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부에서 계속 됩니다.
1.여러분들의 댓글을 다 봤는데, 이번에도 틀리셨네요.;; 다운이 아빠가 죽는 걸로 생각하시
다니..-_-;;
2.영민이는 다음 작품 주인공입니다. 오해를 하신 분도 계시던데, 저에게 쪽지까지 보내셨더
군요. 영민이를 이 글에서 3번 정도 등장 시킨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글 속 주인공인 민수가 행동할 수록 조언을 주는 역할이죠. 물론, 민수가 과거 회상을
통해 영민이를 만나게 했는데, 학창시절이나 대학 시절에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많이 영향을
받기도 하잖아요. 그런 점을 노린 것이고...
둘째는, 차기 작품의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영민이 캐릭터를 상당히 좋아합니다.
민수가 로맨스(감정적)적 요소가 있다면, 영민이는 냉철하고 이기적이죠. 그것을 미리 드러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3.다운이 엄마는 15부가 완결입니다. 물론, 에필로그가 있기 때문에 2부작 남았지만, 실질적
으로는 다음 편이 마지막이죠.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스토리를 좀 더 길게 쓰고 싶은 마음도 있었
지만, 그럴수록 제가 생각했던 다운이 엄마에 대한 이미지가 훼손이 될까 두려웠습니다.
에필로그는 프롤로그 쓸 당시에 이미 쓰였기 때문에, 이 글을 올리는 순간 전 15부를 써 내려
갈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글을 읽고 계실 때, 전 다운이 엄마와의 작별을 하며 글을 쓰고 있
겠지요.
개인적으로도 아쉬우면서도 설렙니다.
이 글도 많이 사랑해 주실 것을 믿으며, 전 이만 물러갑니다.
감사합니다.다운이 엄마가 사라진 지, 5일이 지났다.
나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퇴근을 하면 매일같이 301호를 방문했지만, 아무도 없는 듯 했다. 도대체 다운이 아빠까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무슨 일이지?. 도저히 감도 잡히지 않았다.
다운이 엄마가 사라지기 전 날부터 서울에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하루에만 600mm가 넘는 비가 내렸다. 아니, 마치 하늘에서 구멍이라도 뚫린 듯 쏟아지고 쏟아졌다. 서울의 일부 지역은 아파트 2층 높이까지의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지만, 비는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5일간 쉬지 않고 비는 쏟아졌다.
301호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며 터벅터벅 401호로 올라왔다. 지친 심신을 이끌고 집에 들어 선 나는 소파에 그대로 몸을 맡겼다. 밖에서는 연신 비가 내리는 소리만 들릴 뿐, 마치 세상에는 나 혼자 있는 듯 했다. 너무나 힘들었다.
“휴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핸드폰으로 다운이 엄마에게 전화를 해보지만, 이제는 연결마저 되지는 않았다. 다시 한 번 한 숨을 내쉬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무력감마저 느끼기 시작했다.
“하아...”
지난번처럼 다운이 엄마가 피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만나보려고 똑같은 방법을 써봤다. 다운이 아빠에게 연락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마저도 실패를 했다. 다운이 아빠 역시 전화가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들 부부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제 3자로서는 알 수 없는 법이었다. 신(神)기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 물어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 누구라는 사람 자체가 없어서 더욱 답답했다.
“쩝.....”
이와 중에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은 더욱 우울해졌다. 밖에 내리는 비를 보고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비라도 오지 않았다면 다운이 엄마를 찾기 위해 사방을 뒤지고 다녔을 텐데...
한참이나 어두운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외롭고 힘들 때는 시끄러운 것이 좋았다. 다운이 엄마를 알게 된 후, 잘 보지는 않았지만 텔레비전을 켰다. 한때, 내 외로움을 달래주던 바보상자... 어차피 볼 것은 아니었지만, 텔레비전의 소리가 내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 그러면 이 시각 우면산 소식 알아보겠습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취재 기자 불러봅니다
- 중략 -
* 아직까지는 산사태 집중 피해 지역인 서초구 예술의 전당 앞 도로부터 사당사거리 사이 도로 통행이 양방향으로 통제되고 있는데요, 서울시와 경찰은 오후 늦게까지는 통행을 재개시킨다는 방침입니다. 현재까지 사망자는 15명, 부상자는 7명, 매몰자는 2명으로 공식 집계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산사태는 우면산 기슭을 따라 모두 10군데에서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뉴스를 하고 있었다. 기록적인 폭우 이후에 뉴스는 매일같이 수해 현장에 대한 뉴스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폭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침수 피해를 보고, 산사태 때문에 인명피해까지 발생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 가만?.
