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18)

# 에필로그로 이어집니다.

1.드디어 다운이 엄마가 끝이네요.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사실 스토리를 짤 때, 다운이도 엮어보려고

했지만, 제가 가진 이미지를 훼손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적나라한 글을 써서 다운이 엄마를 싸구려

처럼 쓰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여기서 적당하게 마무리를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되었습니다.

2.다운이 엄마의 실체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사실 전반부의 과거 장면의 경우에는 부분적으로 과장

이 되었지만 제 경험담과 가깝습니다. 댓글에서도 봤지만, 어릴때 그런 경험 흔히(?) 할 수 있는 것 아

니겠습니까;;. 

다운이 엄마와 다운이는 실존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다운이 아빠의 경우도 다운이의 친아빠가 아닌 것

도 사실입니다. 어렸을 때, 들은바로는 다운이 엄마가 사별을 하고 재혼을 한 듯 싶더군요.

다운이 엄마를 4년 전 쯤, 한 번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클래스는 영원하다'라는 말이 맞더군요. 아직도

범접할 수 없는 기품과 외모를 겸비하고 있더군요. 썸씽이 있었다면, 다운이 엄마의 후반부를 적나라하

게 썼을텐데..풋;

3.에필로그가 남았지만, 다운이 엄마의 등장은 이 글에서 끝입니다. 물론, 에필로그도 상당한 분량과 함

께 읽는 재미가 있겠지만..-_-; 다운이가 어떻게 사는지 간접 확인이 가능..-_-;

마지막 글인만큼 추천과 댓글을 확 쏴 주시면 좋겠네요.

다음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에필로그에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따스한 햇살이 세상을 포근하게 해주는 5월 초의 봄날이었지만, 조기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길 내내 우울했다. 차라리 비라도 내려서 내 마음속 우울함을 시원하게 씻겨 내려가게 하면 좋으련만...

3년 전에 새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이별이라는 가슴 아픈 일을 겪고, 새 삶을 살기 위해서 이사를 왔지만, 이번에는 본의 아니게 다시 한 번 이사를 해야 했다. 퇴근길에 부동산 중개업소에 들려서 아파트를 내놨다. 

내 나이 31살. 대학 졸업 후, 대학 도서관 사서가 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지난 4년 간 알뜰하게 생활을 했고, 전주에 계시는 부모님의 힘을 빌려 작은 아파트를 마련했다. 그러나 서울의 부동산 값이 지방과 비교할 수 없이 비쌌기 때문에, 약 5천 만 원의 대출도 받았다.

3년간, 나를 위해 쓴 돈이 거의 없었다. 거의 월급의 50%를 대출금을 갚기 위해 썼는데, 비록 나의 생활은 없었지만,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하며 버텼다. 시세를 보니, 3년 간, 아파트 가격이 2천만 원 정도 상승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출금을 완납한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아서 다시 집을 내놓는 것은 씁쓸할 뿐, 더구나 갈 곳도 없었다.

전주에 계시는 아버지의 보증이 문제였다.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친했던 둘 도 없는 친구에게 사업자금을 대주기 위해서 보증을 섰지만, 그 친구 분은 결국 사업이 실패로 끝났다. 전주의 부모님 집도 그대로 넘어갔고, 부모님은 작은 월세 방으로 이사를 가셔야 했다.

비록 아버지가 잘못 선 보증이 문제였지만, 하나 뿐인 아들로서 나 홀로 편한 아파트에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파트를 내놓기로 결심을 했다. 어차피 이 아파트도 거의 50%는 부모님이 대주신 돈으로 산 것이니... 

전주에 내려가서 아파트를 내논다고 부모님께 말씀 드렸을 때,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시면서 한숨을 쉬셨다. 그리고 나에게 계속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하셨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난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저야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아직 젊잖아요. 안정된 직장도 있고...”

막상 말은 그렇게 하고 서울로 올라왔지만, 답답한 것이 현실이었다. 대출금을 갚느라 거의 모아둔 돈도 없었기 때문에 집을 구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당연하게도 전세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렇게 아파트를 내놨고, 우리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가운데, 나 역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가진 돈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학교 주변의 고시원으로 들어가거나 하숙을 해야 할 판이었다.

약 2주가 지났고, 아파트가 팔렸다. 새로 입주할 사람과 2주 뒤에 집을 비우기로 약속을 했다. 나갈 곳도 정하지 못하고 집을 팔아서 약간 답답했지만, 이틀이 지나지 않아서 나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해결이 되었다.

