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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카페 미리내
한석도 바에 앉았다. 서로 간의 복잡한 관계는 몇 마디 토론 끝에 밝혀졌다. 한석은 그저 이 카페에 자주 왔음에도 불구하고 은미를 못 알아보았다. 효진과 지혜는 우연히 길에서 만난 그녀를 곤경에서 구해주었다. 그 날 한석이 은미를 데려다주면서도 딱히 서로 이름을 밝히거나 카페 미리내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모든 이야기가 밝혀지고 나자 한석을 향하던 효진의 의심은 이제 은미를 향했다.
"그럼 뭐야, 무심한 한석이야 그렇다 치고 은미는 한석이를 알아봤다는 거 아냐. 그럼 그때 왜 아무 말도 안 한 건데?"
"에? 저야... 뭐... 그다지 할 이야기가...."
"그으래? 정말? 흐음..."
효진은 묘한 미소를 띠며 은미를 바라보았다. 은미는 애써 그 시선을 외면하며 한석을 위한 커피를 만들어주었다.
"여기요."
"아, 감사합니다."
한석은 늘 그렇듯이 가방에서 책을 하나 꺼내 읽으면서 커피를 마셨다. 대충 마시는 그 모습에 효진이 혀를 찼다.
"얌마. 여기 바리스타가 정성을 다해 끓인 커피인데 좀 신경 써서 마셔봐."
"응? 뭐라고? 발리스타?"
"...발리스타는 또 뭐야..."
"모르니? 중세 시대에 공선전에서 대형 투사체를 던지는 무기였는데...."
"시끄러."
효진은 한석의 입을 다물게 만들곤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면서 은미에게 슬쩍 눈길을 준다.
"니가 앞으로 고생이 많겠다. 그치?"
"네? 제가 뭘..."
"아냐, 아무 것도."
지혜가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고 한석에게 물었다.
"근데 한석이는 이 카페에 왜 온 거야? 여긴 학교 근처도 아니잖아."
"나야 뭐, 좀 있다가 과외 가는데 시간이 좀 어중간하거든. 딱 저 아파트라서 여기서 시간 때우기가 참 좋아."
무심하게 대답하는 한석의 말에 은미는 조금, 아주 조금 상처를 받았다. 설마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녀의 가슴 한구석 아주 작은 자리에 몰래 숨겨둔 마음 중에는 혹시 한석이 자기 때문에 이 가게에 오는 건 아닐까 하는 기대감 같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남몰래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효진과 눈이 마주쳤다. 효진은 아무 말도 없이 빙그레 웃었고 은미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항상 한석을 데리러 오는 여학생이 등장했다. 한석을 둘러싸고 있는 여자들의 가슴을 한 번씩 쳐다보더니 자신의 가슴을 한번 내려다보곤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리고 한석의 귀를 잡고 끌고 가기 시작했다. 한석은 자신을 향해 마구 짜증을 내는 여학생을 이해 못 하겠다며 그대로 끌려갔다,
그 날 이후, 카페 미리내에 지혜와 효진이 종종 놀러왔다. 늘 창가 자리에 앉던 한석도 바에 앉아 은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석을 데리러 오는 여학생의 짜증이 좀 더 심해졌다. 은미도 수업이 없는 날이나 주말이면 지혜네 집에 놀러 가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편하게 대해주는 지혜나 쾌활한 효진과 친해지는 것도 좋았지만, 그녀는 종종 맞은편 집의 한석이 이들과 함께하는 것을 은근히 즐겼다. 늦게까지 있다 보면 한석이가 은미를 데려다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는 은미의 얼굴이 홍조로 가득해지곤 했다. 효진이가 지나가는 말투로 한 마디 했다.
"은미는 지혜네 집에 지혜를 보러 오는 걸까, 아님 나를 보러 오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언니...."