“폭우... 피해... 연락 두절... 사라짐?.”
왜 내가 여태까지 이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걸까?. 다운이 엄마가 갑자기 사라졌다면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운이 아빠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다. 다운이 아빠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친인척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수도 있다. 더구나 최근에 서울에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지 아니한가?. 연락까지 두절인 것을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난 급하게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컴퓨터로 향했다. 파워버튼을 누르고 윈도우 하면이 뜰 때까지 기다렸다.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내 몸을 감싸고 있다. 제발, 제발, 내 생각이 틀리길 바라며...
윈도우 창이 뜨자, 익스플로워 아이콘을 클릭하여 포탈 싸이트로 접속했다. 검색창에 ‘정민석’이라고 입력했다.
“휴우...”
크게 숨을 내쉰 후, 검색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바뀌고, 정민석에 대한 자료들이 뜨기 시작했다. 난 마우스를 이용해서 ‘뉴스 검색’을 클릭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눈에는 정민석에 대한 최근 기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젠장.
* 누리꾼들 고 한명진씨에 대한 애도 물결 이어 - 3시간 전
* 정민석 구한 구조대원 한명진씨 끝내 숨져 - 4시간 전
* 정민석 극적인 구조, 왼쪽 다리게 심각한 부상 입어 - 10시간 전
* 우면산 매몰 된 정민석, 구조 가능하나? - 3일 전
* 정민석 기적의 생존확인 - 3일 전
* L 중학교 야구부, 스승 사고 소식에 발만 동동 - 3일 전
* 전 프로야구 선수 정민석 차량 우면산 산사태로 매몰 확인 - 4일 전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었다. 언론에서 집중 보도하고 있는 우면산 산사태의 피해자가 다운이 아빠였다니, 다행히 다운이 아빠는 목숨을 구한 듯 했다. 몇 개의 기사를 훑어 본 후 나는 자책을 해야 했다.
왜 나는 이 중대한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 다운이 엄마가 사라졌기 때문에 그것에 정신이 팔려 지난 5일간, 텔레비전 뉴스조차 보지 않았던 것이 독이 되었다. 인터넷 기사라도 확인을 했다면, 더 빨리 이 사실을 알았을 텐데...
나는 다시 인터넷 검색을 했다. 다운이 아빠가 입원한 병원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는 다운이 엄마가 있을 것이니...
다운이 아빠가 남한강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난 지체할 것이 없이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고 아파트 정문을 향해 달렸다. 다행히 대기 중인 택시가 있었다. 급하게 택시에 올라 탄 나는 기사에게 외쳤다.
“아저씨, 남한강 병원으로 빨리요.”
***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8시가 넘어 있었다.
급하게 병원 안으로 달려갔다. 다운이 아빠가 있는 곳을 확인하니, 수술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수술실 위치를 확인한 후 천천히 그곳으로 향했다. 수술실은 5층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가 내렸을 때, 수술실 앞에서 초췌해진 모습으로 서 있는 다운이 엄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운이 엄마의 표정은 상당히 어두웠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다운이 엄마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수술실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얼핏 카메라도 보이는 것으로 보아 기자들도 있는 듯 했다. 생각해보면 다운이 아빠와 다운이 엄마의 부모님이나 친인척이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난 쉽사리 다가가기 힘들었다.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 틈 속에 숨어서 다운이 엄마가 나를 발견하길 기다릴 뿐...