대학에서 기숙사 사감을 새로 뽑는다는 공고문을 봤다. 그냥 한 번 찔러나 볼까한 심정으로 신청을 했는데, 의외로 내가 선택되었다. 대학교에서 사서를 하기 때문에 일종의 프리미엄을 받아 선택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퇴근 후 대학 기숙사 사감을 하면 개인 방 하나와 어느 정도의 급여도 지급한다고 했다.

어차피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야 했기 때문에, 몸은 힘들어도 대학교 기숙사 사감을 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현재로서의 나에게는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약 2주의 시간 뒤에는 완전히 아파트에서 나와야 했지만, 집안의 모든 물건들을 다 가져갈 수는 없었다. 짐을 정리하면서 팔 수 있는 것들은 사진을 찍어 인터넷 중고나라에 올렸고, 가전제품들의 경우 중고 도매상에 연락을 하여 처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매일같이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대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기 약 열흘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초여름이 가까워지면서 날은 점점 더워지고 있었다. 퇴근을 하고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왔는데, 집으로 가는 길에 놀이터를 지나쳐야 했다. 

그런데 놀이터를 지나치면서 내 눈에 띠는 꼬마가 있었다. 인형같이 아주 예쁘게 생긴 여자아이였는데, 홀로 한적한 놀이터를 지키고 있었다. 아니, 놀이터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밖에서 잘 놀지도 않았지만, 오후 6시면 집에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세상인심이 흉흉해서 어린 여자 아이가 혼자 밖에 있는 건 위험했다.

문득 나도 일찍 결혼을 했으면 저런 딸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 피식 웃은 나는 여자 아이가 혼자 앉아 있는 놀이터 벤치로 걸어갔다. 발걸음을 들었는지, 그 여자아이가 고개를 뒤로 돌려 나를 멀뚱히 쳐다봤다. 

“안녕.”

환한 미소를 보여주며 여자아이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 역시 벤치에 앉았다. 그러나 여자아이는 나를 계속 쳐다 볼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가까이서 본 여자아이는 정말 작고 귀여웠다. 5-6살 정도 되려나?.

“여기서 뭐하니?.”

다시 한 번 여자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한참을 나를 쳐다보던 여자아이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나를 당황시켰다.

“아저씨는 저를 납치하려고 온 거에요?.”

올망졸망하게 생긴 작은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납치’라는 말이 나와서 당황했지만, 난 이내 곧 다시 빙긋 웃으며 대답을 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니?. 아저씨는 나쁜 사람 아니야.”

“엄마가 모르는 아저씨가 말을 걸면 소리 지르면서 도망가라고 했거든요. 그런 아저씨는 납치범이래요.”

여자아이는 어린 것 답지 않게 또박또박 말을 잘했다. 인형같이 생긴 작은 여자아이가 말을 잘하니까 조금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왜 아저씨보고는 소리를 지르고 도망가지 않니?.”

“아저씨가 납치범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건 두 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이에요.”

“두 가지 이유?.”

“먼저 아저씨가 납치범이라면, 양복을 입고 손에는 가방을 들지는 않았을 걸요..”

“하하하하하.”

생각지도 못하게 여자아이 입에서 합리적인 이유가 나오자, 난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웃은 나는 두 번째 이유가 궁금했다.

“두 번째 이유는 뭐야?.”

“음....”

여자아이는 대답대신 검지로 자신의 왼쪽을 가리켰다. 여자아이의 고사리 같이 작고 귀여운 손가락을 따라가 보니, 나는 내 눈에 보이는 것을 보고 감탄할 수 밖 에 없었다. 여자아이의 손은 자신을 정확히 찍고 있는 CCTV를 가리켰다. 그랬다. 어떤 납치범도 CCTV 앞에서 아이를 유괴하지는 않을 것이다.

“너 참 똑똑한 아이구나. 하하하.”

“그런 말 많이 들어요.”

여자아이는 영특하면서도 당돌했다.

“몇 살이니?.”

“6살인데... 만으로는 5살이래요.”

“하하하하.”

다시 한 번 나는 웃음이 터졌다. 6살 아이가 ‘만 나이’를 어떻게 알고 있을까?.

“아저씨는 31살이야. 만으로는 30살이고...이름은 김민수.”

“저는 한수정이라고 해요.”

“참 예쁜 이름이구나. 수정이는 만 나이를 어떻게 알았어?.”

“책에서 봤어요. 엄마가 책을 보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대요.”

“하하. 그렇지. 그렇지. 수정이 엄마가 참 현명한 분이구나...”

