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부에서 계속 됩니다.
댓글에 대한 피드백을 하자면,
1.다운이는 죽지 않았습니다. 왜 죽었다고 생각하셨는지들...;; 도대체 무슨일 일까요?.
다음 편에 보시면...;;
2.항상 많은 관심과 사랑 감사합니다.다운이 엄마는 멍하니 거실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더 이상 울지는 않았지만, 심적으로 충격이 큰 듯 했다. 난 거실 소파에 앉아 그런 다운이 엄마를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물었지만, 다운이 엄마가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래도 마음의 정리 할 시간이 필요한 듯 했다.
다운이가 3년 만에 집에 전화를 했다는 것은 하나의 사실을 유추하게 만들었다. 다운이가 세 달 전에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갔다는 다운이 엄마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이다. 또한 3년 만에 전화를 했다는 사실은 3년 전부터 다운이가 집에 없었다는 뜻도 되었다. 그렇다면 3년 전에 어떤 일을 계기로 다운이가 집을 나갔다는 것인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 역시도 궁금했다. 10여 년 전의 다운이는 외모도 예뻤지만, 상당히 명랑하고 활발한 아이였다. 나이를 계산해 보면 다운이가 22살이 되어서 집을 나갔다는 말이 되는데, 사춘기도 아닐 것이고... 아무리 생각해도 3년 전에 다운이가 집을 나갔을 것이라는 사실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물 좀... 가져다 줄래...”
“에?. 네. 잠시 만요.”
상당히 긴 시간 지난 이후에 다운이 엄마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소파에서 일어난 나는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에서 물을 꺼냈다. 그리고 컵에 물을 따라 그것을 들고 다운이 엄마 옆으로 다가갔다. 다운이 엄마의 몸이 축 쳐져 있었다.
“아줌마 드세요.”
다운이 엄마는 두 손으로 물이 든 컵을 들었다. 그리고 컵에 입을 대고 아주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컵에 든 물이 절반쯤 사라졌을 때, 다운이 엄마는 컵에서 입을 뗐다. 그리고 나는 다운이 엄마에게서 컵을 건네받았다.
“아줌마. 괜찮으세요.”
“휴우....”
다운이 엄마는 대답대신 긴 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인가요?. 다운이가 3년 만에 전화를 했다니요?. 다운이는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간 게 아니었나요?.”
나는 궁금했던 것들을 다운이 엄마에게 물어 보았다. 다운이 엄마는 연속해서 질문을 하는 나를 힘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도통 입을 열지는 않았다. 나는 그런 다운이 엄마 옆에 앉고 말을 이어갔다.
“이야기 해보세요. 무슨 일 있으면 저도 도와야죠.”
“민수.. 네가 도와... 줄 일은 아니야.....”
다운이 엄마는 나의 시선을 외면하며 대답을 했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포기할 수 없었다. 진실을 알고 싶었다.
“그래도 해보세요. 제가 남인가요. 마음에 담고만 살면... 힘들어요. 제가 이야기 들어 드릴게요.”
“아아.....”
다운이 엄마는 다시 울음이 터지려는 듯 했다. 도대체 3년 전에 다운이가 왜 집을 나갔고, 다운이 엄마는 이렇게 힘들어 하는 걸까?. 다운이 엄마가 더 이상 울지 않으려는지 아랫입술을 깨무는 모습이 보였다.
“아줌마......”
“그.... 그게.....”
다운이 엄마를 부르면서 내가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다운이 엄마를 안심 시키려는 행동이었는데, 내가 두 손으로 손을 잡고 있자 다운이 엄마가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네. 천천히 이야기 해보세요.”
“아아.... 그...그게... 먼저 나 민수에게 거짓말을... 했어. 세 번이나....”
“거짓말이요?, 다운이가 캐나다에 간 것이 아니죠?.”
다운이 엄마가 나에게 세 번이나 거짓말을 했다고 했다. 그런데 도저히 무엇을 거짓말 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딱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다운이가 캐나다에 가지 않았다는 것. 그렇다면 두 가지는 뭘까?,
“맞아... 다운이는 캐나다에 가지... 않았어. 짐작했겠지만... 3년 전에... 집을 나갔어.”
“...............”
“기억나니?. 예전에 내가.... 배구 선수... 였다는 것....”
“네. 설마 배구 선수가 아니었어요?.”
