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있었다. 편모 슬하인 집안 사정상 고등학교만 나오고 대학은 포기한채 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든 그녀는 한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직원 전부해서 50명도 채 안되지만 나름 이름 있는 물류업체의 경리로 일하게 되었다. 그녀는 성실히 일했고 평판도 나쁘지 않았다.
그녀가 막 스물 세살 되던 해, 지방에 있는 지점에 있던 한 임원이 승진하여 서울 본사로 올라오게 되었다. 평범한 중년남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녀는 오십줄에 접어든 그 임원에게 자꾸 마음이 기울었다. 처음에는 자기보고 추근덕거리는 그가 밉상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정이 갔다. 은글슬쩍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마음을 허락했고 몸을 허락했다.
아버지가 없이 자라서일까요. 모르겠어요. 왠지 나이 든 남자를 보면 마음이 끌리더라구요. 그렇다고 또래의 남자들과 연애를 안 해본 것도 아닌데.... 하아... 별로 오래 가진 않았어요.
물론 그는 가정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런 만남이 결코 사회적으로 용납받을 수도, 드러내놓고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비밀스런 만남이 진행되어 갈수록 그녀는 점점 지쳐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모든 이로부터 고립되어가는 자신을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마누라와는 결코 사이가 좋지 않다고 늘 이야기하던 남자의 이야기는 새빨간 거짓말임을 우연한 기회에 남자가 자신의 아내와 통화하는 것을 엿듣고 알게 되었다.
조금 있으면 이혼할꺼다.. 애들 다 결혼시키고 나면 이혼할꺼다.. 항상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조만간 서울에다가 집을 산다고 하더라구요. 지방에 있는 마누라 데리고 와서 살려고....
그녀는 이틀전 한 카페에서 남자와 마주앉아 이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공짜로 따먹을 수 있는 여자를 이제 앞으로는 못 따먹게 된다고 했을 때, 좆달린 놈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하다. 처음은 갖은 좋은 말로 그녀를 회유하려 하였으나 그녀가 워낙 확고하게 의견을 굳히자 남자는 자신의 지위와 그녀의 앞으로 지낼 직장생활에서의 불리함을 은근히 들먹이며 여자에게 자신의 세컨드로 계속 남아줄 것을 강요했다. 이제껏 해온 사탕발림은 더 이상 연기하지 않았다. 그는 기막혀 하는 여자를 두고 먼저 자리를 떴다.
여자가 원한 것은 애정이었고 사랑이었다. 그러나 이제서야 자신의 누군가의 욕망의 배출구에 불과한 하나의 구멍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떳떳치 못한 관계였기에 누구에게 속시원히 털어놓고 조언을 구할 수도 없었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고 멍하니 있으려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왠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앞에 와 앉으며 말을 거는게 아닌가.
저, 명희씨 맞나요? 진호형 소개로 나온 최한석인데요...
명희가 누군지, 진호가 누군지, 최한석이 누군지 전혀 모르는 그녀였지만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오늘 처음 보는 그 남학생은 자신의 앞에 앉더니 전형적인 쑥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닳고 닳은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일까. 순진해보이는 그에게 끌려서 일까. 그녀는 왠지 오늘 망가지고 싶었다. 모르는 척, 자신이 아닌 척하고 싶었다. 괜히 일부러 더 야한 척하며 그를 이끌어갔다. 그렇게 생각치도 않은 원나잇을 하고 돌아섰다. 더 이상은 그 남자를 볼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퇴근 후, 결코 원하지 않았지만 내연남의 끈질긴 설득 혹은 협박에 응해 술집에 갔다. 이런 만남을 끝내고 싶다는 여자와 굴러 들어온 공짜 보지를 그냥 보내지 않겠다는 내연남간에 술자리는 머리 아프고 복잡했다. 술도 많이 올랐고 복잡한 머리도 식힐 겸 화장실에 가서 비틀거리고 있노라니 등 뒤에서 왠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 저기요. 좀 비켜주시겠어요?
그리고 그 목소리는 이내 그녀를 이렇게 불렀다.
명희씨, 정신 차리세요. 명희씨!