수정이라는 6살 여자아이. 인형같이 예쁜 얼굴에 6살답지 않은 생각을 가진 아이와 대화를 나누면서 모처럼 크게 웃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제대로 웃었던 날이 있던가?. 아니, 즐겁거나 행복해 한 적이 있던가?. 이상하게도 처음 보는 수정이를 보면 그냥 흐뭇한 감정이 들었다.

“수정이는 여기서 뭐해?.”

“엄마 기다려요. 엄마가 매일 7시쯤 퇴근을 하시거든요.”

수정이는 자신의 손보다 훨씬 큰 핸드폰을 가지고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20분 남았어요.”

“그렇구나. 집에서 기다리지. 수정이 같이 예쁘고 귀여운 여자아이가 늦은 시간에 혼자 밖에 있으면 위험하지 않을까?.”

“아저씨도 엄마랑 똑같이 말하시네요. 하지만, 엄마를 빨리 보고 싶은 걸요.”

“음... 수정이는 어디사니?. 아저씨는 102동 사는데...”

“저는 한 달 전에 105동으로 이사 왔어요.”

“그렇구나...”

난 수정이와 한동안 즐겁게 대화를 했다. 어린 꼬마 여자 아이와 대화하는 것은 생각보다 너무 즐거웠다.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나는 6시 50분쯤이 되었을 때, 벤치에서 일어났다.

“아저씨는 이만 가볼게. 수정아 즐거웠다.”

“네. 저도 엄마 기다리는 것이 아저씨 덕분에 지루하지는 않았어요.”

“하하. 안녕.”

“네, 안녕.”

수정이와 대화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서, 난 자꾸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리고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다음날이 되었고, 역시나 퇴근길에서 혼자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는 수정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 발걸음은 전날처럼 수정이에게 다가갔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약 20분간 대화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이사를 가기 2일 전이 되었고, 같은 시간에 역시 수정이가 있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수정이에게 다가갔고, 수정이는 나를 보고 활짝 웃는다.

“오늘 하루 잘 보냈니?.”

“네. 아저씨는요?.”

“뭐. 그럭저럭...”

“그럭저럭 이라면 나쁘지는 않았다는 뜻이죠?.”

“하하하. 그렇지.”

난 수정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런 딸이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상황은 여자를 사귀기도 힘들 실정인데, 결혼은 마치 꿈과 같았다.

“아저씨는 애인 없죠?.”

“왜 그렇게 생각하니?.”

“간단해요. 아저씨가 애인이 있다면 매일같이 같은 시간에 퇴근을 해서 동네 꼬마랑 놀지는 않을걸요.”

“하하하. 그래 아저씨 애인 없다. 수정이가 이모라도 소개 시켜줄려고?.”

“이모가 없는데요. 대신 우리 엄마는 어때요?.”

“엄마?.”

수정이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 엄마 정말 예뻐요.”

“수정이보다 더 예뻐?.”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정말 예뻐요. 착하고, 저를 많이 사랑해주시거든요.”

“그렇구나. 그런데 네 엄마는 이미 결혼을 했잖니. 아빠는?.”

수정이가 잠시 시무룩해진 듯 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수정이 아빠가 돌아가신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작 눈치를 채고 묻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의 무지함을 탓하며 수정이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 아저씨가 괜히 물었나 봐.”

“아니요. 우리 아빠는 그래도... 많은 사람을 구했대요 119 구조대원이셨거든요. 제가 세 살 때, 서울에 엄청 많은 비가 내렸대요. 산사태가 나서 차 여러 대가 흙더미에 묻혔대요. 아빠는 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했지만...”

“..............”

“흙더미 속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을 구하셨대요. 그런데...아빠는 나오지 못하셨대요. 그렇게...하늘나라로 가셨는데...훔. 저도 아빠처럼 용감하고 씩씩하게 살면... 하늘나라에서 저를 보는 아빠도 절 좋아하시겠죠?.”

“분명히 그럴 거야. 수정이를 참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할 거야.”

아빠 없이 자란 수정이었지만, 그 어떤 아이보다 긍정적이고 밝았다. 이렇게 어린 6살의 여자아이도 씩씩하게 세상을 살아가는데, 왜 난 지난 3년간 웃지를 못했을까?. 짧은 대화였지만 수정이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수정이는 엄마랑 둘이 살아?. 다른 가족은 없니?.”

“네. 엄마랑 둘이 살아요. 할아버지랑 할머니는 돌아가셨대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미국에 사신대요. 나중에 엄마가 제가 좀 더 크면 미국에 데려가서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를 보게 해준다고 하셨어요.”