분명히 어렸을 때, 다운이 엄마가 배구 선수 시절 받았던 메달을 봤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왜 갑자기 배구 선수 시절 때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지... 도저히 어떤 이야기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예전에... 중학교 이후로... 배구를 그만 뒀다고... 했을 거야.....”
“네. 그랬죠.”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 배구를 했어.... 청소년대표에도 뽑혔었고....”
다운이 엄마의 말을 듣고 약간은 충격을 받았다. 고등학교 시절 청소년 대포에도 뽑힐 정도였는데, 왜 나에게 거짓말을 했었을까?. 그리고 도대체 다운이와 배구 선수 시절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게... 두 번 째.... 거짓말이야.... 마지막으로.... 한 거짓말은 내 나이는 46살이 아니야.... 아저씨보다 2살 어려...”
“그러면 43세라는 거예요?. 그러면 다운이가 25살이니?. 아줌마........”
“그래... 나 18살 때... 다운이라는 가지고.... 19살 때 다운이를 낳았어....”
그렇다면 어린 나이에 다운이를 가지면서 배구 선수를 그만 뒀다는 이야기인데... 그게 다운이의 가출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요즘에는 결혼을 늦게 하는 추세지만, 18-9세 때 결혼을 하더라도 그 누구보다 잘 사는 사람이 많은 세상인데... 19살 때 애를 낳는 것이 흠은 아닐텐데... 왜 다운이 엄마는 내게 거짓말을 했을까?.
“휴우......”
“계속 말씀하세요.”
“그....그게.....”
아직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다운이 엄마는 다시 뜸을 들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본격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았는데, 다운이 엄마는 용기가 필요한 듯 했다.
“털어 놓으시면.... 시원하실 거예요.”
“아...저씨도 자세히 모르는 이야....기야....”
“네....”
“그.... 그게. 25년 전이었어....”
다운이 아빠도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는 다운이 엄마의 이야기. 마음의 정리가 된 다운이 엄마의 입에서 25년 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가슴에 묻어뒀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다운이 엄마의 이야기는 아주 길었다. 거의 2시간 동안 이어졌는데, 난 다운이 엄마 입에서 나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듣기만 했다. 다운이 엄마가 18살 때, 즉, 25년 전부터 시작된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랬다.
***
다운이 엄마는 18살 때, 배구 선수 생활을 했다. 청소년 국가대표로 뽑힐 만큼 실력도 출중한 편이었다. 1986년 아시아 청소년 배구 대회가 중국에서 개최가 되었고, 다운이 엄마는 12명의 최종 엔트리에 포함이 되었는데, 그녀는 유니폼 가슴에 국가대표 마크를 달고 국제대회를 겪게 되어서 매우 설렜다고 했다.
그 해 중국 북경에서 열린 아시아 청소년 배구 대회의 여자부 경기에서는 한국이 세계적 강호인 중국과 일본을 연파하며 극적으로 우승을 하게 되었고 다운이 엄마는 득점, 공격 성공률, 블로킹의 순위에서 1위를 하며 대회 득점왕과 MVP를 받았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다운이 엄마는 자신이 미래의 국가대표가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예상보다 좋은 1위라는 성적으로 대회를 마친 대표단은 숙소에서 대대적인 파티를 열었다고 했다. 그동안의 고생한 대표단을 위로하기 위한 자리였는데, 마음껏 먹고 동료들과 수다를 떨었다고 했다. 다음날 귀국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이 날만큼은 코치진도 대표단을 터치를 하지 않았다.
다운이 엄마 역시 분위기에 취해 동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아무리 즐거운 파티도 한없이 할 수는 없는 법, 자정이 넘어가면서 대표단의 선수들은 하나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귀국을 하기 위에 잠을 자야하기도 했지만, 대회 내내 긴장했던 것들이 모두 풀려버리자 매우 피곤함을 느끼기도 했다.
방은 2인 1실이었는데, 귀국 전 날이었던 그 날 밤은 다운이 엄마 홀로 방을 쓰게 되었다. 같이 방을 썼던 동료가 오늘 같은 날은 잠을 자기 싫다며 자신과 마음이 맞는 동료들 방에 가서 밤 새 수다를 떤다고 했다.
