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405화 (405/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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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부도덕한 여교사

들어가며 ────────────────────

이하 스토리는 더블데이트 루트와는 전혀 별개의 이야기이며 본편의 등장인물과 시간, 사건만 차용한다는 기분으로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외전에서의 모든 이야기는 본편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고 진행됩니다.

───────── 더블데이트 외전 < 부도덕한 여교사 >

"송지애 선생!"

박 선생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나를 향해 손을 까딱거리고 있었다. 나이도 나와 같은 주제에 주임이라고 저렇게 함부로 대한다. 동료에 대한 예의를 국에 말아 먹은 인간이다.

불평을 시작해보았자 아무 소용없기에 그저 속으로 삭힐 뿐이었다. 챙기던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죠, 박 선생님?"

네가 나한테 반말지거리를 하더라도 난 깍듯이 네게 대할 거야. 이 머저리 자식아, 알아? 그건 네가 잘나서도 아니고, 널 존경해서도 아니고, 그저 내가 너랑 똑같은 인간이 되기 싫어서란다.

내가 속으로 외치는 걸 들을 수 없는 박 선생은 자기 책상에 놓인 서류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이번에 교생 배치 건 때문에 그런데 말이야. 송 선생이 하나 맡을래?"

그의 책상에 있는 서류를 보았다.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교생실습에 대한 기획안이었다. 아침에 듣자하니 기술, 가정 담당이 한 명 있다고 했었다.

"그걸 박 선생님이 결정하나요?"

"그건 아니지만, 교감 선생님이 의견을 물어봐서 말이야. 2,3학년 기가 담당 분들에게 물어봤더니 다들 하기 싫다네."

남 하기 싫은 일을 대놓고 떠넘기겠다는 저 뻔뻔함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길게 말 섞어봐야 귀찮을 따름이고 안 하겠다고 해봐야 돌고 돌아 결국 내 몫으로 떨어질 게 뻔했다. 기가 연구실의 아줌마들 면면을 떠올렸다.

한숨을 티나게, 짧게 내쉬고, 알았다고 대답했다. 박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수고~!"

박 선생 책상에서 물러나 내 자리로 돌아왔다. 아까 하던 퇴근 준비를 마저 서둘렀다. 간만에 지선이를 보기로 했는데 늦어선 곤란했다.

교무실을 나서며 먼저 가겠노라며 인사했다. 누군가 농을 걸듯이 말했다.

"데이트? 그래서 일찍 가는 거야?"

미혼인 여자가 일찍 퇴근하는 거면 그저 그거 밖에 생각이 안 나지. 그런 멍청한 기대에 부응하고 싶지 않아 곧바로 반박했다.

"동생 만나러 가요. 여동생."

"아아...."

내게 말을 건 이가 머쓱해했다. 내가 데이트를 하지 않는 게 그리 큰 문제라도 되는 걸까. 서른세 살 먹은 노처녀라는 사실도 하자가 있다고 생각하듯 데이트를 안 하는 게 유죄라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저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나와 상관없는 문제다. 서둘러 건물을 벗어나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에 탔다.

지선이를 보면 많이는 안 마셔도 술 한두 잔은 할 텐데 차를 두고 갈까도 싶었다. 그렇지만 많이 마시는 것도 아니고 지선이를 집까지 데려다주기도 할 겸 차를 가져가기로 했다. 시동을 걸었다. 차를 출발시켰다.

학교를 벗어나 도로로 나왔다. 퇴근시간이 약간 지난 도로는 다소 붐볐지만 그래도 약속시간에 늦을 정도의 정체는 걸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나기로 한 카페에 도착했다. 카페 옆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관리인에게 키를 맡겼다.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야, 언니!"

창가 자리에 앉아있던 지선이가 내 쪽을 보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지선이를 향해 마주 손을 흔들어주었다. 늘 그렇듯이 먼저 도착한 지선이는 자리에 앉는 나에게 메뉴판을 내밀었다.

"딱 맞춰서 왔네. 난 방금 시켰어. 언니만 시키면 돼."

"넌 뭐 시켰는데?"

메뉴판을 스윽 둘러보지만, 썩 그리 마음에 드는 메뉴가 없다. 애초에 약속장소도 지선이가 잡은 거라 메뉴가 전부 동생이 좋아하는 것뿐이었다.