“그렇구나.”

잘 알 수는 없었지만, 수정이 집안은 사연이 있는 듯 했다. 

“사실 아저씨가 수정이에게 할 말이 있어.”

“그래요?.”

“내일이 수정이를 보는 마지막 날이 될 것 같구나.”

“왜요?.”

“이틀 뒤에 아저씨가 이사를 가거든....”

“이사요?.”

내가 이사를 간다는 말에 수정이가 깜짝 놀랐다. 그리고 조금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고작 며칠이었지만, 그새 나랑 정이 든 듯 했다. 물론, 이렇게 수정이와 이별을 하게 되어서 나 역시 매우 아쉬웠다. 나에게 웃음을 찾아 준 꼬마 아가씨였는데...

“내일도 이 시간에 있을 거니?.”

“몰라요.”

시무룩해진 수정이가 고개를 숙이고 대답을 했다. 난 그런 수정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을 했다.

“내일 꼬마 아가씨가 있으면 좋겠는데... 사람은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헤어지는 것도 중요한 법이란다. 아저씨에게 인사 해줄 거지?.”

“.........”

“수정이 엄마 올 시간이 다 됐네. 아저씨는 이만 가볼게.. 내일 보자꾸나.”

“네. 안녕.”

“그래. 안녕.”

수정이를 뒤로하고 집으로 왔다. 못 다한 짐 정리를 해보지만, 조금은 가슴이 아프다. 수정이에게 만남만큼 이별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역시 이별은 쉽지가 않았다.

다음날 같은 시간이 되어서 수정이를 찾았다. 수정이는 나를 보자마자 평소와는 다르게 반갑게 달려왔다. 그리고 나에게 안겼다. 난 수정이를 꼭 안아줬고 팔을 풀었다. 따뜻한 포옹을 한 후, 우리는 평소처럼 나란히 벤치에 앉았다.

“아휴. 수정이가 이렇게 반겨주니,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걸.”

“아저씨가 어제 한 말 생각해봤어요.”

“그래?.”

“아저씨를 오늘 이후로 볼 수 없지만, 제가 씩씩하게 살면 아저씨도 절 생각하겠죠?. 마치 하늘나라에서 우리 아빠가 저를 생각하는 것처럼...”

“그래. 그래. 수정이는 씩씩하고 영특하니까...”

수정이 이야기를 들으며 난 미소를 지었다. 수정이는 어린 아이였지만, 그 누구보다 씩씩하고 강한 사람이었다.

“아참. 아저씨 물어 볼 것이 있어요.”

“뭔데?.”

“자. 여기요.”

수정이가 나에게 스포츠 신문을 건넸다. 수정이의 의도를 알지 못해서 얼떨결에 받았는데, 대충 봐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포츠 신문이었다.

“스포츠 신문 아니야?.”

“네. 맞아요. 아저씨, 스포츠 신문이 슬퍼요?.”

“무슨 말이야?.”

“음... 그러니까. 스포츠 신문을 보면 울게 되나요?.”

“보통은 그렇지 않지.”

스포츠 신문이 슬프냐는 수정이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수정이 말을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무슨 이유가 있기 때문에 물어보는 것일 테니...

“사실은 어제 엄마가 우셨어요.”

“그래?. 왜 우셨을까?.”

“아저씨가 들고 있는 스포츠 신문을 보신 뒤로 한참을 우셨어요.”

“그래?.”

수정이 엄마가 스포츠 신문을 보고 울다니, 도대체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 물어봤는데 대답을 안 하셨어요. 그래서 오늘 하루 종일 스포츠 신문을 봤어요. 엄마가 왜 울었는지 알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아저씨에게 물어보기로 했어요. 제가 너무 어려서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음?. 그래. 잠시만 아저씨가 훑어볼게.”

수정이 말을 듣고 난 스포츠 신문을 1면부터 훑어보기 시작했다. 야구, 축구 등의 프로 스포프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한 장씩 스포츠 신문을 넘기기 시작했지만, 좀처럼 수정이 엄마가 왜 울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음...”

수정이는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유를 알 수 없었으니... 조금은 답답해질 무렵, 내 눈에 들어오는 특집 인터뷰 기사가 있었다. 어?. 어?.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난 그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뜻밖에도 다운이 아빠에 대한 기사였다.