내 이름은 명희가 아니라 김지혜인데.... 술로 오락가락 하던 그녀의 머리속에서 어제의 기억이 찬찬히 떠올랐다. 자기를 이런 이름으로 부르던 남자가 있었지. 침대에서는 꽤나 서툴렀지만 물건의 실함과 단단함은 꽤나 정직했던...
한석씨...?
그리고 그의 품에 안겨 있으려니 내연남이 그 모습을 보고 펄펄 뛰었다. 펄펄 뛸만도 할거다. 자신의 공짜보지가 딴 자지에게 뺏기고 있는 광경이니. 그리고 이내 젊은 놈이 늙은 놈을 때려눕혔다. 그 장면을 시원하다고 여겼다. 젊은 놈을 데리고 뛰었다. 둘다 무슨 약속이라도 한듯 마치 어제처럼 모텔로 들어선다.
그제서야 그녀는 서러워졌다. 자신의 처지가, 자신의 입장이, 자신의 모든 것이 괴롭고 슬퍼졌다. 그녀의 마음 속은 시커먼 어둠처럼 텅하니 비워있는 것 같았고 그 안으로 무언가라도 집어넣지 않으면 그런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바로 옆에는 때마침 싱싱한 자지가 있었다. 그것이 잠깐이나마 그녀를 채워주었다.
그러나 아침 해가 뜨고, 하나의 몸은 두개의 몸으로 갈라선다. 각자의 길을 가야할 시간이다.
나란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서 차분하게 늘어놓은 그녀의 이야기는 내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 아침부터 탱탱하게 발기되어 있는 자지의 힘도,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건넬 무수한 말들도.
지혜씨....
모텔에서 나와 헤어지기 직전, 간신히 용기를 내어 그녀를 불러본다.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얼굴에 걸린 뿔테 안경이 일종의 갑옷처럼, 단단하게 그녀의 감정을 지키고 있는 느낌이다.
연락처라도.... 받을 수 있을까요?
처음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에게 연락처를 물어본다. 아주 돌이켜보면 처음은 아닐지도 모른다. 아마도 국민학교 4학년때인가 5학년때 반장을 했었으니까 비상연락망 만든다고 우리 반 여자애들에게도 열심히 전화번호를 물어봤었을테지. 암튼 그때 이후론 정말 처음이다.
왜요?
아니 뭐 그야...
왜냐고 물으신다면.... 정말 대답할 게 없다. 쭈볏거리며 뒤통수만 긁고 있으려니 그녀의 시니컬한 말투가 이어진다. 정말이지 그녀는 술을 먹기 전과 먹고 난 후에는 전혀 다른 사람 같다.
왜요? 그쪽도 이제 날 두번이나 따먹고 나니까... 앞으로도 행여 공짜로 또 따먹을 일 없을까 기대하는 건가요?
에엑! 아뇨, 전 그런 생각이 전혀....
두 손을 번쩍 들어 내저었다.
잘 들어요. 그리고 생각해보세요. 내가 왜 한석씨에게 내 이야기를 구구절절히 했을 것 같아요?
그...글쎄요...
그러고보니, 이런 이야기를 왜 했을까. 뒤이어지는 그녀의 대답은 명쾌하면서도 참으로 날카로왔다.
그건요. 앞으로 한석씨를 절대 볼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잘 가요.
아침 바람 찬 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의 뒷태처럼... 그녀는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전혀 뒤돌아보는 일 없이 그대로 먼저 가버렸다.
뭐야. 그럼.
침대에 나란히 누워 띄엄띄엄 조심스레 했던 자기 이야기는 무슨 이발사가 대나무 숲에 가서 임금님 귀에 대한 비밀을 외쳤듯이 그저 마음에 담아두기 힘들어 꺼내놓은 것 뿐이란건가. 내가 대나무냐. 그런거냐.
시야에서 지혜씨가 사라지고 나니 씁슬한 마음이 더 커졌다. 이래저래 복잡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오늘은 1교시부터 수업이 있는 날임을 기억해냈다. 발걸음을 학교로 향했다. 옷을 갈아입고 싶었지만 아무리 집이 학교 근처에 있다고는 하나 들렀다가 간다면 꽤나 시간을 잡아먹을 거다. 좀 있으면 시험기간인지라 출결관리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러고 보니 뭔가 생각이 날 듯 말 듯 한게 하나 있었다.