"마늘빵이랑 오븐 스파게티. 새우 필라프 한 접시하고 조각 피자도 하나 시켰어."

같이 먹을 양이 아니었다. 자기 혼자 먹을 걸 저렇게 시켰다는 소리다. 나 역시 필라프 종류로 하기로 한다. 웨이트리스를 불러 주문을 청하곤 지선에게 물었다.

"넌 대체 그게 다 어디로 들어가는 거야... 어째 전보다 더 먹는 거 같다?"

나보다 키도 작고 덩치도 작은 지선이지만 나보다 적게 먹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렇다. 지선이는 멋쩍은 듯이 웃으며 말했다.

"유빈이 이유식 시작했거든."

"그게 너 많이 먹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다 잘 먹는 게 아니라서 말야. 한번 만들어놓고도 얘가 다 먹는 게 아니라서 말이야. 남은 건 내가 다 먹다보니까 또 그렇게 되었어."

유빈이는 지선이의 아들이다. 내 조카다. 올해로 두 살인가 그렇다.

지난달에 돌잔치를 했었지만, 난 가지 않았다. 아직까지... 아버지를 볼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역시 그러할 것이다. 어차피 서로 불편한데, 굳이 내가 그 불편을 심화시킬 이유는 없으니까.

"자, 받아."

주문을 하고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가방에서 준비해 온 봉투를 꺼냈다. 오늘 만난 주된 목적이 이거였다. 지선이는 손을 뻗어 봉투를 집어 들며 말했다.

"이렇게 안 해도 되는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미 봉투 안에든 지폐 숫자를 헤아리고 있었다. 내 동생이지만, 참 능청스럽다.

"명색이 이모인데 이런 것도 안 하면 어떻게 해. 반지로 할까 하다가 요새는 이렇게도 한다고 하더라. 교사 월급 어차피 박봉이라 많이는 못 넣었다."

"고마워, 언니. 이걸로 유빈이 예쁜 거 하나 해 입힐게."

지선이는 더 사양하지 않고 봉투를 받아 챙겼다. 원래도 낙천적인 성격인 지선이기도 하지만 확실히 아줌마가 되고 나니 더 천연덕스러워진 것 같기도 했다.

"잘 커?"

"응. 요새는 제법 벽을 짚고 일어나기도 해."

"벌써?"

"벌써라니. 빠른 애들은 걷기도 하는데 말야. 아무래도 남자애다보니 좀 늦된 편이야. 우리 옆집 애만 해도 말이야..."

식사가 나오기 전까지, 도무지 나와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는 지선이 옆집 아이의 성장 발달 상황에 대해 들어야만 했다. 중간 중간 유빈이 이야기도 나오기에 아예 모른 척 할 수도 없어 그냥 고개를 한 번씩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애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참 곤욕스럽다. 맞장구를 어느 타이밍에 쳐야할지 모르겠다.

어떤 이들은 조카가 생겼다고 하면 정말 끔찍이도 아낀다고 하는데, 난 어째 그런 마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유빈이 얼굴이라고 해봐야 지난번에 동생 부부가 한 번 데리고 나왔을 때 식사를 같이 하면서 본 게 다였다.

지난번에는 백일 기념사진이라면서 지선이가 사진 몇 장을 챙겨주긴 했는데, 책상 서랍에 넣어놓곤, 넣어두었단 사실 자체를 잊어버렸다.

다행히 식사는 금방 나왔다. 종알거리던 입을 이제는 음식으로 채워넣는 동생을 보며 물었다.

"맥주도 한 잔 시킬까?"

"여기서? 에이. 여기 말고, 저쪽 시내에 가면 흑맥주를 맛있게 하는 데가 있대."

"흑맥주?"

"응. 언니도 좋아할 거야."

지선이의 음식 취향은 나와 좀 다르지만, 술 취향은 비슷했다. 난 마시고 취하기보단 한 잔을 마시더라도 맛있는 술을 마시기를 좋아했고 지선이도 그러했다. 그런 내 취향을 감안하여 미리 가게를 알아둔 모양이었다.

"그러자, 그럼."

