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448화 (448/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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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진은 양규호를 직접 만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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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진은 양규호를 직접 만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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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진은 양규호를 직접 만나기로 했다. 영업점을 찾아가 규호를 불렀다.

영업점에 찾아온 효진을, 규호는 바로 알아보았다. 굉장히 환대해주었다. 효진이 조용히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자 그는 자동차 카탈로그를 잔뜩 챙겨 들고, 영업점 맞은편에 있는 단골 다방으로 향했다.

그는 효진을 상대로 영업을 할 생각이었지만, 효진의 생각은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있었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기도 전에 효진은 자기 용건을 먼저 꺼냈다. 그러자 대화가 뚝 끊겼다. 규호는 굳은 얼굴이 되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죠?"

"주제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규호 씨를 위해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임 전무와 거래를 끊으라구요. 다 알고 왔습니다."

조금 전까지 간도 쓸개도 다 내줄 것처럼 웃고 있던 규호의 표정이 점차 굳어졌다. 그들이 들어온 다방은 칸막이가 쳐있지만, 그렇다고 옆자리의 소리가 안 들릴 정도의 방음은 되지 않았다. 옆자리에의 대화가 간간이 들려올 정도였다.

효진은 목소리를 더 낮추기로 했다. 상대의 굳은 표정을 보고 마음이 약해졌지만 지혜를 생각하며 더 힘주어 말했다.

"임필복... 그러니까 임 전무는 당신의 아내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어요... 지혜는 당신과 그의 관계 때문에 반항하지 못하고 있고...."

몹쓸 짓. 그런 터무니없고 엄청난 짓이 이런 한 단어로 정리된다는 건, 참 웃긴 일이었다. 이 단어 하나로 그동안 지혜가 받아온 괴롭힘과 유린당한 시간이 표현될 수 있다는 건, 정말 웃긴 일이었다. 언어는 그래서 무섭다. 효진은 너무 무서웠다.

"당신이 임 전무와 거래를 끊어야 지혜도 다시는 그 사람을....."

찰칵-

차마 규호를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하고 말하던 효진은, 난데없는 금속음에 고개를 들고 정면을 쳐다보았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담배를 꼬나문 규호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건 스위스에서 만든 고급 지포라이터였다. 열고 닫는데 꽤 큰 소리가 났다. 아니, 그가 일부러 그렇게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입술 한쪽을 찡그려 담배를 문 상태에서 차분하게 뇌까렸다.

"겨우, 그런 이야기나 하자고 날 불렀습니까? 바쁜 사람을?"

"이봐요. 지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라구요. 지금 당신 아내가 처한 상황이 어떤지나 알기나 해요? 그런데 겨우, 라고요?"

효진은 규호의 태도를 보고 심각성을 전혀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세히 말하는 건 그녀도 내키지 않았지만, 직접적인 표현을 써서 말해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에 들려오는 규호의 목소리에 효진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알죠. 아주 잘."

효진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뭐라구요?"

"저도 다 알고 있다, 이 말입니다."

규호는 담배를 쑤욱 빨아들였다. 뺨이 홀쭉해지도록 빨아대자 담배 길이의 절반가량이 단번에 타들어갔다. 테이블에 놓인 재떨이를 끌어다가 제 앞에 두고 한번 털었다. 입을 뻐끔거리자 한 움큼의 담배연기가 쏟아져 나왔다.

효진은 자기 얼굴 앞으로 날아온 매캐한 냄새에,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보여준 반응은 그녀의 예상 밖이었다. 적어도 이 이야기를 듣고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다 알고 있다?

규호는 신경질적인 어조로 물었다.

"지혜가 시키던가요? 이런 이야기를 해달라고?"

효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무슨 소리예요. 지혜는... 지혜는... 당신한테 알려질까 봐... 가장 친한 친구인 나한테도 여태 비밀로 하고 꾹 참고 있었다구요. 모르긴 몰라도 결혼 직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 짓을 당해왔을 텐데...."

효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절대로 울지 말아야지, 참아야지 생각했지만, 그게 마음대로 쉽게 되지 않았다.

"얼마나 힘들었을 텐데.... 그걸 내색조차 않고... 나한테 연락도 않고...."

울먹이는 효진과는 달리 규호의 목소리는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그랬죠. 그래서 제가 정말 불만이 많았죠."

"뭐라구요?"

"난 말이죠. 후우. 지혜라는 애가, 썩 그렇게 마음에 들진 않았어요. 그냥 재촉에 못 이겨 나간 선 자리고, 고만고만한 아가씨는 하도 많이 봐서 지겨울 정도였죠. 재산이 있어, 집안이 있어, 뭐가 있어. 가진 거라고는 그 훌륭한 가슴 밖에 더 있습니까? 아, 그리고 또 있네요. 착하디착해 빠져서 남에게 심한 소리 못 하는 성격."

효진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당신...지금...."

규호는 효진의 반응을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됐습니다. 지혜와 당신이 정말 절친한 사이라는 걸. 그리고 당신이 박 회장 딸이라는 거. 그것 하나만으로도 정말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단 말입니다. 뭐, 사람 관계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선봐서 결혼하는 거야, 조건도 보고 상대 배경도 보고 하는 거니까. 난 지혜의 배경을 당신으로 봤어요. 당신을 통해서라면 박 회장에게 선이 닿는 건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했죠. 근데 이것이 막상 결혼을 하고도 당신한테는 절대 연락을 할 생각을 안 하더군요. 언제나 꿍해있고. 그래서 왜 그런가 살펴봤더니, 웬걸? 박 회장만큼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어느 정도 먹어주는 곳에 선이 닿아있더군요."