뭐더라.
학교.....
선배.....
그러고보니 진호 선배.......
으아아아아악!!!
이제서야 생각 났다. 나는 어제 진호 선배가 소개해 준 명희씨를 그냥 술집에 두고 나와버렸다. 그것도 이미 본의 아니게 한번 바람 맞춘 걸로 인하여 토라져 있던 그녀를 말이다. 거기에 생각이 이르자 급속도로 학교에 가기 싫어졌다. 진호 선배를 보면 대체 뭐라고 한단 말인가. 머리를 감싸쥔채로 버스에 오른다. 창가에 앉아 대갈통을 유리창에 쿵쿵 찍어보지만 뭐 마땅히 좋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
.
.
.
이야~ 너 어제 엄~~청 잘해줬나보다?
네에?
하루 종일 가능한한 진호 선배를 안 보려고 갖은 노력을 하였건만 우리 과 전공교수의 조교일도 하고 있는 선배를 피하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것은, 오후쯤에 공대 복도 입구에서 마주친 선배는 내가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설마 비꼬는 건가?
어제 명희한테 연락 왔는데 말야, 니가 엄청 마음에 든 모양이더라구. 하하.. 그 녀석, 꽤나 까다로운 녀석인데 이제야 짝을 찾았나보다.
아...그래요?
응. 안 그래도 명희가 얼굴도 곱상하고 어렸을때부터 성격도 아주 참해서 교회 어머님들이 다들 마음에 들어하거든. 근데 굳이 나한테 소개팅 시켜달라고 졸라서 후배들 몇 명을 시켜줬었는데 하나같이 다 퇴짜였단 말야. 근데 어제는 밤늦게 우리집에 전화를 걸더니 너랑 한 데이트가 몹시 즐거웠다면서 너에 대해서 이것저것 묻더라고.
아아... 그래요....?
몹시 흡족한 표정으로, 어찌보면 다 자란 딸을 시집 보내는 것 같은 인자한 표정으로 명희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진호 선배의 면전에 대고 사실은 어제 명희씨랑 술 먹다가 중간에 딴 여자랑 도망갔는데요.라고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 암튼 우리 명희 잘 부탁한다.
예에...
어깨를 두드리고 지나가던 진호 선배는 뭔가 잊은게 생각났는지 나를 돌아보며 한마디 보탰다.
아, 그리고 오늘은 꼭 집에 일찍 들어가라.
네? 왜요?
아, 글세. 일찍 들어가면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좋은 일이라.....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이래저래 수업을 마치고 내 자취방으로 돌아온 건 저녁무렵이었다. 필요한 자료를 찾느라 도서관에 좀 오래있었더니 짧은 해가 금방 져버려서 벌써 어둑어둑했다. 학교 후문에서 십여분 거리에 있는 주택가에 있는 지은지 십년이 다 되어가는 낡은 빌라, 201호가 나의 스위트홈이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이미 문이 열려있었다. 학교 근처인데다가 남자 혼자 사는 자취방이다보니 평소에 일부러 열쇠 하나는 우편함에 넣어두고 있다. 나를 찾아올 볼일이 있는 과동기라던지 동아리 녀석들이 종종 찾아오는데 그때마다 문열으라고 하도 성화여서 일종의 공개키를 비치한 셈이다. 덕분에 내 자취방은 동지들의 주요한 아지트이기도 하다.
누구 왔어? 혹시 성택이야?
들어서서 신발을 벗으며 짐작갈만한 이름을 불러보는데, 뭔가 이상하다. 응당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놈이라면 방에 불도 켜놓고 비디오라도 보고 있던가 게임이라도 하고 있던가 할텐데 집안은 캄캄하니 아무 인기척도 안 느껴진다.
마음이 덜컥 불안해진다. 설마 도둑이라도 든건가? 훔쳐갈거라곤 낡은 내 옷가지들말고 없는데... 아, 가장 값 나가는 물건이라면 신입생때 샀던 패미콤 게임기가 있다. 것두 아니면 주인집에서 안 쓰고 버린 걸 주워온 저 금성 텔레비전일테다. LG전자가 아니라 금성말이다. 금성
찰칵-
내가 닫지도 않았는데 문이 닫혔다. 현관 안쪽에서 누군가의 음영이 나타난다. 그리고 차가운 금속재질의 무언가가 내 엉덩이를 지그시 누른다. 날카로운 건 아닌데 딱딱하고 둥근 막대같은 것이 내 엉덩이 근처를 압박한다.