식사를 하는 동안에는 지선이의 이야기는 끊이질 않았다. 아까 하던 유빈이 이야기로 마저 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남편 이야기로 옮겨갔다.

"말도 마. 오늘 나오는 거 가지고도 얼마나 뭐라 그랬는지 몰라."

"그래도 봐주는 게 어디야. 야간 근무하고 피곤할 텐데."

"고거 한번 봐주고 나중에 얼마나 유세를 떨텐데 그래. 에휴. 내가 뭐라고 하면 나보고 돈 벌어보라고 그런다니까? 자기가 집에서 애 더 잘 키운다나. 그 꼴 보기 싫으면 나도 나가서 돈을 벌든가 해야지, 원."

지선이가 하는 남편 이야기는 대개 흉으로 수렴한다. 늘 있던 일이라 딱히 놀랍지도 않아 대충 대답했다.

"돈 버는 게 어디 쉽나."

"언니는, 내가 안 해서 그렇지. 막상 하게 되면 잘할 거라니까. 기회가 없어서 그랬지."

"아니면 공부를 마저 하지 그랬어."

"아.. 그 생각도 아예 없는 건 아닌데... 뭐랄까. 이젠 머리가 텅 빈 거 같아서 말이야. 책 하나 안 보고 산지도 꽤 되었어."

원래 지선이는 사회학 석사를 수료하고 박사 학위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의 남편과는 학생 때부터 캠퍼스 커플이었는데 그 민감한 시기에 덜컥 아이가 들어서고 말았다. 동생은 준비하던 박사 학위 수료는 고사하고 커리큘럼을 제대로 밟기도 전에 서둘러 학교를 떠나야 했다.

배가 불러오기 전에 황급히 올린 결혼식. 그리고 이어진 결혼생활과 출산, 육아생활. 지선이는 사회를 제대로 경험할 틈도 없이 학교에서 그대로 집으로 옮겨갔다. 그래서 사회생활 중이고 미혼인 제 언니들에 대한 부러움이 컸다.

"나도 큰언니처럼 선생님이나 할 걸 그랬어. 그러면 출산휴가도 1년간 쓸 수 있잖아."

뭘 모르는 소리에 쓴웃음이 나왔다.

"그거 쓰려면 승진은 포기했다고 봐야지."

"언니 승진하려고? 아빠처럼? 그거 꽤 피곤할 텐데."

"모르겠다. 아직은... 생각중이야."

그렇게 사이가 틀어져버린 아버지와 나 사이지만, 그의 영향력은 아직도 내게 유효하다. 내가 교직을 떠나지 않는 이상 그와 비교되는 일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 이야기에 내가 불편해하는 기색을 눈치 챈 지선은 대화의 방향을 틀었다.

"아니면 작은 언니처럼 연애라도 마음껏 해보든가 말이야."

"지윤이 아직도 연애주의자야?"

내 바로 아래 동생 지윤이는 뮤지컬과 연극 쪽에서 무대 연출을 하고 있다. 화려한 세계에 몸담고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천성이 그런 건지... 연애 쪽으로도 몹시 화려했다. 지선은 들고 있던 포크를 허공에 대고 빙빙 돌리며 말했다.

"말도 마. 지난번에는 글쎄 양다리 걸치다가 딱 걸렸다지 뭐야. 자취방에서 삼자대면을 했다나."

"볼만 했겠네."

별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 필라프를 마저 먹으려는데, 등 뒤에서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별로 볼만할 정도는 아니었어. 그냥 난리굿이었지."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내 동생이자 지선이의 작은 언니. 우리 아버지의 둘째딸, 지윤이가 인상을 팍 쓰며 서 있었다. 고개를 다시 돌려 앞자리에 앉아있는 지선이 얼굴을 확인했다. 동생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큰언니 만난다니까 작은 언니가 오겠다고 했어."

지윤이가 지선의 옆자리, 내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이렇게 송 씨 가문 세 딸이 모두 모였다. 나 송지애, 송지윤, 송지선. 좀처럼 모이기 어려운 세 사람이 이렇게 한 곳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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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애가 누군지 잘 떠올려 보시면, 지금 이 시기가 언제인지 기억나실 겁니다.

외전 [부도덕한 여교사] 시작합니다.

연재 주기는 비정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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