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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3
내가 리사와 하는 건 마리에게 숨길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마리와 하게 되더라도, 그건 리사에게 숨길 수 없었다. 둘은 한 몸처럼 연결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또 다른 이유로, 또 한 사람에게 우리의 관계를 숨길 수 없었다. 그녀는 거의 모든 순간을 리사나 마리와 함께 있었기에, 비밀이란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예린.
언제나 말이 없고, 표정 변화가 없는 그녀였지만, 난 그녀가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둘이 함께 보냈던 그 밤, 그녀는 분명히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한석 씨에게 안기고 싶긴 하지만.... 순서를 지켜야 할 것 같아서요. 제가 너무 서두르면 아가씨에게 폐가 되니깐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고 했던가. 이미 두 여자와 깊은 관계를 갖고, 또 지속적으로 몸을 섞으면서도 나는 또 다른 여자를 마음으로 탐하고 있었다. 그녀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아무런 말은 없었지만, 이미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감추지 않았다.
리사, 마리와 그런 관계가 되고 나서 3주 정도 재활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다녀야 했다. 병원에 가는 화요일과 목요일에 나와 동행한 것이 예린이었다. 마리는 학교를 가야했고 리사는 내가 모르는 일로 낮 동안 계속 바빴기에 예린이 나와 함께 한 것이다.
예린과 단둘이 되고나자 전부터 궁금하던 걸 물어보았다.
"말해줘. 리사네 집은 대체 뭐 하는 집안이야?"
"전에도 이미 말씀드렸을 텐데요."
"그렇게 뭉뚱그려 말하는 거 말고... 자세히 말야."
"......"
예린은 한사코 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 저항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고, 완전히 무방비하게 만들 방법이 내게 있다는 걸 알았다. 자동차의 조수석에 앉아 운전하는 예린의 옆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때, 네가 순서라고 말했잖아. 기억나지?"
대답이 없었다.
"리사랑 마리랑은 이미 했고... 이젠 예린, 너만 남았는데 말야."
"....."
"저기 사거리에서 일단 우회전해."
재활치료를 하기 위해 병원으로 향하던 차는 정상코스에서 조금 벗어났다. 병원 주차장이 아닌 모텔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내가 이끄는 대로 방으로 따라온 예린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윗입이 열리지 않기에 아랫입부터 열어보기로 했다.
손을 뻗어 예린의 옷을 하나하나 벗기는 건, 아주 재미있는 일이었다. 옷 안에 감추고 있는 코르셋을 벗겼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오는 거대한 가슴도 꽤 마음에 들었다. 단단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갖춘 몸은 실로 아름다웠고, 그걸 맛보는 일은 자못 신나는 일이기까지 했다.
예린은 적극적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수동적이라거나 반항적이지도 않았다. 서툰 몸짓이나마 내게 협력해왔고, 덕분에 쉽게 어울릴 수 있었다.
최근에는 두 명을 상대로 섹스 하는 일이 잦았기에, 한 명을 상대하는 건 도리어 쉬울 정도였다. 뜨거운 시간이 지나고 알몸으로 내게 안긴 예린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던진 질문, 대체 리사의 집안은 뭐하는 곳인가에 대한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저희는 부산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에 말했던 사소한 분쟁 해결?"
"그건 일부 업무입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리사의 아버지는 부산에서 꽤나 알아주는 큰 손이라고 했다. 큰 손인 동시에 큰 주먹이다. 지하 경제에 흐르는 돈줄도 돈줄이거니와 "사람"을 공급하는 일에 있어 거의 독점적 수준이라고 했다.
들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돈이야 그렇다 치고 사람을 공급한다고? 일의 내용 자체도 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거니와 규모 역시 내가 짐작할 수 있는 범위보다 더 큰 모양이었다. 적어도 예린이 직접 동원 가능한 그녀의 휘하에 있는 인원만 해도 상당했다. 말 그대로 "조직"인 셈이다.
"그 정도였어?"
고개를 끄덕이는 예린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여태 있었던 여러 일들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 스케일은 짐작을 못했다. 허풍을 떨거나 허세를 부리는 성격이 결코 아닌 예린이 한 소리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예린은 좀 묘한 소리를 덧붙였다.
"다만 요새 문제가 좀 있습니다."
"문제?"