철컥-
입닥쳐. 그리고 지금부터 큰소리로 외친다거나 뭔가 빠르거나 움직임이 큰 동작을 행하려는 기미가 보이면 전혀 망설이지 않고 쏴버릴거야. 그러면 앞으로 똥을 쌀때마다 아,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를 하며 살아가겠지. 남은 인생동안. 평생을 말이야.
누....누구세요?
세상에나. 설마 이 느낌은 총인가? 그런가? 요즘 강도는 총도 가지고 다니는 건가....?
닥치라고 했지. 조용히 앞으로 걸어가. 그리고 저쪽 의자에 앉아서 두 손을 머리 위로 얹어. 그래, 그렇게.
나는 몹시도 말을 잘 듣는 착한 어린이가 되어 시키는 대로 했다. 잠시 후, 내 원룸의 조명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자 나를 향해 몹시도 흉흉한 표정을 보내고 있는 한 간호사를 알아볼 수 있었다.
며....명희씨?
닥치라고 했다.
네...넵!
진호 형이 소개해 준, 몹시 귀엽고 착하기로 인근 모 동네의 모 교회 내에서 평판이 자자하다는, 올해 스물 두살 이명희씨는 내 자취방 한쪽 켠에 버티고 서서 나를 향해 은빛의 금속재질이 형형한 총을 딱 겨누고 있었다. 총구는 정확히 내 이마를 향하고 있었다.
재미 조~~~으신가봐? 응? 이 시간에 들어오시고?
.................
물어보는 말에는 대답햇!
아? 예!! 네? 아뇨... 재미라고는 딱히...
닥쳐, 이 새끼야!
..............
대체 닥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오빠, 오빠~ 혹시 현석씨 집이 어딘지 알 수 있어요?
응? 집은 왜?
왜긴~ 거기까지 알아서 뭐하게. 히힛. 혹시 부모님이랑 사는 거야?
아냐. 걔는 후문쪽에서 자취해. 혼자 살어.
아~ 그래요? 그럼 식사도 제대로 못 하겠네. 불쌍하다.
어이구야. 명희 니가 퍽이나 마음에 들었나 보네. 벌써 식사까지 챙기려고?
뭐, 그럼 안 되나? 아무튼 현석씨 집 알려줄 수 있어요?
그래, 그게 어디냐면 말야...
..........라는 대화가 오갔겠지, 라는 추측을 해본다. 덧붙여 진호 선배는 공개키의 존재까지 불어버렸겠지. 선배님. 오늘만큼 선배님을 원망해본 적이 없어요. 설마 아까 저보고 집에 일찍 들어가라는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였습니까? 명희씨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물론 선배님은 그 명희씨가 이런 흉흉한 물건을 제게 들이밀며 욕을 퍼붓고 있으라리는 생각은 전혀 못 하셨겠지요.
빨리 말해봐. 새끼야. 너 진짜 고자 아냐?
아니라니까요.
그럼 게이냐?
것두 아닌데요.
그럼 씨발, 나처럼 귀여운 애가 들이대고 있는데 거기서 도망을 가? 응? 대체 이유가 뭐야?
그게 그러니까....
사실은 전날 댁 대신 만난 여자를 다시 만나서 모텔로 직행해서 쿵짝쿵짝 하다가 오늘 아침에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할까 싶었다. 그러면 적어도 고자라는 오해는 면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내가 아무리 감이 떨어지는, 둔감 100% 사나이라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 그딴 소리를 했다가는 저 총구가 불을 뿜을 것 같다. 내 시선이 힐끔힐끔 와닿는 걸 느꼈는지 명희씨는 자신의 총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아, 이거? 진짜 총은 아냐. 걱정말어.
아, 그래요... 다행....
