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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은 자기 집이 아닌 박 회장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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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은 자기 집이 아닌 박 회장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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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은 자기 집이 아닌 박 회장의 집으로 향했다. 박 회장의 차고에는 그녀의 주차자리가 따로 있었다. 거기에 차를 세워놓고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평소와는 다른 북적거림을 목격했다.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태근이 손을 들어 보이며 하영을 불렀다.
"어라? 하영이, 너도 지원자야?"
하영은 태근의 맞은편에 가서 앉았다. 검은색 근무복을 입고 그 위에 하얀 앞치마를 두른 메이드가 와서 하영의 앞에 녹차 한 잔을 놓아주었다. 하영은 녹차를 마시며 태근에게 물었다.
"지원자라니. 무슨 말이야?"
"응. 좀 있으면 이제 효진이랑 한석이 결혼하잖아. 그러면 걔네들 분가해서 따로 살 텐데 거기에 갈 메이드를 뽑는 거야. 아카데미 졸업생, 재학생 딱히 자격을 제한하지 않았더니 엄청 몰려들었나 봐."
하영은 녹차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박 회장의 집에는 원래 스무 명 정도의 메이드가 상주하고 있다. 집안 살림부터 밤시중 서비스까지 모두 담당하고 있는 그녀들을 그다지 좋게 보지 않는 하영이었던 터라 보여도 보이지 않는 식으로 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오늘처럼 거실에만 삼십 명이 넘는 인원이 우글거리고 있으면 아무래도 신경 쓰였다. 하영은 주변을 살피다가 자기와 가까운 쪽에 서 있던 키 작은 메이드를 향해 말했다.
"이봐요."
"네?"
"선미 씨를 불러다줘요."
"선미가 누군데요?"
하영은 꽤 놀랐다. 이 집안에서 만난 메이드들은 전부 접객훈련이 꽤 된 사람들이라 반문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시키면 시킨 대로 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게 당연했다. 게다가 이 집에서 일하는 메이드가 메이드장인 선미를 모르는 경우는 있을 수 없었다.
하영은 너무 놀라 말을 더듬을 지경이었다.
"....선미 씨가 누군지 몰라요?"
그러자 키 작은 메이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잣말을 쏟아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는 선미라는 애가 없는데요. 아, 충청도 사는 친구 중에 최선희라는 애가 하나 있었는데, 혹시 걔는 모르시죠?"
"....이봐요. 제가 당신 충청도 친구를 왜 알아야...."
"걔가요, 생긴 건 진짜 이쁜데 하는 짓은 완전 꼴통이거든요. 지난번만 해도 남자 두 명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다가 걸려가지고는 자기는 그냥 어장관리만 한거라고 하지를 않나..."
키는 작지만 가슴은 전혀 그렇지 않은 그 메이드는, 자신의 가슴둘레만큼이나 말이 많았다. 하영은 은은하게 두통이 몰려옴을 느꼈다. 맞은편의 태근을 슬쩍 보니 그는 히죽거리며 웃고만 있었다. 자신을 째려보는 하영과 눈이 마주치자 태근은 얼른 웃음을 지우곤 2층을 향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선미 씨!"
체육선생다운 목소리가 집 안 가득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던 메이드들의 지방방송이 뚝 끊겼다. 태근의 목소리가 메아리 되어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할 때쯤, 선미가 2층에서 내려왔다.
"도련님, 부르셨어요?"
태근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턱으로 맞은편 하영을 가리켰다.
"얘가 선미 씨 찾네요."
선미는 하영을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하영 님, 오셨군요."
하영은 자세를 바로하고 맞인사했다.
"그 님이라는 호칭은 좀 빼달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암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결혼준비. 잘 되어 가고 있어요? 전혀 보고가 없어서."
"아무런 차질 없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이번 주 수요일 저녁에 귀국하시고 바로 피부 관리와 헬스케어에 들어갑니다. 다음 주 일요일 결혼식 당일에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임할 수 있습니다."
하영은 자신의 안경을 밀어 올렸다.
"아니...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물어본 게 아니라 식장 준비나 청첩장 발송, 예물과 신혼집 준비 등에 대한 보고를 말한 겁니다."
선미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조금 갸웃거리다가 하영에게 물었다.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제 힘으로 처리가 곤란한 일이 발생하면 하영 님께 보고 하겠다고 했었지요?"
"그랬었죠."
"아직까지 보고가 따로 가지 않았다는 건 그동안 문제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굳이 이렇게 오셔서 중간상황을 점검하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회사일로 바쁘실 텐데 이렇게 오시면 시간 많이 뺏기지 않으십니까?"
선미의 말투는 고분고분했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선미와 하영은 평소에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선미는 태근과 효진의 신변을 책임지지만, 보통 그것은 저택 내에서 일어나는 일에 한정된다. 하영 역시 태근과 효진의 신변을 관리하는 사람이지만, 그것은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에 한한다.
