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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9
"......마리니?"
검은 실루엣이 고개를 끄덕인다. 머리 길이를 제외하고 실루엣만 보면 리사와 다를 바 없는 그 모습에 목이 멨다. 순간적으로... 아주 잠시나마 리사와 함께 보냈던 밤이 떠올랐다. 애써 고개를 저으며 기억을 떨쳐낸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검은 형체의 곁에 가서 앉는다.
"잠이 안 와?"
다시 한 번, 끄덕끄덕. 바짝 다가앉으니 녀석의 머리와 몸에서 나는 투명한 향이 코를 간지럽힌다. 한숨을 내쉬고 이불을 들쳐 보였다.
"이리 와. 같이 자자."
마리는 아무 말도 없이 자리에 누웠고 나 역시 따라 누웠다. 맹세코 음흉한 생각을 품고 침대 속으로 끌어들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곁에 바싹 붙는 녀석을 그냥 둘 수 없어 어깨를 팔로 두른다.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내 쪽으로 당겨 안는다. 그냥 그렇게 하고 잠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째 마리의 손놀림이 심상치 않았다.
"마...마리야...."
녀석이 손이 내 상체를 쓰다듬더니 이내 무언가를 찾는다. 내 잠옷의 단추를 하나하나 끌러나가는 마리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단추가 모두 풀리자 손바닥으로 내 가슴팍을 가만히 쓰다듬는다. 애무의 손길이라기보단 일종의 확인 작업 같았다. 그래, 이 사람은 살아있구나. 살아서 체온을 가지고 숨을 내쉬고 있구나 하는 일련의 확인 작업. 귓가에 뜨거운 숨결이 와 닿기에 고개를 돌렸다. 바로 코앞에 마리의 입술이 놓여 있었다. 입술을 맞춰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반쯤 벌려 있고 촉촉이 젖은 입술이 날 부른다.
"오빠야."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리사와 똑같은 목소리. 똑같은 칭호로 날 부르는 마리의 목소리에 가슴이 먹먹하다. 마리는 내 가슴을 두 손으로 짚고 일어나 자신의 몸을 내 위에 드리운다. 상체를 세운 채 날 내려다보고 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달빛이 마리의 얼굴에 쏟아진다.
"지가 그때 글케 말했지예?"
"뭘?"
"언니야랑.... 내랑..... 그렇게 연결되어 있어가꼬..... 헷갈린다고....."
"그랬지."
날 좋아하는 감정이 자신의 것인지, 아니면 언니의 것을 자신이 착각하고 있는지 헷갈린다던 마리의 고백이 이제야 해답을 찾은 모양이다.
"언니는 알고 있었나 보대예... 지는 확실히 오빠를 좋아한다고....."
"그랬어?"
"야. 이제는 지도 알겠어예."
촌스럽게, 뭘 알았느냐 되묻지 않았다. 그저 내 입술을 찾는 마리의 움직임에 응해주고 손을 뻗어 그녀의 옷을 하나하나 벗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서로 알몸이 되어 몸의 구석구석을 탐한다. 내 손 아래 몸을 경직시키는 녀석을 천천히 진정시킨다. 혀가 은밀한 부위에 닿자 마리는 어쩔 줄 몰라하며 부르르 떨었지만, 그래도 몸을 빼거나 사리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팔과 다리를 벌려 나를 받아들였다. 처녀지의 그곳에 한참 동안 입을 대고 빤다. 흥건하게 젖은 그곳은 더 이상의 애무가 필요치 않아 보였다. 몸을 세우고 내 하반신을 녀석의 다리 사이에 위치시킨다.
"넣을게."
마리는 잔뜩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달빛에 드러난 녀석의 얼굴을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몸은 처녀이지만 이미 한번 삽입의 느낌을 알고 있는 묘한 녀석은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가득한 얼굴을 하고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잔뜩 젖어있었지만... 역시 처음의 진입은 아무래도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아앙....하아......"