다운이 엄마랑 5m 정도 떨어진 곳에서 그녀를 지켜봤다. 다운이 엄마는 간혹 땅바닥을 내려다보긴 했지만, 시선은 거의 수술실 쪽에 고정되어 있어서 나랑 눈을 마주치기는 힘들었다. 다운이 엄마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눈이 너무나 많았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지만, 다운이 엄마가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마음이 급했다. 그래서 잠시 꼼수를 부리기로 했다. 집 열쇠를 바닥에 일부러 떨어뜨렸다.
‘찰캉~’
열쇠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잠시나마 쳐다보았다. 나는 태연한척 열쇠를 주우며 다운이 엄마를 쳐다봤다. 다운이 엄마의 눈은 매우 커져 있었다. 드디어 나를 발견한 것이었다.
열쇠를 주어들고 눈짓으로 다운이 엄마에게 신호를 보냈다. 다운이 엄마는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난 계속 시간을 좀 내달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잠시 후, 나는 그 자리를 벗어나 병원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화장실이 있는 복도는 한산했다.
“음....”
약 3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발걸음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운이 엄마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다운이 엄마는 나에게 걸어오면서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불안한 모습이었다.
“괜찮아요?.”
“어떻게....”
“괜찮냐구요?. 명희씨가 걱정이 되어서 왔어요.”
다운이 엄마의 두 손을 잡고 괜찮냐고 물었지만, 대답을 하지 않는다. 나에게 두 손을 잡히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하는 듯, 계속 주위를 신경 쓰는 모습만 보였다.
“왜 연락 안 했어요?.”
“그이가 수술 중이에요.”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저... 시간 없어요. 시부모님도 와 있어요.”
“날 생각하긴 했나요?.”
“미안해요. 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다운이 엄마와 나는 서로 대화가 되지 않았다. 다운이 엄마를 걱정하는 나와 지금 현재가 불안한 다운이 엄마, 우리는 서로의 말만 하고 있었다.
“갈게요.”
“..........”
다운이 엄마는 내 두 손을 뿌리치고 돌아섰다. 그리고 수술실 앞으로 가려는 듯 했다. 난 그런 다운이 엄마를 잡지 않았다. 대신에 뒤에서 다운이 엄마에게 말을 했다.
“꼭... 연락해야 해요. 꼭이요.”
그러나 다운이 엄마는 대답을 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내 시야에서 벗어났다. 채 1분도 되지 않은 다운이 엄마와의 재회였지만, 그래도 안심은 되었다. 그러나 왜 자꾸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인지...
씁쓸함을 느끼며 병원을 빠져나와야 했다. 병원에 나오기 전에 수술실 앞을 지나쳤는데, 다운이 엄마는 자신의 두 손을 맞잡고 기도라도 하는 듯 했다. 여전히 수술실에는 불이 들어와 있었다.
***
사람에게 있어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기다림이었다.
병원에 다녀오고 나서 일주일이 지났지만, 다운이 엄마에게는 연락이 없었다. 다운이 아빠가 큰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정신이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다운이 아빠에 대해서는 일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억지로 뉴스를 보지도 않았고, 인터넷으로 기사를 검색하지도 않았다. 다운이 아빠에 대해 알수록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왠지 다운이 엄마 연락을 기다리는 내가 싫어졌고, 그만큼 힘들었다.
다운이 엄마의 연락을 기다리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이대로 다운이 엄마가 나에게 연락을 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내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좋은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마냥, 다운이 엄마에게 매달릴 수 밖 에...
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9월이 되면서, 무더운 여름도 이제는 서서히 물러가는 시기가 된 것이었다. 다운이 엄마를 못 본 지, 2주가 넘었기 때문에 나는 피가 마르는 심정이었다. 2주 사이에 연락을 한 번 해봤지만, 여전히 전화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약 두 달간 다운이 엄마와 함께 보낸 추억을 기억하며 버티고 또 버텼다. 하루하루 다운이 엄마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고, 난 삶의 활력이 없었다. 제발 나에게 돌아오라며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하루를 피 말리면서 보내고 힘없이 잠자리에 드는 날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10시.
