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459화 (459/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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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어쩌면 그녀는

들어가며 ────────────────────

이하 스토리는 더블데이트 루트와는 전혀 별개의 이야기이며 본편의 등장인물과 시간, 사건만 차용한다는 기분으로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외전에서의 모든 이야기는 본편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고 진행됩니다.

───────── 더블데이트 외전 < 어쩌면 그녀는 >

차를 적당한 곳에 세우고 내린 다음, 송화와의 약속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아직 약속시간이 되려면 한참 남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마로니에 공원을 가로질러 방통대 방향을 향해 걸었다.

주말 오후 대학로는 사람들로 붐볐다. 하영은 '핀들가든'이라는 상호를 확인하고 가게로 들어갔다. 자리를 잡은 그녀는 소주를 시켰다.

"저, 손님...."

아직 해가 채 저물지 않은 시간인데 여자 혼자 들어와 술을 시키니 뭔가 이상한 모양이었다. 주문을 받던 점원이 하영에게 되물었다.

"혼자 오셨나요? 일행 분은...?"

"곧 올 겁니다."

점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주를 물었다. 하영이 요구하는 메뉴를 들은 그는 잠시 멈칫했지만,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인 후 돌아갔다. 잠시 후, 작은 접시에 담긴 파스타가 나왔고 소주도 한 병 나왔다. 하영은 혼자서 잔을 채워가며 술을 마시고 파스타를 먹었다. 딱히 권주하는 이도 없었지만, 그녀는 스스로의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술로 그걸 달래고 있었다.

저녁 약속시간이 되어 송화가 가게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하영은 만취 상태였다.

"와...써?"

혀 꼬부라진 소리를 내는 하영을, 송화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자리에 앉으려던 송화는 테이블에 놓인 빈 소주병을 보고 기가 막혔다. 한 병이 아니라 두 병이었고, 그녀가 알기로 그녀의 친구는 한 병을 다 마시기도 전에 취하는 사람이었다.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미쳤어?"

"미치기....는.... 그냥... 오늘 술이 땡기....네...."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 술을 걸치려던 송화는 생각을 급하게 수정했다.

"야, 안 되겠다. 가자."

그녀는 점원을 불러 계산을 마쳤다. 하영의 어깨를 부축하고 가방을 챙겨 가게를 나왔다.

"어어? 왜에. 왔는데... 술 더 마시고...."

"더 마시면 너가 죽을 것 같다. 일단 술 깬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송화는 하영을 부축한 채로 길을 걸었다. 둘의 체격이 비슷했기에 송화로서는 꽤 험난한 일이었다. 백여 미터 떨어진 도로까지 하영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탈진할 지경이었다.

그녀의 등줄기에서 땀이 흥건하게 배어나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녀의 품 안에서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송화는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인상을 찌푸린 채로 핸드폰을 꺼낸다.

"이럴 때 하필이면... 여보세요?"

송화는 하영을 길가에 있는 벤치에 앉혀놓고 전화를 받았다. 송화는 앉혀놓으려고 했는데 자신의 몸을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는 하영은 스르륵 옆으로 쓰러졌다.

송화가 그걸 잡아줄 틈도 없었다. 그녀의 핸드폰 너머에서는 아주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시끄러운 목소리를 듣고 난 송화는 인상을 쓰며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아니, 그건 제가 박 수사관에게 일임한.... 아니, 그걸 지금 제가 어떻게..."

송화에게 빠른 판단을 요구하는 현장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전화로 몇 번 항의해보았지만, 상대는 막무가내였다. 빨리 청으로 들어와서 해결하라고 요구 중이었다. 정시퇴근도 아니고 야근을 하다 퇴근한 이에게 다시 들어오라고 요구하는 전화가 달가울 리 없었다.

게다가 송화에게는 지금 딸린 짐덩어리도 있었다. 살아 숨 쉬는 짐덩어리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송화를 보며 말했다.

"음냐... 음냐... 너 바쁜가보다? 응?"

"그래, 인마. 어휴. 진짜. 너 택시만 잡아주고 갈게. 난 다시 들어가 봐야해."

송화는 다시 하영을 부축하고 도로로 나갔다. 열심히 손을 뻗어보지만, 무심하게도 택시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설령 하나 겨우 잡았다하면 어느새 달려온 누군가에게 새치기 당하기 일쑤.

송화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택시는 또 왜 이렇게 안 잡혀. 게다가 승차거부도! 진짜 싹 다 잡아넣을까 보다!"

자꾸만 흘러내리는 하영을 추스르면서 송화는 짜증을 부렸다. 그런 송화의 괴로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영은 계속 중얼거리고만 있었다.

"그럴 리가...없어....내가 그런 놈을.... 좋아할 리가... 없어...."

간신히 큰 도로까지 나오긴 했지만, 주말 늦은 시각 대학로는 택시를 잡기에 그리 만만한 공간이 아니었다.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택시를 집어타겠노라고 도로가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악전고투하던 송화는 하영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누굴 좋아해! 누굴!"

