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354화 (354/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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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카페 미리내

은미는 어차피 현행범으로 체포된 케이스니까 그냥 가서 진술만 하면 끝나는 줄 알고 알겠다고 대답했다. 가람과 은미, 경찰들은 지하철 수사대 출장소로 향했다. 책상 하나와 의자가 몇 개가 놓인 출장소 사무실에 도착해서도 가람은 외쳤다.

"아! 진짜라니까요! 얘랑 저랑 원래 사귀는 사이고, 같은 학교 같은 과라구요. 학생증 보여드려요?"

은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같은 과인건 맞는데 예전에 이미 끝난 사이에요. 남자친구 아닙니다."

가람의 변명은 길어졌다. 그는 집에 전화 좀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은미도 혹시나 싶어 집으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어차피 엄마는 새벽이나 되야 들어올 게 분명하고 지방 출장을 갔다는 아버지에게는 지금 연락을 한들 도움이 되지 못할 게 분명했다. 한석이 떠올랐지만, 그에게 연락할 방도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은미가 알기론 그는 핸드폰도 삐삐도 갖고 있지 않았다. 문득 예전에 효진에게 받은 휴대전화 번호가 기억나서 그걸로 걸었더니 연결이 되었다.

"여보세요?"

"언니? 저예요. 은미."

"어, 그래. 어쩔 일이야?"

"그게요.... 좀 곤란한 일이 생겨서..."

은미에게 자초지종 사정을 전해들은 효진은 걱정말라며 기다리라고 했다. 가람 역시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그다음부터는 은미에게 이죽거리기 시작했다. 뭔 일인가 싶었는데 30분도 채 되기 전에 어떤 아줌마가 나타났다. 가람의 엄마였다. 그녀를 본 가람이 울상이 되어 소리친다.

"엄마!"

"아이고, 가람아! 이게 무슨 일이야!"

"그게...."

경찰 한 명이 그녀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가람이 은미에게 성추행을 하다가 지하철 수사대에게 현장체포 되었고 만약 은미가 고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여기서 조사가 끝나는 대로 검찰로 사건이 넘어간다는 일정까지 상세히 말해주었다. 가람의 모친은 입을 뻐끔거리며 황당해하다가 자기 자식과 은미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가 은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도끼눈을 하더니 은미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옆에 있는 경찰이 재빨리 제지를 하지 않으면 멱살이라도 잡을 판이었다.

"야, 이년아! 니가 누구 아들 신세 망칠라고 지랄이야, 지랄은!"

은미는 깜짝 놀랐다. 가람의 어머니까지 불려오는 걸 보고 자기가 너무 심했나 싶어 고소를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마음은 싸늘하게 식어간다. 그 와중에도 가람 모친의 굿판은 멈추지 않았다.

"아이고, 형사님들! 저년 입은 꼬라지를 보세요. 저게, 저게 정신 똑바로 박힌 년이 하고 다닐 차림입니까? 저러고 다니니 사내가 꼬이는 게 당연하죠. 지 년이 꼬리를 치고! 응? 어디다 대고 고소야 고소는! 콩밥은 니 년이 먹어야 돼!!!"

경찰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버둥거리며 막말을 쏟아내는 가람모의 말에 출장소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사실 아까부터 은미는 바늘방석에 앉은 듯한 기분이었다. 피해자인 그녀와 피의자인 가람을 한자리에 앉혀두는 것도 그렇고 가람의 변명, 그러니까 둘이 예전에 사귀었고 지금도 같은 학교 학생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경찰들이 은미에게 딱히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기 시작했던 것이다. 게다가 경찰들이 은미에게 던지는 시선 중에는 묘한 시선도 분명 있었다. 은미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 사건의 본질은 가람이 자신을 함부로 만졌다는 사실이다. 가람은 경찰이 현장에서 체포한 현행범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자신의 차림이 왜 문제가 되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젊은것들이 저렇게 하고 다니니 나라가 이렇게 문란해지고 썩어빠지는 거 아니겠어요? 감방에는 저런 년들을 집어넣어야 된다구요, 경찰나리들. 응? 안 그래요? 우리 아들이 얼마나 효도하고 공부도 잘 하는 앤데, 엉?"

가람의 모친이 난리를 치는 사이에 조서를 작성하는 경찰이 저쪽이 저렇게 나오고 있는데 합의를 보는 게 어떠냐는 식으로 넌지시 말을 꺼냈다. 은미는 기가 막혔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아뇨. 전 합의 안 해요. 그대로 사건 접수해주시고 검찰로 넘겨주세요."

"아이고! 저년이 미쳤구나! 미쳤어!"

가람의 모친은 숫제 발광이라도 하는 것처럼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었다. 여차하면 은미의 머리채라도 쥐어뜯을 기세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 불쑥 나타난 이 때문에 그 행동은 차단되고 말았다.

"미친 건 얘가 아니라, 아주머니죠. 아들 똑바로 못 키운 당신 말이에요."

"뭐? 이놈은 또 뭐야?"

가람의 모친은 난데없이 나타나 은미를 감싸고 있는 키 큰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평범한 얼굴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그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조서를 쓰고 있는 경찰에게 말했다.

"여기 있는 피해자, 이은미의 애인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가람의 모친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쪽 녀석 콩밥 먹일 각오 제대로 하세요. 난리 그만치시고."