나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다운이 엄마의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핸드폰 화면의 발신자 표시에 ‘이명희’라는 이름이 떴을 때, 난 다운이 엄마를 처음으로 마음속에 담아둘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크게 숨을 한 번 내뱉고 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저 명희예요.
“네. 알아요. 제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요?.”
- 지금 볼 수 있나요?.
“지금요?. 물론이죠. 어디에 있나요?.”
- 아파트 앞 벤치에 있어요. 전에 우리가 봤던 곳이요.
“그래요?. 기다려요. 지금 달려갈게요.”
전화를 끊고 지체 없이 밖으로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시간도 아까워서 계단을 이용해서 1층으로 내려갔다. 이제 조금만 더 달려가면, 다운이 엄마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그녀가 나에게 다시 오는구나.
숨 가쁘게 아파트 앞 벤치에 도착했을 때, 다운이 엄마는 가로등이 비치는 곳에서 다소곳이 서 있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그대로 달려가서 다운이 엄마를 확 껴안았다.
“보고 싶었어요. 정말 보고 싶었어요.”
다운이 엄마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러나 다운이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껴안았고, 얼마 후 다운이 엄마는 내 품에서 벗어났다. 그녀의 얼굴을 보니 썩 밝아보이지는 않았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던 듯...
“왜 이제야 연락을....”
“나 민수씨에게 할 말 있어요. 아니, 부탁이 있어요.”
다운이 엄마는 나를 보고 처음 하는 말이 ‘부탁’이 있다는 말이었다. 부탁이 있다는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직감적으로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헤어지자고 하는 것인가?.
“내 부탁 들어줄 수 있죠?.”
“....................”
“들어 줄 거죠?.”
다운이 엄마의 입이 조금씩 떨려왔다. 정말 이별을 선고하려는 건가?. 나는 부탁을 들어준다고 차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설마...이별...”
“민수씨, 잠시 만요.”
이별을 원하냐고 물어보려는 찰나에 다운이 엄마가 나의 말을 끊었다.
“내가 말할게요. 부탁이 있어요. 지금 이 순간부터... 아무 말도 하지 말아주세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들어주기만 하세요.”
“무슨?.”
“부탁이에요. 제가 이 자리를 벗어나는 그 순간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말아주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말라니?. 다운이 엄마의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러나 직감적으로는 좋은 분위기는 아닌 듯 했다. 다운이 엄마의 눈이 굉장히 슬퍼 보였기 때문이었다.
“지난 시간동안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힘들었어요. 이런 말을 민수씨에게 하는 지금의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만큼 싫어요. 그리고 또 아파요.”
“........”
“민수씨랑 함께 했던 시간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어요.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
다운이 엄마는 나에게 이별을 고하려는 듯 했다. 난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다운이 엄마에게 이별 인사를 들을 자신이 없었다.
“나에게 물어 본 적 있죠?. 언제 내 마음 속에 민수씨가 들어왔느냐고.....”
“...........”
“과거의 민수씨는 분명 소년이었어요. 그런데 다시 만났을 때는 멋진 청년이 되었더군요. 그래도 그때까지는 나에게는 멋진 조카 같은 사람이었어요.”
“.........”
“...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민수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어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민수씨가 집에 가서 나 혼자 있게 되면 허전하고 외로웠어요.”
“.........”
“그러다가 내가 나만 아는 아픔을 민수씨에게 말했을 때.... 그것을 민수씨가 감싸줬을 때... 그때 인정할 수 밖 에 없었어요. 민수씨가 이미 내 마음속에서는 한 남자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
“만약에 민수씨가 남자로 느껴지지 않았다면... 그런 아픔도 이야기를 할 수 없었을....”
“............”
“처음에는 저도 힘들었어요. 민수씨를 남자로 인정하긴 했지만... 그래도 민수씨와 나는 사회적인 신분도 다르고... 도덕적으로는 옳지 않잖아요.”
“...........”
“민수씨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민수씨는 나에게 계속 다가왔어요. 그리고 나도 더 이상 밀어낼 수가 없었어요. 민수씨가 너무나 좋았으니깐.... 너무나 사랑했으니깐....”