"내가 그런 놈을.... 좋아할 리가... 없잖아.... 말이 안 돼....."

"아오! 그게 누구냐고! 쫌! 똑바로 서봐!"

그렇게 안간힘을 쓰고 있는 송화의 귀에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어? 하영이 언니?"

송화가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거기에는 한 쌍의 남녀가 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송화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상대는 하영을 알고 있었다. 키가 큰 남자와 중간 키의 여자. 상대를 본 송화는 여태껏 하영과 나누었던 이야기 중에서 이런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혹시, 효진 씨...?"

"네. 맞아요. 어머나. 언니, 많이 취했네요?"

그제야 눈을 게슴츠레 뜬 하영 역시 효진을 알아보았다. 자신의 어깨를 슬그머니 짚어오는 효진을 본 하영은 킬킬거리며 말했다.

"어라, 효진이구나... 아직도....흐아아암..... 데이트 중이었어? 후후."

"그냥 이 근처에서 놀고 있었는데... 언니는 술 마셨어요?"

"그러게. 내가 술을 좀 마시고 싶었어..."

하영과 효진이 나누는 대화를 보면서 송화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효진에게 부탁했다.

"초면에 이런 부탁 미안하지만요. 저는 지금 급히 가봐야 할 곳이 있어서요. 하영이를 부탁해도 될까요? 내가 괜히 두 사람 데이트를 방해한 건 아닐까 몰라."

송화의 간절한 부탁을 받은 효진은 뒤에 있는 한석을 돌아보았다. 그는 씨익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문제없다는 투였다. 그러자 효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쾌히 대답했다.

"그러세요. 송화 언니시죠? 말씀 많이 들었어요. 바쁘신 거면 가보셔도 돼요. 저희가 하영이 언니 챙길게요."

효진 역시 송화를 처음 보지만, 하영과 친한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송화는 그제야 마음이 한결 놓였다.

"그래요. 그럼 부탁 좀 할게요."

송화는 들고 있던 하영의 가방을 한석에게 넘겨주었다. 가볍게 묵례를 나누고 그대로 몸을 돌려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송화는 지하철역에 들어가기 직전, 고개를 돌려 친구를 한 번 더 살폈다. 그녀 곁에 서 있는 키 큰 남자도 눈여겨보았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갔다.

효진이 하영을 부축하고 있는 동안, 한석이 도로로 나가 택시를 잡아왔다. 그의 큰 키는 택시잡기 경쟁에서 곧잘 좋은 무기가 되곤 했다.

"언니, 택시 왔어요. 얼른 타요."

"응... 효진아... 고마워...."

한석은 앞에 탔고 두 여자는 뒷좌석에 올라탔다. 목적지를 묻는 말에 하영은 자신이 사는 동네를 말했다. 택시가 출발했고, 저녁의 교통정체를 한참 겪은 후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하영의 집이 정확히 어딘지 알 수 없다는 거였다.

"언니, 언니!"

"으음... 음..."

효진이 하영을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 동네에 도착했으니 집 위치를 알려달라는 택시기사의 요청에 도저히 응할 수 없었다. 효진이가 난감해하고 있는 동안 한석이 제안했다.

"일단 우리 집에 가서 재우자. 여간해서 안 깨어날 것 같잖아."

"그럴까. 그럼?"

택시는 다시 출발했고, 기사는 살짝 투덜거렸다 한석이 기사에게 택시비를 선불로 넉넉하게 내고 나니 조용해졌다.

한참 후, 그들은 한석이 사는 빌라 앞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리며 효진이가 하영을 부축하려고 하자 한석이 나섰다.

"내가 들을게."

아무래도 덩치가 더 큰 한석이 유리했다. 그는 하영의 등과 무릎을 두 팔로 안아 번쩍 들어 올렸다. 효진은 그 모습을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오오. 한석군. 힘 쎄네?"

"그걸 이제 알았어?"

두 사람은 시시덕거리며 방으로 들어섰다. 한석은 하영을 침대에 눕혔고 효진은 그녀의 신발과 재킷을 벗겨주었다. 코까지 살짝 고는 하영을 보며 두 사람은 피식 웃었다.

효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니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아."

"평소에 어떻길래?"

"뭐랄까. 정말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원리원칙인 사람이거든. 우리 남매랑은 정 반대인 사람이야."

"너희 남매가 엉망진창이라는 걸 알고는 있다는 뜻이구나?"

"내 말이 그렇게 되나?"

효진은 까르르 웃으며 한석의 목을 끌어안았다. 얼굴이 가까워지자 깊숙한 키스를 나누었다. 한참 만에 입술이 떨어지고 나서 효진이 속삭였다.

"나도 자고 가도 돼?"

그러자 한석은 효진의 귓불을 살짝 핥으며 대답했다.

"그럼 가려고 그랬어? 낯선 여자를 내 방에 눕혀놓고?"

