링. 죽을 듯이 내뱉는 숨소리. 팔로 상체를 버티고 서서 허리를 죽어라 들이민다. 보지를 쑤셔넣을 때마다 아찔한 감촉이 자지를 마비시킨다. 고개를 숙여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춘다. 목을 빤다. 가슴을 깨문다. M자로 들어올려진 지혜의 다리는 내 허리를 감싸고 죽을 듯이 조여온다. 

헉헉....

지혜의 몸을 옆으로 돌려 나도 같이 옆으로 눕는다. 한 쪽 다리를 들어올리게 하고 가윗날처럼 벌어진 그녀의 다리 사이로 내 허리를 들이민다. 내 방망이가 그녀를 때릴 때마다 넘쳐나는 물이 이상한 소리를 낸다. 이 모든 것을 종결시킨 것은 내 안에서 터져나오는 뜨거운 한 줄기의 사정이었다. 

지혜야...나....지금......

 응! 응!! 하악... 하아....하아....하아....

그녀의 이름을 몇 번이고 불렀는지 모른다. 그녀가 몇 번이나 대답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의미없이 이름을 부르고 그저 의미없이 부름에 답한다.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은 입이 아니라 이미 아래쪽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입으로 하는 대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순간적으로 한결 더 빳빳해진 부위를 들이밀고 그녀 안으로 내 분신을 쏟아냈다. 움찔거리며 조여대는 그녀의 비부가 한층 더 꿈틀거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악.....

그녀의 몸 위로 내 몸을 드리운다. 두 팔로 지탱하며 버티고 있기에 내 몸이 너무도 무겁게 느껴진다. 결합부위를 풀지 않은 채 그대로 그녀의 몸 위로 엎드리려 하니 무거울까 싶어서 조심스럽게 몸을 옆으로 돌려 나란히 누웠다. 

자...잠깐만....

지혜는 손을 뻗어 침대맡에 있는 티슈를 꺼내어 아래쪽에 대었다. 내 물건이 빠져나가고 나니 그쪽에서 뭔가 흘러내리는 모양이다. 손을 뻗어 아래에 대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팔을 둘러 그녀의 머리를 받쳐준다. 귓가에 입을 대고,

사랑해.

라고 속삭였다. 처음이다. 여자에게 이런 소리를 하는 건. 

나도 모르게 말하고 만다. 처음엔 그저 여자랑 잤다는 사실이 흥분될 따름이었는데, 그리고 다른 여자랑도 그렇고 그런 짓을 해왔는데, 신기하게도 지혜가 내 마음속에서 점점 커져만 간다. 차분하면서도 마치 어머니처럼 나를 품어주는 그녀의 모든 것이 너무도 신비롭게 나를 사로잡는다. 항상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말은, 언제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모양이다. 방금 전의 뜨거운 행위는 마음을 더욱 들뜨게 하는 묘약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미안.....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 돌아온다. 적어도 같은 대답이 돌아오던가 나도 라던가 고마워 따위의 말이 들려올 줄 알았는데 미안이라고?.... 나도 모르게 몸이 굳는다. 느릿느릿한 움직임으로 아래쪽의 처리를 마친 지혜는 내게서 등을 돌린 채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전부터 이야기 하려던 게 있어.

 뭔데?

 이런 상황에 이런 말은 우습지만..... 사실 나 곧 ..... 결혼해.

 뭐?

모든 시간이 멈춘다. 몸이 굳는다. 혀가 마비된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지난번에 고향 다녀온 건 선보느라 그랬던 거야. 그때 본 사람이랑 이번 봄에 결혼하기로 했어... 미리 말하지 못 해서 미안해.

내게서 등을 돌리고 있었기에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어깨를 잡아 당겨 내쪽을 향하게 한다. 그러나 그녀는 고집스럽게 눈을 꼭 감고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뭐야... 지난 번에 이야기하려고 했던게.... 그거였어?

 응.

 하....... 그럼.... 뭐야, 나한테 왜 그런 건데..... 난 것두 모르고 너한테.....

난생 처음 태어나서 여자에게 고백했다. 그리고 차였다. 여자에게 고백하고 차인 경험을 한 남자야 이 세상에 널리고 널렸겠지만, 방금 전 자신의 뜨거운 정액을 쏟아 부은 여자에게서 거절을 당한 남자가 과연 있으려나. 그것도 조만간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도 사실은 네가 싫진 않았어. 하지만...

 됐어.

달구어졌던 몸이 싸늘하게 식어간다. 침대에서 나와 옷을 찾아 입었다. 팬티를 못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자니 지혜가 침대에서 나와 구석에 쳐박혀 있던 것을 찾아 꺼내준다. 그녀의 손에 들린 내 팬티가 너무도 추해보인다. 너무도 낡아보인다. 나도 모르게 거친 동작으로 그것을 낚아챈다. 

갈게.

 한석아.... 잠깐 이야기 좀 해.

 싫어. 볼 일은 다 끝난 거 아니었어?

최대한 쌀쌀맞게 말하고 집을 나선다. 돌아보지도 않았다. 내 집으로 갈까 싶다가 그래보았자 그녀에게서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생각하니 집에 들어가기도 싫어졌다. 빌라를 나선다. 학교 앞 동기들이랑 자주 가던 껍데기집에 가서 소주와 껍데기를 시켰다. 안주가 나올 때 쯤 난 이미 두 병을 비워내고 있었다.