은미는 얼굴이 더욱더 빨개지며 대답을 주저했다. 효진도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갈 무렵, 은미는 조금 설레고 있었다. 지난번 모였을 때 효진의 제안에 따라 방학이 되면 다 같이 어디 놀러 가자고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거의 휴일도 없이 카페 미리내에 나오고 있던 은미였지만, 이 여행을 위해 일부러 낮 시간 알바도 구해놓았다. 어제부터 나온 그 알바 학생에게 기본적인 내용부터 세세한 점까지 다 가르쳤는데 제법 눈치가 있어 금방 알아들어 주었다. 예상보다 인수인계가 빨리 끝났다. 그녀는 자신이 구운 쿠키를 바구니에 담고 에스프레소를 추출하여 보온병에 담았다. 아직 학교에 가려면 시간이 좀 남아서 지혜네 집에나 들렀다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혜 집으로 향했다.
"어머, 언니. 문을 다 열어놓고...."
항상 드나들던 곳이라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확 들었다. 자기도 모르게 동작을 우뚝 멈추고 만다. 방 안쪽에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 삐걱이는 침대 소리. 그녀로서는 전혀 짐작도 할 수 없는 어떤 종류의 소리가 안쪽 방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아직 경험이 없는 그녀였지만, 정말 희한하게도, 본능적으로 그 소리를 감지해내고 만다. 이것은 사람이 어떤 순간에 내는 소리라는 것을.
"하악...하악......응....하읍....."
"헉허어헉...허억...."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갈 수도 있었다. 모른 체하고 돌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은미의 안에서 피어오른 무언가가 그녀로 하여금 그 소리를 향해 더 접근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안으로 향한다. 숨을 죽이고 자신의 모든 소리를 죽이고 오로지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발가락 끝이 바닥에 닿을 때 소리를 내지 않도록 온 정신을 쏟아 붓는다. 반쯤 열려있는 문틈, 모든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그곳으로 조심스럽게 얼굴을 밀어 넣었다.
"하악...하아앙..... 하악..한석아...하아....응....하읍....."
"헉헙헉...허억...."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그녀는 줄곧 스스로 부인하고 있었지만..... 지난 몇 달간 이들과 지내며 어느 정도 직감은 하고 있었다. 은미가 가지고 있는 여자로서의 본능은, 한석과 지혜의 사이가 보통이 아님을 깨닫게 하고 있었다. 그들이 딱히 은미가 보는 앞에서 애정행위를 하거나 밀담을 나누진 않았지만, 어떤 다른 종류의 무언가가 통한 사람끼리의 눈빛이랄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런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느낌이 둘 사이에 있다고 은연중에 느껴왔다. 그 애매한 느낌을, 지금 바로 이 순간 눈으로 모조리 확인하고 말았다.
"하악!! 흐아.... 하악.... 한석아.....하악....흐음...."
"헙...허업... 어때? 오랜만에 하니까....."
"하으....하윽...시...시험, 잘 봤어... 하악아악...."
"빨리 끝내고.... 흐읍.... 지혜 따먹을 생각만 하고 있었지...."
"하응...몰라아.... 하악하아아하악...."
지혜는 침대 머리맡을 짚고 허리를 숙여 엎드려 있었고 그런 그녀의 풍만한 엉덩이에 올라탄 한석이 미친듯한 펌프질로 그녀를 향해 자신을 밀어 넣고 있었다. 쩔꺼덕거리는 마찰음과 침대의 비명. 지혜의 비음 섞인 깊은 탄식과 짐승의 소리와도 같은 한석의 거친 숨소리가 한데 섞여 방안의 열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고 하고 있었다.
은미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자신조차 지혜와 같은 소리를 토해 내버릴 것만 같았다. 은미 못지않게 커다란 가슴을 출렁이며 상체를 흔들어대고 있는 지혜의 모습은 엄청나게 음란해 보였지만, 그렇다고 전혀 천박하거나 퇴폐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한석의 움직임과 맞춘 리듬으로 흔들리는 그 맹렬한 출렁임은 은미의 눈에 너무도 인상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악...아응..... 하악..한석아...아앙.. 나 좀.... 하윽.......응....하읍....."