이번처럼 결혼식이라는 대이벤트가 걸려버리자, 두 사람의 업무 분장은 상당히 일그러졌다.
선미가 말한 내용은 명백히 그녀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하영을 디스 하는 내용이었다. 하영이 그걸 어떻게 알아차렸냐 하면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태근이가 배를 잡고 구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리는 내지 않으려고 입은 꾹 다물고 있지만, 그의 얼굴은 웃음을 참느라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하영은 태근을 째려보느라 대답이 좀 늦었다.
"조..좋아요, 보고 건은 그렇다고 치죠. 그렇지만 이 소란스러움은 뭐죠? 당신들이 아카데미에서 배울 때는 기본적으로 정숙함을 강조하지 않습니까? 제가 여기 있자니 무척 시끄럽더군요. 게다가 이 아가씨... 이 사람은 선미 씨를 불러오라는 제 요청에 그게 누구냐고 반문까지 하던걸요?"
하영의 날카로운 지적에도 선미는 전혀 물러남이 없었다.
"큰일과 큰 잔치를 앞두고 있으니 집안이 소란스러운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게다가 그녀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면접인데 그에 앞서 불안감을 떨치기 위한 약간의 담화는 허용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저도 이들의 소란스러움을 미리 예상하고 태근 도련님께도 양해를 구해두었습니다. 오늘 찾아올 예정도 아니셨던 하영 님의 양해를 미리 구하지 못한 건 제가 예언가가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사과드립니다."
"아니, 내가 언제 사과하라고 했어요?"
조용한 선미와 날카로운 하영 사이에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었다. 거실에 가득한 메이드와 지원자들 사이에도 긴장이 흐를 정도였다. 이걸 누그러뜨릴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태근은 가볍게 손을 치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자자, 두 사람은 이제 그만하지? 선미도 면접으로 바쁘고 하영도 결혼식 준비 중간과정 점검이 끝났으면 이걸로 되었잖아?"
태근의 중재 덕분에 하영과 선미의 말싸움은 거기서 끝났다. 태근은 순간 손가락을 딱 튕기더니 선미를 보고 말했다.
"기왕 이렇게 하영이 왔으니 말야. 선발 면접에 하영도 함께 입회하는 건 어때? 어차피 하영도 의견을 낼 자격은 충분히 있는 거니까 말야. 나도 같이 해볼게."
"자격? 내가 무슨 자격이...."
"너가 우리랑 같이 안 산다뿐이지 우리 집 자식이나 마찬가지인 거는 세상이 다 아는 일이야. 되레 내가 이 집 자식이 아니면 아니지 너는 맞아."
태근은 씩 웃으면서 하영을 이끌고 선미를 따라갔다. 이층으로 올라가자 태근의 헬스장이 제일 먼저 나타났다. 헬스장 옆에 있는 커다란 방은 원래 태근이 스쿼시를 하는 방이었는데, 거기에 테이블과 의자를 갖다 놓고 임시 면접실을 삼고 있었다.
면접실에 들어서며 태근이 선미에게 물었다.
"선미야, 근데 왜 이번에는 졸업생 중에 안 뽑고 재학생도 같이 뽑는 거야?"
선미가 즉시 답했다.
"보통 졸업생은 이십대 중후반이어서요, 한석 님이 스물세 살이시니 너무 연상은 오히려 모시기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판단했습니다. 여자가 나이 많아봐야 기만 드세죠. 좋을 게 없습니다."
한석보다 나이가 많은 하영은 선미의 이야기가 곱게 들리지 않았다. 하영은 순간적으로 이마 한쪽에 핏발이 섰지만 여기서 발끈하면 지는 거라고 생각하고 애써 억눌렀다.
태근과 선미, 하영, 이렇게 세 사람은 방 한쪽에 놓인 책상 앞에 앉았다. 면접관들의 앞에는 메이드들의 이력서가 놓여있었다. 거기에는 그녀들의 능력을 수치로 계량화한 리스트가 첨부되어 있었다. 태근은 그걸 들여다보고 일일이 소리 내어 읽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 요리실력, 육아실력, 침대스킬능... 푸핫. 이...이걸 숫자로 다 표시한단 말이야?"
선미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태근은 배를 잡고 웃었다. 한참 만에 웃음을 가라앉힌 그는 문득 하영을 보았다.
"하영이를 이 리스트에 따라 점수를 매기면 등급이 얼마나 나오려나.... 특히 침대스킬능력? 이건 대체 어떻게 측정하지...? 하영아, 너 말야, 혹시 측정해볼..... 으악!"
"닥쳐. 이런 소리는 명백히 성희롱감이야."
하영의 발이 태근의 발등을 꾸욱 밟았다. 태근은 자기 발을 붙들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고 하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선미와 함께 서류를 검토했다.
"서류를 점수 순으로 배열한 건가요?"
"아뇨. 그렇게까지는."
"일단 그렇게 해보죠."