"그...그게.... 임필복이라고?"

"그래요. 난 임 전무랑 알고 지낸 지는 꽤 되었지만, 그렇게까지 친한 관계는 아니었어요. 언젠가부터 그가 저한테 친근하게 굴기 시작하더군요. 아마도 제가 청첩장을 돌린 직후부터 그랬던 같아요. 나중에 알아보니 지혜가 결혼 전에 그놈이랑 꽤 붙어먹던 사이라고 하더군요. 결혼 전에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지혜가 그놈을 차버렸고, 앙심을 품은 임 전무는 지혜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죠. 그러던 와중에 저랑 결혼한다고 하니 옳다구나 하고 바로 저한테 엉겨 붙더이다."

효진은 머릿속이 새하얗게 타버리는 듯한 충격에 사로잡혔다. 이 작자는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 추정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그래서... 당신 아내를 놈에게 팔아넘겼어?"

제발, 아니라고 말해. 그런 건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라고 말이야! 효진의 마음이 부르짖는 건 규호에게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살짝 웃기까지 하고 있었다.

"팔아넘기다니... 표현이 좀 그렇군요. 서로 적절한 거리에 적절한 수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 정도로 이해해주면 좋겠네요. 그도 원하는 것을 얻어서 좋고, 저도 원하는 것을 얻고... 어차피 지혜도 아예 모르는 사람에게 따이는 것도 아니니 그렇게 큰 부담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따인다"는 표현을 듣는 순간, 효진은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었다.

"이 미친 자식!!"

"어허. 알만 한 분이... 너무 소리 지르지 마시지요. 당신이야말로 친구가 남편 말고 다른 남자랑 붙어먹고 있다는 사실을 광고할 셈입니까?"

"그럼 너는! 너는 네 아내가.... 그러고 있다고 하는데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아?"

"뭐, 어떱니까. 제 아내인데, 제가 마음대로 하는 거야 당연한 거고 그 일은 당신 소관이 아니지 않나."

태연하게 말하는 규호를 보며 효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미친놈이랑 말을 섞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수치스럽고 모욕적이었다. 이런 자를 남편이라고 믿고 있는 지혜를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규호 앞에서 우는 건 자기 자신을 너무도 비참하게 만들 것 같아서 꾹 참았다. 꽉 쥔 그녀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너 이 새끼.... 진짜... 죽어 볼 테야? 지혜는.... 지혜는 내 친구라고."

"흠.. 뭔가 좀 더 좋은 조건이 나올 줄 알았는데... 식상한 반응이군요."

"뭐라구?"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고 있다면... 뭔가 다른 조건을 제시해 보란 말이지요. 출가외인인 친구 일까지 발 벗고 나서서 이러고 있다니.. 역시 당신이랑 지혜 사이는 뭔가 좀 특별한 게 더 있는 모양이군요. 그나저나 박 회장 딸이라면 좀 더 영리하게 굴 줄 알았는데, 실망스럽군요. 어차피 당신이 임 전무 일을 알아버렸다면 거기도 재미는 다 봤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신은 정말이지...."

효진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이 자는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그것도 이렇게 태연하게 해대고 있는 건가. 규호는 효진의 태도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내가 원래부터 원한 건 딱 하납니다. 박 회장과 날 연결시켜 주시오. 그러면 내 당신이 원하는 대로 지혜를 놓아주지."

"놓아....준다고?"

"그렇소. 단물은 이미 다 빠졌지만 당신이라면 교환조건이 되기 충분하겠지. 다리만 제대로 놓아주면.... 내 확실히 임 전무도 정리하고 지혜도 놓아주지요. 당신이 원하는 건 내가 지혜랑 이혼하는 거죠? 아주 깔끔하게, 아무런 이의 없이 이혼 해드립니다."

닳고 닳은 영업맨의 혀는 악마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친구의 불행에 슬퍼하던 그녀는 순간적으로 혹했다. 뱀의 혀처럼 꾸물거리는 규호의 속셈은 서서히 속내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효진은 거의 자포자기 심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지?"

규호는 담배를 비벼 껐다. 재떨이에 수직으로 꽂아놓은 담배를 가리키며 그는 짧게 말했다.

"일단 날 좀 박 회장 근처에 꽂아주십시요. 적당한 곳에. 그 뒤는 제가 알아서 합니다."

효진은 넘어갔다.

"약속해. 내가 아버지한테 널 소개하면... 넌 지혜랑 헤어지는 거야. 알았어?"

"영업하는 사람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원하시면, 각서라도 써드리지요."

"그딴 거 필요 없어. 이혼 서류나 미리 준비해 놔."

효진은 벌떡 일어나 다방을 나왔다. 작은 종이 매달린 문을 거칠게 밀고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규호는 새로운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중얼걸렸다.

"하, 이것 참. 재미있게 돌아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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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일입니다.

한석이 유미와 함께 네오를 만나고 있을 때, 효진이 겪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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