다운이 엄마는 침대에 누워서 많은 생각을 했다. 앞으로 자신이 어느 실업팀에 가게 될지, 그리고 국가대표로 출전을 해서 어떤 활약을 하게 될지, 특히 이번 대회를 겪으면서 많은 자신감마저 얻게 되어서 자신은 배구 선수로 크게 성장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다운이 엄마는 그렇게 잠이 들었다.
다운이 엄마가 잠이든지, 얼마의 시간이 되었을까?. 다운이 엄마는 매우 답답함을 느꼈다. 그리고 무겁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운이 엄마가 잠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누군가에게 제압이 되어 있었다.
“조용히... 하자. 금방 끝날 거야.”
다운이 엄마의 몸에 올라 탄 남자가 어둠 속에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다운이 엄마는 너무나 무서웠다고 했다. 그래도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온 힘을 다해 반항했다. 하지만, 어둠속에서 자신을 짓누르는 남자의 힘이 너무나 강했다.
다운이 엄마는 점점 지쳐갔다. 그리고 정신도 혼미해져 갔다. 눈에서는 자꾸 눈물이 흘렀다. 어느새 다운이 엄마는 자신의 몸에서 옷이 모두 벗겨짐을 알 수 있었지만, 수치스러워도 자신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 이거야... 후후. 내가 원하던 게...”
어둠속의 남자는 비열한 웃음을 남기며 다운이 엄마를 유린했다. 다운이 엄마의 온 몸을 핥았고 손으로 거칠게 매만졌다. 그리고 남자의 물건이 다운이 엄마의 몸속으로 들어왔을 때, 다운이 엄마는 작은 신음을 내며 정신을 잃어버렸다.
다운이 엄마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새 아침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대표단 선수들이 분주히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잠에서 깬 다운이 엄마는 자신의 몸을 훑어봤다. 다행히 옷을 모두 입고 있었다. 그 순간 다운이 엄마는 자신이 악몽을 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운이 엄마의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신이 잔 침대의 시트에는 밤새 자신의 몸을 유린한 남자의 흔적이 있었다. 아니, 다운이 엄마 자신의 처녀가 깨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 꿈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다운이 엄마는 화장실에 달려가 자신의 아랫부분을 살펴보았다. 피의 흔적이 보였다. 그리고 다운이 엄마는 주저앉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다운이 엄마는 두려웠다. 자신이 더럽혀짐을 누가 안다면 정말 죽고 싶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 몸이 떨려왔다. 머릿속은 뒤죽박죽 이었다. 다운이 엄마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계속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다운이 엄마는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더러워진 자신의 몸을 씻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묻은 흔적을 이불로 덮어뒀다.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으니...
무언가에 홀리는 것처럼 다운이 엄마는 웃지를 않았다. 김포 공항에 도착을 했을 때, 수많은 취재진들이 대표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기자들이 가장 관심이 있어 하는 선수는 이명희, 즉 다운이 엄마였다. 득점왕과 대회 MVP를 받았기 때문에, 차세대 국가대표의 에이스라는 소리도 들려왔으니...
많은 기자들의 연속된 질문에 다운이 엄마는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했고, 표정도 관리가 되지 않았다. 다운이 엄마는 이 상황이 전혀 즐겁지도 않았고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도 아니라 생각했다. 밤새 자신을 더럽힌 어둠 속에 있던 남자의 잔상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자신을 괴롭혔다.
“명희야. 웃어야지... 그래야 행복해 보이고... 즐거워 보이지 않을까?.”
딱딱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다운이 엄마의 뒤에서 누군가 조용히 말을 했다. 그 순간 다운이 엄마는 소름이 돋았다. 누군지 보지 않아도. 그 남자가 밤새 자신을 유리한 남자임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그 남자는 대표단 코치 중 한 사람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 대표단은 해체가 되었다. 다운이 엄마는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다운이 엄마는 아무 의욕도 없었다. 모교 배구팀에서 다운이 엄마를 애타게 불렀지만, 그녀는 당분간 운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방에 틀어 박혀서 다운이 엄마는 많은 생각을 했다. 부모님께 사실을 알려서 그 코치를 강간죄로 신고를 할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자신이 더럽혀짐이 세상에 드러날 까봐 그렇게 행동하기에도 힘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더러운 년이라며 손가락질을 할 것 같았다.