하영이 선미 앞에 놓인 서류를 가져다가 척척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뭔가 숫자가 있으면 정리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그렇다. 몇 개의 더미로 나누면서 점수에 따라 늘어놓고 있는데 어느새 바닥에서 일어나 태근이 다가와 한 장을 집어 들었다. 하영이 물었다.
"그건 왜?"
"응. 이 아가씨 가슴이 F컵이야. 그래서..."
하영이 주먹을 휘둘렀지만, 태근은 유연한 움직임을 선보이며 삭 피해냈다. 덩치는 산처럼 커다란 태근이었지만, 순발력이나 유연성은 운동선수급이었다. 괜히 체육선생이 아니었다. 태근은 설명했다.
"효진이랑 한석이.... 걔네들, 지혜라는 아가씨도 같이 살 거라면서. 지혜 못 봤어? 그 가슴? 그렇다면 한석이 취향은 일단 가슴이 커야 한다고 봐야지. 그러니까 여기 지원자를 가슴 크기순으로 분류해 봐. 큰사람부터 봅시다."
하영은 기가 찼다.
"무슨 헛소리를 해도 그렇..."
"네, 그렇게 하죠."
선미는 태근의 의견을 받아들여 하영 앞에 놓인 서류를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서류를 뺏긴 하영은 뜨악한 표정으로 선미를 쳐다보았다가 이내 태근을 노려보았다. 하영이 자신을 이런 식으로 쳐다볼 줄 알았던 태근은 괜히 휘파람을 부르면서 창밖을 보고 있었다.
잠시 후, 선미가 말했다.
"끝났습니다."
태근은 이력서를 보며 휘파람을 살짝 불었다.
"그러면 위에 다섯 명씩 들어오라고 해봐. 총 몇 명 필요하지?"
"일단은 선발대로 두 명을 선발할 겁니다. 저를 포함해서 세 명이서 세 분의 시중을 들다가 인원이 더 필요하면 2진을 보낼 겁니다."
잠시 후, 다섯 명의 메이드가 방으로 들어왔다. 가슴 순으로 선발되었기에, 들어온 사람들은 다들 보통 사이즈가 아니었다. 태근이는 대놓고 환호를 질렀고, 하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하영을 향해, "왜? 부러워?"라고 물어본 태근은 발등을 다시 붙들고 바닥을 굴렀다.
선미는 잠자코 있었고, 하영은 비명을 지르는 태근을 모른 척했다. 그때 지원자 중에서 한 명이 앞으로 나서더니 태근의 발을 감싸 쥐었다.
"어머, 저런. 많이 아프시겠다."
하영과 선미, 그리고 나머지 지원자들은 앞으로 튀어나온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까 하영이 선미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던 키 작은 메이드였다. 그렇지만 그녀도 가슴은 보통이 아니었기에 가슴크기 내림차순 정렬에 포함되어 있었다. 선미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박나영 씨. 지금은 면접 중입니다. 쓸데없는 행동은..."
원래 아카데미 출신 메이드 행동수칙 중 최우선은 별다른 지시가 있기 전에는 정숙과 정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불쑥 앞으로 튀어나온 나영의 행동은 메이드로서의 상식 밖이었다. 그러나 나영은 오히려 선미에게 되물었다.
"쓸데없다뇨. 이 분이 무척 아파보여서 감싸드렸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조금 전 도련님의 행동은 일상적인 거고 사실 저분은 저 정도로 데미지는 입지도 않으세요. 그저 하영 님 공격에 엄살을 피운 것뿐이고 일종의 연극 같은 겁니...."
"어머, 그래도요. 이렇게 바닥을 굴러다닐 정도로 아파 보이는데 아무도 보살펴 드리지 않는다는 건 가혹해요. 괜찮으세요, 아저씨?"
"아저씨...?"
난데없는 호칭에 태근은 껄껄 웃었고 선미는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하영은 선미 앞에 놓인 박나영의 이력서를 보았다. 성적이 대부분 하위권이었다. 만약 하영이 정렬한대로 했었다면, 지금 면접에 들어오지도 못할 사람이었다. 뛰어난 신체 스펙 덕분에 면접 제1진이 되었을 뿐이었다.
선미는 나영의 이력서를 탈락자 쪽으로 옮기려고 했다. 그러나 하영의 생각은 달랐다. 선미에게 반대되는 행동이라니, 하영에게 그보다 매력적인 일이 또 없었다. 그녀는 나영의 이력서를 집어 들고 말했다.
"박나영 씨, 합격입니다. 어떤 꼬장꼬장한 메이드장과는 다른 아주 특색 있는 분이군요."
선미의 강렬한 시선이 하영의 뒷머리에 꽂혔지만 하영은 아는 척하지 않았다. 나영은 기뻐하며 펄쩍펄쩍 뛰었고, 주먹 쥔 손으로 만세를 부르다가 태근의 면상을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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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과 태근, 하영과 메이드들의 사이는 보통 이렇습니다...
거유 도짓코 메이드 박나영이 한석을 모시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언젠가, 제가 죽기 전에 쓰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