"헉헙헉...허억....역시.... 지혜 니 가슴이... 진짜... 최고야....."
"하앙... 말로만? 하응...."
"진짜라니깐... 헉헉..."
자세가 바뀌었다. 한석이 침대에 걸터앉고 그런 그의 허벅지 위로 지혜가 올라탔다. 한쪽이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지혜의 커다란 가슴 사이로 한석의 얼굴이 파묻힌다. 한 손에 하나씩 두 손으로 유방을 마구 주무르고 입을 벌려 유두를 한 움큼 베어문다. 목마른 자가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마시는 것처럼 거칠기 짝이 없는 동작으로 지혜의 가슴 하나하나를 먹어치운다. 그러나 지혜의 표정은 괴로워하거나 아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저 치밀어 오르는 쾌락을 견디지 못하겠다며 마구 비명을 지르며 한석의 머리를 끌어안아 자신 쪽으로 당길 뿐이었다.
은미는 자기도 모르게 한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브래지어 아래에서 유두가 꼿꼿이 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숨이 거칠어진다. 어설프게 알고 있는 지식으로 섹스란 여자에게 있어 괴롭고 힘든 일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의 광경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뜨겁게 넘치는 에너지는 그녀에게도 전해졌다. 이런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왜? 부러워?"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그녀의 귓가에 바짝 대고 들려온 그 소리는 은미로 하여금 까무러치기 직전까지 몰고 갔다. 화들짝 놀라 물러난 은미는 효진의 품에 안겨버리고 말았다. 효진은 황급히 손으로 은미의 입을 가리고 "쉿-" 하는 소리를 냈다. 은미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효진이 이끄는 대로 둘은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근처 공원으로 걸어가는 동안 은미는 벌렁거리는 자신의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애써야 했다. 숨을 조금이라도 잘못 쉬었다가는 그대로 심장이 도망가 버릴 것 같았다. 공원 안쪽에 놓인 벤치 하나에 나란히 앉자 효진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은미 취향이 아주 독특한걸?"
"아, 아니에요!!! 전 결코 훔쳐보려던 게..... 그런 취향이 있는 게 아니라구요!"
은미의 강변에 효진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응? 뭔 소리야? 난 한석이 좋아하는 게 특이하다고 한 건데?"
"에엑?"
깜짝 놀라 효진의 얼굴을 마주한 은미는 화끈 달아오르는 얼굴 때문에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만다. 효진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저렇게 얼빵하고 우유부단하고 생각 없는 놈이 뭐가 그리 좋다고 말야."
"오빠를 나쁘게 말하지 말아요."
"어라? 벌써 편드는 거야? 방금 그런 걸 봐놓고도?"
은미는 다시 침묵했다. 그녀의 뇌리에는 아까의 그 살색 향연이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뭐, 나나 지혜나 한석을 독점하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으니까... 은미 니가 잘하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딱히 한석이가 누구랑 사귀는 것도 아니고 말야."
은미는 효진의 말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캐치했다.
"자, 잠깐만요. 지혜 언니는 그렇다 치고.... 효진이 언니두요?"
"응? 몰랐어? 나도 한석이랑 가끔 하는데?"
조금 전에 본 광경에 놀란 가슴이 효진의 무심한 말투에 다시 한 번 크게 요동친다. 은미는 입을 딱 벌리고 효진을 쳐다보았다.
"지혜 언니는.... 어느 정도 그런 분위기가 있는 줄 알았는데...... 효진 언니는 정말... 짐작도 못 했어요."
"헤에. 그래?"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효진은 오히려 은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난 그냥 심심해서 가끔 한 거니까 니가 하겠다면 내가 양보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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