다운이 엄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았지만, 그녀는 살짝 고개를 돌려 손으로 눈물을 닦아 냈다. 그리고 나를 다시 쳐다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이가 수술을 했어요.”
다운이 아빠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왼쪽 다리를 결국에는 절단을 했어요. 큰 바위에 깔렸었거든요.”
충격이었다. 다운이 아빠가 다리를 잃을 정도의 부상을 당했었다니... 비교적 큰 수술을 한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신체 부위를 잃는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나 그 사람에게 잘못한 것이 너무나 많아요. 내가 가졌던 상처를 아무 것도 묻지도 않고 받아 준 남자였는데... 난 그 사람을 배신 했어요.”
“..................”
다운이 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더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큰 충격을 받은 나 역시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그 사람의 여자가 되겠다고 25년 전에 맹세를 했는데.... 나 그 사람이 사고를 당한 날...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주고... 그 사람의 침대에서.....”
“..............”
다운이 엄마는 아랫입술을 강하게 한 번 깨물었다.
“기억나요?. 우리가 마지막으로 산책했던 밤, 비가 오기 시작한 날이요. 다운이 아빠에게 전화가 왔었죠.”
“...............”
“평소에는 그 시간에 전화를 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 날은 나에게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더군요.”
“...............”
“그 사람이 왜 나에게 전화를 했는지, 그때는 알 수가 없었어요. 그때는.... 그때는....”
“............”
“민수씨는, 그 사람이 사고 난 장소를 알겠죠?. 새벽시간에 그 사람은 왜 그곳에 있었을까요?. 수술이 끝나고 정신을 차린 후, 나는 그게 너무 궁금했어요. 그 시간에 왜 거기에 갔는지... 물어 봤어요.”
“............”
“대답을 안 했지만.... 결국 그 사람은 말했어요. 그 사람은 나 몰래 다운이를 계속 찾고 있었나 봐요. 다운이 소식을 듣고 그 시간에....”
“.............”
“내가 다른 남자랑 시간을 보내고 있던 시간에 그 사람은 다운이를 찾으려고......”
다운이 엄마 말을 들으면서 나도 혼란스러웠다.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나에게 전화를 해서 다운이를 찾는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혹시나... 혹시나 못 찾으면 내가 실망 할 까봐요. 그렇게 나를 신경 써주는 사람인데......”
“..............”
“결국에는 다운이는 찾지 못하고.... 그 사람은 다리를 잃었어요. 나 때문에......”
“..............”
다운이 엄마가 결국에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민수씨. 우리가 봤던 영화 기억나요?.”
난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운이 엄마와 봤던 영화라면 텔레비전을 통해서 본 ‘생활의 발견’이라는 영화임이 분명했다.
“생활의 발견... 그 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나와요. ‘우리 인간이 되기는 어려워도, 괴물은 되지말자’라는 대사요.”
“.............”
“그 사람을 배신하고 다른 남자랑 사랑을 즐긴 나는 인간이었을까요?.”
“....그...그건...”
내가 대답을 하려고 하자 다운이 엄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나 더 이상 괴물로 살고 싶지 않아요. 그 사람은 이제 내가 필요해요. 나 인간이 될 수 있겠죠?.”
“................”
“민수씨가 도와줄 수 있겠죠?.”
재차 묻는 다운이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 시작한다. 나는 가슴이 미어져서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아프다. 너무나 아프다.
“민수씨. 고마워요. 내 부탁을 들어줘서....”
말을 마친 다운이 엄마는 나를 쳐다봤다. 그녀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지고 있지만, 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뒤를 돌아 어둠속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다운이 엄마는 나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가지...마.”
가슴을 쥐어짜면서 억지로 내뱉었지만, 다운이 엄마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눈에서는 더 이상 그녀를 볼 수 없었다. 난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느새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이렇게 끝나는 건가.
다운이 엄마는 나를 떠나는 건가.
다운이 엄마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이제는 정말 작별 인사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항상 행복해야 해요. 그리고 항상 웃어야 해요.
명희씨. 아니, 다운이 엄마.
이제 추억이 되어야 할 그 이름.
이젠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