대표단이 해체가 될 때, 그 악마 같은 코치가 다운이 엄마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며 묵언으로 입을 열지 말 것을 협박했다. 다운이 엄마는 비열한 그 코치 때문에 한없이 무너져 갔다. 그리고 눈물만 흘렀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고, 다운이 엄마는 자신의 마음을 어느 정도 정리가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무너지면 그 비열한 코치에게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배구 선수로 성장을 해서 언젠가는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다운이 엄마는 암흑의 동굴에서 벗어나 어렵게 세상으로 나왔다. 그리고 배구 코트로 돌아갔다.
많은 사람들이 배구 코트로 돌아 온 다운이 엄마를 반겼다. 다운이 엄마는 그들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웃고 있는 사람은 최소한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아무 일도 없는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으로 보일 테니...
열심히 땀을 흘리며 운동을 했다. 좀 더 높은 곳으로, 좀 더 자신이 힘이 생기는 곳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의지였다. 그러나 운동을 다시 시작한 후, 한 달이 지났을 때, 다운이 엄마는 자신의 몸에서 이상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생리를 하지 않게 되었고, 예전과 달리 몸이 피곤했다. 식사를 잘 하지 못하게 되었고, 심하지는 않았지만 오심(토할 것 같은 느낌) 증상도 있었다. 다운이 엄마는 직감적으로 임신에 대한 걱정을 했다.
다운이 엄마는 자신이 가장 믿었던 학교 선배와 산부인과를 찾았다. 그래도 설마 하는 심정이 있었지만, 결과는 임신 8주였다. 다운이 엄마는 큰 충격에 빠졌다. 학교 선배는 누구의 아이냐고 물었지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뱃속에 아이가 있음을 알게 된, 다운이 엄마는 다시 운동을 그만둬야 했다. 부모님께 말을 하고 낙태를 하자니, 자신이 강간당했던 사실을 고백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다운이 엄마의 마음을 괴롭힌 것은 자신의 뱃속에 있는 태아였다.
비록 자신이 원하지 않는 임신이었지만, 뱃속에 있는 하나의 생명체가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다운이 엄마는 낙태도 살인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비열한 남자의 씨를 받게 되었지만, 태아와 그 남자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공식적으로는 아무 이유 없이 한 달 정도 운동을 그만뒀고, 그것은 다운이 엄마가 인생 최대의 고민을 한 시기이기도 했다. 결국에 다운이 엄마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을 했다. 문제는 아이의 아빠였다.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이가 강간당해서 낳은 아이라는 사실을 알리기는 싫었다.
18살이었던 다운이 엄마의 머릿속에서 생각해 낸 방법은 자신의 뱃속에 있는 아이의 아빠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아빠로 지목된 사람이 바로 다운이 아빠인 정민석이었다.
당시에 다운이 아빠는 다운이 엄마보다 학교 1년 선배였다. 나이는 다운이 아빠가 2살이 많았지만, 다운이 아빠가 1년을 유급을 해서 둘 사이에는 1학년 차이 밖에 나지 않았다. 다운이 아빠는 야구팀 선수로 있었는데, 당시에 배구팀에 있는 다운이 엄마에게 반해 근 2년간 쫓아다녔다.
다운이 아빠는 야구팀에서도 거의 두각을 내지 못하고 외모도 좋지 않았다. 까만 피부를 가지고 등치만 큰 사람이랄까?. 고교시절 다운이 아빠의 별명은 고릴라였다고 했다. 그에 반하여 다운이 엄마는 청소년 국가대표 에이스까지 지냈고 외모도 출중했다. 당연히 다운이 엄마는 다운이 아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었다. 주위의 누가 보더라도 둘은 어울리지 않았으니...
다운이 엄마는 다운이 아빠를 찾았다. 그리고 연락을 받고 온 다운이 아빠에게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리고 이 아이의 아버지가 될 수 있냐고 물었다. 다운이 아빠는 매우 놀라는 한 편, 다운이 엄마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도 했다. 그러나 다운이 엄마는 대답대신 다운이 아빠에게 잔인한 제안을 했다.
“선배에게 매우 잔인한 일이겠지. 이런 말 하게 되어서 너무 미안해. 하지만 나를 위해서, 아니 아이를 위해서 더 이상 묻지 말아줘.... 미안해. 정말 미안해... 아이의 아빠가 되어준다면... 나도 선배의 여자가 될게... 아이를 위해서.... 평생..... 묻지 말아줘....”
어린 나이였지만, 다운이 엄마는 자신이 한 말이 한 남자에게 엄청난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 없었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이기심이라고 할 지라도...
