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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데이트-254화 (254/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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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9

"와, 씨발. 이 년 빨통 봐라. 죽이는데?"

"얘한테 마사지 안 받아 본 것 같은데."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나 보지."

저희들끼리 낄낄거리며 소연의 젖가슴을 마구 주무른다. 소연은 비명을 지르진 않았지만, 꼭 감은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나도 울고 싶었다. 무기력한 내 앞에서 다른 여자가 겁간을 당하는... 그런 참혹한 경험을 두 번이나 하고 싶지는 않았다. 말세교에서의 처참한 기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때의 나는 너무도 무력했는데,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보지만, 팔을 묶고 있는 줄 하나도 어쩌지 못한다.

"야. 넌 왜 눈 안 떠?"

"저는... 앞이.. 앞을 못 봐요."

"뭐? 구라 아냐?"

한 놈이 손을 뻗어 소연의 얼굴을 만졌다. 눈꺼풀을 강제로 뒤집어 보려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여태까지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던 소연이 격렬하게 손을 휘두르며 놈의 손을 쳐냈다. 의외의 저항을 당한 남자는 험상궂은 얼굴이 되더니 소연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이년이 미쳤나... 씨발, 병신 같은 년이 손아귀 힘이 뭐 이리 억쎄?"

짝짝거리는 소리는 들려올 때마다 내 가슴이 아팠다. 소연의 몸은 축 늘어졌다. 올라탄 남자는 흥이 깨졌는지 더는 굳이 그녀의 눈을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청바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내게 말했다.

"자아, 서울 아저씨. 빨리 안 불면, 이년 아랫도리가 허벌창 납니다아? 응? 어디 보자, 그냥 평범한 좆으로 박는 건 재미가 없을 것 같고... 그렇지. 야. 우리 중에 좆에 다마 박은 새끼 누구냐."

그러자 덩치가 산 만한 놈 하나가 어깨를 으쓱한다.

"나 박았는데."

"그래. 너가 좋겠다. 저 새끼가 씹질 하면 이 씨발년 아래쪽 다시 쓰기 힘들 수도 있어. 응? 다시 잘 생각해봐. 저 새끼 자지는 그냥 자지가 아냐. 도깨비 방망이지."

그러면서 저희들끼리 또 한참 웃는다. 다른 사람을 때리고 짓밟으면서 저렇게 웃을 수 있다니... 악마가 따로 없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애써 태연한 척, 전혀 두렵지 않은 척하며 고개를 똑바로 들었다. 내가 안타까워하고 두려워하길 바라고 있는 그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들은 더 큰 만족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좋은 생각이 났다. 일단 자세를 바로 하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여태까지 계속 맞은 허벅지가 얼얼하다 못해 감각이 없었다. 입고 있는 옷이 하나도 없어서 춥고 볼품없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그래. 내가 리사 남편이다. 새끼들아."

소연의 팬티를 벗기던 놈의 동작이 딱 멈췄다. 다섯 명의 남자가 모두 날 쳐다보고 있었다.

"리사가 나랑 잘 되니까 김 회장이 나한테 조직을 물려준다고 그랬어. 그러다가 일이 좀 어긋나서 그사이를 못 참고 송 부장이 치고 들어온 모양인데... 씨발. 니네 리사가 어떤 여자인지 몰라? 지금 잠깐 물러나서 애들 모으고, 돈 모으고 있어. 부산에 금방 올 거야."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사실 난 김 회장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의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말이다. 방금 술술 흘린 이야기는 전부 뻥이었다. 카드게임의 블러핑이었다. 그러나 방금 그들의 이야기에서 알아차린 게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리사에게 갖는 두려움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아직 리사가 살아있는 줄 알고 있다.

"구라 치시네. 그때 존나 쫓겨서 달아났는데... 올려면 진작 올 것이지, 왜 지금 오는데?"

"왜냐하면 리사가 그때 내 새끼를 임신 중이었거든. 애 낳고 몸조리하느라 지금 공기 좋은 곳에서 쉬고 있어. 애들 젖 떼면, 부산 싹 밀러 다시 온다고 말이야. 예린이 사전 조사도 할 겸 부산으로 내려올 때, 나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려고 한 번 와봤다. 그러다 이렇게 니들을 만나게 될 줄은 미처 몰랐지만 말이야."