1995년 미국 콜트레인사에서 나온 PT-151K, 애칭으로는 포텐샬머신이라는 권총의 외형을 카피해서 만든 가스총인데 내부를 살짝 손봐서 가스압력을 두배로 올리고 탄알도 압축플라스틱탄이 아닌 쇠구슬을 박아넣은 거야. 10미터 거리 이내에서 12미리 합판 따위는 가볍게 뚫어. 아직 시험은 안 해봤지만 사람에게 쏘면 어떨런지는 모르겠다만.
........다행.....이 아니군요.
조금이나마 안심되던 마음이 급격하게 얼어붙는다. 그녀의 심기를 거스리는 일이 없도록 말을 잘 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내 몸이 12mm 합판보다 두껍고 단단한지 아닌지를 굳이 테스트 해볼 필요는 없으니까.
그게 그러니까... 갑자기 아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 분이 많이 편찮으셔서요..... 저도 깜짝 놀라서 그 분 모시고 가느라 그랬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로요.
간신히 최대한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범위에서 열심히 변명했다. 난 오래오래 살고 싶다. 의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던 명희씨는 총구를 내리지 않고 나에게 다가왔다.
정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온다간단 말도 없이 그렇게 사라져?
정말입니다. 진심이에요. 믿어주세요.
괜히 내가 추근거리니가 쫄아서 도망간게 아니고?
아닙니다. 오히려 더 좋았어요.
그제서야 그녀가 좀 웃는다. 그녀는 나를 툭툭 치며 말했다.
진짜로 고자 아니란 거지? 증명할 수 있어?
즈...증명이요?
그래. 한번 까봐.
그녀가 턱으로 가리킨 곳은 내 허리 아래, 두 다리의 가운데, 남자의 가장 중요한 부위 Best 1인 곳이었다.
까...다니요?
고자 아니라매. 그럼 한번 꺼내서 확인을 시켜줘봐. 정말 고자인지 아닌지 보게. 만약 거짓말하는 거면 쏴서 진짜 고자로 만들어줄 수도 있고.
악마다. 저건 악마가 틀림없다. 남자의 중요부위를 쏴버리겠노라는, 그런 흉악한 소리를 하면서 어떻게 살짝 웃을 수 있는 거지? 그나저나 나는 내가 고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게 그게 거짓말이라면 고자라는 이야기인데 그럴 경우 총으로 쏴서 고자를 만들겠다는 소리는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뭘 멀뚱멀뚱 앉아있어? 진짜 고자로 만들어죠? 앙?
아....아뇨! 알았습니다!
길어지려던 생각은 그녀의 다그침과 다가오는 총구 앞에서 눈녹듯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엉덩이를 살짝 들어 황급히 바지를 벗고 거의 동시에 팬티를 깠다. 수치스런 감정보다는 살아나고자 하는 욕구가 더 강하니까.
그러나 아쉽게도 내 물건은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달까. 그런 내 모습을 그녀는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딱히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고 신기해하는 반응도 아니었다. 오히려 재미있어 하는 기미까지 보였다.
고자 맞는거 아냐? 이 녀석 왜 이래?
아뇨.... 그게 그러니까.... 지금 좀 많이 놀랐기도 하고... 춥기도 하고....
그래? 그럼 좀 도와줄까?
에엑?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내 다리를 벌리게 하고 그 사이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총을 들고 있지 않은 왼손을 뻗어 불알을 살살 문지르더니 이내 기둥 아랫부분부터 살짝살짝 훑어주기 시작한다. 왠지 익숙한 손놀림이다. 그리고는 이내...
흐읍....
내 물건이 그녀의 입 속으로 사라졌다. 차가운 방 공기에 노출되어 있던 자지는 어느새 따뜻하고 촉촉한 기운에 듬뿍 감싸여 진다. 뭉글뭉글한 느낌의 혀가 아랫부분을 살살 간지르자 부드러운 재질에 힘이 들어가고 빳빳해져 간다.
하악... 며...명희씨....
아랫부분부터 윗부분까지 쪼옥 빨아내며 침을 한번 발라낸 그녀는 그 자세에서 살짝 위를 올려다본다. 그녀 머리 윗부분을 보고 있었던 나와 눈이 마주친다. 안 그래도 꽤나 귀여운 동안 타입의 그녀였는데 이렇게 올려다보는 눈빛은 마치 고양이같다. 귀엽고도 섹시하다. 상충되리라 생각했던 이 두 단어가 이토록 조합될 줄이야.