다운이 엄마가 아랫입술을 강하게 물며 이야기를 했고, 그녀의 입가에는 피가 흘렀다. 다운이 아빠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아이의 일에 대해서는 평생 묻지 않음을 다짐했다.
많은 논란이 발생했지만, 그렇게 가족은 탄생이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다운이 엄마는 부상을 핑계로 배구 계에서 떠났고, 더 이상 학교를 다니지도 않았다. 차기 국가대표 에이스가 예정된 선수가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언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았던 세상이라 금세 잠잠해졌다.
두 사람은 그렇게 결혼을 하게 되었고, 반년 뒤에 다운이가 태어났다. 다운이가 태어난 그 날, 다운이 아빠는 펑펑 울었다. 그리고 다운이 엄마에게 말을 했다. 고맙다고... 너무나 고맙다고.... 그 말을 듣고 다운이 엄마는 가슴이 미어졌다. 하지만, 다운이 아빠 앞에서는 울지 않았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환한 미소를 보여줄 뿐...
다운이를 낳고 모든 것이 기타의 가족처럼 보여줬다. 특히 다운이 아빠는 단 한 번도 다운이에 대해서 다운이 엄마에게 묻지도 않았고, 다운이를 친딸처럼 예뻐하고 사랑했다. 향후에 다운이 아빠가 불임임이 알려지면서는 오히려 더욱 더 다운이에게 애착을 가지는 듯 했다.
세 가족은 행복했고, 평안했다. 그게 영원할 듯 했다.
그렇게 22년이 지났다.
다운이는 대학 생활을 열심히도 했지만, 대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았다. 비록 학생이었지만, 성인이라면 자신이 쓸 돈은 스스로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다운이가 22살이 되면서 다운이 엄마도 40대가 되었다.
물론, 모든 연령대에서 건강이 가장 중요했지만, 40대부터는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는 말을 텔레비전의 교양 프로그램에서 우연찮게 본 다운이는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부모님 건강검진을 받게 했다.
애써 괜찮다라는 부모님을 직접 모시고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게 한 다운이였는데, 문제는 건강검진의 결과가 나온 날이었다. 이날 다운이가 직접 가서 건강검진의 결과를 받아보았는데, 처음에는 건강검진의 결과가 잘 못 된 줄 알았다. 다운이는 혈액형 부분을 한동안 쳐다보았다.
“나랑 엄마가 O형인데, 어떻게 아빠가 AB형일 수 있지?.”
자신이 학교에서 배웠던 것에 따르면 아버지가 AB형, 어머니가 O형이라면 절대 O형이 나올 수 없었다. 혈액형이 사실이라면 다운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니게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병원 측에 문의를 했고, 병원 측은 검사에 아무 문제도 없다는 답변을 했다.
충격을 받은 다운이는 당장 집으로 달려가 부모님께 따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자신의 뿌리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출생에 어떤 비밀이 있는지 알려달려고 울며 소리를 쳤다.
그동안 다운이에게 감춰왔던 사실이 들통이 나면서, 다운이 엄마와 아빠 역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다운이에게 사실을 알려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운이 엄마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다운이 아빠는 다운이에게 크게 시달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다운이는 자신의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강력하게 물어왔다. 그러나 다운이 엄마는 강간당해서 너를 낳았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 악마 같은 남자가 다운이 아빠라고 말할 수도 없었고, 인정할 수도 없었다. 침묵. 단순히 다운이가 이해해 주길 바랐다.
다운이는 배신감이 들었고, 자괴감이 들었다. 그런데 부모님이 모두 입을 닫고 이야기를 해주지 않자, 집을 벗어나 밖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마시지 않던 술을 마셨고, 외박을 하는 경우가 잦았다. 다운이 아빠가 그런 다운이를 잡으려고 애를 썼지만, 다운이는 내 친아버지도 아니면서 웬 참견이냐며 소리를 쳤다. 다운이 아빠의 가슴에 상처가 하나 둘씩 생겼다.
그렇게 가족 간의 골이 깊어진지 1년이 지나고, 다운이가 다운이 아빠와 엄마에게 충격적인 선언을 했다.
“나, 임신 했어”
다운이 엄마가 충격에 빠지며 쓰러졌다. 다운이 아빠는 다운이에게 누구의 자식이냐고 힘겹게 물었지만, 다운이는 알려주지 않았다.