하긴 그렇게 큰 영향력이 있는 곳이라면 문제가 없을 리는 없겠지. 무슨 문제인지 말해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예, 최근에 여러 가지로 부침이 많습니다. 아버님이 그리 노쇠하신 것은 아니지만, 이쪽 업계에서는 이미 충분히 퇴물 대접입니다. 게다가 가장 핵심 인원이 최근에 곁에서 빠지고 나니 아무래도...."
"핵심 인원? 그게 누군데?"
예린이 날 빤히 보며 대답했다.
"리사 아가씨입니다."
"에엑...?"
그녀들의 집이 그런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리사가 아예 핵심 인원이라는 이야기는 날 두 번 놀라게 만들었다.
정규 교육 과정을 제대로 받지도 않았고, 지금 학교도 다니지 않는 리사가 낮에 그리 바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늘 예린을 동행하고 다니며 휴대전화로 수시로 연락을 취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그 모든 것이 결코 그녀가 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리사의 지시가 필요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고 그녀는 그것을 전화로 처리하고 있었다.
그 후로 예린에게 수시로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한 세부적인 이야기와 요즘 부산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예린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에는 가끔 리사가 전화를 붙들고 사투리로 뭐라 뭐라 고함을 치는 걸 보고도 그냥 모른 척하기로 했다.
또한, 예린과 그렇게 된 사이라는 사실은 리사에게 말하지 않았다. 예린이야 원래 과묵하니 문제가 없었지만, 내가 마음에 걸렸다. 나중에 기회를 봐서 말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런 시간은 쉬이 오지 않았다.
예린에게 사정을 듣고 난 다음 은연중에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다. 평범하지 않은 이 자매와 그렇게 깊숙하게 엮이고 있는데 나는 언제까지 무사할 것인가. 이 만남이 내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평범한 사람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일과는 조금 다른 성질의 일, 그러니까 예를 들어, 나쁜 일을 당하게 되면?
걱정이 안 되려야 안 될 수 없었다. 하루는 이런 우려를 예린에게 말했더니 그녀는 단호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결코 오빠에게 무슨 일이 생기게 두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생기면?"
그러자 예린은 내 몸을 힐끔 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오빠 몸에 생채기라도 내는 놈들이 있으면 제 손으로 싹 다...."
"워워. 됐어, 거기까지."
순간 그녀에게서 피어오르는 살기는 결코 날 향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까지 오싹하게 만들었다. 무서웠지만, 동시에 몹시 든든했다. 그래서 너무 고마워서 다시 안아주고 리사 몰래 밖에 나가 둘이서 찐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기말고사 기간이 되었다. 시험 기간에는 금욕을 하느라 리사의 불만이 심해졌다.
"어쩔 수 없잖아. 너랑 하면, 마리도 하고 싶어지는데... 안 그래도 마리는 성적이 간당간당하다고. 이번 시험 잘 봐야해."
리사는 툴툴거리며 스터디 중인 나와 마리 주변을 자꾸 맴돌았다. 빨리 시험 다 끝내고 진하게 안아주겠다고 몇 번이나 약속해야만 했다.
드디어, 시험 마지막 날.
펜을 내려놓고 마지막 시험지를 제출 하는 순간,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잘 참아준 리사를 빨리 만나고 싶었지만, 먼저 만날 사람이 있었다. 얼마 전, 놀라운 소식을 발표해서 학교 전체를 뒤집어 놓은 진호 선배였다. 그가 점심을 사준다고 약속을 했던 터라 사무실 앞에서 만났다. 늘 그렇듯이 혼자가 아니었다.
"여어, 한석. 시험 다 끝난 거야?"
"방금이요. 선배는요?"
그러자 형은 옆에 있는 과순이를 가리키며 웃었다. 아니, 이제 그렇게 부르면 안 되지. 혜진 씨라고 했던가.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말이다. 늘 과순이라고만 불러왔고 이제는 형수님이라 불러야 되는 터라 이름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야 애들 시험 끝났나 확인만 하면 되지만 우리 마누라가 교수님들 서류 정리가 아직 덜 끝나서 말야. 내일까지는 학교에 나와야 할 것 같아."
"별 일 아니니까 나오지 마요. 오빠."