철컥-
공이가 당겨졌다. 차가운 금속의 느낌이 허벅지에 진하게 와 닿는다.
가만있어. 괜히 기분낸다고 허리 들썩거린다거나 자지에 힘준다거나 내 머리통 붙잡고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가는 바로 당겨버릴테니깐.
넵.
귀엽고도 섹시하고 무섭다.
삼위일체, 아니아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 요소가 지극히 비상식적으로 얽힌 가운데 이어지는 능숙한 펠라치오는 어느새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고, 내가 몹시도 안타깝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자지에서 입을 뗐다. 그녀의 입과 내 자지에 실과 같은 끈적한 침이 살짝 브릿지를 이루었다가 이내 끊어졌다.
좋아. 이리와.
그녀는 바닥에 깔린 매트에 눕더니 치마를 살짝 거두었다. 주름치마의 안쪽으로 그녀의 뽀얀 허벅지살과 그에 대비되는 강렬한 빛의 검은색 레이스 팬티가 나를 부른다.
난 거친 걸 좋아해. 최대한 쎄게.... 해봐.....
불과 3일전만 해도 총각이었지만 이미 그저께 첫경험을 치룬 나다. 차려진 밥상을 마다할리가 없었다. 난 그녀의 다리 사이에 무릎꿇고 앉아 내 물건을 조준했다. 팬티를 잡아당기려는데 그녀가 협조를 해주지 않고 다리를 오무린다.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자 그녀가 살짜기, 예의 그 소악마스런 웃음을 지으며 답한다.
거칠게 하라고 했잖아. 한번 찢어봐.
찌...찢어요?
거칠게 하라고 했잖아. 그 정도도 못 해? 역시 고자야?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팬티 옆라인으로 손을 집어 넣어 반쯤 움켜쥐었다.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다. 찢다니! 이런 플레이는 처음이다. 뭐....그렇다고 다른 플레이를 많이 해봤다는 건 아니지만.
부욱- 소리와 함께 그녀의 팬티가 찢겨진다. 손에 잡힌 레이스의 감촉이 생경하다.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은은하게 손에 감겨들어온다. 오오... 여자 팬티에 집착하는 놈들을 평소에는 변태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부터는 아니다. 그들은 이미 정확히 알고 있었던 거야. 이 환상적인 감촉을!
좋아. 그럼 잠깐 저쪽 좀 볼래?
저쪽이요?
그래. 그쪽.
그녀는 옆에 있는 책장이 놓인 쪽을 가리켰다.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려는 순간, 그녀는 두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뭐지? 라는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번쩍- 그리고 찰칵-
빛과 소리.
그것이 내 혼을 어벙벙하게 빼놓는다. 그리고 어느 틈에 그녀는 내 밑에서 빠져나와 벌떡 일어나있었다.
아주 자~~~알 나왔겠는걸? 자취방에서 여자를 덮치고 강제로 속옷을 찢어내고 있는 강간범 아저씨의 모습 말이야. 응?
그녀는 책장에 놓여있는 한 물체를 집어든다. 그것은 사각형 박스에 앞에는 원통 비스무리한게 붙어있고 전면에는 렌즈와 플래시가 달려있다. 소위 카메라라는 물건인데... 지금 저게 저기에 왜 놓여있지? 왜 나는 전혀 저걸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하기사 저쪽을 쳐다보고 있을 여유따위는 없었다만.... 그리고 지금 그녀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내 손에 든 레이스 팬티의 잔해가 아직도 그녀의 체온을 머금고 있는데, 그리고 그녀랑 나는 지금부터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던 거 아니었던가?
핫. 아직도 이해 안 가? 이 멍청아? 내가 미쳤다고 나를 두번이나 찬 녀석네 집에 칠렐레 팔렐레 놀러왔을 것 같아? 내가 미쳤다고 니 놈 자지를 세워준줄 알아? 그리고 무슨 생각으로 가랭이 벌리고 팬티를 내주었는지 아냐고?
........모, 모르겠는데요.