조용하지만 강한 의지가 담긴 그 말에 다들 움찔했다. 유일하게 단 한 사람만이 다른 의미로 놀라고 있었다. 한석의 품에 안긴 은미는 그의 단호하고도 갑작스러운 애인 선언에 깜짝 놀라면서도 행복함을 느끼고 있었다.

"오...오빠...."

은미는 반가운 마음에 자리에서 한석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한석은 그런 은미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효진이에게 전부 들었어. 여긴 우리한테 맡겨."

한석은 혼자 온 게 아니었다. 은미가 처음 보는 여자와 함께 있었다. 20대 후반 정도 되었을까. 얼굴은 상당히 미인이었지만, 꽤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서류 가방 하나를 들고 은색의 슈트를 위아래로 차려입은 그녀는 금테 안경을 고쳐 쓰며 다가와 은미에게 무언가 내밀었다.

"이은미 씨."

"네?"

"박효진 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전 변호사 손하영이구요, 여기 선임계와 전권 위임장에 사인을 해주시면 여기서의 모든 일은 제가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서도 거의 다 쓴 것 같은데, 굳이 여기 계실 필요 없습니다. 또한 이런 사건에서 분리 조사하지 않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대면시키는 건 경찰의 잘못이죠. 자, 서명하실 곳은 여기와 여기입니다."

빠르고 명료하게 말을 쏟아내는 그녀의 기세에 은미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키는 대로 사인을 하고 말았다. 하영은 서류를 갈무리하더니 그 위에 자신의 명함 하나를 얹어 조서를 쓰고 있던 경찰에게 제출했다. 그녀는 당당한 자세로 선언하듯 말했다.

"위임장에 적힌 대로 이은미 씨에 관련된 모든 사안은 이제부터 제가 대신하겠습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 제11조 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으로 저기 있는 최가람 씨가 현행범으로 체포된 사건 말입니다."

엄청 빠른 말투로, 그러면서도 토씨 하나 틀리는 일 없이 또박또박 말하는 게 그녀의 원래 말투인 모양이었다. 경찰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명함과 하영을 번갈아 보았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늘어놓는 말은 그에게 익숙한 듯 하면서도 생소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 몇 조라고요?"

그는 다른 경찰과 의견을 나눈 다음, 명함에 적힌 사명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법무법인 새암? 거기 법무팀장이시라구요?"

"정확히는 제17법무팀, 팀장 대리입니다. 팀장님이 현재 해외출장 중이니까요."

"하아, 새암이라니...."

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은미도 새암이라는 이름에 깜짝 놀랐다. 가끔 뉴스 같은데서도 들어본 대형 법무법인 회사였기 때문이다. 그런 회사의 팀장이라는 사람을 효진이 자신에게 보냈다는 사실이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싶었지만, 한석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에게 기분 나쁜 이곳을 빨리 벗어나자고만 했다. 은미는 그 말에 크게 공감했다. 한석이 은미를 부축해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 했다. 한석은 하영에게 말했다.

"하영 씨. 그럼 뒷일을 부탁해도 되겠죠?"

"물론입니다."

한석은 하영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곤 은미를 데리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아니, 벗어나려 했다. 아까부터 난리를 치고 있던 양반이 문을 가로막으며 외쳤다.

"가긴 어딜가! 이 년이 내 아들 신세 망치려는데 뭔 놈의 변호사고 자시고를 델따 놓고 뭔 지랄이야!"

"신세를 망쳐요? 누가 누구 신세를요?"

한석이 차분하게 가람 모친에게 대꾸했다. 그녀는 삿대질을 해가며 한석의 멱살이라도 잡을 것처럼 대들었다. 그러나 키가 작아서 그녀의 손가락은 상대의 턱에 채 닿지 않았다.

"당신이 이 년 애인이라고? 니 애인 이렇게 입히고 다니니까 그리 좋드나? 니 눈깔 있으면 함 봐라. 이게 어디 정상적인 사고 박힌 년이 하고 다닐 차림새야?"

"왜요, 이쁘기만 하구만."

"뭐? 이놈도 돌았구만. 둘이 아주 쌍으로 돌았어."

그녀는 삿대질을 하며 은미를 쿡쿡 찔렀다. 숫제 꼬챙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프게 찔리는 게 제법 아펐다. 그러나 그 동작은 오래 가지 못했다. 한석이 거칠게 그녀의 손가락을 낚아채었기 때문이다.

"이봐요. 아줌마."

한석은 은미를 살짝 당겨 자신의 뒤로 둔다. 그리고 가람 모친을 똑바로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나 지금 완전 빡돌아서 제정신 아니거든요? 이런 더러운 꼴 보는 건 이제 아주 신물이 나. 여기 들어오자마자 은미만 아니었으면 니 년 아들이라는 새끼 자지를 뽑아다가 지 에미 대가리에 처박아버리고 싶었는데 겨우 참고 있어. 알아? 남이야 어떻게 입고 다니든 말든 뭔 상관이야! 이 나라 이 땅에 표현의 자유는 있어도 범죄의 자유는 없어! 지 앞가림도 못하는 멍청한 새끼가 어디서 나왔나 했더니 이런 더러운 소리를 지껄이는 년 보지에서 튀어 나왔구나! 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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