나야 매번 지나가며 항상 얼굴은 보았지만, 대화는 제대로 나눠본 적도 없는 혜진이었는데, 진호 선배의 마수는 어느새 거기까지 뻗은 모양이었다. 형은 가을에 식을 올리기로 했다. 그렇게 공표한 이후부터는 저렇게 둘이서 꼭 붙어 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 마누라 혼자 다니게 할 수는 없지. 늑대들로 드글드글한 공대에 널 두고 가면 내 속이 안 편해."
졸지에 인간에서 늑대로 격하된 나는 뭐 먹으러 갈지 물어 보았다. 선배가 호기롭게 외쳤다.
"낙지볶음 맵게 잘하는 데를 찾았어. 가자!"
맛있겠다며 좋아하는 형수를 보며 난 알았다는 듯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맵다... 이 말이지.
"호의는 고맙지만 전 여기까지... "
정중히 사양하고 물러나려고 하였으나 선배에게 목덜미를 잡혀 질질 끌려갔다. 으악. 제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걸로 먹으러 가자구요! 네에?
그렇게 끌려가다시피 하여 고문과도 같은 식사를 맞이했다. 어느 정도 먹고 나서 먼저 일어섰다. 입과 속에서 일고 있는 불길을 다스려가며 말이다. 두 사람에게 남은 시간 즐겁게 데이트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내가 가야 할 곳으로 향했다. 진호 선배가 물었다.
"다시 학교로 들어가게?"
"예. 마리가 아직 오후에 시험이 있어요."
"내가 니 마리 처음에 데리고 올 때부터 어느 정도 예감을 했다니까. 둘이 착 붙어 다니는 게 보기 좋다고 말야."
"하하. 고맙습니다."
선배는 내가 마리와 사귀는 걸로 알고 있다. 사실 학교에 는 그렇게 알려져 있기도 했다. 진호 선배와 미래의 형수님께 인사를 남기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교정을 가로질러 걸어가며 봄부터 이어져 내려온 나의 섹스 라이프를 상기했다. 남한테는 결코 털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를 속으로 중얼거렸다.
'둘이 아니라... 셋이 붙어있습니다만....'
그렇다. 마리와 리사, 두 자매를 동시에 취한 그 날 이후 나의 생활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나의 사고도 완전히 달라졌다. 여태껏 나는 섹스는 남성과 여성, 두 사람만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예전에 잠깐 알고 지내던 지혜와 효진이를 두고 셋이서 즐겼던 적이 있지만, 그건 나 자신이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꿈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매가 나와 함께하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하루는 내 침대에 마리가, 또 다음 날에는 리사가 들어왔다. 휴일에는 두 사람이 같이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몸 안의 정액이 고갈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힘들다고 생각이 들 때도 없진 않았지만, 결코 싫지는 않았다.
어느 한 사람도 놓치기 싫은 매력의 소유자들인 데다가 날 무척이나 사랑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둘의 사이는 정말 좋았다. 셋이서 하다가 어느 정도 열이 오르면 둘이 엉켜서 키스를 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면 나 역시 참전하고....... 그렇게 두 명의 정기적인 섹스 파트너가 있다 보니 나라는 녀석의 사고방식이 수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명과 꼭 할 필요는 없다. 두 명도 가능하다.
세 명이라고 안 될 이유는 뭔가. 그런 생각으로 시간 날 때마다 예린을 품고 있었다.
요새 시험기간이라고 참고 있었더니 이제 방학동안 불태울 밤에 대한 생각만으로 아랫도리가 불룩해졌다. 공대 앞 벤치에 앉아있던 나는 꼬고 앉았던 다리의 방향을 바꾸었다.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이제 슬슬 끝나갈 시간인데도, 아직 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마리 이 녀석은 모르는 문제가 잔뜩 나와도 시험시간을 꽉꽉 다 채워서 끝까지 앉아 있다가 나오곤 했다. 정답을 적지 못할 바에야 교수님을 향한 열렬한 자기고백과 성찰을 담은 편지라도 쓰라고 했지만, 딱히 그러지도 않았다. 그런 녀석이니 아직 나오려면 한참 남았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리사에게 오늘 시험이 끝난다고 말했더니 뛸 듯이 기뻐하며 이날을 몹시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녀는 방학을 맞이한 나와 이곳저곳으로 데이트하러 갈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만의 뜨거운 밤도.....
그렇게 망상을 불태우고 있는데, 누군가 불쑥 나타나 내게 물었다.
"최한석 씨 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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