그럼 대학생이니까, 그 좋은 머리로 잘 생각해봐. 내가 지금 여기서 소리를 꺄악~ 하고 질러대면서 말야, 밖으로 뛰쳐나가서 경찰서로 달려간다면 그곳에서 뭐라고 진술하게 될까?
경찰서....진술.....?
평소에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이라 지금 내 머리속에서는 제대로 정립이 안 되고 있다. 무슨 소리지, 저게?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찢어진 옷을 추스리는 아가씨가 큰일을 당할 뻔 했다고 한다면 경찰아자씨들이 어떤 조치를 취해주실까? 응? 강간마씨. 잘 생각해보라구.
제 성은 최씨고, 이름은 한석인데요. 성이 강씨고, 이름이 간마가 아니란 말이에요...........................가 아니라, 으악! 으악! 그제서야 난 모든 것을 이해했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며...명희씨! 자...잠깐만요!. 그러니까....
멈춰! 거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마! 나한테 조금이라도 다가올 기색이 있으면 일단 쏘고나서 아까 말한대로 하면서 밖에 달려나갈 테니깐.
나이 스물 세살이 되어서 정말이지 오랜만에, 아주아주 오랜만에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했다. 마치 우보법으로 발이 묶인 것 마냥 나는 제자리에 떡 하고 달라붙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
아...알았습니다. 일단 그러니까... 지금 명희씨 말씀은 저한테 누명을 씌워서 강간범으로 만들겠다는 말씀.....이죠? 그렇죠?
그래.
대체 저한테 왜 그러시죠....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한순간의 욕망에 눈이 멀어 이렇게 홀랑 넘어가버리다니.
왜 그러긴! 몰라서 물어? 나를 바람맞힌 남자가 있단 사실만으로도 쇼크인데 거기에 놓고 도망까지 가? 니가 제정신이야?
그녀는 악을 쓰듯 소리쳤다. 그리고 들고 있는 총으로 나를 겨누며 당당하게 외쳤다.
난 결심했어. 니 녀석을 철저하게 짓밟아서 다시는 나를 우습게 보지 못 하게 만들겠노라고. 주인에게 대든 개새끼가 어떤 꼬라지를 당하는지 정확히 알게 해주겠어. 그게 불만이라면 언제든지 말해. 이 사진은 네 놈 대학교 대자보에 대문짝하게 실릴 거고 조만간 경찰관들이 니 새끼를 체포하러 올테니까.
그렇게, 어느 날 저녁.... 나는 그렇게 한 마리의 개새끼가 되었고 착하고 참하여 교회 내에서도 칭찬이 자자한데다가 진호 선배와는 오래 동안 알고 지낸 착한 여동생님을 주인으로 모시게 되었다.
주인님이라고 이 노예 새끼야.
.......정정하겠다. 주인이 아니라, 주인님.
어머~ 현석씨!
내 이름을 반갑게, 아주 살갑게, 기쁜 듯이 부르는 저 목소리는....
며...명희씨?
어머, 현석씨. 왜 말을 더듬고 그래요. 너무 반가워서 그래요? 우후훗.
목소리의 주인공은 사뿐히 내 곁으로 다가와 다정하게 손을 맞잡는다. 그리고 등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눈짓으로 내게 신호한다. 요 며칠간의 경험으로 저 눈짓이 무얼 의미하는지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똑바로 해'
......라고 명희, 아니 주인님이 말하고 있다.
와.아. 정.말 반.갑.다. 명희씨가 어쩐 일로 저희 학교까지 찾아오신 거죠?
국어책을 읽을 때도 이것보다 부드럽게 읽었을 텐데. 그러나 나의 부자연스러움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진호 선배는 그 사람 좋은 웃음을 터트리며 좋아했다.
이야~ 명희랑 현석이가 이렇게 사이좋을 줄은 몰랐는 걸?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소개시켜 주는 건데 말야.
그러게 말이에요. 호호호.
방금까지 나를 향해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명희는 순식간에 밝은 표정으로 바뀌어 진호 선배를 쳐다보며 마주 웃는다. 틈바구니에 끼인 나는 애써 웃으려고 노력했다.
으.하.하.하.하.
..........이제 앞으로는 드라마에 나오는 탤런트가 연기 못 한다고 절대로 까지 않으리라. 연기가 이토록 어렵고도 고된 일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