“내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차피 당신도 내 아버지가 아니니... 말릴 생각 마. 나 이 아이 낳을 거야....”
다운이의 말에 다운이 아빠는 크게 상심을 했다. 그러나 다운이가 아이를 낳는 것은 말려야 했다.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애를 낳는 것은 큰 고통이 뒤따름을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
“나 이 아이 낳을 거라니까. 당신이 뭔데...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데?.”
짝.
다운이 아빠가 자신도 모르게 다운이의 뺨을 쳤다. 다운이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손찌검이었다. 다운이는 자신의 뺨을 만지며 다운이 아빠를 노려봤다. 다운이 아빠는 자신이 실수함을 깨달으며 말을 했다.
“미안하다.... 다운아.... 그 그게..”
“저질이야.”
다운이는 그렇게 집을 떠났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
다운이 엄마의 긴 이야기가 끝났다. 나는 꿈쩍도 하지 못했다. 내 인생의 이야기가 아니었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안타까웠다. 드라마에서나 볼 것 같은 한 여자, 아니, 한 가족의 굴곡어린 인생사.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휴우...........”
다운이 엄마가 한숨을 내뱉는다. 그 모습이 너무나 처량해 보였다. 그리고 불쌍해 보였다. 내가 다운이 엄마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러나 방법을 몰랐다.
“그 후.... 아저씨랑 난.... 다운이를 찾아 다녔어.... 사람도 고용해 봤지만.... 찾을 수 없었지. 혹여나 이 세상 사람이.... 아닐까.... 걱정도 했지만.... 아저씨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말랬어... 우리 딸.... 우리 딸 다운이는.....잘 지낼 거라고.... 언젠가는..... 돌아 올 거라고..... 기다리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
“힘들어도..... 웃었어..... 그래야..... 행복해.... 보이잖니.....”
내 가슴마저 미어지는 듯 했다. 아, 불쌍한 여자.
“민수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
“..........”
“이제 좀....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것..... 같아....”
“.... 네”
“물 한 잔 가져다.... 주겠니?.”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에 있는, 냉장고로 향했다. 그리고 물통을 꺼내 컵에 물을 따랐다.
“....드세요.”
“고마....워.”
다운이 엄마에게 다가가 물이 든 컵을 건넸다. 이번에는 다운이 엄마가 물 한 잔을 다 마셨다. 장시간 이야기 하면서 입이 바싹 마른 듯 했다. 물을 마신 다운이 엄마가 바닥에 컵을 내려 놓았다.
“다운이가.... 전화해서... 뭐라고 하던가요?.”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이제야 물어봤다. 다운이가 전화를 해서 뭐라고 말을 했을지. 이제는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집에 돌아오기로 마음이라도 먹었을 수도 있으니...
“잘 지낸대. 그리고 아저씨에게는 자신이 전화한 것을.... 말하지 말래....”
“음.”
“무정 한 것..... 3년 만에 연락을......해서....한다는....소리가....”
다운이 엄마는 다운이에게 섭섭해 하는 눈치였다. 그런 다운이 엄마를 보고 나는 좀 더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음. 긍정적일 수도 있어요. 연락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음. 가족이 생각났다는 것을 뜻하잖아요. 그리고 아저씨에게 말하지 말라는 것은... 물론, 아직까지는 마음의 정리가 안 된 것일 수도 있어요... 역으로 생각하면 나중에는 아저씨에게 연락 왔다는 사실을 말해도 된다는 뜻이니깐요. 걱정 마세요. 돌아 올 겁니다. 다운이는....”
“그... 그럴까?.”
“네. 반드시... 집으로 돌아 올 거예요.”
긍정적인 내 의견에 다운이 엄마가 희미하게 웃는다. 나 역시 다운이 엄마를 마주보고 웃어줬다.
“미안하구나... 저녁도 못 먹고.... 시간이 벌써.... 내가 조금 지쳐서 그런데.....”
“괜찮아요. 오늘은 푹 쉬세요.”
“다음에.... 다음에.... 맛있는 저녁.... 해줄게...”
“네. 다음에 꼭 해주시고....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드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기운이 많이 빠져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다운이 엄마를 부축했다. 그리고 안방으로 데려가 침대에 누울 수 있도록 도와줬다. 이불까지 덮어 준 후, 다운이 엄마에게 인사를 했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쉬세요.”