생각보다 심하게 아파하기에 뺄까 싶었지만, 마리는 끝끝내 나를 놓지 않았다. 눈물까지 흘리는데도 괜찮냐고 묻자 그녀는 기뻐서 그렇다고 했다. 슬프고도 기쁘다고 했다.
"언니도.... 지금 느끼고 있을 거예여...."
"아.. 마리야."
"참말로... 진짜로... 언니도 늘 저와 함께 있으니까요."
그들의 감각 공유는 이승과 저승에서도 계속될까. 문득 궁금해졌다. 이들은 공유는 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시작된 걸까, 그렇다면 어떤 유전적인 요인이 있는 걸까. 설마 리사와 마리의 부모님 중에도 쌍둥이가 있었던 걸까. 아아. 쓸데없는 생각을 잠깐 했다. 내가 집중해야 할 곳은 따로 있었다. 내게 자꾸 매달리는 마리를 꼭 끌어안고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분....이.... 이상해요....."
"많이 아파?"
"하...악.... 몰라예....흐응......"
어쩐지 낯설지 않은 기분. 분명 이런 대화를 언젠가 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지금 같은 얼굴을 한 여자의 처녀성을 두 번째로 앗아가는 중이니 말이다.
"오....오빠.....나.... 기분이.... 하아....."
매끈하게 뻗은 마리의 다리를 벌려 더 깊은 곳으로 향한다.
"오빠....하악....아앙....나.....아아..... 날.... 하아....."
의미 없는 단어들이 흩어진다. 달빛이 부서진다.
"하악....하응......하악.....나.....하악....하아....."
운동으로 다져진 탄력 있는 마리의 몸이 파득이며 나의 리듬에 동참한다. 내가 밀어내는 대로 밀려나고 내가 박아대는 대로 받아낸다. 탄력 넘치는 두 유방이 리드미컬하게 위아래로 흔들린다.
"오빠.....오빠.....하악....하......"
마리의 손이 얼굴을 가리고 있기에 손을 뻗어 그것을 떼어낸다. 고통에 일그러지고 열락에 달아오르는 그 아름다운 얼굴을 가리게 할 수는 없다. 한 번 보았던 광경이지만.... 그래도 다시 보고 싶다. 다시 한 번 느끼고 싶다. 그때 어떻게 했더라.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뻗어 마리의 입에 가까이 댄다. 그러자 마리는 서슴없이 입을 벌려 그것을 마구 빨아댄다. 지금 녀석의 아랫입술이 내 물건을 질근질근 씹어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예전에 읽었던 어떤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거기서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다.
- 쾌락의 추구가 곧 삶이며, 쾌락의 크기는 삶의 파괴에 비례한다.
이 무슨 모순되는 소리인가 싶었지만, 지금 이 순간. 난 느낄 수 있었다. 살아있는 이는 쾌락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 쾌락이 우리로 하여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는 것을. 죽은 이를 추모하는 이 경건하면서 음란하기 짝이 없는 의식은 우리로 하여금 온전히 느끼게 한다. 살아있음을. 그리고 함께하고 있음을 말이다.
"오빠....하악....아앙....나.....아아..... 내가..... 날.... 하아....."
마리는 끊임없이 날 갈구했다. 마치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 영혼을 나에게서 찾고자 하는 것 같았다. 마리의 안에 나를 쏟아붓고 나서도 우리의 몸을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한참을 끌어안고 있다가 다시 또 엉겨붙어 욕망을 불태운다. 몇 번인지 셀 수도 없는 관계로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버릴 때쯤, 마리는 내 품에 안겨 꾸벅꾸벅 잠이 들었다. 기진맥진한 몸을 겨우 가누며 마리의 머리를 당겨 내 팔을 베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리사를 생각했다. 그리고 소란을 생각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생각했다.
그중 어떤 것도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았다. 리사는 이미 내 손을 떠났고 소란은 보이지 않으며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나 내 곁에서 고른 숨소리를 내는 마리의 얼굴을 돌아보며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살아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다음 날, 새벽. 리사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우리는 그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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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15년에는 <더블데이트> 완결됩니다.