그러면서 한석의 손이 효진의 옷 안으로 슬금슬금 파고들었다. 효진은 그 손길을 애써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몸을 살짝 빼내며 턱으로 침대 쪽을 가리켰다.

"....언니도 있는데...."

"잠들었잖아."

"....깨면 어쩌려고....하앙...."

"취했잖아."

바닥에 깔린 이불 위로 한석과 효진의 엉킨 몸이 쓰러졌다. 눕는 것과 동시에 두 사람은 옷을 벗어던졌다. 후크 풀린 브래지어와 뒤집어진 팬티가 방바닥을 굴렀다.

"한석아...하앙....하읏.....흠....."

"낮에 그렇게 해대고도, 모자라?"

"몰라아....하윽...흡....거길 그렇게...."

한석의 손가락이 예민한 부위를 문지르자 효진은 신음을 감추지 않았다. 한석의 목을 끌어안은 손에 더 힘을 주었고, 목 뒤를 살짝 깨물었다. 세상에 둘만 존재하는 것처럼 엉켜있는 두 사람 곁에는, 아직 잠들지 못한 누군가가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세...세상에...지금 둘이 뭐하는 거야...'

침대에 누운 하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까 한석이 그녀를 들어 옮길 때 이미 살짝 깼던 그녀였다. 그렇지만 자신의 흐트러진 모습을 효진에게 보여준 것이나 초면인 한석에게 그렇게 안긴 사실이 너무도 창피하여 깨어난 티를 낼 수 없었다.

침대에 누운 그녀는 효진이가 가려고 하면 그때 깨어난 척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바로 옆에서는 끈적끈적한 비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길 이렇게?"

"하읏....."

"너무 큰 소리 내지 마, 언니가 깨면 어쩌려고?"

"하응... 몰라...흑....흐읍...."

천장을 보고 누운 자세였던 하영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런 난감한 상황은 그녀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그렇게 많은 법조문을 달달 외우고 수많은 판례를 숙지한 그녀였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내용은 없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가운데 시간은 흘러갔고 효진의 신음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그리고 이젠 두 사람의 육체가 부딪히는 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한석군....하악...흡...날 좀....하악...."

"널? 어떻게? 음?"

"하악... 더어....허억...합....그렇게...하앙...."

"여길? 여길?"

"하앗....너무 좋아...흐응...흐흑...."

두 눈을 질끈 감고 있기에 하영은 그 광경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방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온갖 끈적끈적한 소리는 그녀의 귀에 남김없이 닿고 있었고, 후끈 달아오른 방 안의 열기는 하영마저 이상한 기분이 들게 만들고 있었다.

"하악...하악....한석아...자기야...허억...."

"좋아? 응?"

"좋아! 좋아! 너무 좋아! 하앙....하앗!!"

젖은 살결이 서로 맞부딪히며 내는 접착음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쩔퍽쩔퍽 하는 소리가 이어질 때마다 하영은 몸을 은근히 떨었다.

하영은 자기도 모르게 허벅지에 힘이 들어갔다. 다리 사이에 일어난 미묘한 느낌을 무어라 설명하기 힘들었지만,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허억...하앗....."

"효진아...나...싼....다...."

"응....하악..."

"안에 싸?"

"응. 응응. 하악...."

"끄으으읍....."

"하앙...."

한석의 낮고 긴 신음이 이어진다. 효진의 헐떡거림이 잦아 들어갔다.

'끝...끝인가.'

하영에게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었다. 방 안이 조용해지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실눈을 떴다. 어두웠지만, 창에는 바깥 가로등 불빛이 와 닿고 있어서 아주 새까맣게 어둡지는 않았다. 눈을 감고 있었기에 어둠에 금세 익숙해졌다.

하영은 보고야 말았다.

'지...지금... 뭐하는....'

한석은 일어나 있었다. 그의 몸은 땀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서 있는 그의 앞에는 효진이가 허리를 세운 채 앉아있었다. 한석과 하영은 얼굴을 마주한 방향이었지만, 효진이는 한석의 사타구니에 얼굴을 묻고 있어서 뒤통수밖에 보이지 않았다. 한석의 손이 효진이의 뒤통수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맛있어?"

"맛있어...읍...음...  한석이 꺼니까...더 좋아..."

하영은 지금 들리는 소리가 뭔지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무언가, 길고 단단한 것을 입으로 빨 때 나는 소리였다. 경험이 없던 그녀였기에 지금 효진이가 하고 있는 행위를 이해하기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다시 실눈을 뜨고 방안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살핀 하영은 경악했다.

'서..설마, 그걸... 입으로?'

하영의 눈이 커졌다. 효진의 뒤통수를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다 효진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한석의 손이 딱 멈췄다. 하영은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위로 향했다. 거기에는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한석의 얼굴이 있었다.

'....!'

하영은 질끈 눈을 감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한석과 이미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두 눈을 꼭 감은 그녀였지만, 여전히 한석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그는 아주 즐거운 듯이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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