* 최약체로 평가 받던 희망고등학교에 희망을 안겨 준 정민석 감독

* 청룡기 우승을 이끈 정민석 감독을 만나다

1.최약체 고등학교라 평가받던 희망고등학교가 청룡기 우승을 했는데?.

- 희망고등학교가 선수층도 얇고 경험이 적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회에 참가한 어떤 팀들의 선수보다 열정은 뛰어나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선수들을 만나서 전국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는 것은 감독으로서 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2.대회 전 우승을 예감했나?.

- 사실 우승을 예감했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우리 선수들은 경험이 적었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자신은 있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훈련을 했고, 그 누구보다 야구에 대한 열정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야구를 진지하게 하는 선수들에게 딱 하나만 당부했습니다. 즐기자. 즐길 수 있다면 우리는 강한 팀이 될 것 이다라고요.

- 중략 -

8.의족을 차고 계시는 장애인인데, 감독으로서 힘들지 않았나?.

- 사실 현장에서는 선수 못지않게 감독도 땀을 흘려야 합니다. 그런데 다리가 불편해서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만, 그래도 선수들이 믿고 잘 따라와 줘서 포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9.많은 야구인들이 놀라고 있다. 사고 이후 재활을 거치고 현장에 복귀한 원동력은 무엇인가?.

- 야구가 좋았습니다. 평생 야구인으로 살았는데, 다리가 하나 없다고 해서 그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내의 응원이 없었다면 현장에 복귀하는 것이 힘들었을 지도 모릅니다. 

10.부인 역시 청소년 대표까지 지낸 배구 선수 출신이라던데?.

- 그렇습니다. 제가 쫓아다녀서 결혼까지 할 수 있었죠. 운동선수 출신이라 제가 재활을 하는 과정에서도 큰 도움을 주고 이해를 해 준 아내입니다.

- 중략 -

15.마지막으로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딸에게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당신들이 없었다면 현재의 저도 없었을 겁니다. 다시 한 번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인터뷰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는 다운이 아빠와 다운이 엄마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게재가 되어 있었다. 사진 속의 다운이 엄마는 환한 미소를 띠며 그 누구보다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랬구나... 그랬구나..’

마지막 사진까지 본 나는 울컥하며 울음이 터지려고 했다. 그런 나를 보고 수정이가 물었다.

“아저씨도 울어요?.”

“아... 아니. 아니야. 눈에 먼지가 들어갔나 보네.”

난 억지로 울음을 참고, 손으로 눈을 비볐다. 

“아저씨 알아 내셨어요?.”

“아니.”

나의 부정적인 대답에 수정이가 조금은 실망하는 듯 했다. 

“수정아, 엄마 이름이 어떻게 돼?.”

“왜요?. 정 다자 운자, 정다운이 우리 엄마 이름인데... 무슨 상관이 있나요?.”

수정이 입에서 정다운이라는 이름이 나왔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나를 수정이가 의아하게 쳐다봤다. 난 그런 수정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했다.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런데 아저씨가 한 가지 사실은 알아냈단다.”

“뭔데요?.”

“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정이는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를 볼 수 있을 것 같구나...”

“그래요?.”

“그때 아저씨랑 약속 하나 할 수 있겠니?.”

“네.”

수정이는 씩씩하게 대답을 했다. 그리고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수정이는 자신의 약지를 나의 약지에 걸었다. 약속에 대한 증표였다.

“나중에 수정이가 외할머니를 보게 되면....”

“네.”

“사람은 웃으면 행복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라고 전해주겠니?. 수정이는 똑똑하니까 잊어버리지 않겠지?.”

“네. 그런데.... 그게 무슨 말이죠?.”

“말 그대로야. 수정이도 웃으면 행복하지?.”

“네. 행복하면 웃게 되고, 또 웃으면 행복해요.”

“수정이가 웃으면 행복하고, 그런 수정이를 보면 아저씨도 웃게 된단다. 그리고 아저씨도 행복해져... 언제나 밝게 웃어서 남에게 행복도 안겨주고, 자신도 행복할 수 있는 수정이가 되면 좋겠구나.”

“네. 아저씨도요.”

내 말을 듣고 밟게 웃는 수정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수정이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수정아. 아저씨는 이만 가봐야겠구나.”

“아쉽지만, 아저씨도 항상 웃길 바랄게요.”

“그래. 수정이도...”

“아저씨. 안녕.”

“그래. 수정이도 안녕.”

수정이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떠나는 나를 향해 수정이는 환한 미소를 보여줬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다운 미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렀지만, 나 역시 환한 미소를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행복했던, 행복한, 행복해야 할 우리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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