“저... 저기 민수야.”
밖으로 나가려는 나를 다운이 엄마가 불렀다.
“네?.”
“지켜... 줄 수 있지?.”
다운이 엄마의 말에 난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다운이 엄마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바라 본 후 나는 301호를 나섰다.
집으로 돌아 온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한 포탈 싸이트에 접속을 해서 ‘옛날 신문’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검색 키워드는 ‘이명희, 배구’였다. 다행히 옛날 신문에서는 다운이 엄마에 대한 기사를 몇 개 건질 수 있었다.
그 중 다운이 엄마에 대한 마지막 기사를 읽어 보았다.
@ 백제 일보 1986-08-05
“차세대 에이스, 배구 소녀 이명희 충격적인 은퇴 선언”
지난 두 달 전, 중국 북경에서 펼쳐진 제 5회 아시아 청소년 여자 배구 대회에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끈 배구 소녀 이명희 선수가 은퇴를 선언해 배구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 중략- 이명희 선수는 아시아 청소년 대회에서 대회 득점왕과 MVP를 거머쥐며, 차세대 국가대표의 에이스로 지목되어 올 만큼 기량이 매우 뛰어난 선수였다. - 중략- 이명희 선수의 은퇴는 고질적인 허리디스크가 재발을 했기 때문이며 선수와 가족들은 선수 생활 연장이 쉽지 않음을 깨닫고 어려운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중략- 한편, 배구 협회의 한 관계자는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가 어린 나이에 은퇴를 했다며, 매우 아쉬워 했다.
다운이 엄마의 말을 믿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기사를 보니 사실인 듯 했다. 한국 여자 배구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을 수도 있었던 여자가 강간을 당해서 생긴 아이를 낳기 위해서 자신의 꿈을 포기해버리다니, 이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알면 얼마나 까무러치게 놀랐을까?.
다운이 엄마가 불쌍하고, 그녀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다. 내가 다운이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 그녀의 마음의 짐이라도 내가 조금 덜어줄 수 있다면... 그녀의 마음을 다독거려 줄 수 있다면...
다운이 엄마에 충격적인 인생사를 알게 된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거의 밤을 뜬눈으로 보냈고 다음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토요일이었는데, 오전 내내 다운이 엄마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을 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다운이 엄마와 외출을 해서 기분 전환을 하는 것이었다.
영화도 보고, 노래방에서 소리를 지르며 노래도 불러보고...
오후 1시가 되어서 다운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가 얼마 가지 않아 다운이 엄마가 전화를 받았는데, 지난밤과는 달리 목소리에 활기가 넘쳤다.
- 민수구나.
“네. 아줌마. 안녕하세요.”
- 점심은 먹었니?.
“네. 먹었어요. 푹 쉬셨어요?.”
- 민수 덕분에... 푹 잠자고 일어나니 한 결 낫네. 그런데 무슨 일이야?.
“아.... 하하. 아줌마에게 데이트 신청하려고요.
- 데이트?.
“네. 저랑 영화 한 편 보실래요?.”
영화를 한 편 보자는 말에 다운이 엄마가 살짝 뜸을 들였다.
“오랜만에 밖에 나가서 영화도 보고 하면... 기분 전환도 되고 좋을 것 같은데....”
- 그... 그럼 그럴까?.
“그러면 제가 4시쯤에 내려갈게요.”
- 그래. 이따 봐.
다운이 엄마와 기분 좋게 전화를 마친 후, 나는 마음이 가벼웠다. 생각보다 다운이 엄마의 목소리가 밝아서 안심이 되기도 했다. 시간을 보니, 아직 3시간 정도는 여유가 있었다.
다시 컴퓨터 앞아 인터넷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중, 재밌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극장에 가는 것이 참으로 오랜만인 듯 했다. 영화 보는 것을 즐기긴 했지만, 대부분 집에서 다운로드 한 후 봤으니...
더구나 여자와 극장을 함께 갔던 기억은 더욱 더 가물가물 했다. 여자와 극장에 갈 때 느꼈던 감정조차도 기억이 안날만큼 오래 되었는데... 3시간 후에는 다운이 엄마와 극장에 갈 수 있으니, 약간은 설레 였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상태로 검색 키워드를 넣고 엔터를 쳤다.
그리고 내 눈에 비친 화면에는 최신 개봉작들이 주르륵 검색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