젠장!!!!

스뎅으로 된 테이블을 내려친다.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이 힐끔거린다. 그 눈빛이... 뭐랄까. 싸움에 진 개를 조롱하는 눈빛같다. 

뭘 봐!! 사람 첨 봐?!

몇몇은 서둘러 눈을 돌리고 또 다른 몇몇은 오히려 눈을 날카롭게 하고 나를 째려본다. 사장이모가 나와서 만류한다. 속이 끓어서 술을 들이붓는다. 그러나 불이 꺼지질 않는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학생.... 일어나 봐.... 학생?

테이블에 엎드려 있던 나를 흔들어 깨운 이모가 계산서를 내밀었다.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내주었는데도 모자랐다. 지갑에는 돈이 별로 없었다. 학생증 맡긴다고 했더니 요새 그러고 안 갚는 놈이 너무 많아서 안 받는 댄다. 알코올에 쩔어있는 나의 뇌는 판단을 내리는데 굉장히 둔해졌다. 한참동안 궁리하던 나는 전화를 빌려 알고 있는 삐삐번호 하나를 찍고 음성을 남겼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 술을 시켰다. 이모가 불만있는 표정으로 술을 가져다주었다. 마지막 병이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대충대충 알았다고 대답을 하며 물컵을 비우고 글라스에 소주를 따랐다. 콸콸콸.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기 얼마나 마셨죠?

고개를 돌려보니 명희가 지갑을 꺼내어 계산을 하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을 부라리며 화를 낸다. 풋-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아, 씨발. 진짜.... 니 년도 참 가지가지한다. 화냈다가, 미워했다가, 또 그러다가도 부르면 나오고 말이야. 아아. 진짜....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왜 본심을 숨기고 진짜 마음대로 살고 있지를 않는 거지.

계산 다 했어. 가자.

 어디 갈까? 2차로 말야.

 미쳤어? 너 지금 혼자서 소주 몇 병이나 처먹었는지 알아? 일어나. 빨리 가자구.

 아, 그러니까 어디로 가냐니깐? 응? 응?

내 손에 들린 글라스를 뺏은 명희는 내 팔을 잡아 끈다. 그녀에게 이끌리다가 그녀의 뺨이 다가오자 입술을 내밀고 입을 쪽 맞춘다. 

왜 이래? 너 오늘 낮부터... 자꾸 이럴래?

황급히 볼을 감싸고 주위를 살피는 모습이 존나 꼴릿하다. 두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감싸쥐고 말한다.

어휴. 우리 공주님.... 2차는 모텔가서 할까? 응? 내가 또 널 죽여줄게.... 응? 응? 너두 내 자지 좋아하잖아... 응? 응?

이번엔 그녀의 입술을 훔치고 싶었는데.... 입술을 주욱 내밀고 앞으로 나가던 내 얼굴을 강펀치를 맞고 홱 돌아갔다. 와장창 소리를 내며 내가 나자빠지자 가게 안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몸을 피한다. 널부러진 음식그릇과 굴러다니는 술잔.... 병 하나는 깨진 듯 퍼런 유리조각이 빛을 반사하며 반짝거린다. 저쪽에서 이모가 짜증을 부리며 이쪽으로 다가온다. 

이 미친 새끼야. 너 다시는 나한테 연락하지 마. 알았어? 오늘로 끝이야! 끝!

엎드려 있는 내 배때기에 명희의 사커킥이 작렬한다. 그 사람 많던 술집 안이 한 순간 싸늘해졌다. 모든 이의 시선이 우리에게 향하는 것 같다. 와글거리던 술집을 침묵에 빠트린 명희는 가방을 챙겨들고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가버렸다. 이질적인 침묵 속에 콜록거리는 내 잔기침만이 들린다. 이모에게 갖은 잔소리, 싫은 소리를 들어가며 기다시피해서 밖으로 나왔을 때 이미 명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빈 속에다 때려부은 술 때문인지 아니면 뇌를 흔들만큼 센 펀치와 뱃 속을 뒤집을 만큼의 킥 때문에 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보도블럭에 웅크리고 앉아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콜록거리는 기침을 몇 번 토해낸다. 시큼한 느낌이 목구멍 바로 아래로 와 있었다. 그 불쾌감이 나를 살살 미치게 만든다. 정신이 흐려지고 눈 앞이 어두워진다. 그렇지만 그래도 집에 들어고가 싶지는 않다. 비틀거리며 일어나서 도로로 나가 택시 하나를 잡는다. 목적지를 말하고 뒷자리에 가로 누워 쿨럭거린다. 기사님이 시트에는 토하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네네, 잘 알아모시겠습니다.

목적지까지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 와중에 얼풋 잠이 든 모양이다. 다 왔다고 깨우는 기사님의 재촉에 눈을 뜬다. 눈을 비비고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예전에 한 번 보았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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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ute B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난번 분기에서 1번 의견과 2번 의견이 비등비등했는데 결국 2번 의견이 조금 더 나왔습니다. Route A 트루 엔딩 쓰던 거 (미완성) 은 집필실 자유게시판에 올려두었으니 심심할때 한번 봐주세요.

약속대로 이명희는 계속 나옵니다만... 그녀 성격상 별로 좋은 관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명희 언니는 Route B에서 출연계획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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