한 번 터진 거짓말은 정말이지 쉬지도 않고 술술 흘러나왔다. 마리가 임신 중인 걸 떠올리고 즉석에서 지어낸 이야기였지만, 어딘지 나도 모르게 쐐한 느낌이 들었다. 놈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주저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들에게 뭔가 확신을 주어야 할 이야기가 필요했다.

"근데, 니들, 말이야. 요새 월급은 제대로 받고 있냐?"

그러자 여태까지 평정을 가장하고 있던 녀석들의 표정이 무너졌다. 한 놈은 아예 한숨까지 푹푹 내쉰다. 찡그린 표정 너머 경제적 고난이 엿보인다. 예린이 말했던 '속 빈 강정' 상태의 조직은 조직원에게 월급까지 제때 주지 못할 지경인 게 맞았다. 한 놈이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옆에 있는 놈에게 말했다.

"으으... 씨발. 이 새끼 아무래도 구라 같은데..."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구라가 아니면?"

"구라가 아니면?"

저들의 머릿속이 재충 짐작이 간다. 아마도 리사와 송 부장의 충돌을 시뮬레이션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송 부장이 리사를 압도할 것이라 믿는다면 저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겠지. 저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리사가 이길 수도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일단... 윗선에 알리는 게 좋겠어. 이 새끼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두고 보면 알겠지. 진구와 태진이 건도 그렇고. 미심쩍은 게 너무 많아. 우리가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그...그럴까."

놈들의 흔들리는 마음이 보인다! 약간의 쾌감까지 느껴졌다. 내친김에, 뻥을 하나 더 쳐보기로 했다.

"야, 그리고 니네 말이야. 생각이 있으면 저런 년은 함부로 따먹고 그러면 큰일 나. 니네 에이즈라고 들어봤냐, 에이즈?"

"에이즈?"

"씨발, 그거 걸리면 죽는 병이잖아."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거짓말을 이어갔다.

"저렇게 업소에서 일하는 애들은 성병 하나 정도는 흔하게 달고 있다고. 그런 년 밑구녕 쑤시면서 콘돔도 안 끼고 생으로 막 하고... 어휴. 니네 그러다가 꼬추에서 피고름이 흘러나와봐야, 아, 그때 내가 너무 무식하게 쑤셨구나, 싶겠지? 콘돔 가지고 다니는 놈 있으면 끼고 하고. 없으면 참아."

녀석들은 이미 정신적으로 고추를 한 대씩 얻어맞은 표정이 되어 뒤로 물러났다. 소연이 마치 더러운 물건이라도 되는 양, 옷을 원래대로 해주고 손도 대지 않는다. 엉겁결에 겁탈의 위기에서 벗어난 소연은 뜯어진 남방 옷매무시를 가다듬으며 바로 앉았다. 딱히 내 쪽을 보고 있지 않아서 표정을 알긴 어려웠다. 그녀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그녀의 몸을 구하기 위해 둘러댄 말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좀 심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남자 중 한 놈이 책상으로 다가가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곤 수화기를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했다.

"왜 그래?"

"아니... 그게... 전화가 안 돼."

"뭐?"

놈들은 서로 마주 보다가 점점 표정이 안 좋아졌다.

"야, 설마..."

"씨발... 이거, 누님 수법이잖아..."

그들이 말하는 누님이 누구일까. 나는 왠지 알 수 있었다. 놈들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한 놈은 창문을 내다봤다가 여기가 고층이라는 사실을 알고 비명을 질렀고, 또 다른 놈은 책상을 밀어다 문 앞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나 왠지 어디선가 이 장면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다음에 어떻게 되는지도 알고 있다.

"이 안에 있는 거 다 알고 있다! 당장 나와!"

방금 들린 목소리는 너무도 반가운 목소리였다. 조금 낮은 목소리이긴 하지만 분명 여자 목소리.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푸칵-

무지막지한 소리를 내며 문짝 윗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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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을 다 같이 외쳐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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